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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승패가 갈렸다.

     

     영지전의 끝은 상대 성의 깃발을 꺾는 것.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성의 꼭대기에 있는 깃발이 바뀌었으니, 영지전은 당연히 지브롤터의 승리다.

     제로스 바르셀 후작은 죽었다.

     나는 혹시나 무슨 전설 속의 흑마법 같은 걸로 제로스 바르셀을 부활시킨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제국의 폐세자들이 준비한 대역이었다.

     황금여명 기사단을 비롯한 후작가의 기사, 거기에 더불어 그들을 뒤에서 지원하던 제국의 그림자들도 전부 죽었다.

     황금여명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배치를 했는지 몰라도 후작성 내부에는 왕국의 암덩어리들이 정말 많았고, 그들 모두 지브롤터에 의해 전멸했다.

     그러나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법.

     우리가 피칠갑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들의 눈에는 그 피가 한 사람의 피로 샤워를 한 걸로 보이기 마련이다.

     가령….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없다!”

     저기, 황금색 비룡에 탄 채 마도지팡이를 휘두르고 있는 여인이라거나.

     “아직 내가 남아있어! 바르셀은 끝나지 않아!”

     

     금발벽안의 마법사.

     화장이 짙고 입술에 제국산 붉은 립스틱을 바른 여인은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에르트랑 바르셀 후작 영애.”

     

     에르트랑 바르셀.

     상급 마법사로서, 바르셀 후작의 양녀다.

     “아, 영애라고 하기에는 좀 나이가 있지.”

     “이 자식이!!”

     “마법병단은 어디에 있나 싶었더니, 급하게 비룡을 타고 오셨군. 철도를 지키다가 황급히 날아온 건가?”

     아마도 올해로 나이가 30살 조금 넘었지만, 결혼을 했지만 이혼을 하여 후작가에서 상급 마법사의 역할만 하고 있는 자.

     “영지전은 지브롤터의 승리다.”

     “내가 남아있다고 말하잖아!!”

     에르트랑 후작영애가 나를 향해 지팡이를 겨눈다.

     기사들이 사용하는 랜스보다도 더 두꺼운 나무지팡이의 끝이 나를 겨누고, 끝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가시창이 뻗어나와 나를 향해 쇄도했다.

     “쯧.”

     나는 지브롤터의 깃대를 한 손으로 움켜쥔 다음, 미리 뽑아둔 바르셀의 깃대를 한 손으로 들고 크게 휘둘렀다.

     카ㅡ앙!

     물리력을 가진 황금의 가시창은 나의 깃창에 맞아 아래로 떨어진다.

     성 아래에 있던 이들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이마에 맞으면 그대로 절명하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다.

     “영지전, 끝났다니까.”

     “닥쳐, 닥쳐, 닥쳐!!”

     “바르셀 후작가가 패배했다고 당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폭주하는 거지?”

     “닥치라니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마법은 멈추지 않는다.

     나를 향한 황금의 가시창은 그냥 단순히 몸을 꿰뚫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장을 헤집어놓겠다는듯, 그냥 날아오는 게 아니고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날아왔다.

     “제로스 바르셀 후작과 양녀였으면서 내연관계라도 되었나?”

     “이…!”

     “모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게 들켜서 이혼당한 거 아니었나? 아, 모욕일 수 있겠군. 제국에서는 이런 걸 두고 사실적시 명예훼손….”

     “닥쳐!!”

     거대한 황금빛 오라가 에르트랑의 손에서 반짝인다.

     

     “비겁하게, 기습을 해놓고는!”

     “자기들이 하면 전술, 자기들이 당하면 비겁. 추한 패배자의 외침이기는 하지만….”

     상급마법이라는 건, 생각보다 상대하기 까다롭다.

     “노스트럼 평균이라는 거겠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거.”

     “으아아아ㅡㅡㅡ!”

     에르트랑의 지팡이 끝에서 모인 황금빛 마력이 그대로 나를 향해 쇄도한다.

     이전보다 훨씬 두꺼운 가시창은 내가 서 있는 후작성 꼭대기 첨탑보다도 더 커보였고, 내가 서 있는 장소 자체를 날려버리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하여튼 노스트럼이란.’

     노스트럼은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브롤터 백작이 배신을 하여 노스트럼이 식민지가 되었을 때도, 망국의 공주는 많은 귀족들을 이끌고 본인이 죽을 때까지 게릴라 활동을 이어나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경룡이나 결투라면 뭐 좋은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전쟁에 준하는, 혹은 전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저러면 그저 추해보이기만 할 뿐.

     무조건, 자기가 이겨야 한다.

     100번을 싸워 99번을 연패하더라도, 마지막 1번을 대승하여 무조건 자신이 이긴 걸로 해야 한다.

     에르트랑 바르셀이 보여주는 모습은 딱히 이상한 게 아니다.

     

     이렇게 ‘바르셀 후작령’과의 영지전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더 큰 문제는 이후에 있으니까.

     뭐.

     그래도.

     “당장은-”

     “죽어버려, 왕국의 배신자ㅡㅡㅡ!”

     나는 느긋하게, 날아오는 거대한 가시창을 향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다.

     내가 창을 들기도 전에, 나는 이미 저 뒤에서 날아오는 검은 무언가를 봤으니까.

     서걱.

     

     금빛의 가시창 사이로 검은 사선이 생겼다.

     그 묵빛의 궤적이 생긴 순간, 금빛 가시창은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산산이 조각나며 허공에서 흩뿌려졌다.

     “어, 어…?”

     펄럭.

     내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비룡.

     등에 검은 장미가 새겨진 망토를 펄럭이며, 묵빛 갑옷을 입은 용기병 한 명이 용기병용 랜스를 든 채 체공하고 있다.

     “영지전은 끝났소, 에르트랑 바르셀 후작 영애.”

     “서, 설마…?! 대공 각하?! 왜, 왜…!”

     “끝났소. 더 이상 전투를 계속한다면, 우리 ‘흑장미’가 개입하겠소.”

     흑장미.

     모르가니아, 대공가에서 직접 나서겠다.

     그것도 윈체스터 대공이라는 마스터가 직접.

     “대공 각하! 아직, 아직 승패는…!”

     “이미 끝났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아직 우리에게는 병사가 남아있습니다! 기사들도 그렇고, 원군도 그렇고!”

     “그 기사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고, 원군도 검을 내려놓고 중립을 표방하기 시작했소.”

     “이….!”

     “에르트랑 후작 영애.”

     윈체스터 대공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랜스로 내가 든 깃발을 가리켰다.

     “지브롤터가 이겼소. 내가 그대를 막는 건 지브롤터를 지키고자 하는 것 이상으로, 무의미한 희생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함이오.”

     “무의미한…희생?”

     “계속 싸운다면 그대들은 전부 죽소. 고작 30명이 와서 이렇게 되었는데, 지브롤터의 ‘본대’가 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윽….”

     본대라는 표현도 나로서는 조금 웃프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크림슨 지브롤터 없이도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로 변경백을 화나게 할 셈이오?”

     “대공 각하…!”

     “그리고 크림슨 지브롤터를 떠나서, 지금 전투를 계속 한다면 이 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윈체스터 대공이 나를 슬쩍 바라보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크림슨 지브롤터가 없어도, 후작가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몰살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니.”

     “…….”

     “그레이 지브롤터. 혹시 지금 파악되었는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지브롤터의 사상자.”

     윈체스터 대공의 말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망자도 중상자도 없습니다. 가벼운 경상은 있을 수 있겠지만.”

     “뭐….”

     “우리는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에르트랑 후작 영애.”

     저기.

     후작성 정문 앞, 29명의 기사들이 포위당해 있으나, 오히려 검을 앞으로 겨눈 채 포위한 수백의 기사를 역으로 압박하고 있다.

     “우리가 기습을 한 건 빠르게 끝을 내기 위해서지, 힘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나는 왼쪽 손목을 두드린 뒤, 태엽을 거꾸로 감는 시늉을 했다.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적이 있어서 새롭게 전투를 한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참혹하겠죠. 그 때는 이렇게 후작성에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오는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죽이면서 왔을 테니까.”

     

     농담이 아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계속 싸우시겠습니까? 윈체스터 대공이 중재를 나섰는데도?”

     “이, 이…!”

     “한 가지, 믿고 있는 구석이 있으시겠죠. 하지만….”

     나는 목을 가다듬은 뒤.

     “로버트 세빌리야 경ㅡㅡㅡ!!”

     정문에 있는 로버트를 불렀다.

     “후작성에 우리의 위대한 태양,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전하께서 계셨나ㅡㅡㅡ!!”

     후작성, 아니 노스트럼을 비롯한 대륙 전체가 알 수 있게 외쳤다.

     “아니오ㅡㅡㅡ!”

     로버트 또한, 폐부 깊은 곳에서 호흡을 내뱉듯 소리쳤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전하께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ㅡㅡㅡ!!”

     내가 서 있는 꼭대기까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이…!”

     

     당연히, 에르트랑 후작 영애에게도 안 들릴 리가 없다.

     “후후. 그렇다고 하는군요. 오히려 걱정해야 할 건 후작 영애, 당신의 안위입니다.”

     “무슨 소리를…!”

     “제로스 바르셀 후작은 죽었고, 영지전은 우리 지브롤터가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모든 죄는 당신이 뒤집어 쓰기 딱 좋은 상황이라는 거죠.”

     나는 가볍게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레이 지브롤터를 암살하려고 한 것부터 시작하여, 거짓으로 왕을 기만하고 영지전까지 일으킨 후작가.”

     “뭐, 뭐…?”

     에르트랑 후작 영애가 단숨에 사색이 되었다.

     “무능왕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 무능한 것처럼 보여서 무능왕이지, 자기보신 하나 만큼은 마스터 급이거든요.”

     “그, 무, 무슨….”

     “원래.”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기는 하지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잡아먹히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 * *

     [그 시각, 노스트럼 왕국 왕도의 어느 지하.]

     위이잉.

     거대한 거울이 반짝인 순간.

     “허억…!”

     알몸에 하얀 가운만 걸치고 있던 금발적안의 남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거울을 빠져나와 바닥에 엎드렸다.

     “허억, 허억, 허억….”

     “괜찮으십니까, 전하?”

     “네 눈에는, 허억, 내가 괜찮아보이나…?”

     세인트 지오는 옆에 따라붙은 전신 갑옷의 기사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제로스 바르셀!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그림자들을 동원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더냐!”

     “저도 놈들이 그런 식으로 갑자기 들이닥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남자, 제로스 바르셀은 머리에 쓴 투구를 벗었다.

     “다행히 전하께서 그곳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전부 죽었으니, 나머지는 끼워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백발, 적안.

     “끼워맞춘다, 하아. 젠장. 바르셀 후작가, 버려도 되는 거지?”

     “그것이 전하의 뜻이라고 한다면.”

     “하아, 그래. 내가 너, 다른 건 몰라도 ‘다음’에도 같이 간다. 응, 그래.”

     그리고 흰자가 있어야 할 곳은 검게 물들어있고, 몸 곳곳에 무언가를 꿰맨 것 같은 흔적이 가득했다.

     “제로스 바르셀 후작은 나에게 거짓을 고했다. 과도한 충심으로 경룡장에서 왕의 우승을 빼앗은 그레이 지브롤터를 렘버리 캠프에서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국왕과 모든 귀족들을 속여 영지전을 일으켰으나 패배하였으니….”

     세인트 지오는 손날을 세워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바르셀 가문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숙청하고, 황금여명 기사단은 해체한다. 어때, 이 정도면 괜찮나?”

     “…….”

     “제로스 바르셀의 이름은 역사에 안 좋게 남게 되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너도 이제는 알겠지만….”

     “알고 있습니다.”

     제로스 바르셀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부디, 저의 오명은 다음에는….”

     툭.

     고개를 숙이다, 그대로 그의 목이 아래로 떨어졌다.

     “…….”

     “아, 그래. 물론이지.”

     제로스 바르셀의 육신은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주운 다음, 다시 목에 장착했다.

     마치 흑마법으로 되살아나는 듀라한과도 같이.

     “네가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너를 기억하마. 너의 충성을.”

     세인트 지오는 제로스 바르셀에게 다가가, 그의 갑주를 두드리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뒤집히는 날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 이제…1년 하고도, 조금.”

     * * *

     제국력 98년 9월.

     오로솔 아카데미에서는 2학기 수업이 시작되어 학생들이 수학하는 중.

     왕국 내부를 떠들썩하게 만든 영지전이 끝났다.

     지브롤터의 승리.

     그 결과.

     국왕을 능멸하고 왕국의 내분을 일으킨 반역자 가문, 바르셀 후작가는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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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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