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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8

       언제나 그렇듯, 이번 일정도 그리 신중하게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최근 들어 불현듯 숲이 그리워지는 일이 잦아졌을 뿐이다. 그 미묘한 풀내음과, 공기. 그리고 나뭇잎 틈새로 보이는 햇살과, 심지어 약간 축축한 느낌의 나뭇가지며 잎사귀까지.

         

        자연 속으로 홀로 파고 들어서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져서.

       

        작년 초만 해도 제법 자주 하던 짓이다. 본격적인 캠핑도구까지 챙겨온 건 처음이지만.

         

        어디에 가도 미묘한 괴리감이 느껴지는 도심과 달리, 자연은 그대로인 덕분에 생긴 습관이다.

       

        해가 두 개라거나, 달이 파란색이라거나, 고라니 대신 고블린이 나온다거나……뭐, 그러지는 않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쓸데없는 상상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벌써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 날의 방송으로부터 3주 남짓.

         

        작은 요새에서 기어 나와 자연에 파묻혀 있다 보니 금방 흘러간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제법 많은 일들이 있기도 했다.

         

        언니로부터 고소할 사람 명단이 확정되었다는 연락도 왔었고. 10명은 물론이고, 본인이 보기에 추가 고소가 필요한 사람이 200여 명 정도 있다던데……말투가 조금 사무적이어서, 약간 마음이 울렁거리더랬다.

       

       주제넘게도.

         

        고맙다는 말 외에 제대로 된 대답은 하지 못했다. 아직,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J. Dox로부터는……곧 좋은 소식을 기대하라는 이메일이 왔었다. 좋은 소식이 무슨 소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내 컨셉 스킨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더라.

         

       ……다시 생각해도 왜 승낙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 순간엔, 비교적 자연스럽게 건강검진을 요구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 자연스럽진 않았지만……달리 떠오른 차선책이라고 해봐야, ‘동양의 신비로 꿰뚫어 보건대 너는 지금 기관지가 안 좋으니 당장 담배를 끊고 검사를 해라’ 뿐이었으니.

         

       동양의 신비보다는, 이상한 계약 조건이 그나마 나은 선택지였을지도……모른다고, 생각한다. 응.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니까. 

         

        일방적으로 기억하게 되어버린 우정이라고 하지만, 친구한테 동양의 신비 운운하는 건, 조금.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

         

        그래도, 정 방법이 안 떠올랐으면, 아마……그런 소리라도 했겠지.

         

        뭔가 문제가 생긴 건 분명했으니까.

         

        예전……전생에. 대부분 소통을 채팅으로 하고, 말을 할 때면 한 두 단어만 힘겹게 하기에……영어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채팅은 번역기로 돌려 나오니 유창하지만, 말은 떠듬떠듬. 그 시절 나오나 유럽 서버에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목소리가 늘 쉬어 있는 것도, 그냥 그런 목소리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어딘가 예전에 아팠겠거니, 하고.

       

        친해지기 전에는 신경 쓸 이유가 없었고, 친해진 후에는 굳이 상처를 캐물을 이유가 없었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우리 우정은 나오나 안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여기선 그리도 말이 많은 걸 보면……아직은 괜찮은 모양이었으니. 나중에, 폐든 목이든 입이든, 뭔가 문제가 생길 예정인 거 아닐까. 

         

       원인도 알 수 없고, 같은 일이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지만- 그리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도저히.

         

        검진을 자주 받다 보면, 원인이 뭐든 간에 조기에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백조의 노래 운운하며 사라지는 일은…….

         

        -쏴아아아아

         

        텐트 밖, 쏟아지는 빗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배수로를 조금 더 깊게 팔 걸 그랬나. 미리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한 후회는 항상 늦게 찾아오는 법이더라.

         

        강수량 대비 필요한 배수로 깊이와 폭……이런 것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려나.

         

        주머니의 핸드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손에서 놓았다.

         

        그날의 방송 이후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이 제법 꺼려지는 탓이다.

         

        커뮤니티 탐방 중 내 아이디를 언급하는 글을 발견하는 것과, 온갖 게시글에 내 얼굴이나 몸이 클로즈업되어 나오는 건 상당히 달랐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느껴지는 수치심과 고통의 정도에서.

         

        덕분에, 본의 아니게 인터넷 디톡스 기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예상 못한 곳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정신공격을 견딜 수 없었던 고로.

       

       심지어 ‘오늘 점심 메뉴 추천좀’ 따위의 제목에도, 아무 맥락 없이 내 사진이 들어가 있곤 해서…….

         

        그래도, 계속 피할 수는 없을 터라.

         

        그저께 즈음, 용기의 물약을 최대치로 도핑한 후에 장막을 아주 잠시 들춰보기는 했더랬다.

       

       차마 내 업보가 날 것 그대로 담겼을 게시글들을 볼 용기는 나지 않아……위키의 ‘아따먹’ 항목만 가까스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리하여 알게 된 건- 지금 패러데이는 거의 화형당하기 직전이며, 나는 그 선두에 선 열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도적이 버프되지 않는다면 패러데이가 감당하지 못할 폭탄을 터트리고 방송을 접겠다는 선언을 했다……는 건데.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지 않았나.

       

       하지만 솔직히, J. Dox의 정체를 알아차린 후로는 그 쪽에 정신이 팔려서 방송에 집중하지 못하기는 했으니……어떤 오해든, 결국 내 책임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더라.

       

       굳이 말하자면, 그 순간에는 정말로 이 정도면 도적부흥운동의 마지막 방송으로 손색이 없지 않나- 정도의 생각은, 했던 듯도 싶고.

         

        결과적으로 3주째 나오나도 방송도 안 하고 있으니, 더더욱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래도, 그런 대단한 결단을 내린 적은 없었다. 그저 여러가지……여러가지 생각이 겹쳐서, 차마 방송 시작 버튼을 누르지 못했을 뿐이지.

       

       오히려, 나로부터 비롯된 대규모 혁명군이 패러데이에 직접 불을 지르기 직전임을 알게 된 지금은……음.

         

        조금 억울하다- 고, 습관처럼 말하고 싶은데……참아야겠지. 

         

        문득, 머릿속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채팅들 – 어째서인지 3할가량은 불 모양 이모지였다 – 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듯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평소에 채팅창을 작게 숨겨두고 대략 상상만 하는 일이 잦았던 덕일까. 채팅창의 모습에 한정해서는 정말로 상상력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더라.

       

       -쏴아아아

        

       홀로 숲에 나온 탓일까. 빗소리가 어딘가 감성을 자극하는 탓일까. 아니면, 그저 시간이 제법 오래 흐른 탓일까.

       

       ……시청자들이 보고 싶었다. 조금. 인정하기는 민망하지만, 응.

       

       ……그리고, 그렇네. 패러데이를 향하는 게 시위대 수준이면 몰라도. 그걸 넘어서 혁명군이 되어버린 건 조금, 조금 과하기도 하니까.

         

       그 와중에, 빗소리는 퍽 듣기 좋더라. 나뭇잎과 부딪히는 소리, 흙에, 웅덩이에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음.

       

        방송, 잠깐만 켜볼까.

        

       * * * *

        

       [오늘도 센세 안 오면 비행기 탄다 ㄹㅇ]

       [시위를 본사 앞에서 박았어야 되는 이유]

       [패러데이 한국지사 방문 후기]

       [걍 이새끼들은 보이콧이 답임]

       [레딧 반응 더 퍼왔다]

       [이야 양키 성님들 노빠꾸시네ㅋㅋㅋㅋ]

       

       아따먹의 잠적으로부터 23일.

        

       그녀의 팬들이 팬카페 밖으로 새어나와 커뮤니티들을 불태우기 시작한지는, 10일.

        

       그리고, 레딧 등 해외 커뮤니티들조차 ATM 발(發) 보이콧과 패러데이의 ‘뇌 뺀 운영’에 관해 떠들썩해진 끝에, 결국 겉잡을 수 없는 대형 화재가 번져나가기 시작한지 7일차.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이 방송 중입니다!]

       [더 로그 4D]

        

       갑작스럽게 켜진 방송이었다.

        

       그 사이 단 1초도 방송을 하지 않았음에도, 단연 전세계 나오나 커뮤니티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그녀였다. 방송을 쉰 23일동안 팔로우 수가 2할 이상 증가할 정도로.

        

       미리 공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따위가 문제될 리가.

        

       알림이 뜨는 순간부터 이미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입장과 동시에 도배해대는 채팅들에, 약간이나마 늦은 후발주자들은 렉이 걸릴 지경이더랬다.

        

       『더 로그? 더 로그? 더 로그? 더 로그? 더 로그? 더 로그?』

       『나오나 접었나요 나오나 접었나요 나오나 접었나요 나오나 접었나요 나오나 접었나요』

       『따먹아 좆오좆 좆됐어』

       『ATM! ATM! ATM! ATM! ATM! ATM! ATM! ATM! ATM! ATM!』

       『🔥무단잠수 해명해🔥무단잠수 해명해🔥무단잠수 해명해🔥무단잠수 해명해🔥무단잠수 해명해🔥무단잠수 해명해🔥』

       『와줘서 고마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ATM! ATM! ATM! ATM! ATM! ATM! ATM! ATM!』

       『💣DROP THE BOMB💣 ON PARADAY💥💣DROP THE BOMB💣 ON PARADAY💥💣DROP THE BOMB💣 ON PARADAY💥』

        

       인파를 헤치듯 그 틈을 뚫고 가까스로 입장하면, 평소의 모닥불 대기화면조차 없는 공백이 시청자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몇 초 정도 지났을까.

        

       《아. 잘 들리시나요.》

        

       익숙한 인사말과 함께, 화면 가득 이예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소위 말하는 ‘얼빡캠’. 배경에는 무언가 갈색 천이 비치는 듯했으나- 그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만 가득한 화면이었다.

        

       그것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각도로.

        

       그럼에도 굴욕이라곤 조금도 없는 외모였다. 오밀조밀하게 모인 이목구비가 화면에 꽉 들어찼음에도 어느 곳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조금은 비현실적일 정도의 미모.

        

       조명은 커녕 얼굴에 미묘하게 그늘이 져 있음에도,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는 여전히 빛이 나는 와중에-

       

       나른하게 늘어진 눈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깜빡거렸다.

       

       《보이시나요. 컴퓨터가 없어서 불편하네요.》

        

       그제야 모두들 정신을 차린 건지. 급작스럽게 채팅의 속도가 3배가량 빨라지며, 압도적인 양의 하트 이모지와 각종 언어의 감탄사가 쏟아졌다.

       

       방송도 좀 태워보자며 작당하던 방화범 집단들조차 한 줌 인원으로 분탕칠 생각 따위를 빠르게 포기하게 만드는 화력이다. 

        

       《채팅……채팅 좀 적당히 쳐주세요. 모바일이라, 잘 안 보여.》

        

       정말로 잘 안 보이는 건지, 눈가에 힘을 주며 핸드폰을 보다 가까이 당기는 이예나.

        

       그러나 변하는 각도와 거리감이, 어쩐지 살짝 삐진 여자친구와의 영상통화를 연상시키는 탓에-

        

       -ㅇㅇ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미쳤다 진짜 돌판 영통팬싸 장사 접어라】

        

       당연하게도, 채팅은 더욱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나오나 진짜 접었나요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도적 보고싶어요】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 그게 중요해?』

       『눈치 챙겨 씹1련아』

       『WOW she the three-head Cerberus 🐶🐶🐶』

       『와』

       『좆오좆 때려치고 여캠합시다 제발』

       『Translate please 😭』

       『도적 숨 붙어있을 때 빨리 큐나 돌리자』

       『와 머리가 세 개』

        ㄴ임시차단되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급류와도 같은 채팅창을 진정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걸까. 길고 가녀리게 뻗은 손가락이 다가오더니, 화면이 잠시 멈췄다.

        

       영원과도 같은 1초 후. 다시 초점을 잡은 카메라가, 좁은 텐트의 내부를 담았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

       『아 제발』

       『PLEASE TURN THE CAMERA』

       『선생님 큰일났습니다 지금 강도가 제 목에 칼을 들이대고 당장 카메라를 다시 돌리지 않으면』

       『아ㅏㅏㅏㅏ』

       『제발』

       『??텐트?』

       『아니 진짜 캠핑을 나왔네』

        

       무수히 쏟아지는 요청과 아우성을 보고는 있는 건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이 텐트에 난 구멍 바깥으로 내밀어졌다.

       

       실시간으로 텐트에서 추방당하는 듯이 느껴지는 화면 움직임.

        

       《나오나……그러게요. 일단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고, 혹시 시간 남으면 이야기 해볼게요. 오늘 방송은 짧게 할 거라, 시간이 없어서.》

        

       -쏴아아아아

        

       이어서, 짧은 방송을 예고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로 들려왔다.

        

       《자연의 빗소리, 낭만 있지 않나요.》

        

       쏟아지는 비와, 흔들리는 나무를 비추는 카메라.

       

       -흐흫

       

       《숲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도시랑 조금 달라서……같이 듣고 싶어서 방송 켰어요. 잘 들어 보면 소리가 다양해요.》

        

       제법 긴 시간 동안 고정될 화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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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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