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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8

     내전은 끝났다.

     

     단 하루.

     지브롤터가 붉은색 마도자동선을 몰고 후작성 성벽을 훌쩍 뛰어넘은 다음, 후작성을 바로 점거하여 바르셀 후작을 죽이고 그 성에 깃발을 꽂았다.

     아무리 영지전이라고 해도, 후작을 죽일 이유가 있었는가?

     있었다.

     제로스 바르셀 후작은 그레이 지브롤터를 암살하려고 했다.

     왜 하필 그레이 지브롤터를?

     그것이 충성이라고 생각했기에.

     제국의 앞잡이가 되어가는 것에 분노하였고, 경룡장에서 국왕을 넘어 1등을 차지하며 우승한 것을 두고 역심을 품었다고 판단을 내렸다.

     심지어 그레이 지브롤터를 죽이기 위해 국왕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거짓으로 보고를 하였고, 그 바람에 국왕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다.

     어긋난 충성으로 자신을 따르는 황금여명의 기사 약 700명 가량을 죽게 만든 자.

     바르셀 후작을 비롯한 후작령의 많은 이들이 처형되었다.

     그나마 인도적인 차원에서 에르트랑 바르셀, 후작의 딸은 피가 이어지지 않은 양녀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후작가는 망했고 같이 단두대에 올려야했지만, 바르셀 후작가가 남긴 유산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모르가니아 첩보부에서 그녀를 데리고 가버렸다.

     결국, 바르셀 후작령은 한 순간에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국왕을 능멸한 죄를 지었다보니 당연히 가문 전체가 멸족이었고, 가문의 핵심 인사들은 영지전 과정에서 지브롤터에게 몰살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죽여서야 되는가…?

     -이보게! 그 소식들었나? 황금여명 기사단 놈들, 여자에게 강제로 약을 먹이고 강제로 범했다는 모양이야! 영지에서 피해를 당했다고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야!

     -뭐라고? 죽을 놈들이었구만!

     

     심지어 조사 결과 그들, 황금여명 기사들이 일으켰던 추악한 범죄와 비리가 드러나면서, 지브롤터를 향한 비토 여론은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아예 없지는 않았어도, ‘죽어야 할 놈들이 잘 죽었다’-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지.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전쟁은 전투가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전후처리.

     손해배상.

     

     그 외에 다양한 일들.

     특히 ‘비어버린 후작령’에 대하여, 그 땅을 누가 처리할 것이냐가 중요.

     영지전의 전통과 역사에 따르면, 모든 것은 승자에게 결정권이 있으니.

     “이곳은 이제부터 지브롤터 백작령 바르셀 구역인가.”

     그렇게 후작령이라는 넓은 땅이 우리 지브롤터에 편입되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많이 죽여버렸기에, 누군가는 후작령을 책임져야 했다.

     지브롤터 백작가가 사실상 준 후작령이라고 하더라도, 왕국의 제1 기사단장이 가주로 있는 진짜 후작령과 비교를 하면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노릇.

     선택을 내려야만했다.

     이 넓은 후작성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승자인 지브롤터에 있다.

     그래서,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현재.

     “백작님.”

     이곳은 구 바르셀 후작성 ‘골드캐슬’.

     이제는 바르셀 지구 ‘총독부’가 되어버린 곳.

     “누가 백작인가, 로버트 ‘그라나다’ 남작.”

     한 가지 변화.

     로버트 세빌리야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 당연히 그레이 바르셀 지브롤터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시죠.”

     “엿 먹이는 거면 그만두게. 나는 그냥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령 총독일 뿐이야. 백작위에 해당하는.”

     또 한 가지의 변화.

     나는 새로운 직책을 임명받았다.

     “알겠습니다, 총독각하.”

     “…그냥 백작님이라고 부르지.”

     지브롤터 백작령 바르셀 지구 총독.

     국가간 관계였으면 사실상 ‘식민지’를 다스리는 총독.

     직위는 그러하지만, 작위는 백작 취급을 받는 자.

     “하.”

     나는 내 앞에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서류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행정관부터 뽑아놓을걸 그랬나.”

     내가, 책임지기로 했다.

     갑자기 자신들을 지켜줄 후작이 사라진 후작령의 시민들을 위해서?

     그럴 리가.

     그런 이유도 있지만, 노스트럼 왕국의 평균적인 인식처럼 ‘그레이 지브롤터가 우리를 이제 지켜줄 거야!’라는 이유로 온 건 아니다.

     사냥감을 사냥하고 난 뒤, 인간은 사냥감을 도축해야만 짐승을 먹어치울 수 있다.

     내장을 제거하고, 가죽을 무두질하고, 고기를 손질하여 썩지 않게 보관해둬야 먹어치울 수 있다.

     가만히 죽인 채로 내버려두면 날짐승이 뜯어먹거나 하여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구더기가 끓고 시체가 썩으며 악취를 풍기고, 핏물이 흘러내려 물을 오염시켜 사람이 사는 집까지 망가뜨리면 몹시 곤란하다.

     

     그렇다.

     나는 현재, 이곳 바르셀을 해체하여 먹어치우기 위해 옛 후작성 골드캐슬에 머무르고 있다.

     바르셀 후작령이라는 거대한 멧돼지를 다른 승냥이들이 빼먹지 못하게.

     “황제에게 조금 미안하군. 전투가 끝나면 어떻게 약혼식으로 만나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아스타시아 황녀님께 미안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약혼식은 우리끼리도 할 수 있지. 황제 없이도.”

     “오….”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나는 지브롤터를 떠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로버트 경. 아버지께서는 뭔가 하신 말씀이 없는가? 영지 바꾸자고.”

     “방에 화장실도 없고 샤워도 바로 못 하는 낙후된 곳과는 영지 안 바꾸신다고 했습니다.”

     “쳇.”

     어떻게 떠나보려고 했는데, 상황이 참 공교롭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후작 되셨다고 참 너무하시는군.”

     “500년 만에, 말이죠.”

     “내가 지금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나, 로버트 자작.”

     “경입니다, 백작님.”

     “왜?”

     “자작 신분도 도련님께서 제게 만들어주신 거고, 제 영지 ‘마드리드’도 바르셀 후작가 내부에 있는 곳이니까요. 제 영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도련님.”

     “하아.”

     그렇다.

     “영지전 한 번 이겼다고 후작이라. 후작을 이기고 후작위를 얻어냈으니, 다음에는 뭐 공작가를 상대로 영지전을 걸어야 하나?”

     “왕가를 상대로 영지전 걸면 왕좌를 얻는 겁니까?”

     “농담이 늘었군, 로버트 경.”

     “농담이었습니까?”

     “…….”

     “농담입니다. 흐흐.”

     지브롤터 백작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지브롤터 ‘후작’가.

     500년 만에 작위가 올랐다.

      

     * * * 

     [그 시각, 지브롤터 ‘후작’성.]

     “후작이라.”

     “어색한데요.”

     샤를로트 후작 부인은 정장을 새롭게 맞춘 크림슨 후작의 넥타이를 직접 메어주며 볼을 부풀렸다.

     “항상 백작님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후작님이라고 불러야 하게 되었잖아요.”

     “그러면 다른 표현도 있을 텐데?”

     크림슨 후작이 샤를로트 부인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안 그렇소, 부인?”

     “……안 불러드릴 거예요, 백작님.”

     “백작님이라고 하는 건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바람이라도 피우셨나?”

     “후작님.”

     “농담이오.”

     크림슨 후작은 샤를로트 부인의 입에 키스하며 낮게 웃었다.

     “500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가문의 작위가 높아졌으니, 그에 맞게 우리도 바뀌어야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무엇이?”

     “세인트 지오, 그 자가 우리를 어떻게든 노스트럼에 눌러앉히려고 하는 수작이잖아요.”

     샤를로트 부인은 아래를 슬쩍 가리켰다.

     “달라진 건 오직 작위 뿐이죠. 중앙에서 보내주는 세금과 지원금은 카르멘 왕비의 도움 덕분에 늘어나기는 했지만, 카르멘 왕비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푼돈만 들어왔을 거예요.”

     “…….”

     “아무것도 달라진 거 없이, 후작가 작위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지브롤터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꿔야만 했어요. 고작 작위로 우리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작위만 준 게 아니지.”

     크림슨 후작이 탁자에 놓인 마도구에 손을 올렸다.

     “500년 동안 받지 못했던 대우를 해주기 시작했지.”

     딸칵, 하는 버튼 소리가 눌리자, 곧 원형의 마도구에 올려진 원판이 돌아가며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영지는 배로 늘어났고, 인구도 늘어났소. 관리하기에는 쉽지 않겠지만, 그곳을 관리하는 이가 보통 사람인가.”

     “그레이가 여러 방면으로 뛰어나기는 하지만….”

     “백작위에 해당하는 권한을 받았으나, 여전히 그레이는 지브롤터요.”

     부부는 익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을 잡은 뒤, 제국식 마도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레이가 지브롤터를 벗어나는 경우는 하나뿐이지.”

     “테르시안?”

     “노스트럼의 후작가라고 해도, 제국의 부마가 된다면 지브롤터의 성이 아닌 제국의 성을 사용할 수밖에.”

     크림슨 후작은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황제의 성향을 봐서는 그레이 지브롤터 테르시안이라는 미들네임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것도 같기는 하지만.”

     “…테르시안이라.”

     “왜 그러시오?”

     “으음, 아녜요. 뭔가, 테르시안이라기보다는….”

     샤를로테 부인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으나, 크림슨 후작의 발에 맞춰 계속 춤을 이어나갔다.

     “그레이가 테르시안이라는 이름을 그다지 내키지 않아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러면, 지브롤터 제국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

     샤를로테 부인이 씩 웃으며 몸을 붙였다.

     “…서방님께서 제게 예전에 했던 말씀을 그대로 저지르려고 하던 것 같던데요?”

     우뚝.

     음악은 그대로 흘러가고 있으나, 크림슨 후작의 움직임이 멈췄다.

     “저기….”

     “서방님이라. 좋소. 앞으로 나를 서방님이라고 부르시오.”

     “…….”

     “후작이 된 것보다 더 기쁜 날이군. 잠시만.”

     크림슨 후작이 마도구의 소리를 멈춘 뒤, 바깥으로 통하는 마도구-내선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예, 말콤입니다. 필요하신 거라도?]

     “딸들을 재우게. 오늘밤, 누구도 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도록.”

     [……알겠습니다. 부디, 무운을.]

     뚝.

     수화기를 내려놓은 크림슨은 곧장 서랍을 열더니, 상당히 굵은 백은색의 향초 심지에 불을 붙였다.

     “부인.”

     “…어머나.”

     크림슨 후작은 서랍에서 또다른 물건, 캐롤라인을 세 병 꺼내들었다.

     “오늘 밤은 재우지 않겠소.”

     “…또 제 품에서 잠드시는 게 아니고요?”

     “내전이 끝나면, 그레이에게 선물을 준다고 그랬지.”

     크림슨은 단숨에 캐롤라인을 입 속에 털어넣었다.

     “이번에야말로, 그레이에게 남동생을ㅡ”

     * * *

     

     지브롤터 백작령과 바르셀 후작령의 접점은 두 개의 원이 아슬아슬하게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의 지브롤터 백작령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딘가 ‘8’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브롤터는 제국과 맞닿아있고, 바르셀 지구는 왕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덕분에 지브롤터 백작령은 바르셀을 온전히 흡수하게 되면서, 영지상으로는 왕도와 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별 거 없다.

     비록 간신 제로스 바르셀 때문에 내전에서 잘못된 편을 들어버렸으나, 멋지게 영지전에서 승리한 지브롤터를 위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주는 화해의 선물이다.

     선물이라기보다는 처치 곤란한 짐더미를 던져놓은 느낌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쟁 과정에서 후작성’만’ 초토화된 만큼 시설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

     폐허나 마찬가지인 이 땅.

     “이름부터 바꿀까.”

     바르셀 후작령이 아닌, 지브롤터의 새로운 땅이라는 의미에서.

     “…….”

     과거.

     제국이 이 바르셀 영지에 어떤 이름을 붙였더라.

     기억났다.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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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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