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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9

       앨리스와 클레어 두 사람과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지만,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척 봐도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이는 샤를로트나,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가득에, 상처는 치유되었지만 꽁꽁 묶인 기사단 생존자들이나 팔이 잘린 추기경 등, 한 번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샤를로트의 심기가 불편한 것도 이해는 갔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하지, 이번 사건으로 일어날 국제적인 혼란을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샤를로트는 아직 벨부르의 국왕은 아니었다. 하지만 따지자면 샤를로트는 앨리스보다는 훨씬 ‘왕좌’에 가까운 인물이기도 했다. 황제는 아직 후계 구도를 확정 지어놓지 않았지만, 벨부르 국왕은 샤를로트를 확실하게 자기 후계자로 내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기가 불편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가?

        

       클레어에게 황제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면 내가 추측한 ‘뒤쪽의 이야기’까지 전부 꺼내야 한다. 그 이야기만 해도 몇 시간은 토론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내용이다.

        

       게다가 클레어는 나한테 ‘팬그리폰이 아니라 그레이스로 있겠다’라고 했다. 게다가 그건 클레어 혼자 다짜고짜 주장한 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선택지를 주었고, 클레어가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클레어의 그 말을 존중해줄 의무가 있다. 안 그러면 뒤통수 때리기밖에 더 되겠는가.

        

       시간을 두고 레오한테는 귀띔을 해주는 것이 좋겠지만.

        

       “그래서.”

        

       하지만 그런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샤를로트 입장에서는,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여러모로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지보’의 조각을 보고 샤를로트가 물었다.

        

       “이건…….”

        

       그러게. 이거 진짜 뭘까.

        

       나도 ‘진짜 용도’는 모른다. 그냥 게임 내내 ‘여신의 힘에 관련된 물건’이라고만 나오고, 이걸 모으려고 돌아다니는 인간들이 나오고, 아마 황제도 최종적으로는 이걸 원하고 있었던 것 같기는 했지만…… 정작 하나로 모으고 나면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시리즈의 끝까지 플레이해 봤다면 나도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알았겠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그 후속작을 즐기기 전에 이 세상에 끌려들어 오고 말았다.

        

       나도 안타깝다. 집 의자에 느긋하게 늘어져서 게임패드나 만지고 있었으면 훨씬 마음이 편했을 텐데.

        

       여기 와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과 만난 것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좋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마음은 더 불편했다. 모니터 너머에서 캐릭터들의 움직임에 답답해하고, 욕도 좀 하고, 뒷담화도 까던 때와는 다르게,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이 이 아이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니까.

        

       “추측하기로는, 여신의 힘과 관련이 된 물건일 겁니다.”

        

       그래도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추측해보자면 그랬다.

        

       “아마 어떤 장치의 부품이겠죠. 이 조각을 모아 제대로 된 하나의 부품으로 만들어 적절한 곳에서 사용하면, 분명 여신의 힘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목소리에 저 멀리 앉아있던 추기경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걸 알고 있으니 법국도 움직였던 거겠지.

        

       “그런 중요한 물건이 왜 법국이 아니라 벨부르에…….”

        

       “벨부르뿐만이 아니야.”

        

       샤를로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보고 앨리스가 말했다.

        

       “제국에도 있었으니까. 오래전에 이 장치를 두고 있었던 사건의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 조각들은 대륙 이곳저곳에 퍼져있는 모양이야.”

        

       “그것도 그 조각 중의 하나라는 뜻이군요.”

        

       샤를로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조각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이것 자체로도 이미 상당 부분의 조각을 모아 만들어낸 모양이니까요.”

        

       실제로 내가 직접 봤던 ‘지보’에 비해서는 꽤 컸다. 보이는 반응도 달랐고. 은은하게 빛을 뿜는, 깨진 톱니바퀴의 일부. 법국도 진짜 있는 힘을 다해서 모았다는 뜻이리라.

        

       “이걸 여기 숨긴 이유는, 아마 황제가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벨부르는 제국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위협적인 병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전면전을 벌이면 제국의 압승이다. 어쩌면 그 전쟁으로 제국에 새겨진 상처도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법국’의 병력은 그 벨부르 왕국의 병력에 비해서도 한 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강제로라도 협력할 상대로 벨부르를 선택하고, 벨부르가 제국을 막아내는 사이에 얼른 도망가는 것을 택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현대화된 곳은 아니지만, 왕도 루테티아는 역사가 깊은 도시다. 당연히 복잡한 골목이 여기저기로 퍼져있고, 그 아래 있는 이 유적은 루테티아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무언가 숨겨두었다가 유사시에 들고 튀기 좋은 곳이 아닌가? 게다가 유적 아래를 자기네 ‘병력’으로 가득 채워놨다면.

        

       “…….”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샤를로트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렇게 한동안 서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든 샤를로트의 시선은 꽤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으로…… 실비아, 당신은 어떻게 이 사실들을 전부 알고 있었나요?”

        

       “…….”

        

       이건 내 ‘정체’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앨리스나 클레어, 레오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거랑은 또 다른 이야기다.

        

       나는 외부에서 이 세계관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대충이라도 보고 들어왔다. 이 유적도 ‘설정상의 전체’를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스토리 상 핵심인 부분’은 돌아다녀 보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반복적으로.

        

       그것도 미리 와봤다고 한다면 미리 와본 것이겠지만—

        

       “그저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요?”

        

       샤를로트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저는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에는 고아원에서 지냈고, 후에 황제 폐하가 친히 입양하여 딸로 길러낸 존재이니까요. 그리고 그 ‘딸’의 기준은 아마 저의 능력이었을 겁니다.”

        

       그 황당한 표정을 밀어내듯 나는 얼른 내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건 효과가 있었다. 동정받을만한 과거는 언제나 상대방의 적의나 의심을 누그러뜨리기 좋은 이야기다. 일반적으로는 꺼내기 싫은 비밀 같은 거니까.

        

       그런 이야기를 꺼낸 만큼 진솔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정작 저는 제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이전에는 ‘실비아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모양입니다만, 진짜 부모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고아원장은 제가 ‘어느 사이에’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

        

       내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내 말을 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어디 출신인지 대충 알고 있던 앨리스나 클레어마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내가 나의 과거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네, 저는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남들이 알 수 없을 만한 정보를 처음부터 머릿속에 넣어두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은 빼놓되, 사실만을 말했다. ‘게임을 해봐서’라는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어쩌다, 왜 이 세상에 와 있게 되었는가’는 정말 나도 모르는 이야기다. 설령 내 무표정을 꿰뚫어 보는 앨리스가 있어도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다. 실제로 거짓말은 안하고 있으니까.

        

       “물론 저라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유적의 위치는 알고 있었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떠올릴 수 있었지만, 이 유적 안에 진정으로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확인해보고 싶었다는 거군요.”

        

       샤를로트의 표정은 여전히 애매하고 이상한 사람을 보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전의 의심 가득한 시선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자신의 정체는 당신 자신도 모르고요.”

        

       “알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샤를로트는 입을 꾹 다문 채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이래서야 더 물어본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듯, 샤를로트는 쥐어짜 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여신의 힘과 관련이 있다, 라고 가정해도 될까요.”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해도 그래.

        

       그거 외에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어.

        

       이야기를 마친 나는 시선을 돌려서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둘러보았다. 추기경은 전율이라도 느낀 표정이었고, 기사들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반면에 내 친구들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채였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

        

       아니다. 딱 한 명, 조금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이가 있었다.

        

       소피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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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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