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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9

     

    “마법 승부는 언제나 흥미롭지요. 모든 마법사는 특기 계열이 다르기에, 두 마법이 충돌했을 때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신비를 마주할 유일한 순간입니다.”

     

    리치가 들뜬 목소리로 지팡이 끝에서 마기를 흘려보내 진을 여럿 구축했다.

     

    아셀라가 술식의 형태를 보고 그게 무엇인지 읽어냈다.

     

    “오만하구나.”

     

    “오만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한 명의 마법사로서 탐구 정신을 불태우고 있습니다만.”

     

    대응하여 진을 펼치는 아셀라.

     

    곧 파팟! 리치의 진에서 자그마한 마탄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쐐애액!

    아셀라의 진에서도 대기 중의 수분을 즉시 응결시켜 얼음창이 쏘아진다. 콰앙! 공중에서 충돌하며 흩뿌려진다.

     

    “네놈은 분명 본녀에게 말했다. 본녀를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마법사로 인정하였다고.”

     

    “정확합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본녀가 여태 본 어느 무뢰한보다도 오만한 발상이야. 정녕 그리 여긴다면 어째서 네놈은 지금도 일말의 공포심을 보이지 않는가?”

     

    “기대감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렸듯 저는 당신을 제 수하로 쓸 생각에 흥분했기에.”

     

    “진정한 의미로 본녀를 경외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리치의 진은 마탄 생성, 연속 발사를 조합한 오리지널 술식. 비유하자면 개틀링건이다.

     

    아셀라는 단숨에 그 원리를 파악했다. 즉시 그의 술식을 복제해 상쇄하도록 세팅했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을 겨루고, 경지에 다다른 마력 우위로 싸우고, 설령 모두 압도했다 한들 지구력을 받쳐줄 마나와 마기가 불충분하면 이길 수 없다.

     

    패자에게는 죽음뿐.

     

    반드시 비밀로 해야 할 자신의 고위계 마법을 본 마법사를 살려 돌려보낼 마법사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마법 승부.

     

    “말해보아라, 리치여. 그대에게는 여태 진심으로 경외를 품은 마법사가 있었는가?”

     

    “경외라.”

     

    리치가 잠시 생각에 빠지고는, 얇은 손가락 끝으로 턱뼈를 어루만졌다.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지금 마계를 통치하고 계시지요.”

     

    아셀라가 리치의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당신도 그분을 목도한다면 그 경이로운 마법에 고개를 숙이게 될…”

     

    “보아라. 너는 그저 겁쟁이다.”

     

    “그렇습니까.”

     

    “어째서 그는 수하로 삼지 않았는가? 그리도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자라면 말이야. 더더욱 네 힘으로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분의 마법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이 어찌 들어줄 수 없는 패배자의 가난한 발상이로고.”

     

    아셀라가 딱하다는 듯 리치를 가엾게 바라보았다. 리치는 존재하지도 않는 목젖이 침을 꼴딱 삼키는 감각을 받았다.

     

    “도발하신들 소용없습니다. 당신같이 자만에 빠진 젊은 마법사는 많이 봐왔지요. 6위계, 물론 상당한 경지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절대자라는 뜻도 아닙니다.”

     

    마탄과 얼음창이 난무하는 가운데로 리치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허리를 숙이고는 슥, 바닥에 손바닥을 대었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황금색 술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저는 당신을 저보다 강하다고 인정했지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는 공간 마법에도, 빙결 마법에도 당신 만큼이나 조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확실히 당신이 강자라고 칭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단 말이죠.”

     

    ―화아악!

     

    리치의 손끝에서 검은 마기가 꿈틀거리며 대량으로 방출되었다.

     

    그것이 아셀라의 진을 침식해간다. 둘의 결투장을 만든 이 공간마법의 진을 오염시킨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자만이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다’. 배수의 진. 혈기왕성한 당신이 생각할 법한 술식입니다. 하지만.”

     

    스르륵.

    진 외곽의 문자를 검은 마족의 언어가 덧씌워간다.

     

    “이 진들이 그려진 반초입방체와 사영평면의 모양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술식의 내용을 바꾸는 건 간단하지요. 이제 이 공간에서 ‘살아있는 자는 나갈 수 없다’고 되었습니다.”

     

    아셀라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저를 쓰러트려도 당신은 여기에서 말라 비틀어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겠군요. 자신이 만든 궁극의 마법 속에서 절망 만을 느끼며, 고독하게.”

     

    “…하.”

     

    “하지만 저는 본디 죽어있는 생명. 언데드라는 종족입니다. 스스로를 무생물화하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지요. 물론.”

     

    리치가 즐거워하며 다음 공격마법을 발동했다.

     

    “당신을 하수인으로 만든 후겠습니다만.”

     

    매서운 눈으로 리치를 노려보는 아셀라. 얼음창이 보다 날카롭게 리치를 노린다. 여유롭게 쳐내는 리치.

     

    “어떻게 6위계나 되는 진을 덮어씌웠는지 궁금하신 표정이군요. 어렵지 않습니다. 마나와 마기는 본래 같은 것이라고는 알고 계시겠지요.”

     

    리치의 몸에서 더욱 농도 짙은 마기가 뿜어지며 마법을 강화한다.

     

    “마나는 생명이 살아있을 때 발생하고, 마기는 죽음에 가까워질 때 발생하는 점만 차이가 있지요. 마나로 적은 술식은 칠판 위의 분필로 적은 글자와 마찬가지. 지우고 수정하면 그만입니다.”

     

    ―콰쾅! 두 경지에 이른 마법사의 마법이 충돌하며 폭발이 인다. 수준 낮은 생물이 근처에서 휘말렸다면 삽시간에 소멸할 위력이다.

     

    “물론 다른 마법사의 진에 개입하는 건 어지간한 위계의 차이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마법의 절대적인 위치에서는 제가 당신보다 위에 있다는 의미겠지요. 상대가 나빴을 뿐입니다. 당신은 분명 강한 마법사입니다.”

     

    리치의 진이 여섯 겹으로 겹쳐진다.

     

    “다음부터 주문에 술식을 적어넣을 때 사용하는 마나에는 이중 보호 주문을 거시지요. 이미 늦었습니다만.”

     

    ―화아악!

     

    리치의 지팡이에서 검은 마기가 녹색으로 산화하며 아셀라를 향해 쏘아졌다.

     

    생기 흡수. 상대의 마나를 말려 죽이는 위험한 공격마법이다. 어지간한 고위계 보호막으로도 막을 수 없는 위력이다. 성녀가 이 자리에 있었다 한들 저것을 방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6위계에 도달한 이는 영웅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 필살의 공격을 막으려면 같은 등급의 공격으로 상쇄하거나 더 높은 위계로 뚫어낼 수밖에.

     

     

    아셀라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죽음을 향해 지루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성대도 없는 주제에 말이 너무 많구나.”

     

    슥, 덤덤하게 지팡이를 내밀었다.

     

    ―카가가가각!!

     

    그녀의 지팡이에 생기 흡수의 녹색 빛이 충돌한다. 동시에 리치로서는 믿을 수 없는 현상이 발생했다.

     

    자신의 마법이 금색으로 물들며 효과가 사라지고 있었다.

     

    “무슨…?”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풍압에 아셀라의 머리가 휘날린다.

     

    “높은 경지의 마법사가, 보다 낮은 자의 진을 물들이는 건 쉽다고.”

     

    아셀라의 말대로였다.

     

    리치가 쏘아낸 생기 흡수. 그 마법진 외곽에 마기로 적어놓은 복잡한 문자열이 치지직 타오른다.

     

    빈자리는 황금색의 마나가 덧씌워간다.

     

    “이럴 리가…!”

     

    리치가 위협을 느꼈다.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화아악! 전쟁에 쓸 군대 소환을 위해 지금껏 아껴오던 모든 마기를 이 자리에서 쓸 기세로 전부 뿜어낸다.

     

    급히 진을 한 개 더 그려내 배치하는 리치. 6위계, 생기흡수와 조합하여 한 단계 위계를 올려낸다.

     

    ‘생기 흡수’는 7위계, 궁극의 공격마법 ‘즉사’가 되었다.

     

    이 마법에 닿는 생명은 그 즉시 절명한다.

     

    상대가 누구건 가리지 않고 즉시 목숨을 뺏을 수 있는 절대권력의 마법이다.

     

    “7위계라면!”

     

    결코 쫓아올 수 없을 터.

     

     

    하지만.

     

    ―사아아아…

     

    전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초록빛 궁극 마법은 황금의 마녀의 지팡이에서 녹아내리고 있었으며, 마법진의 술식은 절찬리에 지워져만 갔다.

     

    “…이럴 수가.”

     

    리치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한 발짝 물러섰다.

     

    마법진, 마법진이.

     

    이건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공격마법이었다. 기본기인 2위계 데스코일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려 자신만의 구축 방법을 찾아냈다.

     

    초월자의 영역인 7위계까지 도달하기 위해 그 어마어마한 시간과 정성을 바쳤건만.

     

    이리도 쉽게.

     

    마기조차 아닌, 인간의 마나로.

     

    “술식, 술식이…!”

     

    지워져 간다.

     

    마족의 언어로 적어넣은 글자가 하나하나 삭제되고 다른 문자로 대체된다.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

     

    눈앞의 마법사는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존재였으며.

     

    방금 한 번 보기만 했음에도 완전히 자신의 기술인 양 재현할 정도로 마법의 지식과 통찰력이 가득하다는 사실.

     

     

    또각, 또각.

     

    눈앞의 황금의 마법사가 한 발짝 다가올 때마다 들리는 구두굽 소리가 마치 죽음의 선고처럼 들린다.

     

    즉사는 이미 녹색 빛을 잃고 황금색의 마나로 물들어 효력을 잃었다.

     

    빛에 의해 똑똑하게 적의 얼굴이 보인다.

     

    리치는 어느 마족보다도 사악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진정 그녀가 인간인가 순간 의심했다.

     

    “겁먹었구나.”

     

    “윽…!”

     

    리치가 지팡이를 크게 휘둘렀다. 즉사의 시전을 중단하고 아셀라와의 연결을 끊어냈다.

     

    ―콰아앙!!

     

    그 반동으로 갈 곳을 잃은 마기와 마나가 폭발하며 폭음이 일었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바닥이 패이고 흙먼지가 솟아올랐다.

     

    ‘아직 끝이 아니다.’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서 리치가 빠르게 진을 그렸다. 발밑에서 작은 폭발을 일으켜 반발력으로 아셀라를 향해 날아간다.

     

    ‘마법 승부에는 마법으로 압도하는 것 말고도 이길 방법이 있다.’

     

    전투에 능숙한 리치는 반칙에 가까운 그 수단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심판이 없는 전쟁이다. 승리하면 그만인 싸움이다.

     

    시야가 가려지기 전 이미 위치는 파악했다.

     

    탁!

    흙먼지가 걷혔을 때, 리치의 손에는 한 자루의 지팡이가 더 들려 있었다.

     

    ‘성공했다.’

     

    마법사의 마법을 봉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

     

    지팡이를 뺏는 것이다.

     

    지팡이는 마나로 대형 마법진을 그리게 해주고 재료를 통해 마력을 증폭, 마법에 반영하게 해주는 필수품이다.

     

    지팡이가 없으면 마법사가 쓸 수 있는 마법은 굉장히 제한되기 마련이다.

     

    마법사는 보통 근력이 약하기 마련. 기습한다면 지팡이를 뺏기는 쉽다. 그렇기에 전위 없이 움직여서는 안 되는 존재다.

     

    비열하다면 비열한 수단이지만 이미 적이 자신보다 고위계의 마법사라고 판단된 이상 이게 최선의 수단이었다.

     

    ‘다음부터는 인간이라고 얕보지 말아야겠군.’

     

    리치가 지팡이를 흙먼지 속을 향해 겨눴을 때였다.

     

     

    ―화아아악!!

     

     

    빛이 일었다.

     

    안구조차 없는 리치였지만, 그 강렬한 빛에는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의 끝자락까지 압도된 나머지 방어 마법진을 그릴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오… 오오.”

     

    공간을 찢고 나타난 이차원.

     

    틈새로 보이는 별세계.

     

    이 대륙이 아니다.

     

    성역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신계.

     

    그곳에서 소환된 미려한 한 자루의 창이, 리치의 두개골을 뚫어내기 위해 그 날을 치켜세우며 천천히 회전한다.

     

     

    아름답다.

     

    저만한 무구는 결코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리라.

     

    대륙을 창조한 고대룡들조차 본 적 없을.

     

    태초신의 창.

     

    “과연.”

     

    리치는 격의 차이를 인정했다.

     

    저만한 무구를 소환하는 궁극의 마법을, 오로지 단신으로, 지팡이도 없이, 마법진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꺼낸 저 여자야말로.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가 아닌가.

     

     

     

    “황금의 마녀여.”

     

    리치가 환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하면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아셀라가 흥미 없다는 듯 대답했다.

     

    “사랑에 빠지면.”

     

    신창이 쏘아지고, 그 자리에 빛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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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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