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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클라라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요정들이 그녀에게 최면을 걸어 부려 먹는 거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거의 본인이 자초한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애초에 우리는 정당한 계약을 집행한 것에 불과하단 말이죠!”

         

       맞은편에 앉은 요정이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땍땍거리듯 말했다.

         

       그는 루미와 비슷한 체격의 어린 남자애였는데, 소매가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몸에 맞지 않은 큰 잠옷을 입고 있었다. 고깔 형태의 나이트캡도 머리에 비해 상당히 커서 그의 눈과 코를 대부분 가렸고 입만 간신히 드러났다.

         

       “클라라는 그렇다 쳐도, 루엘로는 어쩌다가……?”

         

       그를 대하는 루미의 태도는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단장인 오베론의 이름도 거침없이 부르던 그녀가 이 꼬마에게만은 존칭을 썼다.

       그는 자신을 부단장이라고 소개했고, 이름은 퍽이라고 했다.

         

       “은막 꼬맹이, 그 반인반마는 착한 아이더군요. 저 혼의 잡종이 우리에게 끌려가게 되자 자진해서 따라오기로 했습니다. 함께 일한다면 기한을 반으로 줄여줄 수 없냐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종업원 일을……? 그런데 클라라만 왜 저런 꼴로 만드신 거죠?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저건……오베론이 좀 과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루미가 방구석에 있는 클라라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을 고양이로 생각하는지 네발로 쪼그려 앉은 채 손등을 혀로 핥고 있었다.

         

       “원래 우리는 그녀에게 별다른 제재를 걸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녀는 계약을 무시하고 달아나려 했죠. 그것도 어린 페어리를 인질로 붙잡아서요. 그 과정에서 노움 한 명은 정강이가 걷어차여서 다리가 부러졌고, 스프라이트 하나는 주먹으로 맞아서 코뼈가 주저앉았어요. 그래서 화난 우리 대장이 좀 강하게 최면을 걸었는데 저 모양이 되어버렸죠.”

         

       나는 신음을 삼켰다.

       클라라가 그런 짓까지 하다니.

       자업자득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으으, 오베론! 무서워요!”

         

       클라라가 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의자 뒤로 몸을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퍽은 그런 그녀를 향해 가볍게 휘파람을 휙 하고 불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 땅에 얼굴을 처박고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어쨌든 친분이 있는 은막 꼬맹이의 부탁이니 그녀는 돌려주도록 하죠. 그 대가로 나중에 우리 공연을 며칠 도와줬으면 좋겠군요. 몇 달 뒤? 그쯤 전령을 보내죠.”

       “감사합니다.”

         

       퍽은 그녀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귀향자.”

       “어……저 말입니까?”

         

       퍽이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이상했다. 멀쩡한 이름 대신 자기 멋대로 별명을 갖다 붙였다.

       내 경우는 ‘귀향자’였다.

         

       “저 혼의 잡종은 당신의 단원이죠?”

       “맞습니다.”

       “그럼 당신도 대가를 치러야겠군요.”

       “전 뭘……하면 됩니까?”

       “나중에 은막 꼬맹이가 우리 일을 도우러 올 때, 함께 오세요.”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일에 며칠 정도 시간을 빼는 건 문제없었다.

         

       “좋아요. 그럼 혼의 잡종을 데려가세요. 금제를 풀긴 했지만, 원상태로 회복하려면 며칠 걸릴 거예요.”

         

       나는 잠들어 있는 클라라를 어깨에 짊어지고 루미와 함께 방을 나왔다.

       그녀는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설마 퍽 님이 계실 줄이야.”

       “뭐 하는 요정이죠?”

         

       루미는 내 말투가 불손하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살짝 흘겨봤다.

         

       “‘샌드맨’이라고 들어 봤어? 잠의 요정이자 꿈의 해석자야. 요정 중에서도 강력한 마법의 힘을 지닌 특별한 분이셔.”

         

       퍽은 어린애 같은 겉모습과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묘하게 현자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확실히 다른 요정들과 뭔가 달라 보이긴 했다.

         

       “그렇게 대단한 분이면……저분이 저를 부르는 호칭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뭐? 귀향자? 아, 그거. 아마 네 꿈을 들여다봤겠지.”

       “꿈? 설마……제 머릿속을 읽었다는 건가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루미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왜? 들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많나 보지?”

       “아니, 누구라도 걱정할 만하죠. 기억을 읽히는 건.”

       “걱정하지 마. 샌드맨의 해몽은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표상을 읽는 거니까. 부르는 별명도 그때그때 달라져. 너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그렇게 부른 거 아닐까?”

         

       우리는 아래층에 있는 커다란 객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엘라와 루엘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라는 문이 열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우리에게 달려왔다.

         

       “어떻게 됐어?”

       “무사히 돌려받았습니다.”

         

       나는 클라라를 침대 위에 조심히 눕히며 말했다.

       엘라는 한시름 덜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클라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까처럼 분노나 동정심은 없었다. 살짝 한심하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순순히 풀어줬어? 루엘로에게 다 들었어. 클라라 선배가 꽤 크게 사고를 쳤던데? 혹시 서커스 쪽에서 아저씨와 언니에게 뭔가 다른 걸 요구한 거 아냐?”

       “별거 없습니다. 며칠 정도 이쪽 일을 도와달라는 것뿐이었어요.”

       “반년 뒤라니까 넌 신경 안 써도 돼.”

         

       엘라는 안심한 듯하면서도 민망한 듯 애꿎은 의자 다리를 걷어찼다.

         

       “번번이 신세만 지는 것 같네.”

       “하하, 우린 엘피 양을 돕기로 약속했잖아요. 그 대가는 이미 치렀는걸요?”

       “내가 치렀다고?”

         

       나는 그녀를 향해 낄낄 웃어 보였다.

         

       “산 사람의 재주를 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엘피 양과 함께한 무대. 정말 즐거웠습니다.”

         

       내 말에 그녀도 아까 노래 부른 기억이 떠올랐는지 환하게 웃었다.

         

       “맞아. 나도 재밌었어……어, 잠깐, 선배?”

       “아우우, 아파, 머리 아파.”

         

       클라라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그녀는 머리를 감싼 채 칭얼대는 소리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가장 그녀 걱정을 많이 한 루엘로가 부리나케 침대로 달려왔다.

         

       “언니, 저 알아보겠어요?”

         

       클라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으응, 루리? 뭐야, 왜 여기에? 어, 잠깐, 부단장?”

         

       자신을 알아보는 그녀를 보고 엘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이 든 모양이네. 고생 많았어, 선배.”

         

       그러나 클라라가 보인 반응은 우리의 예상 이상이었다.

         

       “와! 내 계획이 성공했어! 드디어 만났네! 부단장! 부단장!”

       “어어, 서, 선배?”

         

       침대에서 일어난 클라라는 갑자기 엘라에게 달려들더니 그녀의 가슴에 파묻고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왜, 왜 이래?”

       “나 쓰다듬어 줘!”

       “뭐, 뭐……?”

       “나, 있지. 루리 지키려고 노력했어! 착하다고 해줘!”

         

       당황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엘라를 향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며칠 걸린다고 하더군요.”

         

       클라라는 이제 네발로 걷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을 애완동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마치 개처럼 엘라의 뺨을 혀로 핥으려 들었다.

         

       “반가워! 반가워!”

       “아, 선배, 좀, 제발…….”

         

       엘라는 그녀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클라라는 워낙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탓에 쉽사리 뿌리치기가 힘든 것 같았다.

         

       “나 부단장 좋아해!”

       “아, 그래도……이건……떨어져……아, 진짜……씨……똑바로 안 서!”

         

       엘라의 입에서 벽력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단호하면서도 싸늘한 음성이었다.

         

       클라라는 사색이 된 채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엘라의 표정을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지켜보는 우리도 그녀의 얼굴에서 한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 표정, 음성 모든 것에서 상대의 복종을 요구하는 듯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엘라의 저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입학시험에 나왔던 과제 중 하나인 ‘맹수 복종시키기’.

       거기서 그녀는 학교에서 제공한 채찍도 쓰지 않고, 말 한마디로 5초 만에 학교에서 기르는 호랑이가 발라당 누워 배를 보이게 했다.

         

       흔히 개장수만 보면 개들이 오줌을 지린다고 하는 것처럼 ‘위압’은 조련사의 특기였다.

         

       클라라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 루엘로 뒤에 숨으려 했다.

         

       “부, 부단장, 무서워. 루리, 나 좀 지켜줘.”

       “어, 언니, 머리카락 붙잡지 마요…….”

       “부단장이 나 싫어하나 봐.”

         

       클라라는 울먹이는 눈동자로 엘라를 바라봤다.

       그녀도 막상 상대가 저렇게 나오자 미안한지 금방 표정을 풀어버렸다.

         

       “아, 미안, 미안. 내가 반사적으로 위압을 해버렸네.”

         

       돌변한 그녀의 태도에 클라라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부단장 화 안 내?”

       “응? 나 화 안 났는데? 내가 클라라 선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좋아해?”

         

       클라라는 조심스럽게 루엘로의 등 뒤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엘라를 꽉 껴안고 그녀의 품에서 엉엉 울어댔다.

         

       “무서웠어!”

       “알아, 알아. 내가 나빴지?”

       “맞아! 나빠!”

         

       엘라가 그렇게 달래주자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루엘로에게 놀러 가자고 팔을 끌었다.

         

       엘라는 방을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것이 우리를 향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기 부탁이 있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클라라 선배……여기 있는 동안만이라도 두 사람이 돌봐 주면 안 될까?”

       “저희가요?”

         

       엘라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지금처럼 다뤄도 되긴 한데……나중에 선배가 정신을 차렸을 때, 혹시 기억이 있다면, 얼마나 민망해하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보다 어린 애한테 애교를 부리며 애완동물 취급당했다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자살하려 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미수자 아닌가.

         

       “알겠습니다.”

         

       얼마 안 가 클라라와 루엘로는 노움들이 만든 기묘한 잡동사니들을 잔뜩 품에 안고 들어왔다.

         

       “이거 가지고 놀자!”

       “선배, 회복할 때까지 이분들이 선배를 돌봐 줄 거야.”

       “우우, 나 부단장이 좋은데. 이 사람들 누군데?”

       “이분은 루미, 이분은 오즈. 이곳에 사시는 분들인데, 우리를 안내해주기로 했어.”

         

       클라라는 우리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내 몸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주인님이야?”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맞춰줘야지.

         

       “네. 맞습니다, 클라라 양.”

         

       그러자 그녀가 크게 반색하며 짚단으로 만들어진 내 몸통을 꽉 껴안았다.

         

       “와, 주인님이다! 근데 이상한 모습이네?”

       “페르소나가 다들 그렇죠.”

       “히히, 맞다!”

         

       어느새 이곳에 온 지 하루가 다 되어갔다.

       우리는 여관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한 후, 티케터를 불러 엘라에게 온 초청장들을 확인했다. 몇 시간 만에 아까의 몇 배나 되는 입장권들이 그녀에게 발부되어 있었다.

         

       우리는 클라라와 루엘로가 방에서 놀도록 내버려 두고는 거실에 둘러앉아 그것들을 검토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극장은 없었다.

         

       “뭐야, 이게 끝이야?”

       “빈 극장은 정말 찾기 힘들군요.”

         

       초청장의 확인이 대부분 끝나갈 무렵, 티케터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는 품에서 초청장 하나를 더 꺼냈다.

       엘라는 별 기대 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티케터는 그것을 그녀가 아닌 내게 건넸다.

         

       “이건 오즈 님 앞으로 보내온 입장권입니다.”

       “저한테요?”

       “오, 아저씨 노래도 팬이 생겼나 봐.”

         

       엘라의 너스레에 나는 고개를 내젓고는 초청장을 폈다.

       당연히 내 노래를 감명깊게 들은 관객이 보낸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났던 나비 가면의 순찰대 조장이 보낸 것이었다.

         

       입장권의 뒷면에는 모레 저녁에 자신의 마지막 공연이 있으니 보러 와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제야 그의 일이 떠올라 엘라와 루미에게 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소멸을 앞둔 페르소나의 극장이라고?”

       “극장을 비워두고 있단 말이지?”

       “모레 가서 며칠이라도 우리가 쓸 수 있게 부탁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 의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설득이 좀 더 쉽도록 내일 다시 광장에 나가서 상을 노려보기로 하고 이만 하루를 끝마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글 쓰는 속도가 초반보다 느려진 것도 있고, 특히 이번 에피소드는 새로운 배경, 인물, 설정이 많이 나오는 터라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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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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