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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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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진지한 생각에 빠지는 걸 1초도 견딜 수 없는지 개그 신이 리안에게 다가와 한 손을 둥글게 말아 보였다. 그리곤 다른 손의 검지를 쭉 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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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명을 시작으로 이제 늘려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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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골적인 제스처를 취하려는 모습에 리안은 주먹이 먼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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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미친 신이!”
    “악! 나 죽는다! 나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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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정말 오랜만에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 그녀를 마구 두드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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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축 늘어져 바닥에 몇 번째인지 모를 ‘범인은 리..ㅇ..ㅏ…ㄴ..’을 새하얀 대리석 위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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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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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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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미쳤어? 세 사람은 아직 살아가야 할 삶이 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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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차 머릿속에 ‘하지만..’이란 말이 떠올랐지만, 마귀를 털어내듯 고개를 털어 생각을 떨쳐냈다. 그런 리안에게 엘렌시아가 다가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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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내가 전부 돌려보내고 올까?”
    “아… 그래 줄래?”
    “응, 그리고 하위 신 만들기는 나랑 하면 되지 않을까?”
   “어…?”
   “내가 신이 되는 건 싫어?”
    “아, 아니?”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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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시아는 눈웃음짓고는 그대로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미소에 리안은 쿵쿵 뛰는 심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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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잠깐… 엘렌시아가 지금 뭐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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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뒤늦게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고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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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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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어딘가 익숙한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의 사람보다 가벼우면서도 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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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락, 붉은 머리카락이 눈앞에 흔들렸다. 리안은 멍하니 입을 벌리며 반사적으로 익숙한 폼으로 상대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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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쭈인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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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그 말이 귓가에 닿는 순간 리안은 멍하니 굳어버렸다. 제스의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마구 흔들리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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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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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처럼 굳어버린 리안의 뒤로 “커흠”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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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회복한 개그 신이 빠글빠글한 가발을 쓰고, 동글동글한 어지러운 안경과 하얀 가운을 걸친 채 어디선가 가져온 초록색 칠판 앞에 서서 주절주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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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세 사람은 무려 신이 탄생하는 과정에 관여하고, 잊혔다고는 하나 신의 사랑까지 받아버렸지. 거기다 태생부터 영웅의 자질을 타고나기까지 했으니! 보통의 사람들과 격이 높을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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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처럼 늘어놓는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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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 말해 저 세 사람은 널 잊지 않았어.”
    “아…”
   “물론,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야. 3살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어렴풋하고 두루뭉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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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이 부분이 중요한 거라며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칠판을 회초리 같은 것으로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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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건 그런 꿈같은 기억을 믿고 너를 만나기 위해 무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야! 크하하! 그래 이게 진정한 순애지! 보고 있나 ‘두근두근 ~ 어쩌면 내 사랑의 시작은 소나무 아래에서?~ 무리무리! 무리가 아니었다!’ 작품의 감독! 이것이 진정한 순애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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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신은 발작 버튼이 눌린 것처럼 순애로 시작해 마지막에 NTR 엔딩으로 끝난 끔찍한 작품에 대한 배신감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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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익숙하게 개그 신의 비명을 무시하며, 멍하니 제스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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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말 날…”
    “응! 전부 기억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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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리안을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개그 신의 설명대로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던 기억이 리안을 마주하는 것과 동시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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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진 시간이 길었던 만큼 제스는 리안에게 틈 없이 몸을 붙여왔다. 전보다 더 풍만하진 몸이 리안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리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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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우선 조금만 떨어져 주면..”
    “제스 함부로 돌아다니면..!”
    “왜 혼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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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튀어 나간 제스를 찾아 나선 노아와 아이리스의 시선이 리안의 시선과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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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짧은 침묵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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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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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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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내가 어떻게 널…”
    “흐읍,흐윽…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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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릿한 기억이 원래의 형태를 찾는 순간 두 사람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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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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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주르륵 눈물을 떨어뜨렸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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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시아는 불퉁한 표정으로 리안을 끌어안은 세 명의 인간들을 바라보다 이내 작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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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물러진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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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울 정도의 집착을 가진 엘렌시아가 다른 여자들을 허용할 정도로 리안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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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신은 화목해 보이는 이들을 바라보며 수상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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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후후..‘하위 신 늘리기 프로젝트’에 참가할 모든 인원이 드디어 전부 모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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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신이 곧바로 욕실로 달려가 거대한 욕조에 장미꽃을 뿌리고 침대 위에 꽃잎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방까지 이어진 길에 촛불 길을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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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나눈 후 세 사람을 침실로 안내하던 리안이 뒤늦게 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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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개그 신을 침대에 던져 그대로 묶어 욕실에 던져버렸다. 그리곤 욕조 채로 지상으로 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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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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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할 수 있음에도 멍청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개그 신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본 후 세 사람을 각자의 침실로 안내했다. 이후 혼자남은 리안은 그 어느 때보다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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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로 몇백년은 버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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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이 그를 유일하게 기억하고, 서로가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해도 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아직 긴 생이 남아있는 만큼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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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많은 걸 보고, 겪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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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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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질척한 미련을 구석에 밀어놓은 후 정말 오랜만에 제 침실로 향했다.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기에 신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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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게 잠들고 눈을 뜬 다음에 -… 모두에게 잘 잤냐고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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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소소한 욕심이었다. 리안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자 천국의 하늘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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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랜만에 리안은 깊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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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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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 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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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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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의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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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만 더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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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른한 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소리에 리안은 반사적으로 이불을 끌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침대를 더듬어도 포근한 이불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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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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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뜨자… 그곳은 꽃밭 아니, 꽃 같은 미녀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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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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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옆에 주저앉아 침대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민 채 리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제스가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넸다. 리안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침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 서 있던 아이리스, 노아, 엘렌시아가 뒤이어 아침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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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런데 다들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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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덜 깨서 멍한 얼굴로 그리 묻자, 침대 아래쪽에서 개그 신이 뱀처럼 기분 나쁘게 기어나와 “오효오효효효!” 하는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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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첫 아이를 가질지 정하고 나면 바로 일을 치러야 하니까 모여있는 거지! 오효효효! 좋으시겠어요옷! 으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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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자, 그녀의 얼굴이 오래된 냄비처럼 찌그러지더니 이내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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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안 되는 장난 치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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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호한 표정으로 개그 신을 혼내던 리안은 조용해진 주변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네 사람이 매우 뜨거운 눈으로 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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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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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사람은 약속이라고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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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은 나! 내가 할래! 수인이라서 새끼 한 번에 잔뜩 가질 수 있어!”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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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시무시한 발언에 리안이 피를 토하듯 기침하며 널브러져 버렸다. 그런 리안을 덮치려는 듯 제스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침대 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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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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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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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제스의 뒷덜미를 노아와 아이리스가 단호한 손길로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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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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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깨어났기에 더 이상 목소리를 죽일 필요가 없어진 네 사람은 살벌하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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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내가 먼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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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당당히 그리 말하자, 노아가 얼굴을 붉히며 가슴 아래 팔짱을 끼었다. 흉악할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 부각되자 아이리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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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흐흠, 모… 모성애가 가장 큰 사람이 먼저 해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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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제스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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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위 신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 목표니까, 내가 최대한 많이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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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세 사람을 느릿하게 훑어본 엘렌시아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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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게 공평하지. 가령 가장 진도를 많이 나간 사람이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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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아이리스, 제스, 노아의 눈이 엘렌시아를 향했다. 그녀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날개를 살살 팔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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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아무리 그래도..!”
    “차라리 오늘 전부 하는 건 – ..”
    “그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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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들의 대화가 적나라해질수록 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매일 같이 쪽쪽 빨려 미라가 될 미래가 손에 잡힐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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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요, 인기남! 하렘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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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기력을 회복한 개그 신이 흐물거리는 몸을 들어 리안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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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렘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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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들의 설전만 보면 하렘 애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같았지만, 리안에겐 공포 영화의 예고편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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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과 같은 세계를 살아가게 되었음에도 리안은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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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 장르가 다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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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식,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적응’의 권능으로 인해 혼자 다른 장르에서 살아갔던 비참한 과거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지금이 비교되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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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와 달리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잔뜩 생겼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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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 장르가 다른 것 같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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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장르가 다르더라도 같은 감정을 품고 함께 같은 길을 거닐다 보면 천천히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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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리안 누가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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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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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완결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퇴고하는 과정에서 설정 붕괴나 급전개가 심한 부분이 보여서 세번 정도 처음부터 다시 쓰다보니 일정보다 너무 늦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지 올리면 저도 모르게 늘어지게 될 것 같아 새로운 공지 없이 완결까지 전부 쓴 후 찾아왔습니다. 이에 믿고 기다려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다음 작품은 하루에 규칙적인 연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고, 비축도 많이 쌓은 후 돌아오겠습니다.

앞으로도 쭉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3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리안이 진지한 생각에 빠지는 걸 1초도 견딜 수 없는지 개그 신이 리안에게 다가와 한 손을 둥글게 말아 보였다. 그리곤 다른 손의 검지를 쭉 펴 보였다.

“세 명을 시작으로 이제 늘려가면 -…”

노골적인 제스처를 취하려는 모습에 리안은 주먹이 먼저 나갔다.

“이… 미친 신이!”

“악! 나 죽는다! 나 죽어!”

리안은 정말 오랜만에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 그녀를 마구 두드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축 늘어져 바닥에 몇 번째인지 모를 ‘범인은 리..ㅇ..ㅏ…ㄴ..’을 새하얀 대리석 위에 적었다.

‘그래도 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리안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

‘아니, 미쳤어? 세 사람은 아직 살아가야 할 삶이 남았다고!’

재차 머릿속에 ‘하지만..’이란 말이 떠올랐지만, 마귀를 털어내듯 고개를 털어 생각을 떨쳐냈다. 그런 리안에게 엘렌시아가 다가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리안, 내가 전부 돌려보내고 올까?”

“아… 그래 줄래?”

“응, 그리고 하위 신 만들기는 나랑 하면 되지 않을까?”

“어…?”

“내가 신이 되는 건 싫어?”

“아, 아니?”

“그치?”

엘렌시아는 눈웃음짓고는 그대로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미소에 리안은 쿵쿵 뛰는 심장을 느꼈다.

‘어, 잠깐… 엘렌시아가 지금 뭐라고 했지?’

리안은 뒤늦게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고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타닷!

그때, 어딘가 익숙한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의 사람보다 가벼우면서도 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와락, 붉은 머리카락이 눈앞에 흔들렸다. 리안은 멍하니 입을 벌리며 반사적으로 익숙한 폼으로 상대를 끌어안았다.

“쭈인님!”

“…!”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그 말이 귓가에 닿는 순간 리안은 멍하니 굳어버렸다. 제스의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마구 흔들리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어, 어떻게..”

바보처럼 굳어버린 리안의 뒤로 “커흠”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회복한 개그 신이 빠글빠글한 가발을 쓰고, 동글동글한 어지러운 안경과 하얀 가운을 걸친 채 어디선가 가져온 초록색 칠판 앞에 서서 주절주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세 사람은 무려 신이 탄생하는 과정에 관여하고, 잊혔다고는 하나 신의 사랑까지 받아버렸지. 거기다 태생부터 영웅의 자질을 타고나기까지 했으니! 보통의 사람들과 격이 높을 수밖에 없어!”

랩처럼 늘어놓는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간단히 말해 저 세 사람은 널 잊지 않았어.”

“아…”

“물론,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야. 3살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어렴풋하고 두루뭉술하지.”

그녀는 이 부분이 중요한 거라며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칠판을 회초리 같은 것으로 두드렸다.

“중요한 건 그런 꿈같은 기억을 믿고 너를 만나기 위해 무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야! 크하하! 그래 이게 진정한 순애지! 보고 있나 ‘두근두근 ~ 어쩌면 내 사랑의 시작은 소나무 아래에서?~ 무리무리! 무리가 아니었다!’ 작품의 감독! 이것이 진정한 순애라는 것이다!”

개그 신은 발작 버튼이 눌린 것처럼 순애로 시작해 마지막에 NTR 엔딩으로 끝난 끔찍한 작품에 대한 배신감을 토해냈다.

리안은 익숙하게 개그 신의 비명을 무시하며, 멍하니 제스를 내려다보았다.

“그… 정말 날…”

“응! 전부 기억하고 있어.”

제스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리안을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개그 신의 설명대로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던 기억이 리안을 마주하는 것과 동시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돌아왔다.

헤어진 시간이 길었던 만큼 제스는 리안에게 틈 없이 몸을 붙여왔다. 전보다 더 풍만하진 몸이 리안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리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 우선 조금만 떨어져 주면..”

“제스 함부로 돌아다니면..!”

“왜 혼자 -…아..”

리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튀어 나간 제스를 찾아 나선 노아와 아이리스의 시선이 리안의 시선과 맞물렸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짧은 침묵이 흐르고.

타닷!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내가 어떻게 널…”

“흐읍,흐윽… 오빠!”

흐릿한 기억이 원래의 형태를 찾는 순간 두 사람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아…”

리안은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주르륵 눈물을 떨어뜨렸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엘렌시아는 불퉁한 표정으로 리안을 끌어안은 세 명의 인간들을 바라보다 이내 작게 미소 지었다.

‘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물러진 건지.’

무서울 정도의 집착을 가진 엘렌시아가 다른 여자들을 허용할 정도로 리안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개그 신은 화목해 보이는 이들을 바라보며 수상하게 미소 지었다.

“우후후..‘하위 신 늘리기 프로젝트’에 참가할 모든 인원이 드디어 전부 모였군.”

개그 신이 곧바로 욕실로 달려가 거대한 욕조에 장미꽃을 뿌리고 침대 위에 꽃잎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방까지 이어진 길에 촛불 길을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나눈 후 세 사람을 침실로 안내하던 리안이 뒤늦게 이를 발견했다.

리안은 개그 신을 침대에 던져 그대로 묶어 욕실에 던져버렸다. 그리곤 욕조 채로 지상으로 밀어버렸다.

“꾸아아앙!”

탈출할 수 있음에도 멍청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개그 신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본 후 세 사람을 각자의 침실로 안내했다. 이후 혼자남은 리안은 그 어느 때보다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걸로 몇백년은 버틸 수 있어.’

세 사람이 그를 유일하게 기억하고, 서로가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해도 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아직 긴 생이 남아있는 만큼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좀 더 많은 걸 보고, 겪었으면 좋겠어.’

나와 다르게.

리안은 질척한 미련을 구석에 밀어놓은 후 정말 오랜만에 제 침실로 향했다.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기에 신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장소였다.

‘평범하게 잠들고 눈을 뜬 다음에 -… 모두에게 잘 잤냐고 말하고 싶어.’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소소한 욕심이었다. 리안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자 천국의 하늘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정말 오랜만에 리안은 깊게 잠에 빠져들었다.

***

해서 -… 처음 -…

‘시끄러워…’

그래도… 의견이..!

‘5분만 더 잘래..’

나른한 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소리에 리안은 반사적으로 이불을 끌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침대를 더듬어도 포근한 이불이 잡히지 않았다.

“으응?”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뜨자… 그곳은 꽃밭 아니, 꽃 같은 미녀들로 가득했다.

“엇! 좋은 아침!”

침대 옆에 주저앉아 침대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민 채 리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제스가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넸다. 리안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침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 서 있던 아이리스, 노아, 엘렌시아가 뒤이어 아침 인사를 건넸다.

“어… 그런데 다들 왜 여기에?”

잠이 덜 깨서 멍한 얼굴로 그리 묻자, 침대 아래쪽에서 개그 신이 뱀처럼 기분 나쁘게 기어나와 “오효오효효효!” 하는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누가 첫 아이를 가질지 정하고 나면 바로 일을 치러야 하니까 모여있는 거지! 오효효효! 좋으시겠어요옷! 으겍!”

리안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자, 그녀의 얼굴이 오래된 냄비처럼 찌그러지더니 이내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장난 치지… 말….”

단호한 표정으로 개그 신을 혼내던 리안은 조용해진 주변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네 사람이 매우 뜨거운 눈으로 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진짜..?”

네 사람은 약속이라고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은 나! 내가 할래! 수인이라서 새끼 한 번에 잔뜩 가질 수 있어!”

“커헉..!”

무시무시한 발언에 리안이 피를 토하듯 기침하며 널브러져 버렸다. 그런 리안을 덮치려는 듯 제스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침대 위로 올라왔다.

덥석!

“으얏!?”

그런 제스의 뒷덜미를 노아와 아이리스가 단호한 손길로 붙잡았다.

““안돼!””

리안이 깨어났기에 더 이상 목소리를 죽일 필요가 없어진 네 사람은 살벌하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내가 먼저지.”

아이리스가 당당히 그리 말하자, 노아가 얼굴을 붉히며 가슴 아래 팔짱을 끼었다. 흉악할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 부각되자 아이리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크흐흠, 모… 모성애가 가장 큰 사람이 먼저 해야 하지 않겠어?”

이에 제스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하위 신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 목표니까, 내가 최대한 많이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세 사람을 느릿하게 훑어본 엘렌시아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리안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게 공평하지. 가령 가장 진도를 많이 나간 사람이라거나.”

그 말에 아이리스, 제스, 노아의 눈이 엘렌시아를 향했다. 그녀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날개를 살살 팔랑거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차라리 오늘 전부 하는 건 – ..”

“그건 .. -..!”

그녀들의 대화가 적나라해질수록 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매일 같이 쪽쪽 빨려 미라가 될 미래가 손에 잡힐 듯했다.

“요요, 인기남! 하렘 마스터!”

어느새 기력을 회복한 개그 신이 흐물거리는 몸을 들어 리안을 놀렸다.

‘하렘은 무슨…!’

그녀들의 설전만 보면 하렘 애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같았지만, 리안에겐 공포 영화의 예고편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들과 같은 세계를 살아가게 되었음에도 리안은 여전히…

‘나 혼자 장르가 다르잖아.’

피식,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적응’의 권능으로 인해 혼자 다른 장르에서 살아갔던 비참한 과거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지금이 비교되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와 달리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잔뜩 생겼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나 혼자 장르가 다른 것 같아도… 괜찮아.’

서로의 장르가 다르더라도 같은 감정을 품고 함께 같은 길을 거닐다 보면 천천히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갈 테니까.

“그래서 리안 누가 제일 좋아?”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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