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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8

       다음 날.

       

       하스펠트 자매는 황제를 접견한 뒤 수도의 한 구치소로 가는 중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득하죠?”

       “어떻게든 해 봐야지.”

       

       도움을 받았다고는 해도 로즈마리는 마수. ‘증기의 비’ 사건을 일으켜 제국을 반파한 장본인이다.

       

       당연히 로즈마리에 대한 제국 상층부의 인식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황제 폐하께 잘 말씀드렸으니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겠지.”

       “황제 폐하께서 이해해 주셨다고 다 끝나는 거 아니에요. 다른 귀족들도 설득해야 해요. 토츠펠 공작이라든가….”

       “그 얘긴 병원에 있을 때부터 쭉 했잖아. 어떻게든 부딫혀 보자고.”

       

       두 사람이라고 마왕군이 좋아서 이러는 건 아니다.

       

       인간과 마수가 협력하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하니까. 그동안의 감정은 잠시 넣어두고 지금은 힘을 합칠 때였다.

       

       “이쪽입니다.”

       

       수감실로 들어가니 헤를라인이 먼저 와 있었다. 헤를라인은 로즈마리를 상대로 이것저것 캐묻는 중이었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

       “그렇다니까. 속고만 살았나!”

       

       로즈마리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이런 심문 이제 됐잖아. 됐고, 수갑이나 좀 풀어 줘.”

       “뻔뻔하네. 제국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주제에.”

       

       헤를라인도 최대한 자중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로즈마리를 처형대에 올려버리고 싶었다.

       

       “클라이스만 아니었더라도 넌 이미 죽었어.”

       

       돌아온 하스펠트 자매가 처음에 변호해 주었기에. 절멸급 마수라고는 해도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기에. 오자마자 날뛰지 않고 순순히 포박을 받았기에.

       

       최대한 법대로 처리하려 하는 것이다. 헤를라인을 포함한 제국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흥, 그러셔……. 앗, 너희 둘! 마침 잘 왔어!”

       

       로즈마리는 수갑을 찬 손을 붕붕 휘두르며 하스펠트 자매를 반겼다.

       

       “나 좀 여기서 꺼내줘.”

       “그게 쉽지가 않아요.”

       “흐음.”

       

       로즈마리가 침음을 삼키던 사이. 클라이스는 말을 이었다.

       

       “적어도 재판은 받아야 할 거예요.”

       “세상이 망하게 생겼는데 아직도 그런 형식적인 절차를 중요시하는구나. 일처리에 유연함이 없어.”

       “너…….”

       

       깐족대는 로즈마리를 본 헤를라인이 슬며시 실눈을 떴다. 

       

       “잘도 그런 말을 나불거리는구나.”

       

       험한 눈초리를 보내는 헤를라인.

       

       인간이 내뿜는 위압치고는 예기가 장난 아니었기에, 로즈마리는 코웃음 치려던 걸 그만두었다.

       

       대신 그녀는 눈동자를 싸늘하게 가라앉히며 헤를라인을 정면에서 바라봐 주었다.

       

       “블랜튼 공녀. 세계 멸망을 논하기 전에 너부터 한 짓을 잊지 마. 클라이스가 한 말이 사실이더라도 네가 제국에 지은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아, 그러셔.”

       “반성하는 기미가 없네.”

       “참 나. 마수한테 반성하라고 하면 퍽이나 그러겠다.”

       

       제국을 무너뜨리려 한 건 제국인들의 분노를 살 만하다. 하지만 로즈마리 입장에선 착실히 일한 것에 불과했다.

       

       마음 같아선 ‘내가 뭘 잘못했는데!’ 라며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절멸급 마수로서의 위신이 안 선다. 원래 큰소리를 치는 쪽이 언쟁에서 지게 되어 있다.

       

       마음을 가라앉힌 로즈마리는 수심에 잠긴 듯 그윽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치면 너희가 먼저 잘못했지. 내가 살던 나라를, 우리 금안족을 박살 낸 게 너희 선조니까.”

       “뭐라…….”

       “몰라. 나는 잘못한 것만 고개 숙일 거야. 클라라 하스펠트에겐 제대로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헤를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황실 질서와 경제를 어지럽힌 것도 모자라, 학생이 사는 아카데미를 부수고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킨 장본인이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한다고? 심지어 포로 신분으로?

       

       헤를라인이 여태껏 본 것 중에 가장 신물이 날 정도로 태연자약한 녀석이었다.

       

       “……됐어요, 선생님.”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그 마수는 보통 일이 아니면 고개를 숙이지 않아요. 선생님께서 많은 일을 하셔야 하는데, 벌써 감정 소모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헤를라인과 하스펠트 자매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로즈마리도 눈썹을 꿈틀거리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넌……. 그때 그 엘프잖아.”

       

       버멜 호르데.

       

       “우리 언니한테 빌붙어 살던 새끼.”

       “말이 심하네.”

       “유학생에 불과한 주제에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대?”

       

       로즈마리는 입을 샐쭉 내밀면서 버멜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버멜은 한낱 좀생이였다. 생긴 것도 기생오라비 같았다. 하는 짓? 나약하고 용렬했다.

       

       “흐음.”

       

       그런 버멜이, 제법 볼 만한 얼굴이 되지 않았는가.

       

       “그땐 겁에 질려서 날마다 도망 다니더니, 이제는 꽤 남자다운 면상이네. 아니면 내가 이러고 잡혀 있어서 기세등등한 건가?”

       “아니. 그날 이후로 단단히 벼르고 있기 때문이지.”

       “그날?”

       “그래, 그날.”

       

       ‘증기의 비’ 사건을 얘기하는 모양이다.

       

       “아, 맞다. 그날 네가 내 사랑스러운 부하를 쓰러뜨렸구나. 깜빡하고 있었어.”

       “그 덕분에 나라에서 특혜를 받을 수 있었지.”

       “아하. 그래서 여기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거고?”

       

       비록 첫인상은 좋지 않아도 버멜은 클리온 필리우트 황자와 면식이 있었다. 특히 로즈마리가 본격적으로 황실을 쥐락펴락하던 시절에는 둘이 밀담을 여러 번 나누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여 반타 토터스를 쓰러뜨린 공로로 황실에 중용되었다. 하스펠트 공작가의 비호를 받은 건 덤이었고.

       

       정령이 없는 버멜에게는 그야말로 호재였다.

       

       “해서, 여긴 왜 온 건데? 설마 날 비웃으려고?”

       

       로즈마리가 수갑을 짤랑거리며 큭큭 웃었다.

       

       사실 구속된 곳은 손만이 아니다. 다리, 허리를 포함하여 전반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연했다. 자신은 절멸급 마수였으니까. 이 정도도 안 하면 구속이 아니지.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긴 하다. 인간에게 생포 당할 만한 마수가 절멸급이라고?

       

       로즈마리는 다시 한번 입매를 비틀었다. 

       

       멍청한 엘프 녀석. 속이 다 보인다.

       

       “지난날을 앙갚음하려는 거지? 그래, 안 봐도 비디오…….”

       “아니.”

       “…뭣.”

       

       폭소할 준비를 하던 로즈마리의 사고가 뚝 멈춘다.

       

       “구하러 왔다.”

       “하……?”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누가, 누구를?”

       “내가, 널.”

       

       로즈마리는 팔을 내리고 버멜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워낙 예상치 못한 대답인지라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널 여기서 꺼내줄게. 그러니까 나한테 협력해 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엘프 새끼가…….”

       

       로즈마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무리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그렇지, 별다른 힘도 권력도 없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라고.”

       

       로즈마리가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네놈이 황가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그래봤자 뭘 할 수 있는데? 기껏해야 학생 주제에! 나와 논의하고 싶으면 이 나라 고위 정치인이나 황제라도 데려와!”

       

       제국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그래서 로즈마리는 하스펠트 자매를 창구로 하여 황제와의 면담을 따낼 계획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블랜튼 공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땐 정말로 많은 일을 해낼 수가 있다.

       

       “그렇게 하려다간 결코 성공하지 못해.”

       “뭐?”

       “이 나라 사람들은 더는 네가 권력을 잡는 것을 바라지 않아. 황제 폐하 앞에 절멸급 마수를 세워놓는 일도 바라지 않고. 제아무리 아포칼립스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이 나라 사람들에겐 네가 복귀하는 것도 하나의 재앙이니까.”

       “그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왜 모르지? 멍청하기 짝이 없네. 이래서 인간들이란…….”

       “너도 인간이었잖아.”

       “아…?”

       “로즈마리 타르케닐, 타르케닐 왕국의 마지막 왕녀.”

       “잠깐, 그, 그 정보를 네가 어떻게…….”

       

       로즈마리의 예전 신분은 마왕군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다. 특히 인간이나 엘프한테는 얘기해 준 적도 없었는데.

       

       예전에 자신이 계획한 암살 작전을 전부 파악한 것도 그렇고…. 대체 이 엘프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네가 왜 다른 인간을, 제국 사람들을 싫어하게 됐는지는 전부 알고 있어.”

       “하.”

       “그러니 너를, 사람을 증오하게 된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참으로 같잖은 말을 하는구나. 그 시대를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로즈마리의 입에선 실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안 웃을 수가 없었다.

       

       배를 부여잡으며 끅끅거리는 로즈마리를 향해, 버멜은 말을 이었다.

       

       “금안족이 얼마나 핍박을 많이 받았는지도 알고 있어. 아니, 눈이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금안족’이라 불렸지. 인간이 아니라.”

       “그야 그렇겠지. 그때 우린 일반적인 마법은 쓸 수 없었으니까.”

       “당시엔 전기가 뭔지 아는 사람이 없었어. 하지만 에테르가 등장하고, 스크롤 마법의 기초가 닦아졌어. 여신이 내린 제약만 사라진다면 너희들은 더는 무시당할 이유가 없을 거야.”

       

       버멜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섰다. 에메랄드처럼 영롱히 빛나는 눈동자가 로즈마리를 한가득 담았다.

       

       그 한 걸음 때문에 로즈마리는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겁난다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금안을 위한 유토피아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지. 너를 위해서도, 에테르를 위해서라도. 금안을 지닌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도.”

       

       로즈마리는 더는 참지 않았다.

       

       “아하하하─!!”

       

       구치소에 불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껏 찌푸린 눈 사이로 은은한 노란 빛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듣기만 해도 두려운 음색이었다. 하스펠트 자매는 물론이고, 헤를라인도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오직 버멜만이, 그녀가 폭소를 멈출 때까지 꿋꿋이 서서 기다려주었다.

       

       “……이제 막 껍질 벗겨진 꼬맹이 주제에 포부는 당차구나. 등신이 따로 없어.”

       “그런 소리는 네 언니에게 숱하게 들어봤어.”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엘프놈, 생각보다 언변이 있지 않은가.

       

       아니면 고작 한 달 새에 이렇게 변해버린 건가?

       

       “뭐, 좋아.”

       

       철컹!

       

       로즈마리는 손목을 튕겨 팔의 쇠사슬을 전부 끊어냈다. 

       

       “겨, 경비……!”

       

       헤를라인이 반응할 새도 없었다. 로즈마리는 3초도 안 되어 가슴과 어깨, 허리와 다리에 있던 구속구를 전부 풀어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 언니를 대신해서 1천 1번째 기회를 주도록 할게.”

       

       턱!

       

       끼이익─!

       

       “근데 나는 에테르 언니와는 달리 참을성이 부족하거든. 보너스 코인은 이번 한 번뿐이야.”

       

       콰드득! 철창이 엿가락처럼 좌우로 벌어진다.

       

       로즈마리는 틈새를 최대한으로 벌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롭게 감방 밖으로 나왔다.

       

       “어, 어떻게…. 혼자서는 힘을 못 쓰는 거 아니었어?”

       “이 새끼들이, 우리 언니가 플레어 좀 만들어 줬다고 절멸급이 좆으로 보이나.”

       

       당황하는 헤를라인 일행을 향해 로즈마리는 콧바람을 불어넣었다. 곧 그녀의 시선이 버멜에게 던져졌다.

       

       하스펠트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흘렸다.

       

       “우리, 아무것도 못 했네.”

       “이렇게 된 이상 폐하께 허가를 구하고 경비를 삼엄하게 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에요.”

       

       로즈마리가 마음만 먹으면 제국은 다시 쑥대밭이 된다. 방금 전 괴력으로 감옥에 가둘 수도 없다는 것도 증명되었고.

       

       사실 로즈마리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도 주위를 확보해 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존재를. 

       

       그것을 위해 감옥에서 일주일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선택받은 것이 하스펠트 자매가 아니라 버멜 호르데였을 뿐이다.

       

       “호르데 군, 정치적인 일에는 저희가 힘을 써 줄게요. 그 금안족… 아니, 타르케닐 왕녀님과 대화할 자리를 곧바로 마련해 드릴 테니까 장소를 옮기도록 합시다.”

       

       클라이스의 말에 버멜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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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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