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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저는 드레스가 싫어요.”

    “또 그런 소리를.”

     

    화창한 날, 곁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에 루크는 한숨을 쉬었다.

     

    레니에의 저 투덜거림도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케일이 ‘그랜드 소드마스터’라는 역사적인 칭호를 달게 되는 경사인데, 어찌 저리도 피곤하게 구는 것인지.

     

    “하지만, 그렇지 않나요? 너무 비효율적이잖아요. 당신도 마법사이니까 알 것 아닌가요? 드레스는 쓸모없어요.”

     

    레니에는 곧 비효율을 주장하며 투덜거렸다.

    그것은 효율을 중시하는 마법사인 루크에게는 그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는 레니에의 판단이리라.

     

    “입기 전에 해야 할 것도 많은데다, 움직임도 불편하죠! 게다가 이 스커트도 꽤 무겁지요. 몇 겹이나 겹쳐 입는다니, 고작 한 명이 입는 데 사용하기엔 너무나 비효율적인 자원의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실로 영악한 주장이로군, 레네.”

     

    하지만 루크는 그녀가 어째서 드레스를 입기 싫어하는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 왕국에 존재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대는 그저 그 옷을 입으면 달리기가 불편해져서 그럴 뿐이 아닌가.”

    “…….”

     

    레니에는 곧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아직 교회의 수습 성직자일 시절부터 도망치거나 달리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었다.

    어찌나 자주 도망을 쳤는지, 교회에서는 성기사단의 일부를 ‘성녀 추적인원’으로 따로 배정할 정도였다.

    그래서 항상 ‘이번 주는 자신이 추적인원으로 배정되었으니, 제발 이번 주만이라도 아무데도 도망치지 말아 달라.’며 건네받은 과일이나 과자등이 레니에의 방에 넘쳤었지.

    자신들의 여신이나 다름없는 성녀를 무력으로 감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뇌물을 받았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대로 ‘외출’을 했었다.

    게다가 그녀의 그런 행동마저 여신의 가호를 받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추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웠다지.

     

    때문에 레니에가 어렸을 적의 성기사단은 그 어떤 시대보다 성기사단의 ‘추적기술’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불편하다고요! 차라리 갑옷을 입는 게 낫겠어요! 그건 멋지고, 튼튼하기라도 하지! 이 드레스는 어디에 걸려서 찢어지진 않을까 항상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데!”

     

    레니에는 한숨을 내쉬며 루크의 무덤덤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뭔가 할 얘기 없나요. 이루시님? 평소라면 이쯤에서 ‘그만 좀 투덜대게, 사람들이 그대를 어떻게 보겠나.’라고 하실 시간인데.”

    레니에가 자신의 말투를 흉내내며 투덜대자, 루크는 그거 보라는 듯 무감정하게 대꾸했다.

    “그대가 이미 잘 알고 있는데 내가 구태여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얄미워, 당신도 이걸 입어봐야 얼마나 불편한지 알텐데.”

    “흠.”

     

    루크는 레니에의 말에 대답없이 가볍게 콧방귀를 흘렸다.

    레니에는 그런 루크의 반응에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달려든다.

     

    “이루시님, 정말로 한번 입어보실래요? 의외로 어울릴지도 모르겠는데요?”

    “아쉽지만 다 큰 남성이 드레스를 입은 걸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혹시 모르죠, 그 수염도 깎고, 머리도 조금 다듬어서 잘만 하면…….”

    “허.”

     

    루크는 깔끔하게 길러낸 수염을 쓰다듬으며 지팡이로 레니에의 이마를 툭툭 때렸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내가 고작 네 유희를 위해서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나.”

     

    루크는 그리 말하며 가볍게 레니에의 드레스차림을 훑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썩 아름다웠다.

    마치 잘 만들어진 조각상처럼 말이다.

    레니에의 속은 한마리 망아지나 다름없는 말괄량이였지만, 가만히만 있어 준다면 분명히 성녀로서의 분위기를 지닌 여성이었다.

     

    “여성의 드레스는 그대같이 아름다운 여성이 입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으윽. 그치만…….”

     

    루크의 칭찬을 들은 레니에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루크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이내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바짝 쳐들고선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그, 그래도, 항상 입고 벗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데, 이건 대마법사께서 어떻게 못 해주시는 건가요?”

    “……그대는 마법사를 대체 뭘로 알고 있는 건가.”

     

    무슨 마법사를 만능 하인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

     

    루크는 자신의 드레스를 내려다보며 떠올리던 옛 생각을 멈췄다.

     

    ‘이제는 그대의 말에 나도 공감한다, 레니에.’

     

    “저기, 그 부분은 그쪽으로 감는 것이 아닌데.”

    “아, 진짜네. 미안해! 이런 거 처음이라서.”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루크는 메리의 하인들이 입는 법이 적힌 설명서를 살피며 쩔쩔매는 것에 적당히 훈수를 두며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루크가 드레스를 입는 방법을 아느냐 물으면 그 대답은 이렇다.

     

    과거에 결국 레니에의 드레스를 쉽게 착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보기 위해 이미 드레스를 입는 법은 통달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뭐, 현대의 드레스는 옛날에 비하면 그 입는 과정이 굉장히 단순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건 조금 더 세게 묶을까?”

    “아니, 거긴 조금 느슨하게 푸는 게다.”

    “아, 그렇구나. 이제 알겠어. 그런데, 너는 드레스에 대해서 정말 잘 아는구나. 대체 언제부터 공부한 거야?”

    “…….”

     

    루크는 침묵했다.

    남성일 적부터 드레스를 입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 딱히 자랑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자, 다 됐다. 어때?”

    “이거 보기보다 입히기 힘든 옷이었구나.”

    “그래도 정말 잘 어울리는 걸.”

     

    메이드복을 입은 하인들이 루크의 드레스차림을 보고 뿌듯한 표정으로 땀을 닦아내었다.

    표정과 감정을 보아하니, 힘들기는 했어도 나름대로 즐거웠던 모양이다.

     

    “…….”

     

    하지만 루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색해했다.

    이게 자신의 모습이라니, 레니에가 이 모습을 봤다면…….

     

    “하아, 차라리 봤다면 좋겠군 그래.”

     

    그러고보니, 레니에를 처음 만난 것도 지금같은10번째 생일이 아니었던가.

    갑자기 생일 파티가 하고 싶어진 것도 어쩌면 그런 그리움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레니에가 특히나 그리운 날이다.

     

    ————

     

    “우와, 이걸 정말로 다 루크가 준비했단 말이야?”

     

    연회장에 들어선 아이들의 감탄에 메리는 당당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루크만 한 건 아니고, 나랑 우리 아빠도 많이 도왔지!”

    “나도 도왔고.”

     

    시루드가 끼어들 듯 중얼거리자, 메리가 활짝 웃으며 시루드의 팔을 당겨 아이들 사이에 세웠다.

     

    “그래, 시루드도 도왔고!”

    “하지마, 옷 구겨지잖아.”

     

    하지만 그런 접촉이 별로 맘에 들진 않았는지, 시루드는 시큰둥하게 팔의 소매를 툭툭 쳐냈다.

    엄마가 오늘을 위해 준비해준 꽤 비싼 옷이었으니까.

     

    “집을 빌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메리 아버님.”

    “하하! 괜찮습니다. 뭐, 이런 종류의 파티도 한번 쯤은 열어보고 싶었거든요!”

     

    예르나의 감사인사에 메리의 아버지, 토마스 아이델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도 루크의 ‘생일파티’에는 꽤 관심이 있었으니까.

    어린이 장난감 사업도 경영하는 그는 그냥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자신역시 노는 것을 좋아하던지라 이런 이색적인 파티에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처음 메리와 루크의 제안을 받은 순간 곧바로 흔쾌히 수락했다.

     

    “그나저나, 집이 굉장히 넓네요. 제가 다니던 학교보다 넓은 것 같은데요.”

     

    다이튼은 저택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그야말로 대저택.

    여기까지 운전해오면서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마치 미디어에서나 볼 법한 압도적인 크기의 멋진 집이었다.

    아니, 어쩌면 호텔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리려나.

    말도 안되게 높은 천장, 그리고 화려한 샹들리에, 멋지게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커다랗고 화려한 액자 속에 그려진 멋진 풍경…….

    연회실은 그야말로 ‘귀족’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를 듯한 귀족적인 모습이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이 집의 주인인 토마스를 바라보면, 뿔 밑으로 좌우로 말린 형태의 머리카락과 당시 귀족적인 코스튬까지 차려입은 모습이다.

    파티에 루크만큼이나 진심인 듯 하다.

     

    “정말 귀족 같아요.”

    “하하, 감사한 말씀입니다. 열심히 꾸민 보람이 있군요. 하지만 이게 다 그 아이가 제시한 컨셉에 따랐을 뿐입니다. 스케치가 꽤 대단하던걸요.”

    감탄하는 다이튼을 바라보며, 토마스 아이델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부모끼리 덕담을 주고받는 한편, 메이드 복장을 입은 한 여성이 점잖은 톤으로 외친다.

     

     

    “오늘의 주역께서 등장하십니다.”

     

     

    그러자 이곳 저곳에서 떠들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잠시 후.

    드레스를 입은 루크가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한다.

     

    -또각, 또각.

     

    일순간 고요해진 연회장은 그 조그만 구둣발 소리마저 커다랗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연히 시선을 돌리면, 프릴과 리본으로 한껏 장식된 고급스럽고 화려한 장식의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 아이는 하인들을 대동한 상태로 드레스 양 옆을 들어올린 채 계단을 천천히 하나씩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자세가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정말로 그 시대의 레이디를 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마주치는 시선마다 가볍게 웃음까지 지어주는 센스라니, 그야말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아는 느낌이랄까.

    그 모습에 다들 감탄을 하며 지켜보고 있는 순간.

     

     

    루크는 혼자서 생각했다.

    ‘파티의 규모가 처음보다 줄어서 다행이구나’라고.

    바닷가에서도 느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의상을 입은 채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대중들의 침묵 또한 상당히 무겁게 느껴진다.

    무언가 반응이라도 해주면 감정을 읽을 수라도 있어 좋겠는데, 아무 말도 없이 입을 다물고만 있으니 약간은 불안하기도 하다.

    선물로 받았다고해서 괜히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때문에 시선이 닿는대로 사교적인 웃음을 보내는 중인데도 침묵은 더욱 심화될 뿐, 나아질 기미가 없다.

    혹시나 처음 들어설 때 뭔가 실수라도 한 것일까?

    뭔가 이 시대의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한 것은 아닐지.

    결국 루크는 시선을 내린 채 계단을 밟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드레스를 입기 싫어했던 레니에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드레스는 분명 아름답지만, 쓸모없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루크의 드레스!!

    많은 자원과 노력이 들어간 물건(조각상이나 세공품, 화려한 장식등)이 마법적으로 가치있다는 세계관 특성상, 5000년 전의 귀족의 드레스나 복식, 가구등은 로코코양식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근데 이건 루크식이니까 루크크양식?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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