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9

       로즈마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력초 한 박스. 스크롤 수백 장.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훈련용 인형들.

       

       심지어 그 귀하디귀하다는 마력수 몇 병까지.

       

       “아주 대잔치구나.”

       

       훈련하는 데 뭐 이리 많은 도구가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벤치에 앉아있던 로즈마리는 다리를 까딱거리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마도사들이 스크롤을 꽉 말아쥔다. 로즈마리는 그들에게 눈짓을 건네며 쿡쿡거리길 반복했다.

       

       “하여간 쫄보 새끼들.”

       

       저 마도사들이 들고 있는 것은 백야 스크롤이다.

       

       그녀를 한때 사로(死路)로 몰아넣었던 마법. 몇 발이라도 맞는다면 로즈마리는 금세 무력화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까짓거, 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사장에게 당했던 이유는 급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로즈마리는 로베스피에르 일행이 궁으로 쳐들어올 거라는 사실만 알았지, 저런 어마무시한 병기를 가져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젠 아니다. 웬만한 건 피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을 전부 초토화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틸레트 대운동장 앞. 로즈마리는 스태프를 휘두르고 있는 사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부웅! 부우웅!

       

       곧장 쏘아낸 마법을 표적에 명중시키는 버멜. 그 모습을 본 행인들이 한 번씩 감탄하며 지나갔다.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이다. 한 달 새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원.

       

       로즈마리가 쿡쿡 웃으며 생각하던 사이. 보라색 머리카락을 한 키 작은 학생 하나가 팝콘을 들고 나타났다.

       

       “야, 쟤 몇시간째 저러고 있는 거냐?”

       “난들 알아.”

       

       곁에 앉은 소녀의 이름은 ‘프레이 폰 파스트렌드’. 자신의 상관 중 하나인 요르문간드가 비호하는 요호족이다.

       

       예전과 달리 프레이는 커다란 고깔모자를 벗고 있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여우귀가 쫑긋거렸다. 작고 아담해서 한 번쯤 만져보고 싶게 생기긴 했다.

       

       그래도.

       

       “수인이라.”

       

       정작 내키진 않았다. 아직 로즈마리의 사고방식은 차별이 만연하던 구시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최대한의 배려였다.

       

       “팝콘이랑 음료수 사 왔어. 먹을래?”

       “저 녀석한테나 가져다줘.”

       “그러면 너는 뭘 먹어?”

       “베릴륨 밀크티에 샷 추가해서.”

       

       프레이는 헤에, 하는 소리를 내며 귀를 까딱거렸다.

       

       “그런데 너, 나 안 무섭냐?”

       “무서워? 왜?”

       “난 마수야. 그것도 절멸급. 마음만 먹으면 여길 전부 불태워버릴 수 있어.”

       “하지만 안 그럴 거잖아.”

       “…….”

       “내 말 틀려?”

       

       로즈마리는 저도 모르게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나 적개심이 없을 줄이야.

       

       “널 무서워하면 에테르는 무슨 낯짝으로 보는데?”

       “언니가 너한테 엄청나게 잘해 주었나 봐?”

       “내가 수인인 걸 알고도 아무 말 안 했어. 게다가 있는 그대로 대해줬어. 그러니까 착한 친구야.”

       “그 친구가 마수라 하더라도?”

       “그게 뭐 어쨌다고.”

       

       쪼옥, 쪽. 프레이는 타피오카 펄을 열심히 흡입하며 한껏 풀어진 표정을 지었다.

       

       “흐아…. 아무튼, 나쁜 짓을 해야 마수지. 착한 사람한테 마수라고 부르는 건 실례야. 세상에 에테르보다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차라리 그런 사람들을 나는 괴물이라고 부를 거야. 특히 종족 차별하는 녀석들!”

       “인간들이 마수? 그러면 우린 뭐라고 부르는데?”

       “어……. 금안족?”

       “그거 말고. 다른 표현 없어?”

       “으음, 기계족? 몸이 기계니까…. 잘 모르겠어!”

       

       그럼 그렇지.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진중한 대화를 바랐던 자신이 멍청했다.

       

       한담을 나누는 동안 버멜은 운동장을 스무 바퀴 돌았다. 그러고는 다시 스태프를 꺼내 휘두르길 반복했다.

       

       단순하게 찌르고 휘두르는 동작의 연속.

       

       그러나 예사 수준이 아니다.

       

       스태프 끝날을 따라 움직이는 기하학적인 궤적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투로였다.

       

       로즈마리조차 처음 보는 체술을, 버멜은 능숙하게 사용하며 전신을 고루 단련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 적당한 시각에 맞춰 발현되는 마법. 마력량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모든 마법을 쏘는 족족 더미에 맞췄다. 기초체력을 다짐과 동시에 집중력을 기를 수 있는 훈련법이었다.

       

       “꽤 하네.”

       “그렇지? 저렇게 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어. 이젠 플레어 없이도 재앙급을 잡을 수 있다나 봐.”

       “흐음.”

       

       확실히 몸이 날렵하긴 하다. 근육도 탄탄하게 붙어 있는 모양이고.

       

       “정령 하나 없는 몸으로 저 정도라니.”

       

       로즈마리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대로 두면 언젠가 더욱더 강해진다. 나중엔 자신을 이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위기감이 몰려왔다.

       

       제거할 수 있다면 당장 제거하는 것이 상책.

       

       그러나 로즈마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언니 대신 저 엘프를 믿어 보기로 결정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이 결정을 쉽게 철회할 생각도 없었다.

       

       나중엔 적이 되더라도, 지금은 동료로서 최선을 다해 도와야겠지.

       

       “대단하지? 나도 솔직히 감탄했다 이 말씀이야!”

       

       친구의 성장이 자랑스러운 듯 엣헴거리는 프레이. 로즈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나쁘진 않네. 부족한 점이 있긴 하지만.”

       

       로즈마리는 열심히 수련 중인 버멜에게 다가갔다.

       

       경비를 서는 마도사들이 긴장하며 스크롤을 펼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을 휘휘 내저으며 딱히 해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로즈마리는 스포츠 드링크를 건네며 화두를 던졌다.

       

       “엘프 꼬맹이, 열심히 하는데?”

       “…아직 부족해.”

       “체술을 하는 걸 보니 언니와 직접 전투도 생각하고 있구나. 좋은 자세야.”

       “그것도 있고, 지금 아니면 수련할 수가 없어. 못해도 일리야드로 떠날 때까진 마력을 최대치로 늘려 놓아야 해.”

       

       버멜은 이온 음료를 마시다 말고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바닥에 굴러다니던 마력수 병을 주웠다.

       

       마력수. 사대정령의 힘이 모두 담긴 비싼 물건.

       

       마력을 단번에 회복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몇 시간 동안 모든 계통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물약이다.

       

       그런 물약을, 버멜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털어 넣었다.

       

       “더 강해지고 싶니?”

       “당연하지.”

       “그럼…….”

       

       로즈마리는 킥킥대며 입에 마력초를 물었다.

       

       “나와 한 번 붙어보자.”

       

       

       **

       

       

       그 말을 수락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버멜은 새삼스레 느꼈다. 아직도 자신은 부족하다는 것을.

       

       “커, 헉……!”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코와 입에 모래가 들어간 건지 숨쉬기가 편하지 않았다. 피가 고였나? 입맛도 짭짤하다.

       

       “허억, 허억…….”

       “엄살 부리긴. 강도 조절은 했으니까 죽을 만큼 아프진 않을 텐데.”

       

       로즈마리는 바이올린 현으로 손톱을 가다듬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버멜은 숨을 고르자마자 일어났다. 꽈악. 스태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심장을 이루는 근육들이 원양어선에 막 올라탄 청새치처럼 펄떡거렸다.

       

       “자, 다시 자세 잡아.”

       

       아직 대련은 끝나지 않았다.

       

       “저거 괜찮은 거 맞아요?”

       “이러다가 호르데 군에게 큰일이라도 난다면…….”

       

       경비를 서는 마도사들이 걱정하며 스크롤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아무도 격발할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방금 건 나름 괜찮았어. 하지만 마지막 타이밍에 마법을 허투루 쓰면 안 돼. 지금처럼 상대방이 취한 동작이 페인트였으면 역으로 당하는 거야. 알겠어?”

       

       로즈마리가 적당히 봐주고 있던 까닭이다.

       

       마법을 난사하지도 않았고, 발을 맞추어 조언도 해 준다. 버멜이 쓰러지거나 할 때면 농담을 던지며 쉴 시간도 주었다.

       

       어딜 보더라도 지도 편달이었다. 경비들이 로즈마리를 해할 명분은 없었다.

       

       “좋아, 자세 잡고 다시.”

       “커헉!”

       “횡베기는 낮게 말고 중간 위치로. 상대방이 점프해서 피하면 어떡할 건데? 다시!”

       “크흐윽…!”

       “방금 가르쳐 준 투로는 잊었어? 참격을 날릴 땐 물 흐르듯이 마법 쓰란 말이야. 다시!”

       “카학……!”

       “이번 건 나쁘지 않았네. 단순히 근력이 부족했어. 다시.”

       

       아니, 명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로즈마리는 버멜을 두 시간이 넘도록 두들겼다. 버멜은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연주했던 장구가 된 기분이었다.

       

       “후우, 이제야 속이 좀 편하네.”

       

       해 질 녘이 될 때까지 버멜을 휘모리 장단으로 연주하던 로즈마리는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닦아냈다.

       

       “너, 방금 뭐라고…….”

       “애송이 주제에 마왕군 유격대 총사령관을 상대하고도 안 죽은 걸 감사하게 여기라고. 어디 가서 이런 과외는 못 받으니까 말이야. 꺄하하하!”

       

       온몸이 제발 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버멜은 다시 한번 일어섰다. 꿋꿋한 자세였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보통 이 정도로 두들겨 맞으면 못 일어나는데.”

       “단련, 했으니까.”

       “흐음.”

       “에테르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 정도쯤은 싸게 먹히는 거야….”

       “그렇단 말이지.”

       

       로즈마리는 처음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 짓던 비릿한 웃음과는 다른 미소였다.

       

       이 엘프의 눈빛.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 생각한 로즈마리는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그래, 다시.”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