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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8

    <228 – 비밀(아님)>

     

    아카디아는 오크노디의 도움으로 구원받았다.

    세비체 가문은 몰락직전에 목숨을 건졌다.

    그녀를 향한 세간의 냉대 또한 혼란스러워졌다.

    가문이 무너지지 않은 지금.

    아카디아 공녀를 지금까지처럼 무시해도 되는가?

    그녀가 화려하게 부활해버리면 어쩌지?

    두려움을 느끼는 많은 이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과 달리, 아카디아는 배신자들의 처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저는 오크노디의 손에 피를 묻혀서 살아남았죠.’

     

    이것은 빚이다.

    가문은 망하고, 아카데미에서는 쫓겨나고.

    나아가 가문의 재산을 탐하는 이들에게 쫓기고 붙잡혀 노예가 되거나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위기로부터 벗어난 인생을 저당 잡힌 수준의 빚.

    그렇다면 그녀 역시 동등한 빚을 갚아야 한다.

    오크노디를 둘러싼 미심쩍은 어둠을 ‘재단의 일이니까’, ‘그 아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라며 외면하려 들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마주보고 파헤친다.

    그리고 그녀를 음지의 어둠으로부터 양지의 빛으로 착실하게 끌어올려준다.

    이것이 빚을 갚을 유일한 방법이다.

    그녀가 그렇게 규정한 시점에서 빚을 갚을 방법은 이것으로 정해졌다.

     

    “지젤. 염치 불구하고 오크노디를 돕기 위해 정보를 내어주길 바라도 되나요?”

    “마음의 빚이 걸리시나보군요.”

     

    역시 사람의 마음에 민감한 자다.

    아카디아의 복잡한 심경을 긴 이야기를 통해 헤아렸던 카닐리언 트러플과 달리, 지젤은 그 한 마디로 모든 심경을 꿰뚫어보았다.

    전후사정을 알고 있음을 감안해도 정말 비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공녀님은 아직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세비체 공작가문은 공작위를 회수 당하였고 백작령으로 격하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가문의 외환은 그쳤어요. 가문 또한 노예장부를 지녔다고 추정되는 제게 함부로 해가 될 짓은 하지 못하죠.”

    “하지만 공녀님은 파벌보스로서의 위치를 되찾지 않으셨습니다. 추종자들에게 실망하여 그 자리를 내려놓았죠. 공녀님을 적으로 돌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더욱 공녀님을 적대하며 성가시게 굴어올 겁니다.”

    “그 정도는 어렵지도 않아요. 파벌보스 노릇을 하면서 제가 입수한 정보와 아이들의 관계를 이용하면 적대파벌 따위, 수십 조각으로 쪼갤 수 있어요.”

     

    아카디아는 정치력이 뛰어나다.

    사람이 좋고 배려심이 많기는 하지만 ‘착함’이라는 약해빠진 성격을 드높은 작위와 함께 유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인간 자체의 강함을 의미한다.

    영리하지 못한 자가 착하게 살고자 한다면 후견인과 자신, 둘 중 하나는 남보다 비상한 권력을 다룰 줄 알아야하니까.

    지젤은 그런 착한 사람이 좋았다.

    악해야 마땅한 자리에서 선함을 잃지 않는 강자는 빛이 나기 마련이니까.

    그 빛이 비록 오크노디의 것만은 못할지언정 아카디아 또한 동업자로 삼을 정도로는 훌륭한 사람이었기에 지젤은 그녀를 존경했다.

    그런 존경의 마음을 담아 지젤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알겠습니다. 공녀님의 고집을 꺾으려 들었다가는 제 허리가 먼저 접히겠군요.”

    “이제는 공작령의 여식도 아닌데 공녀님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두세요.”

    “백작영애라 불러드릴까요?”

    “이름이면 충분해요.”

    “분부대로 따르지요, 아카디아님.”

     

    가벼운 너스레와 웃음을 주고받는 것도 잠시.

    지젤은 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 찢었다.

     

    “받으십시오.”

    “이건…?”

    “오크노디가 지난번 임무에 호출했던 재단의 하부조직 <삐에로가면단>에 대해 조사한 결과입니다.”

    “…저는 디가 아카데미의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에게 위험한 임무를 받았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그곳부터 파헤쳐볼 작정이었는데요.”

    “저를 믿으십시오. 그쪽은 도적길드가 단단히 정보망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지금의 아카디아님의 정보력으로는 금방 꼬리가 밟힐 겁니다.”

    “정말 방법이 없나요?”

    “도적길드는 마계에서도 용사파티의 정보지원을 맡았던 만큼 실력은 압도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암흑가의 정보원들로도 그들과 충돌했다간 큰 손실을 보게 될 겁니다.”

     

    하물며 백작령으로 줄어든 세비체 가문의 힘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

     

    “알았어요.”

     

    곱게 단념하고 수첩을 살펴보는 아카디아.

    그녀는 지젤의 수첩페이지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

    진지하게 내용을 살펴본 그녀가 쪽지를 들고 되물었다.

     

    “이 기록은 뭐죠?”

    “보다시피 삐에로가면단이 전국순회를 한 동선과 그곳에서 멸망한 마을을 기록한 겁니다.”

    “…이중에 오크노디의 고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보다 더한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한 것이요?”

    “오크노디의 손으로 멸망시킨 마을 말입니다.”

     

    공녀의 손은 놀랍도록 빠르게 허벅지에 걸린 건홀더에서 총을 빼내 쥐었다.

     

    “…당신. 어떻게 오크노디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그 아이가 그들에게 납치당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 끔찍한 말을!”

    “왜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이를 납치하여 살인병기로 기른 조직입니다. 그들이 오크노디의 ‘충성심’을 시험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겁니까?”

    “!!”

    “그만두십시오. 아카디아님은 이런 일을 파헤치기에는 너무 귀한 몸입니다. 제 수중에 들어오는 정보가 어디까지 지저분한 정보를 담고 있는지 알게 되거든 장님과 귀머거리가 되고 싶을 겁니다.”

     

    곱게 자란 도련님아가씨라고 업신여김 하는 태도가 아니다.

    지젤은 진심으로 그녀가 이보다 더한 정보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웃기지마요. 목숨을 빚진 입장에서 어둠을 들춰보기 두렵다고 돌아설 정도로 저는 겁쟁이가 아니에요. 세비체의 이름은 용납할지 몰라도 아카디아의 이름은 불의 앞에 눈감는 짓을 용납할 수 없어요.”

    “괜한 소리로 부추긴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는군요. 너무 깊게 빠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의 저희로서는 건들 수 있는 선이 한정되어 있으니.”

     

    아카디아가 생각보다 멘탈이 튼튼한 것을 확인하자 지젤은 또 한 장의 수첩페이지를 찢었다.

     

    “이 학생을 찾아가십시오.”

    “자쿠. 1학년 하급반 학생. 마나감응시험에서 암흑마나폭주를 일으켰던 학생. 이 학생이 삐에로가면단의 참사를 추적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그가 누구인데 그런 정보에 접근이 가능하죠?”

    “그는 재단의 장학생입니다. 오크노디와 마찬가지로 손을 더럽혔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기도 하죠.”

    “!!”

    “대신 접근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셔야 할 겁니다. 섣불리 접근했다간 재단에서 입막음을 하거나 본인이 돌발행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니.”

    “걱정 말아요. 모처럼 손에 넣은 첫 단추부터 잃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아카디아는 걱정 말라며 자신 있게 돌아섰다.

     

     

    * *

     

     

    누군가에 대해 알려면 그가 평소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어느 시설을 자주 이용하는지 동선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동선을 알아차린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친분을 나누는 단계에 돌입할 필요가 있다.

     

    “실례합니다아. 혹시 자쿠 여기 있어요?”

    “자쿠요? 그놈이라면 훈련실에 있을 겁니다.”

    “좋겠다… 자쿠녀석, 또 여학생의 관심을 받다니.”

     

    하급반 학생들은 부러움과 시샘의 눈으로 훈련실을 막 나오는 자쿠를 째려보았다.

    수건으로 곱슬머리를 쓸어 올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 자쿠.

    주변을 지나가던 여학생 몇 명이 힐끔힐끔 그 모습을 훔쳐보거나 같이 지나가며 서로 엄지를 드는 모습에 남학생들의 시선은 한층 더 따가워졌다.

     

    “저기요!”

    “…뭐냐.”

    “자쿠 맞으시죠?”

    “따라와라. 저놈들 눈총을 받으며 대화를 나누다간 화살비를 맞는 것처럼 몸에 구멍이 뚫리겠어.”

     

    자쿠는 훈련동 1층의 휴식공간에서 적당히 한적한 야외테라스로 나왔다.

    바람은 선선하고 경치는 좋지만 간혹 2학년이 출현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남의 시선을 피하며 대화를 나누기 좋은 명당이었다.

     

    “용건이 뭐냐.”

    “실은 다른 분의 부탁을 받고 왔거든요.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안 된다.”

    “이잉. 하나만요.”

    “…그럼 하나만이다.”

     

    이상한 조명대를 들고 다니는 여학생.

    귀염상에 애교도 많은 성격의 티토소가는 자쿠의 마음의 빗장을 간단히 열었다.

     

    “일단 이 편지를 받아주세요!”

     

    티토소가가 전달한 편지의 발신인은 당연히 아카디아였다.

    편지를 뜯어 내용을 살펴본 자쿠는 자신이 아주 귀찮고도 위험한 일에 엮였음을 깨달았다.

     

    “후우.”

     

    복잡한 심사에 한숨을 내쉬며 곱슬머리를 긁적거리던 그의 시선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티토소가가 보였다.

     

    “용건은 끝나지 않았나?”

    “그 편지요. 연애편지 맞죠?”

    “…내용을 모르나?”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받았을 뿐인걸요. 그래도 공녀님이 남학생한테 편지를 쓰고 전해주길 부탁하는 일은 처음으로 겪어봤어요.”

    “연애편지는 아니다. 괜한 주책이야.”

    “힝. 아깝다.”

     

    잠시 울상을 짓던 티토소가가 이내 활짝 웃으며 두손을 모아 귀엽게 말했다.

     

    “아참. 편지를 받고나면 이 질문을 꼭 하라고 하셨는데 들어주세요.”

    “…또 뭔데.”

    “오크노디에게 진 빚을 갚을 기회가 있다면 도와줄 의향이 있으세요?”

     

    참 꺼림칙한 상대다.

    편지에는 네 정체를 알고 있다는 말을 쓰고.

    순진한 애를 보내다가 나쁜 목적은 아니라는 것처럼 사람 마음을 뒤흔들고.

    그래도 한 시름 놓였다.

    적어도 자신의 정체를 나쁜 쪽으로 이용하려는 이에게 들킨 것은 아니니까.

     

    “물론이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중간고사를 치르기도 전에 아카데미에서 쫓겨났겠지.”

    “와! 잘됐다. 그럼 저랑 같이 공녀님 만나러 가요!”

    “그건 싫다.”

    “힝. 왜요?”

    “그걸 말이라고 묻냐?”

     

    티토소가.

    귀엽지만 참 멍청한 여자다.

     

    “오크노디를 데려온 자리에서 오크노디를 도울 작전을 논의하러 같이 가자니, 무슨 고문이냐 이건.”

     

    이게 문제였다.

    편지의 발신인은 자기 정체를 숨기려고 애썼지만 정작 이를 건넨 당사자는 꼬박꼬박 ‘공녀님이 쓴 편지’라며 출처를 다 드러내질 않나.

    오크노디를 도울 생각이 있다면 따라오라는 자리에 데려오면 안 될 사람 1위를 데려오질 않나.

    날 놀리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지경이다.

     

    “앗, 전 못 본 척 하고 계속 편하게 대화 나누세요!”

    “…되겠냐?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냐.”

     

    자쿠의 항의에 티토소가가 무해한 소동물처럼 수줍게 웃음을 지었다.

     

    “여자 혼자 남자한테 편지를 건네러 가기는 왠지 부끄러웠거든요! 그래서 제일 친한 친구인 오크노디랑 같이 왔어요.”

     

    정말 순진담백한 이유였다.

     

     

    * *

     

     

    “…그래서 자쿠랑 오크노디를 다 데리고 왔다고요?”

    “네! 저 잘했죠?”

     

    티토소가의 천진한 표정에 아카디아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둠의 메이드 티토소가의 진짜 주인님은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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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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