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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227 – 아카디아의 의심>

     

    아카디아는 오전 내내 멍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티토소가와 친구들은 그런 공녀님이 걱정되었다.

     

    “티토. 가서 뭐라고 말이라도 걸어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명색이 파벌보스였던 분이 저런 초라한 모습으로 비웃음을 사는 꼴, 두고 못 보겠어.”

    “공녀님이 상심이 크신가봐. 가서 프릴머리띠라도 선물로 드리자.”

     

    아카디아의 소개로 티토소가의 친구가 되어준 성주가문의 딸 카닐리언 트러플과 자수성가한 프릴.

    두 친구들의 변하지 않는 태도에 내심 기뻐하며 티토소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님. 우리 같이 밥 먹어요. 네?”

    “후후. 그럴까요?”

     

    외출 이후로 상한 기분도 달래시라고 오늘은 큰 맘 먹고 간식으로 나온 딸기우유도 내밀었다.

     

    “공녀님. 이거 드세요!”

    “고마워요. 티토소가.”

     

    언제나 친절하고 예의있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카디아 공녀님.

    오크노디와는 다른 멋짐이 느껴지는 존경할만한 분의 얼굴에서 시름을 없애고 싶었던 티토소가지만 그녀의 노력은 그리 쓸모 있지 않았다.

     

    “고, 공녀님…”

     

    점심시간에도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빈 식판에 의미 없이 국을 뜨는 시늉을 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이 다 미어터졌다.

    울 것 같은 티토소가 대신 프릴이 짝 하고 공녀님이 들을 수 있도록 박수를 쳤다.

     

    “아참. 오늘은 저희가 특별히 공녀님을 위해 다과회를 열까 하는데, 식후에 소화도 할겸 가볍게 다과회를 가지는 건 어떠신가요?”

    “그럴까요? 이렇게 다른 분의 권유를 받는 경험은 처음인 것 같네요. 폐가 되지는 않을지…”

    “폐라니요. 공녀님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저 프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랍니다. 열심히 연습한 프릴모양 그림토핑을 부디 즐겨주세요.”

     

    다과회의 자리.

    주최자가 아닌 참가자로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차분하게 다과회를 즐겼다.

    프릴의 삐뚤어진 프릴모양 그림토핑에도 귀엽다며 칭찬을 해주고,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며 달그락소리를 내던 티토소가를 차분히 호흡하고 반대손으로 팔을 받쳐 들면 된다며 안정시켰다.

    자상하고 어른스러운 아카디아.

    그러나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피어나는 공백마다 그녀의 시선은 찻잔 속이나 테이블의 문양, 혹은 아무것도 아닌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덩달아 우울해지려는 프릴과 티토소가의 모습에 3인방 중에는 그나마 기가 센 카닐리언 트리플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공녀님. 고민이 있으시죠?”

    “미안해요. 보기 나빴죠?”

    “전혀요. 공녀님도 사람인데 고민이야 당연히 있겠죠. 이해해요.”

    “고마워요. 아무래도 마음 편히 쉬기 힘든 시기라서 여러분의 배려에 먹칠을 하고 말았네요.”

    “저희가 공녀님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티토소가도 프릴도 서툴지만 도움이 되고 싶어 해요. 저도 마찬가지고.”

     

    힘들 때에 곁을 지키며 흉한 소리들로부터 그녀를 지켜준 덕이 보이는 걸까. 무거웠던 아카디아의 속내도 마침내 겉으로 드러났다.

     

    “실은 오크노디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오크노디요? 헉. 설마…”

     

    티토소가는 무언가 짐작 가는 구석이 있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티토소가도 뭔가가 있었나요?”

    “혹시 오크노디가 사다코 교수님의 강의를 같이 듣자고 꼬시고 있다면 찻잔을 흔들어주세요!”

    “풋. 뭔가요 그건. 그런 적 없어요.”

    “푸훗. 조명대를 들고 다니는 티토소가답게 정말 눈에 띄는 사인이네.”

    “프릴의 치렁치렁한 옷 장식도 만만찮거든!?”

     

    티토소가와 프릴이 티격태격하는 귀여운 말싸움과 같은 수준의 고민이라면 좋겠지만 아카디아의 고민은 그리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실은 지난 번 외출에서 거액의 포인트가 필요한 탓에 오크노디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일을 마치고 왔었거든요.”

    “그런데요?”

    “일을 마치고 우연히 오크노디의 포인트 잔고를 보았는데, 엄청난 포인트를 보고 말았어요.”

     

    이백만 포인트가 넘는 거액의 포인트.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궁지에서 꺼내기에 차고도 넘치는 포인트였다.

     

    “혹시 오크노디가 그 포인트를 공녀님을 위해 사용해주시길 바란 건가요.”

     

    대놓고 순박한 티토소가와 비교적 온화한 프릴과 달리, 성주가문의 자녀이면서도 그 냉철함은 비교를 불허하는 카닐리언 트러플이 의표를 찔렀다.

     

    “부끄럽게도 그런 망설임을 느꼈어요.”

     

    그만한 포인트가 있었다면 외출은 하지 않아도 됐다.

    어째서 디는 자신을 위해 그 포인트를 써주지 않았던 걸까.

     

    “그런 어른스럽지 못한 이기적인 생각을 품은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에 대한 다른 고민이 있으시군요.”

    “디가 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위험한 임무를 도와준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디는 외출에서 큰 도움을 줬고, 가문의 부당한 수법으로 벌어들인 비자금을 빼앗을 수 있었다.

     

    “괜찮다면 제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카디아는 망설였다.

    이 아이들을 믿어도 되는 걸까.

    이미 많은 추종자들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했는데.

    망설임도 잠시.

    그녀는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주는 세 사람만큼은 더 믿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교수님 너무해! 50만 포인트라니, 평범한 학생은 절대로 지불하지 못했을 텐데. 공녀님을 미워하는 것이 틀림없어요.”

    “50만 포인트면 금화로만 무려 5000매… 프릴개발 및 장사로 적잖은 돈을 벌어들인 제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거액이네요.”

     

    티토소가와 프릴은 교수님이 나빴다며 화를 내거나 그 거액에 기가 질렸다.

    언제나 냉정과 침착을 유지하는 카닐리언만이 냉정하게 아카디아의 흉중을 꿰뚫어보았다.

     

    “교수님과 아카데미를 의심하시는군요.”

    “응? 공녀님이 교수님이랑 아카데미를 왜 의심해?”

    “티토. 쿠키나 먹고 조용히 들어.”

     

    저 바보가 궁금할 때마다 질문을 해대면 이야기에 진척이 생기지 않는다.

    카닐리언은 쿠키를 입으로 받아 물고 불만스러워하는 티토소가에게 쿠키를 두 개나 더 물려주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옆에서 프릴이 입을 꾹 다물며 저항의사를 보이자 카닐리언은 초코향이 솔솔 풍기는 코코아를 한 잔 따랐다.

     

    “이래도 안 받을거야?”

     

    프릴은 새침하게 코코아와 쿠키를 함께 받아갔다.

     

    “확실히 해둬요. 난 바보라고 인정한 적 없다고. 그냥 코코아에 쿠키라는 사기적인 조합의 유혹을 견뎌낼 수 없었을 뿐이라고.”

     

    그러던가.

    두 바보의 입을 봉인시킨 카닐리언은 공녀님의 근심거리를 파헤쳤다.

     

    “공녀님의 걱정은 어쩌면 괜한 걱정이라고 생각해요. 디스트로이어 교수님도 의외로 배려를 해주셨죠.”

    “교수님이요…?”

    “세비체 공작가문에서 비자금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거래를 하려고 했다면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장부거래에 응했을까요?”

    “그러지는 않았겠죠.”

     

    돈을 주고도 거래할 수 없는 장부.

    그것에 교수님은 50만 포인트라는 값을 매겼다.

     

    “50만 포인트는 비싼 가격이지만 때로는 거래를 해주는 것조차도 배려를 해주는 물건이 있어요. 이 장부가 그런 경우에 속하죠.”

    “그렇게 보면 교수님이 저를 배려해주셨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불법적인 물건을 모두 받는 대가로 마지막 1만 포인트를 인정해주겠다던 발언도 당시에는 원망스러우셨겠지만 제삼자인 제게는 달리 보이고요.”

    “예를 들자면요?”

    “학생신분으로 도적길드도 취급을 꺼려하는 물건을 처분하려 들었다간 분명 큰 탈이 생겼겠죠. 세비체 가문의 재산을 공녀님이 물려받았다고 생각한 많은 이들이 공녀님을 노릴 테고요.”

     

    마냥 쓰레기처럼만 여겨졌던 디스트로이어 교수님도 의외로 아카디아를 배려해서 손을 써주려던 것이 백만 포인트어치 취급불가 장물을 1만 포인트에 매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카닐리언 트러플의 가정에는 교수님의 매정하고 차가웠던 계산적인 행동 뒤에 모두 학생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음을 가정했다.

    억지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가설이지만 아카디아는 그 가설에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딱딱하고 애교 없는 도도한 아이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씨만큼은 티토소가나 프릴에 못지않은 착한 아이네요.’

     

    긴장이 풀린 아카디아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고마워요. 꼭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교수님과 아카데미를 마냥 미워하지는 않을 수 있게 됐어요.”

    “공녀님이 저희를 보살펴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제국진영의 대귀족들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인지는 저희도 알고 있어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할 뿐이지만 모두를 대표하여 행동하는 것은 그녀 본인에게도 득이 되는 행위다.

    정치력이란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는 이들로부터 탄생하는 법이니, 모두가 그녀를 의지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아카디아 파벌이라는 거대파벌의 수장이 된다.

    자신의 체급에 비해 거대한 정치력을 손에 넣고 추후 아카데미 안팎에서 그 거대한 정치력을 토대로 유무형의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그것도 피렌체 왕국에서 세비체 공작가문이 건재할 때의 이야기였지만.

    정치의 본질을 모르는 성주가문의 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실리가 존재한다.

     

    ‘그런 실리는 기프트 아카데미라는 수상할 정도로 강대한 교육기관에게도 존재하겠죠.’

     

    카닐리언의 가설에는 감동이 있지만 그것이 진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선의로 행동하더라도 그 이상의 이득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던 자신처럼 아카데미 또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진짜 고민은 교수님이 아닌 오크노디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요.’

     

    정확히는 오크노디가 지닌 이백만 포인트.

    그 포인트의 출처에 대한 것이다.

    중간고사를 치르며 그녀는 실감했다.

    포인트가 얼마나 모으기 힘든 것인지.

    얼마나 빛나는 재능을 지니고 그것을 증명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수백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의 노동력을 암흑상회에서 2개월 간 이용하고서야 모인 자금이 60만 포인트.

    오크노디의 잔고에서 보인 200만 포인트는 그 세배, 상급반을 제외한 하급반 전체의 노동력에 비교될 정도의 엄청난 수준이다.

    그런 포인트는 평범한 노동으로 얻을 수 없다.

    곤충을 잡고.

    돌을 수집하고.

    새로운 요리를 즐기고.

    다과회를 만끽하며 재잘거리길 좋아하는.

    그저 귀엽고 붙임성 있고 씩씩한 꼬마아가씨에게 주어지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금액이다.

     

    ‘아카데미에서 오크노디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시키고 본인이 그것을 수락해야만 가능한 거액이겠죠.’

     

    그리고 이 아카데미에서 오크노디에게 그런 수상한 임무를 맡길 사람은 지금까지 아카디아가 보아온 바로는 오직 한 명밖에 없다.

     

    디스트로이어 교수.

     

    카닐리언은 교수님을 좋게 말했지만 역시 아카디아는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교수님이 어린 오크노디를 제멋대로 이용해왔던 재단과 무엇이 다른지, 단지 양지와 음지의 차이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아카디아의 시름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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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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