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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그래서, 요게 이 개지랄판을 만든 감염 드로이드 중 한 대라고?”

         

         엑사테크 긴급 지원팀 소속 파견 엔지니어, 현장에서 기술 자문직을 담당하는 남자가 세상 삐딱한 태도로 중얼거렸다.

         태도라 굳이 콕 집어서 말한 점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그저 말투만이 아니라 행동거지 자체에 여러모로 건들거림이 보였으니.

         

         입가에 물린 채로 까딱거리는 담배 꽁초.

        짝다리를 짚고 선 걸로도 모자라 시큰둥하게 뻗어진 다리가 툭툭, 지면에 가로누인 결박된 로봇들 중 한 기의 동체를 가볍게 찬다.

         

         누군가 메가코프 자산에 함부로 신발 밑창을 가져다 댄다 하면, 속되게 ‘가오’ 잡으려고 예견된 분쟁에 머리를 들이미는 병신 짓거리 좀 작작하라는 말을 듣기 딱 좋았지만.

         애당초 그걸 행하는 주체가 담당 직원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별상관도 없는 법이다. 아마 웬만한 이들보단 훨씬 더 자기 앞가림을 잘 해서 그런 자리에 오른 것일 테니까.

         

         “거 그러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거나 풀려나면 저는 도저히 못 막지 말입니다.”

         

         “엉? 전투 도중에 전원이 끊어진 것처럼 다 멈췄다면서? 동력부를 따로 제거한 게 아니었나?”

         

         “모르죠. 갑자기 픽! 하고 쓰러졌으니, 반대로 예고 없이 벌떡! 일어날 수도.”

         

         그러나 일대에 출입 금지 라인을 세우고 경계 근무를 계속하던 NHPD 소속 전경(Officer)은 엑사테크 주임에게 굳이 한마디를 보탰다.

         

         이유는 생각 이상으로 간단.

         인근에서 벌어진 소요 사태가 점점 규모를 키워감에 따라 더는 흔히 있는 기업의 일이라며 방관할 수 없었던 치안 관리국에서 뒤늦게나마 출동시킨 병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것들이 팔팔하게 깨 있을 때 무슨 지랄발광을 벌이고 있었는지 직관했기 때문이리라.

         

         목소리에 담긴 꺼림칙함을 느낀 주임은 경찰관에게 주제넘은 충고를 한다며 화내기보단 ‘시발, 하여간 현장 보고를 중요한 것만 명시하랬지 존나 대충 하랬나.’ 하고 투덜거리며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라고 마냥 성질머리가 고약하거나 까칠하게 구는 걸 좋아해서 이런 식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다.

         

         현재 현장의 범위는 콜드플레인 자원 개발사 부지를 포함한 일대 블록을 전체, 격리하는데 들어간 군세만 해도 엑사테크와 경찰의 혼성 병력으로 한 트럭.

         땅에는 구속 장비나 결박용 도구가 모자란 탓에, 폐기장에서 쓰는 대형 고철 자석까지 이용해서 눌러 놓은 감염된 로봇들로 가득한 데다가.

         더듬어갈 피해 현황만 산더미에 무슨 선임 연구원으로부터의 은밀한 청탁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공식적인 타임 라인이나 명령서도 남아있지 않은데.

         

         “…시벌.”

         

         이렇게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진상 조사를 하려면 있는 그대로. 날 것에 가까운 반응과 감상을 취합해야 하는 법이기에 다소 가볍고 껄렁한 방식을 취한 것뿐……이기는 개뿔, 그냥 짬 당한 외근이 너무 짜증나서 그만.

         

         주임이 수혜를 입기엔 아직 너무 일렀던 좆 같은 연공 서열 문화와, 쓸데없이 애매하게 유능한 그의 실력이 원인 되시겠다.

         

         아무튼 요구되는 달성 과업이 명확한 업무인만큼, 일을 끝마쳐야 돌아갈 수 있고… 퇴근도 하고… 여가 시간도 생기는 법인데.

         이 상태로는 그 골인 지점이 더럽게 아득해 보였으니 그에게 남은 최선은 반항은 방금처럼 본격적인 일을 개시하기에 앞서 응축된 욕설을 씹어 뱉는 게 다였다.

         

         “흡!? 그걸 그렇게 막……!!”

         

         딸깍.

         가지고 온 노트북의 전원을 킨 다음. 쭉 뽑아낸 연결선을 다짜고짜 드로이드의 노출된 회로판에 처박자마자, 뜨악한 경찰이 대참사를 예감하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주임은 어디까지나 태연자약 그 자체.

         

         “바이러스~ 바이러스. 모든 기업들이나 사이버 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이 자꾸 위험하다고 노래를 부르니까 사람들이 진짜 생물 바이러스랑 착각을 하는데. 이런 복잡한 정밀 기계류가 특정한 행동 양식을 반복하거나, 목적성을 가지고 작동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사실 멀웨어(Malware; 악성 프로그램)에 가까운 물건일 거란 말이지.”

         

         남자는 무려 엘리시움 공채에 합격하고도 더 현생에 유리한 근무 조건과 보너스를 제공한 엑사테크에 입사할 정도의 능력자.

         태생적으로 귀찮음이 많긴 해도 밥벌이를 하게 해주는 자신의 전공과 기술에 대한 지식은 아주 견고했다.

         

         “그런 프로그램은 인접한 네트워크나 다른 전자기기가 있다고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구조가 아니야. 보통은 탐지되는 보안 취약점이 있던가… 무사히 복사될 수 있는 전송 조건이 맞을 때 조용히 건너 건너 전파되는 거지.”

         

         “………정말 그렇습니까?”

         

         “아니면! 옛날 옛적에 해커 그룹들이 판치거나 엘리시움 애들이 대형 사고 쳤을 때 메트로폴리스는 싹 다 멸망했게? 진짜 해괴망측하고 독한 물건이래도 지 혼자 근간이 되는 코드와 시스템의 한계 밖에서 놀 수는 없으니까 격리할 환경만 잘 만들어주면…… 됐다.”

         

         여타 다른 엑사테크 파견 직원들은 사태 제압을 위한 드로이드 오퍼레이터와 전투원뿐이었기에 주임은 적적함도 달랠 겸 경관을 말동무 삼아 전문 기술자만이 가능한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열심히 쳐다본다고 뭔가 달라지는 것도 없었지만 파도처럼 일렁이는 문자열과 수식의 향연은 묘한 쾌감이 있었기에 경관도 슬쩍슬쩍 그 광경을 구경했고.

         

         컴퓨터에 추가로 부착한 하드디스크를 요람으로 만든다.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엔 명당처럼 보이도록 레드 카펫까지 깔고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곳은 관찰실이자 배양실. 무분별하게 흘러 들어오는 데이터가 차곡차곡 고이는 막다른 연못으로 설계된 공간이었으니 그는 침착하게 목적한 비인가 프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다가…… 낚아 올렸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이 보기에도 개쩌는 완벽한 일 처리였다 내심 자부했다. 분명 자부했는데….

         

         “……허?”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샜다.

         엑사테크 전산망에 등록되지 않은 정보 속성을 가진 대용량 시스템 파일이 전송되고 있다 표시되었을 때, 이미 분석할 대상을 발견했음은 직감했다.

         

         하지만 처음 그린 그림이 구경꾼을 안주삼아 폼나게 코드더미를 분석하고, 그걸 바탕으로 멀웨어를 분류해서 보고서를 올리고, 치안 관리국에 주의해야 할 악성 코드로 제보를 넣어서 포상금을 받거나 개인적인 컬렉션에 추가하는 것이었으니.

         

         갑자기 ‘이런 형용할 수 없는 걸’ 마주할 마음의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직전의 화면이 리듬감 넘치게 촤르륵 올라가는 문자열로 일렁였다면.

         지금은 틀림없이 단일 파일을 열어놓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코드 일부가 변화하는 괴현상으로 인해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신이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가? 아니.

         무심코 사이버웨어를 연결해서 머리로 수식을 짜고 있었나? 전혀.

         다운로드 받는 과정에서 실수를 해서 노트북이 감염되었을 가능성은? 지랄.

         

         그렇다면 왜 각종 드로이드와 전자 장비들을 통제에서 벗어나게 만든 이 악성 프로그램은 고대하던 환경 변화를 탐지한 전염성 감염원 마냥 주변을 가늠하듯 꿈틀거리는 걸까.

         

         “…….”

         

         “그, 뭔가 좀 알아내셨습니까?”

         

         주임은 잠시 꽂아 놓은 전선이 맥동하는 탯줄처럼, 반들반들하게 관리한 모니터가 질척이는 살점으로 뒤덮인 환각을 봤다.

         

         좀 알겠냐고? 당장은 아는 만큼 말도 안 되는 게 보여서 문제다.

         

         스스로, 그것도 추가 명령어 입력이나 조작조차 없이 실시간으로 연결부의 구조를 끊임없이 바꾸는 독립 생태계?

         대체 해독하거나 실전에서 막아내려면 몇 배의 인적 자원을 소모해야 저울이 간신히 평형이 이룰까. 씨발 이런 게 존재하는 원리는 대체 무엇이고, 개발하는데 사용한 툴은 어디 거고, 그 출처는?

         

         ……아, 혹시 엘리시움에서 새로운 특이점에 도달한 성과를 시험해보려고 방사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게 실은 미래 프로그래밍 트렌드고 자신은 그걸 반 발자국 이르게 입수한 상황이니 얼른 돌아가서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하거나 이 참에 전공을 바꾸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는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겼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갑작스레 변화하는 법이라는 걸 간과한 대가는 컸다.

         

         주임의 냉정함은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작용한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음에 기인한 것.

         여유는 비교적 안전하게, 모든 수칙을 지켜서 해당 유해물을 격리했다는 점에서 나온 안심.

         흥분은 어찌 보면 훌륭한 교보재나 보물에 가까운 무기를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입수했다는 현실이 주는 조미료.

         

         따라서 정말 황당하게도.

         

         이 꿈틀거리는 정보 생명체는 보관하는데 성공한 게 아니라, 단지 창조주인 소녀가 잠깐 기절했던 사이 휴면 상태에 들어갔던 것이라는 건 아득히 평균 이상의 통찰력을 가지고도 눈치채기 어렵던 사실이었기에.

         

         저 멀리 지하에서 정신적으로 고문 받던 그녀가 견디다 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 여기에서 벌어질 대참사는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것이다.

         

         지이잉…!!

         

         – Grrrr………. –

         

         소름 끼치는 쇳소리, 고장 난 스피커가 자아내는 비프 음.

         백색 전술 조명이 비추던 공터와 골목에 돌연 핏물 같은 새빨간 광원이 만개하는 복사꽃처럼 우후죽순 돋아난다.

         

         심지어 경찰 쪽에서는 주임보다 조심성이 조금… 정말 많이 부족한 기술자가 나왔었는지, 구속된 로봇 이외에도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드론이나 외곽 지대에 경계 모드로 주둔하던 드로이드까지 벼락맞은 듯이 동시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안 좋아 보인다. 그것도 존나게.

         

         “저, 저기. 이건 일부러 전부 깨우신 겁니까…?”

         “씨발!? 전부 물러나! 빠져, 일단 뒤로 좀 빠져봐! 야!!”

         

         쾅!!

         

         전투 트리거의 발동 조건은 몰라도 일단 좆됐음을 감지한 그가 다급히, 미친듯이 깜빡이는 노트북을 뒤집어 배터리 부분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손톱이 피투성이가 되는 걸 신경 쓰지도 않은 덕분에 그는 강제적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내리는데 성공, 중요한 참고 자료를 무사히 챙길 수 있었다.

         

         비록 다시 폭주하기 시작한 감염체들이 인간보다는 이상하리만치 무인기 종류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서 인명 피해는 크게 없었으나, 본의 아니게 안팎으로 포위당한 처지에 놓인 혼성군의 기계류 자산의 안위는…… 글쎄.

         

         주임 본인은 차라리 잘 됐다고 여겼다는 점만 말해 두겠다.

         오히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면 달랑 그만 보낸 상사와 윗선 잘못이지 그는 최선의 판단을 내린 셈이었으니까.

         

         삐걱삐걱으적으득콰직빠직까드득—!!

         쿠구구궁…!

         

         물어뜯고, 잡아 뽑고, 원시적인 회로 접촉을 통해 강제로 증식하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했다.

         단지 굼뜬 기술자와 기초 교육만 겨우 받은 병사들의 늦은 대처로 인해 인근 네트워크에 풀려버린 바이러스가 먹어 치운 몸체는 지나치게 쌩쌩해서 전투력을 온존했을 뿐.

         

         그렇게 몇몇 감염되지 않은 공중 드론을 제외, 어설프게 규정대로 작업하던 회수팀과 조사팀의 드로이드 부대마저 모조리 노획하여 자신들의 일부로 흡수한 이 기괴한 집단은.

         

         “뭐지…?”

         “……애미, 돌아가면 이 짓거리도 때려치우고 사표부터 써야지 진짜.”

         

         보편적 상식의 종말을 알리듯이.

         이 광경을 지켜본 많은 이들이 생각한대로 사방으로 퍼지는 게 아니라, 마치 조종하는 군체 의식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특정 방향. 구체적으론 모든 원흉이 모인 엑사테크 연구 시설 방향으로 질주해 나갔다.

         

         이는 웃기게도 원작자(?)인 아나스타샤의 21세기 무의식이 적극적으로 투영된 결과에 가까웠다.

         

         일반적인 Z 장르의 감염체라면 독립된 개체의 숫자가 무수히 늘어나다가… 우연히 변이가 일어나서 사태가 더욱 악화되는 그런 기본에 충실한 형태를 띠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극동의 작은 반도형 국가식 Z 장르엔 무조건 맛깔나는 특수 감염체가 있고, 또 그것들에 명령을 내리는 무시무시한 두뇌파 사령탑이 존재하는 게 당시 업계 표준 아니던가?

         

         따라서 약 수백 기까지 적당히 몸집을 불린 이 군단(Swarm)의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지상 명제는 너무나 손쉽게도, 아까 전에 창조주가 현장에 남기고 사라진 절박한 구조 요청에 따라 결정되었다.

         

         

         굳이 이 폭력의 화신과도 같은 대이동에 학술적 명칭을 붙이자면….

         그러니까, ‘모든 것은 우리의 여왕님을 위하여(Long live the Queen)’ 정도가 되지 않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 : 으아악 개씨발 저게 뭐야’ 부터 시작 되겠습니다. (아마도)

    지상아래h 님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잘 보고 있으시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개인적인 후원까지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단발 님이 무려 팬아트를 하나 더 그려주셨습니다!!
    그… 그렇지만 이런 외전급 수위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광입니다!

    팬아트 공지에 얼른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야한건안돼! 하고 외치는 아나스타샤 아이콘)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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