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8

     

    “검병, 앞으로!”

    “망할, 성벽을 다 올라왔어!”

    “지긋지긋한 해골 놈들!”

     

    궁병진은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화살을 쏘아댔지만 밀려오는 언데드 군세는 갈수록 숫자가 늘어났다.

     

    시체가 강에 쌓일수록 역설적으로 적의 진군도 그만큼 빨라진 덕분이었다.

     

    “거미 군주가 붙었다!”

     

    건장한 모험가를 단숨에 짓밟을 위협적인 근력을 가진 여덟 개의 다리로 이동하며, 인간형의 상체에서는 저주 마법을 시전한다.

     

    아라크네 종족의 최종형, 거미 군주. 한 마리 만으로도 소규모 국가를 무너트릴 전투력을 가졌다.

     

    “쏴라!”

     

    날아오는 화살이 박히는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며 육중한 몸을 돌진해오는 군주들.

     

    ―카르르륵!

     

    거미 군주가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니 꽁무니에서 작은 거미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다. 삽시간에 바닥을 기어와 성벽에 붙는다.

     

    “요격해!”

    “숫자가 너무 많아!”

    “화공이다. 불을 써라!”

    “불은 안 됩니다!”

     

    불을 피울 새도 없이 콰아앙!! 새끼거미가 폭발하며 커다란 구멍이 났다.

     

    거미 군주가 위험한 이유가 저것이다. 본체는 높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고 저주 때문에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까다로운 폭탄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이대론 성벽이 못 버티겠소!”

     

    그나마 성채 중앙부 성벽 위에 봉화를 잔뜩 피워서 언데드를 유인한 상황이었다. 성벽이 뚫려도 안에는 보병이 포진을 잡고 있다. 백병전은 펼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결국 밀려드는 군세를 막아내진 못한다.

     

    어떻게든 공성전에서 승리해야 했다.

     

    “기어 올라온다!”

     

    한군데로 뭉쳐 자신들을 밟고 기어 올라오는 스켈레톤들.

     

    그들과 마주하며 리셰가 난간을 밟고 섰다. 성검이 공명해 울리니 그녀의 눈동자가 첨예하게 빛났다.

     

    “하앗!”

     

    최전방에서 적군을 베어내 더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아낸다. 옆에서 타냐와 앰브로시아가 보조한다.

     

    어둑어둑한 어둠이 가라앉아도 전투의 열기와 철이 부딪치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구름에 갇힌 태양이 멀리 산맥을 넘어갈 즈음, 낭보가 도착했다.

     

    “수화물이 도착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잠시 자리를 맡기고 병사 몇을 빌려 짐마차를 가져오도록 했다.

     

    짐칸을 열어보니 안에는 커다란 오크통이 가득했다. 고트베르크 제약공장의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됐어. 하나씩 들고 올라와.”

     

    병사들이 2인 1조로 오크통을 하나씩 들고 뒤따른다. 성벽에 위치하도록 자리를 지정해주었다. 그 와중에도 발밑에서 계속해서 폭발음과 진동이 일었다.

     

    “또 터진다!”

     

    “뚜껑 열고! 신호에 맞춰서 아래로 부어버려! 전위님! 여기 잡아주십시오!”

     

    타냐를 불러 마지막 오크통을 잡게 했다. 퉁, 난간에 걸쳐 뚜껑을 여니 안에 끈적한 기름 같은 액체가 출렁인다.

     

    “투척, 지금!”

     

    ―쏴아아!

     

    오크통에서 쏟아진 액체가 삽시간에 새끼거미를 포함해 언데드 군대를 적신다.

     

    동시에 폭발이 멎었다.

     

    “이건…?!”

     

    검을 휘두르다 말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리셰. 내가 대답했다.

     

    “염기중화제입니다. 새끼거미는 산성 폭발이기에 이 성분을 깔아두면 무력화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 성분은.”

     

    언데드 군대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거미 군주도 마찬가지였다.

     

    “최상급 성수입니다. 고트베르크 빙하수로 만든 특제죠.”

     

    “성수!”

     

    “저들의 신성주문 저항력이 낮아졌습니다. 자매님, 하실까요.”

     

    “음, 반격할 기회로군!”

     

    앰브로시아가 성의를 고치고는 팔을 크게 빙글 돌려 신성력을 퍼트렸다. 정화주문이다.

    나도 함께 그린다. 위계를 최대로.

     

    파티원이 받쳐주는 덕일까, 전성기보다 훨씬 강력한 정화주문이 시전되는 느낌이다.

     

    “전능하신 빛으로!”

    “너희에게 빛은 없다.”

     

    ―콰아아악!!

     

    하늘에서 어둠을 뚫고 빛의 기둥이 쏟아지며 적진을 직격한다. 그 중앙에서 거미 군주가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친다.

     

    “하하, 성수가 어지간히 깨끗한가 보군! 이렇게 정화가 잘 듣는 건 처음 봤소이다!”

     

    “저 정도면… 쓰러트릴 수 있겠어요.”

     

    리셰가 타냐와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함께 냅다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며 단전에서 끌어올린 기를 검날에 집중해 휘감는다.

     

    “하아앗!!”

     

    ―콰아앙!!

     

    흡사 폭격이라도 일어난 듯 지면이 갈려 나간다. 그 뒤에는.

     

    ―키이이익…

     

    조각난 거미 군주의 잔해만이 남아 있다.

     

    “와우.”

     

    아무리 정화로 반 이상 약화하고 용사와 마스터가 함께 있다지만 저걸 진짜 단숨에 토벌해버리네.

     

    이렇게 잘 먹힐 줄이야. 나로서도 예상 이상의 결과였다.

     

    “거미 군주가… 쓰러졌다!”

    “이럴 수가, 이게 용사 파티의 힘인가!”

    “승리가 다가왔다. 전군! 화살을 멈추지 마라!”

     

    우리의 전투를 목격한 병사들도 사기를 올려 손놀림이 더욱 거세졌다.

     

    남은 거미 군주는 두 마리. 아직 고향에서 보내온 성수도 많이 남았다. 같은 공략법을 쓰면 나머지도 토벌할 수 있다.

     

    “용사, 뒤 조심해라!”

     

    발렌이 멀리서 진격해오는 후속대에게 일제 사격을 퍼부으며 외쳤다. 산더미처럼 쌓인 뼈를 밟으며 리셰와 타냐가 복귀하려던 때.

     

     

    ―콰아앙!!

     

    굉음이 내 귀를 덮쳤다. 잠깐 이명이 들리고 시야가 흙먼지로 뒤덮였다.

     

    정신이 돌아오니 발밑이 텅 비어있었다.

    성벽 한 구역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었다. 족해도 10미터는 되는 폭이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져 있었다.

     

    그 위에 서 있던 병사들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절명했을 것이었다.

     

    멀리 마왕군 측에서 쏘아진 대형 마탄이었다.

     

    검은 마기의 줄기가 남아 사라지는 궤적을 보니 후속군의 가운데에 그놈이 있다.

     

    리치다.

     

    “허.”

     

    나는 운 좋게 목숨을 건진 데에 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니, 운이 아니었다. 등에 느껴지는 장력을 보니 내 목덜미를 잡아끈 이가 있었다.

     

    아셀라였다.

     

    “만지지 말라고 하시더니.”

     

    “내가 만지는 건 상관없어.”

     

    아셀라는 집어던지듯 내 목덜미를 놓고는 무너져가는 성벽의 틈새 난간에 발을 올렸다.

     

    리치와 대적할 생각이었다.

     

    ―쐐애애액!

     

    쏘아지는 2격 째의 대형 마탄.

     

    대응하며 아셀라가 순식간에 네 개의 진을 그려낸다.

     

    ―콰아아앙!!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황금과 어둠, 마나와 마기가 한데 뭉쳐 반발해 마법이 소멸한다.

     

    고위계 마법사들의 정면 승부였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다.

     

     

    [No. 022 : 마법 승부 13% → 12%]

     

     

    마법 승부 엔딩의 확률이 1 단위로 계속해서 변동하고 있었다. 리치와의 마지막 대결이 곧 펼쳐진다는 뜻이었다.

     

    50퍼센트대였던 이 엔딩의 확률은 3년간 계속 감소해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부터는 하기 나름이다.

     

    “어디, 마족 최고의 마법사가 어느 경지인지 실력을 보자꾸나.”

     

    아셀라가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황녀님, 용사님의 복귀를 기다리십시오.”

     

    내 말에 아셀라는 나를 돌아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그녀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리치는 내가 쓰러트려.”

     

    “아무리 마법사라도, 황녀님 혼자서는…”

     

    “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기는 미래도 분명히 존재해.”

     

    “왜 그렇게까지 싸우십니까?”

     

    아셀라가 웃었다.

     

    “라스를 위해서.”

     

    ―쐐애애액!!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세 번째 마탄.

     

    그에 대응해 아셀라가 취한 행동은 조금은 비상식적이었다.

     

    그녀는 얼음창을 소환할 마법진을 그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팡이를 손에서 놓았다.

     

    양팔을 힘차게 교차시켜 몇 개의 손가락을 접는 아셀라.

     

    “네 마법은 이미 추적했단다, 하찮은 뼈다귀야.”

     

    ―화악!

    황금빛 시전이 이루어지고.

     

    “여기는 마법사끼리 싸우기엔 조금 좁구나.”

     

    ―쿠웅!!

     

    리치의 마탄이 마기로 풀어지며 아셀라의 마나와 융합한다.

     

    동시에 술자인 두 사람이 빨려 들어가듯, 중앙으로 쏘아지며 화아악! 구체형 공간이 발생했다.

     

    공간 마법인가?

     

    “쯧.”

     

    설마 진짜 혼자서 싸울 생각인가.

    바보도 아니고.

     

    “아셀라!”

     

    나는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외쳤지만, 이미 그녀는 구체 안으로 사라진 후였다.

     

     

     

    ***

     

     

     

    검은 흙먼지와 함께 전장의 열기가 아직 몰아치는 지면 위.

     

    황금의 마나로 만들어진 구체의 공간 안에, 두 명의 마법사가 마주해 섰다.

     

    “공간계, 6위계. 상당한 성능이군요. 분절과 추방을 조합한 술식. 흥미롭습니다.”

     

    리치가 자신을 가둔 마나의 감옥을 살피며 백색의 뼈만 남은 고개를 까딱였다.

     

    또각, 그와 대치한 아셀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지팡이를 반 바퀴 빙글 돌렸다.

     

    “네놈 따위가 인정할 필요는 없단다. 여기가 네 무덤이니.”

     

    “표현이 재미있군요. 한 가지 알려드리자면 언데드는 무덤에서 태어나는 종족입니다.”

     

    리치가 지팡이를 휘둘러 진을 만들었다. 언데드 소환의 술식이었다.

     

    “음.”

     

    하지만 반응하지 않고 파기된다. 리치가 바로 원리를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은 저희 둘뿐이라는 의미로군요.”

     

    “마음에 들지 않니. 바깥에는 검잡이나 활쟁이나 구역질 나는 마물 천지니. 어디 마음껏 마법만 써서 붙어보자꾸나. 아, 그래봤자.”

     

    아셀라가 악마 같은 웃음을 흘렸다.

     

    “네 승률은 1할 정도뿐이지만 말이다.”

     

     

     

    다음화 보기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