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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8

       어딜 가나 24시간 축제 분위기인 원더랜드였지만, 여관 거리만은 그렇지 않았다. 이곳은 숙박객들을 위해 일정 시각이 되면 자동으로 가로등이 소등되면서 모든 소음이 차단되었다.

         

       즉,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은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시끌벅적함에 나는 눈을 떴다.

       그러나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 봐도 세상은 여전히 깜깜했다. 무언가가 내 눈 앞을 가리고 있었다.

         

       “우헤헤, 주인님, 거긴 안 돼요, 흐잇!”

         

       숨을 크게 내쉬는 순간, 클라라가 잠꼬대를 웅얼거렸다. 나는 내 얼굴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그녀의 발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치우고는 몸을 일으켰다.

         

       잘 때만 해도 침대 건너편에 있던 그녀는 어느새 몸을 90도 틀어서는 내 쪽으로 다리를 뻗고 있었다.

       지난밤, 그녀가 보여준 잠버릇은 대단했다. 갑자기 고함을 빽빽 지르는 것은 물론이요, 한 번은 내 어깨를 걷어차기도 했다.

         

       입고 있던 옷은 다 어디 갔는지 그녀는 티셔츠 한 장에 속옷은 팬티만 걸치고 있었다.

       가슴의 반이 드러나도록 옷을 젖혀 올리고 배를 긁고 있는 지금의 그녀가 입학시험에서 재학생 대표로 나왔던 그 모범생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 민망했던 나는 서둘러 방에서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겼다.

         

       뾰족한 귀와 반짝이는 피부는 어두운 방 안에서도 잘 보였다. 루미가 내 허리를 꼭 껴안고 있었다.

         

       어젯밤, 나는 거실에서 혼자 자려고 했었다.

       하지만 클라라가 한사코 나와 자겠다고 우겼고, 내가 그녀의 몸에 손대지 않는지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루미까지 합세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한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이 선을 넘어오면 죽을 줄 알아!

         

       그런데 그렇게 으름장을 놓던 본인 쪽에서 이렇게 달라붙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녀를 간신히 떼어내 침대에 눕혔다.

       어찌나 꽉 쥐고 잤던지 짚단으로 만들어진 내 몸통은 짓눌려서 형태가 찌그러져 있었다.

       허리를 똑바로 펴보니 몸 전체적으로 2도 정도 기운 것 같았다. 클라라에게 가격당한 어깨는 어딘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오늘은 무조건 거실에서 혼자 자겠다고 다짐하며 방을 나섰다.

         

       어슴푸레한 거리의 불빛이 거실을 밝히고 있었다.

       원더랜드의 조명은 항상 이 초저녁의 색깔을 유지했다. 가장 흥에 취하기 좋은 시간대라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나오자마자 내가 오늘 잠자리로 점찍어둔 곳에 다른 누군가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엘피 양?”

         

       엘라는 이미 반쯤 깬 상태였는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녕……아저씨, 좋은 아침이야……, 하암. 보다시피 아침 하늘은 아니지만.”

       “무슨 일 있었나요? 왜 밖에 나와서 자고 있죠?”

       “아니, 그냥 중간에 악몽을 꿔서……. 깬 김에 거실을 어슬렁거리다가 여기 누웠네.”

         

       악몽이라는 말에 나는 그녀의 볼에서 눈물 마른 자국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가 기억 때문에 종종 발작을 일으키곤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매일 챙겨 먹어야 한다는 가스통의 약도 여기 와서는 먹지 못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야, 그 표정은. 아, 혹시 사법 극장에서 봤던 걸 악몽으로 꿨다고 생각한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런 건 아니니까. 그냥 옛날에 있었던……안 좋은 일이 떠오른 거야.”

         

       그녀가 애써 밝은 척하는 게 보였다.

       나는 그녀가 손수건으로 눈물 마른 자국을 닦는 것을 모른 척해주었다.

         

       “으그극! 확실히 소파는 좀 불편하네. 그런데 아저씨도 제대로 못 잔 거 아냐? 클라라 선배 잠버릇 엄청 고약한데.”

       “말도 마시죠. 전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서 잘……잠깐! 이거 생각해보니 클라라 양을 우리에게 부탁했던 것도 같이 자기 싫어서 그런 거였나요?”

       “에헷, 들켰네?”

         

       엘라가 장난스럽게 혀를 날름 내밀어 보였다.

         

       얼마 안 있어 루미가 방에서 나왔고-자기 몸에 손대지 않았는지 따져 묻는 그녀를 보고 나는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이어서 차례로 루엘로와 클라라도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중앙 광장으로 나갔다.

       작전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명성을 높여두는 쪽이 좋았다.

         

       그러나 몇 시간을 무대를 돌아다녀도 취소 표는 나오지 않았다.

       점심이 되었을 때, 우리는 표 구하는 것을 반쯤 포기한 채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나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 무대는 우리가 올랐던 곳하고 뭔가 다른데?”

         

       중앙 광장에서도 중심 구역.

       그곳에는 다섯 개의 무대가 서로 등을 맞대고 다섯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보컬,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드럼. 다섯 개 분야에서 우승한 5명은 사도 슈트라우스의 합주곡을 합동 공연하게 될 영예를 얻게 된다.”

         

       나는 무대 근처에 세워진 현수막에 적힌 글을 읽었다.

       엘라는 내 말을 듣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지휘자 슈트라우스도 키르쿠스의 사도였구나. 100년 전쯤 인물인데…….”

         

       이 다섯 무대는 광장에서 벌어지는 경연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그다음 시즌 표를 구하려면 최소 10일은 기다려야 했다.

       이 정도면 취소 표도 잘 나오지 않을뿐더러, 구하는 경쟁자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표를 찾아 장소를 이동했다.

         

       그러나 오후 내내 광장을 돌아다녀도 취소 표는 구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제가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 걸로 부딪혀 봐야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우리는 숙소로 가는 길에 다시 광장의 중심부를 지나가게 됐다.

         

       다섯 무대는 여전히 성황 중이었다. 그들은 같은 순번끼리 동시에 경연이 진행되었기에 음악이 시작될 때마다 다섯 무대의 음악이 어우러져 합주곡이 흘러나오는 형태가 됐다.

       물론 참가자들끼리의 역량 차이로 인해 금방 한쪽 소리가 압도해 버리거나, 서로 경쟁적으로 연주하느라 박자가 어긋나곤 했다.

         

       그렇게 광장을 빠져나와 막 숙소 거리로 들어가려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악기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3일 전 새벽, <다섯 곡예사>의 연습을 하던 빈 무대 위에서 들었던 것이었다. 레이나가 연주했던 그 악기였다.

         

       밴조라고 했던가.

       설마……?

         

       “빨리 가자! 뭐 더 보려고?”

         

       루미의 재촉에 나는 금방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저기 천지에 널린 게 악기 연주였다. 아마 밴조도 지나가면서 수십 번은 들었을 것이다. 지금 저기는 악기 하나의 소리를 확대해 들려주니 강렬하게 다가왔을 뿐이었다.

         

       “와라! 탈것!”

         

       루미가 내 등 위로 폴짝 올라탔다.

       잘 때도 꼭 안고 자더니, 어지간히 이 짚단이 편한 모양이었다.

         

       “아저씨, 나도 나도!”

         

       엘라가 반대편에 올라탔다. 그러자 클라라 역시 내게 달려들었다.

         

       “주인님, 나도 나도!”

         

       그녀까지 못 업을 것도 없지만, 어젯밤을 떠올리니 편하게 날 타고 가려는 그녀가 왠지 괘씸했다.

         

       “클라라 양은 루엘로 양이나 업어 주세요.”

       “치사해!”

         

       클라라는 말을 그렇게 내뱉었지만,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루엘로를 등에 태우고 네발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네발로 걷지는 마시고요.”

       “알았어!”

         

       그렇게 우리는 원더랜드에서의 둘째 날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

         

         

       그들이 떠나고 얼마 안 있어 다섯 무대의 합주가 끝났다.

       그러나 연주에 참여한 누구도 무대를 내려가지 않았다.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은 물론 다음 순번의 대기자 역시 본인들 차례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바로 베이스 기타의 무대였다.

         

       그곳에는 황금색 망토와 정장을 입은 화난 듯 우는 듯 섬뜩한 인상의 뿔 달린 하얀 가면을 쓴 여인이 있었다.

         

       다섯 무대 합주에서는 한쪽 무대가 다른 쪽 무대를 압도하는 일이 잦았다.

         

       주목받는 쪽은 주로 보컬, 기타, 피아노였다. 드럼은 세 무대에 밀리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요란함과 퍼포먼스로 자신의 자리는 지키는 편이었다.

         

       베이스 기타의 경우는 무조건 당하는 쪽이었다. 음역대가 낮은 탓에 다른 악기의 소리에 쉽게 묻혀 버리는 것이다.

         

       방금의 무대도 시작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드럼의 박자에 맞춰 보컬, 기타, 피아노가 시동이 걸리면서 리듬을 타고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베이스 기타는 그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무색무취한 흐름을 타고 흘렀다.

         

       앞선 무대들이 그랬듯 이번 무대도 합은 금방 깨져 버렸다.

       박자도, 고저도, 장단도 각자 자기 개성대로 연주해나갔다.

         

       관중들도 심사위원들도 다른 무대에서 들리는 불협화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각자의 무대에만 집중하도록 애썼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고역인 것은 베이스 기타의 심사위원들이었다.

         

       “사도 의회는 왜 무대를 이런 식으로 구성한 거야?”

       “그래. 이럴 거면 같이 무대에 올리든가! 경쟁도 협력도 이도 저도 아니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소음 속에서 베이스의 연주를 제대로 평가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심사위원들은 또 던져주기 적당한 중간 점수를 고르고 있었는데, 변화가 일어났다.

       중구난방으로 날뛰던 연주들이 서서히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무슨 일이지?”

         

       처음에는 그 기이한 현상에 다들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변화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베이스 기타의 무대였다.

       밴조를 연주하는 그녀는 처음에는 드럼을 끌어들였다. 그녀의 악기가 내뿜는 부드러우면서도 동정적인 울림은 난타에 심취해 있던 드럼 연주자가 자신도 모르게 그녀와 호흡을 맞추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합주의 배경을 담당하는 두 악기가 그렇게 화음을 맞추자 나머지 세 무대는 저절로 빨려 들어왔다.

       각자도생일 때는 그렇게 잘나 보일 수 없었던 보컬, 기타, 피아노였다. 그러나 베이스와 드럼이 함께 듀엣을 이루며 화음을 만들어내자, 거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세 무대는 왠지 홀로 동떨어진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다섯 무대가 하나의 선을 타고 어우러져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동시에 마지막 음표를 발산하는 순간.

       거기서 뿜어져 나온 파장이 광장을 한 차례 휩쓸었다.

       무대 바로 앞에 있던 사람들은 영혼이 떨린다는 게 어떤 비유인지 절실하게 체감했다.

         

       무대에 완전히 몰입한 그들은 요란하고 다채로운 리듬의 폭풍 속에서 그것을 선도하는 한 줄기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연코 베이스 무대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번 시즌 베이스 무대의 최고 득점자가 나왔습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관중들은 그녀와 악기의 이름을 연호했다.

         

       “우는 여자! 우는 여자!”

       “밴조! 밴조! 밴조!”

         

       베이스 연주자는 열광적인 앙코르 요청을 뒤로 하고 악기를 챙겨 무대를 내려왔다.

       사방에서 극장 관계자들이 달려와 그녀를 향해 입장권을 내밀었다. 엘라에게 몰려들었던 인파의 수십 배는 됐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나 열광적인 반응을 얻을 줄은 몰랐다. 기술적인 면에서 자신이 다른 참가자들보다 크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산 자의 울림이 가진 힘을 몰랐다.

         

       어쨌거나 덕분에 그녀는 목적했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녀는 받은 초대장을 꼼꼼히 검토했다. 그중에 사흘 뒤에 자리가 비어 있는 극장이 있었다.

       그녀는 그곳을 골랐다.

         

       그녀는 숙소에 돌아와 분장을 벗어 던지고 몸을 씻으러 들어갔다.

         

       아버지의 복장을 본떠 만든 무대 의상.

       어머니의 유품인 악기.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선물해준 가면.

         

       공연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레이나였지만, 오늘 무대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아버지, 기다려주세요. 제가 반드시 구해드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다짐하며 따뜻한 욕조 속에 몸을 담갔다. 며칠 동안 낯선 곳에 떨어져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궁리했던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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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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