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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맥주병은 마치 투수가 온 힘을 날린 야구공처럼 강하게 날아갔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했는지 저것에 맞으면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진성은 갑작스레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맥주병에도 당황하지 않고 손을 뻗었고, 마치 맥주병이 던져진 것은 자기 손에 잡히기 위함이었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병의 목을 그대로 잡아버렸다.

       그리고는 윌리엄에게 다가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악수였다.

         

       “하?”

         

       윌리엄은 그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맥주병을 집어던졌는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채고,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진성이 자신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아그네스와 함께 들어온 빌어먹을 놈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악수를 청하기까지 한다.

         

       “너 뭐 하는 놈이야?”

         

       진성은 윌리엄의 질문에 딱히 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무해하다고 주장하려는 듯 생글생글 웃기만 했고, 재촉 하나 없이 윌리엄이 악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내민 손을 거두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윌리엄은 배알이 꼴린 듯 술이 남은 맥주병을 거꾸로 쥐고 진성이 내밀고 있는 손을 향해 내리쳐버렸다.

         

       텁!

         

       하지만 진성은 그 맥주병마저 가볍게 잡아버렸고, 그 맥주병을 저 멀리 집어던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를 다시 청했다. 그 모습에 윌리엄은 분노마저 사라져버린 듯 하,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실소를 흘리며 손을 움직였다.

         

       짜악!

       

       그는 진성이 내민 손을 맞잡는 대신 따귀를 때리듯 강하게 쳐버렸고, 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뭐 하는 애새끼야? 너 나 알아?”

         

       하지만 진성은 이번에도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생긋 웃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한 채, 동문서답을 하듯 다른 말을 꺼냈을 뿐이었다.

         

       “얼굴에 걱정거리가 보이는군요.”

         

       기묘한 말투였다.

       여러 사람에게서 제각기 영어를 배워서 꿰맞춘 듯한 말투.

         

       짧은 문장에도 상류층이 쓰는 영국식 악센트가 섞인 영어(Posh English)와 미국 놈들이나 쓸법한 영어, 동양 놈들이나 쓸법한 영어가 섞여 있었다.

       말에도 형체가 있다면 아마 저 말투는 여러 동물의 팔다리를 끼워서 맞춘 듯한 기괴한 형태이리라.

         

       우아하고 어려 보이는, 좋게 말하면 해가 없어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호구 같아 보이는 외모에는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괴리가 말에서 풍겼다.

       그래 마치….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마주하며 언어를 배워온 이방인 주술사가 쓰는 말투 같았다.

         

       “걱정거리라는 것은 곧 불행의 전조를 말합니다. 끔찍한 불행은 시체와 같아 항상 그 냄새를 풍기죠. 관을 열어보기도 전에 코를 찌르는 시체 냄새가 나듯이, 방문을 열기도 전에 역겨운 벌레들이 좋아하는 끔찍한 냄새가 풍기듯이 말입니다.”

         

       진성은 윌리엄이 움찔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여러 타입의 영어를 조합해서 윌리엄의 귀를 어지럽혔다.

         

       뇌리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렬하게 틀어박히도록 말이다.

         

       “이러한 걱정거리가 생기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운기가 다 스러지거나, 마땅히 와야 하는 재앙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탁한 기운이 스며들어 제대로 운이 발현되는 것을 막아 세우거나 하는 것들 말입니다.”

         

       진성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윌리엄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윌리엄이 끼어들려고 한다면 재빠르게 강렬한 영어를 사용해 호흡을 빼앗아 끼어들지 못하게 막고, 손을 느릿하게 움직이며 윌리엄의 시야 바깥에서 그를 현혹하였다.

       그리고는 손짓에 신경이 쓰여 슬그머니 시선을 옮기면 다시 말에 악센트를 넣어 다시 입가로 시선을 옮기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진성은 쉽게 싫증을 내는 윌리엄의 성향에 딱 걸맞은 어투로 그렇게 그를 현혹하였다.

         

       하나에 흥미를 잃기 시작할 때 또 하나로.

       그것에 흥미를 잃기 시작할 때는 또 하나로.

         

       마치 탁구공을 넘기듯 진성은 악센트와 말의 속도, 제스처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 효과가 극대화되었을 때, 진성은 역으로 윌리엄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우환(憂患)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윌리엄이 그 질문을 받고 어이가 없다는 듯 진성에게 욕을 내뱉으려고 할 때,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는 듯 제멋대로 말을 꺼냈다.

         

       “아마 모르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자주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니까요. 특히나 동양 문화가 널리 퍼지지 않은 유럽에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윌리엄은 갑자기 끼어들어 온 진성의 말에 할 말을 다시 목구멍에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어이가 없다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황당했으니까.

       자기 말을 싹부터 잘라버리는 미친놈은 처음 보았으니까.

         

       한평생 망나니로 살아오면서 자기 말을 멋대로 끊거나 입을 막아버리는 일을 겪은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윌리엄이었기에 그의 황당함은 상당히 컸다.

         

       “보통 동아시아의 단어가 그러하듯 표의문자로 이루어진 이 우환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병, 걱정거리, 근심 등의 의미를 품고 있지요. 여기서 환(患)이라는 것은 근심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 모양새가 참 그 뜻과 걸맞은 모양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성은 윌리엄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건 말건 자신의 할 말만 계속했다.

         

       “꼬챙이를 의미하는 한자와 심장과 마음을 의미하는 한자가 합쳐져 있지요. 그 뜻을 풀어보자면 말하자면 심장을, 마음을 꿰뚫는 듯한 아픔이 되겠네요. 게다가 마음의 중심이 두 개가 되어있는 모양새이기도 하니, 한 번에 두 개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근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즉, 정말 그 의미가 딱 맞지 않습니까?”

       “이 미친 애새끼가 지금 내 앞에서 강의라도 하겠다는….”

         

       진성은 인내심의 한계라도 느낀 듯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는 윌리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입 밖으로 끄집어낸 말을 시작으로 줄줄이 욕을 내뱉기 전에, 그 맥을 툭 끊어버리듯 말을 꺼냈다.

         

       “마치 당신의 마음에 꼬챙이가 꽂혀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말에 윌리엄은 정곡이라도 찔린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자신이 정곡을 찔린 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아니면 짜증이라도 나는 것인지 윌리엄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리곤 가방을 열어 술이 찰랑거리는 맥주병을 하나 꺼내고는 그것을 거꾸로 고쳐잡았고, 진성의 머리통을 후려치기라도 할 듯 손을 높이 올렸다.

         

       하지만 그가 맥주병을 내리꽂기 전 진성을 보호하듯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뭐 하는 짓이에요!”

         

       엘라였다.

         

       엘라는 사람을 홀리려고 작정하는 듯한 진성의 말에 빠져있다가, 윌리엄이 그를 때리려고 하자 보호하기 위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리곤 도끼눈을 치켜뜨며 윌리엄에게 거세게 항의했고, 윌리엄이 어버버하면서 그대로 멈춰 서 있을 때 진성을 끌고 윌리엄과 거리를 벌렸다.

         

       “헤어 박, 괜찮으세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엘라는 뒤로 물러나자마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성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특히나 두 번이나 맥주병을 잡아내었던 진성의 손을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그녀는 진성의 손이 빨갛게 변하지는 않았나, 부어오르지는 않았나, 혹시 뼈가 부러지지 않았나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어디 아픈 곳이 없나 확인까지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진성의 손을 떡 주무르듯 만졌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고는 황급히 그의 손에서 손을 떼었고, 부끄러움이 붉어진 얼굴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프라우 빈터께서 저를 염려해서 한 행동인데, 오히려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꽤 다정해 보이는 모양새였다.

         

       “허?”

         

       윌리엄은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손에 쥐었던 맥주병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진성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딱 떠오르는 것이 없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가방을 뒤적거려서 수첩 하나를 꺼냈다.

         

       한국으로 간다고 하니 가문에서 ‘중요한 사람들 얼굴이랑 이름을 여기다 기록해놓을 테니 제발 이 사람들만 피해서 사고를 쳐라.’라는 의미를 담아 명단을 기록해놓은 수첩이었다. 그는 거기서 ‘B’ 파트로 가서 한 장 한 장 넘겨보았고, 거기서 ‘Bak’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박 진성.

         

       ‘성년의 날’ 행사 때 참여하는 유망주 주술사.

         

       ‘아, 기억났다. 귀여운 네스와 엘라가 이 자식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지?’

         

       윌리엄은 수첩에 적힌 내용을 보고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여동생이 건방진 딸년이랑 좀 친하다고 했던가?’

         

       그는 혹시 기억이 더 떠오를까 싶어 수첩을 대충 훑었다.

         

       하지만 수첩에는 그의 기준으로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저택의 주인이 한국에서 몇 위의 기업인이고 인맥은 어떻고 하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만 있을 뿐.

         

       윌리엄은 수첩을 다시 가방에 쑤셔 넣고는 엘라와 진성을 다시 바라보았다.

         

       ‘저 애새끼가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면…. 흠.’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평소의 얼음장 같았던 태도가 아닌, 무도회에서 자주 보이는 여자들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을 때 보이는 것 같은 설설 기는듯한 태도를 보이는 엘라의 모습이었다.

         

       “하.”

         

       그 모습을 본 윌리엄의 분노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투덜거리던 애새끼가 그래도 할 건 다 하고 다니는군.”

         

       그는 분노를 빠르게 없애고는 뚜벅뚜벅 진성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경계하듯 자신을 노려보는 엘라의 시선을 무시하고 진성을 바라보며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봐, 말을 했어야지. 사위라고 말을 했으면 내가 안 그랬을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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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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