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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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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가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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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들이 그를 경계해 뒤로 물러나건 말건, 윌리엄은 느긋하게 달라진 신체를 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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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훨씬 부드러워진 오러의 순환.

       ​

       가벼워진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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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흉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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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더 높아진 눈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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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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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사자검협?”

       ​

       “하지만 분명…!”

       ​

       “방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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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기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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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히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도, 심장이 죄일 정도의 압박감.

       ​

       마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윌리엄을 경계했지만, 윌리엄은 그들이 그러건 말건 연인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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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령아, 몸이 상했으니 쉬고 있어라. 목경이 너도.”

       ​

       “은공…대공을 이루신 겁니까?”

       ​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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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매한 대답을 남긴 그는 몸을 돌려 상당한 거리를 벌린 마인들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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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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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의 평온한 눈길이 마인들을 훑었다. 마인들은 그의 눈빛을 보곤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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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다니!’

       ​

       상대가 일반인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상대는 그 사자검협.

       ​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

       그렇다는 건, 설마…

       ​

       “바, 반박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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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여긴 그렇게 불렀었지.”

       ​

       마치 산책을 나온 것 같은 얼굴로 마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준 윌리엄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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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전의 전투로 날이 상하고 이가 나간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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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된 검으로서 기능하기엔 상태가 처참했지만,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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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일이 있으니 빨리 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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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과 함께, 윌리엄의 신형이 순식간에 마인들 한 가운데에 나타났다. 

       ​

       그리고, 마인들이 그 사실을 인식한 것은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후의 일이었다.

       ​

       “이게 그랜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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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이 다른 신체 능력의 차이.

       ​

       스스로의 몸을 담금질하여 만들어낸 그랜드마스터의 육체는 기존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신체 능력을 자랑했다.

       ​

       가벼운 뜀박질이 이형환휘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게 될 정도로.

       ​

       “아저씨! 축하드려요!”

       ​

       “그래. 너도 안가 지키느라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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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협! 대공을 이루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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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가, 축하드려요.”

       ​

       “회포를 풀고 싶지만…아직 할 일이 산더미로군.”

       ​

       ‘파르스 그 새끼를 빨리 찾아야겠지. 모든 걸 끝내려면.’

       ​

       갑옷…은 입기에는 망가진 부분이 많아 애매하고, 검은 상해서 험하게 쓰면 부러져도 이상하지는 않은 상태.

       ​

       하지만 윌리엄은 왠지 걷기만 해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쉬고 있어. 할 일을 하고 올 테니.”

       ​

       세 연인을 애정이 깃든 눈으로 바라본 윌리엄은 앞으로 나아갔다.

       ​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 다가왔으므로.

       ​

       ————

       ​

       청해성은 마인과 정파의 무인들, 그리고 병사들과 도망치는 백성들로 혼란에 가득 차 있었다.

       ​

       ‘…파르스는 어디에 있지?’

       ​

       “괴, 괴물!”

       ​

       “흠.”

       ​

       윌리엄은 검을 붙잡은 채로 느긋하게 검기를 만지작거렸다. 

       ​

       ‘맨손으로 만지는 검기는 느낌이 좀 특이한데.’

       ​

       마기로 이루어진 검기인 탓일까.

       ​

       윌리엄은 불에 달궈진 꼬챙이 같은 감촉에 신기함을 느끼며 손을 쥐었다.

       ​

       “으, 으윽…”

       ​

       부서져버린 검. 

       ​

       검기 째로 부서진 탓에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 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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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마기의 역류로 칠공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진 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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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바스라져버린 칼날 조각을 털어내곤 파르스를 찾아 돌아다녔다.

       ​

       그것만으로도, 전장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

       “죽어라!”

       ​

       겁에 질린 목소리. 날아오는 벽력탄.

       ​

       윌리엄은 날아오는 벽력탄을 잡아채고 양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겹쳐진 양손 사이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

       “이건 그래도 꽤 따가운데.”

       ​

       “괴…괴물…”

       ​

       벽력탄의 폭발을 두손만으로 억제제한 윌리엄이 손을 털자 벽력탄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그 모습을 본 마인들이 그의 걸음에 맞춰 뒤로 물러났다.

       ​

       앞길을 막는 순간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눈치챘으니. 

       ​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본 윌리엄은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

       “니들 살던 곳으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여기서 다 죽던가. 하나만 선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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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일이 처리하기 귀찮으니 알아서 꺼져라.

       ​

       그런 의미를 담은 말에 마인들은 전자를 선택했다.

       ​

       아무리 마인이라도 목숨은 소중하니까.

       ​

       화경의 고수가 나타난 이상 같은 화경의 고수가 아니면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임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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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계속해서 존재감을 흩뿌리며 마인들을 밀어냈다.

       ​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죽일 수 있지만, 일부러 살길을 열어서 몰아내는 것이 이득이었으니까. 

       ​

       그렇다고 그에게 달려드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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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교주가 내상까지 입어가며 겨우 도달한 경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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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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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 맛이 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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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에 미친 악귀 그 자체.

       ​

       윌리엄은 얆은 만두피 두께의 오러로 감싼 손등으로 검강을 튕겨냈다. 

       ​

       마교의 집법사자를 맡고 있는 고수, 탈명귀는 자신의 검이 맥없이 튕겨 나가자 감탄하며 잠력을 폭발시켰다.

       ​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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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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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천진기까지 모조리 끌어와 검강을 만든 탈명귀가 다시 한번 윌리엄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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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의 검무.

       ​

       하지만 윌리엄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의 검강을 손으로 쥐어 부서트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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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되지 않아 탈명귀는 피를 뿜으며 바닥에 몸을 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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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들은 자살하는 게 유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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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전쟁터라도 살길이 있다면 그쪽으로 향하는 것이 인간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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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마인들의 후퇴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

       초절정고수가 생명까지 갈아 만들어낸 일격을 어린아이 손목 비틀듯이 막아내는 모습을 보고 전의가 생길 리가 없었으니까.

       ​

       자연스럽게 전선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

       그 말 즉 슨, 청해성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겼다는 말과도 같으니, 정파의 무인들과 병사들의 사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

       “적들을 추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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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성벽에 기름을 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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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자를 후송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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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층 여유로워진 전선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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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빠르게 재정비하고, 누군가는 적을 추격하고, 누군가는 환자를 후송시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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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이 줄어든 청해성을 둘러본 윌리엄은 익숙한 시선이 닿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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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대공을 이루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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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주님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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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지친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맹주의 상태를 살폈다. 

       ​

       벽력탄의 존재 때문에 약한 마인들에게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탓에 더 지친 맹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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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주님은 쉬시지요. 저는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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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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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끝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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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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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잘 다녀오게나.”

       ​

       윌리엄은 맹주의 배웅을 받으며 부서진 성문으로 다가갔다. 

       ​

       마인들이 진형을 갖추고 물러나고 있는 장소로. 

       ​

       윌리엄이 앞으로 나서자 홍해의 기적처럼 인파가 갈라졌다.

       ​

       본래라면 진형을 무너트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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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절정조차 넘어선, 반박귀진의 경지.

       ​

       화경의 고수가 길을 가고자 하는데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

       “젠장…”

       ​

       “빨리 후퇴해라!”

       ​

       마인들의 철수가 점점 더 빨라졌다.

       ​

       윌리엄이 다가오면 끝장이라는 것을 모두가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

       “왜 이리 후퇴가 더딘겐가!”

       ​

       “그놈들이 뒤를 막고 있소!”

       ​

       “뭐라고? 그게 무슨…”

       ​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진행 속도에 조바심을 낸 마인들이 의문을 표할 때쯤, 성벽 바깥에서 모든 것을 베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예기가 전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

       “…이대로는 끝내기 싫다 이거로군?”

       ​

       윌리엄은 씨익 웃으며 자신도 몸에서 기운을 뿜어냈다.

       ​

       아군에게는 안심을, 적에게는 압박감을 선하는 철벽같은 기세를. 

       ​

       성문을 사이에 두고, 두 절대고수가 기운만으로도 기선제압을 시도하니, 중간에 낀 마인들만 고통받기 시작했다.

       ​

       맘루크나 정파의 무인들이야 한쪽의 기운만 받으니 괜찮다지만, 마인은 양쪽에서 몰려오는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내상을 입어 쓰러진 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으니까.

       ​

       의도치 않게 무력화된 마인들을 슬쩍 쳐다본 윌리엄이 쓰러진 마인들을 옆으로 걷어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

       마인들은 그의 앞길을 막을 방법도, 이유도 없었기에 그저 길을 터줄 뿐. 

       ​

       윌리엄은 마인들로 이루어진 벽을 지나 마침내 다시 한번 숙적과 조우했다.

       ​

       “이제야 눈높이가 맞겠군. 자네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가?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

       “글쎄.”

       ​

       윌리엄은 어깨를 으쓱이곤, 말에 탄 채로 그를 내려다보는 파르스와 시선을 교환했다.

       ​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다니, 안타깝군.”

       ​

       “신의 목소리가 들리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모든 것은 결국 나로부터 나올진대.”

       ​

       “허.”

       ​

       파르스는 안장에 끼워둔 검을 검집째로 뽑아내 윌리엄에게 던졌다.

       ​

       윌리엄은 검을 받아들고는, 감탄하며 말했다.

       ​

       “거참 고상한 취미를 가지셨군?”

       ​

       “중요한 전투에 훌륭한 무기는 빠질 수 없는 법이지 않나.”

       ​

       “그건 그렇지.”

       ​

       윌리엄은 자신의 검을 버리고 스승의 검을 뽑아 들었다.

       ​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잘 관리된 롱소드.

       ​

       한철도, 다마스커스강도 아니지만 잘 정련된 검은 강철 특유의 빛깔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

       “슬슬 끝을 내자.”

       ​

       “흠.”

       ​

       “코인 꺼내지 말고. 네 의지로 선택해라. 우리 둘의 싸움에 신이 개입할 여지는 더 이상 없으니.”

       ​

       그의 말에 파르스는 피식 웃으며 그가 애지중지하던 동전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

       “그렇게 하도록 하지.”

       ​

       “안타깝게도 장갑은 없군.”

       ​

       “굳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가 대면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걸세.”

       ​

       “그런가.”

       ​

       윌리엄은 검집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는, 익숙한 자세를 취했다.

       ​

       옥스(OX).

       ​

       파르스도 말에서 내려 수하들을 물리고는 검을 뽑아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

       숨 막힐듯한 대치.

       ​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모두가 멈춰선 그 순간.

       ​

       ‘단장님.’

       ​

       윌리엄이 소리쳤다.

       ​

       “나는 사자기사단의 기사단장인 윌리엄 마셜! 이곳에서는 사자검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소! 그대에게 결투를 신청하겠소!”

       ​

       “나는 모든 노예병들의 군주이자 전쟁의 망령인 알-나시르 파르스 루크누딘 알-나시리! 그대의 결투신청을 받아들이겠다!”

       ​

       결투에 앞서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하는 선언.

       ​

       “이 결투의 끝은 오로지 죽음뿐이니!”

       ​

       “모든 것을 걸고 싸우리라!”

       ​

       

       둘의 선언과 함께, 결투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밖에 없으니 내가 기사단장이고 부단장이고 참모고 보급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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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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