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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9

        

         

       살기 위해 왔다는 윌리엄의 말에 아그네스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라거나 걱정 섞인 표정으로 윌리엄을 보기는커녕, 마치 사막 한복판에라도 던져놓은 것처럼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그래요?”

         

       그리고 그 무미건조함 끝에 나온 것은 아쉬움.

         

       윌리엄이 죽지 않아서 너무나 안타깝다는 듯, 깊은 아쉬움을 담은 말투였다.

         

       “하, 이래서 우리 네스가 귀엽단 말이지.”

         

       윌리엄은 그러한 아그네스의 반응조차도 그냥 튕기는 것으로 보이는지 실실 웃었고, 읽어보라는 듯 손짓했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저것을 손도 대기 싫다는 듯 그저 팔짱을 끼고만 있었고, 엘라 역시 먼 산을 바라보는 듯 고개를 돌리고만 있었다.

         

       결국 동화책에 손을 댄 것은 진성이었다.

         

       진성은 생긋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은 채 동화책에 손을 가져갔고, 아그네스와 엘라가 볼 수 있도록 살짝 거리를 벌리고 동화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가 동화책을 펼치자 보인 것은 압도적인 퀄리티의 그림.

       프로그램으로 작업한 것이 아니라, 정말 능력 있는 화가가 수채화로 그린 듯한 그림이 그곳에 있었다.

         

       “이건…?”

         

       하찮기 짝이 없는 외형과는 다르게 거장이 만들어놓은 것 같은 퀄리티의 그림.

       엘라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윌리엄은 엘라의 반응이 기껍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문 전속 화가의 힘을 빌렸지. 어때, 대단하지 않아?”

         

       그의 말은 묘했다.

       자랑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엘라에게도 ‘곧 너도 이 화가를 쓸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가 묻어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엘라는 그림의 여운에 취할 새도 없이 윌리엄의 말투에 묻어나오는 기분 나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감상을 모두 털어버리고 다시 그림에 집중했다.

         

       망나니는 망나니고 그림은 그림.

         

       저 망나니가 뭐라고 지껄이든 이 그림은 분명한 예술작품이었으니까.

         

       “기괴하네요.”

         

       동화책 속의 그림은 병원 복도를 묘사하고 있었다.

         

       매끄러운 하얀색의 벽.

       하지만 깨끗한 벽과는 대조적으로 곳곳에 있는 물건들은 녹슬고 낡아 있었다.

       휠체어는 수십 년 동안 방치되기라도 한 것처럼 녹슬고 낡아서 사람이 탈 수 없어 보였고,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의료용 침대는 오물이 잔뜩 묻어 눕기만 해도 병에 걸릴 것처럼 불결했다.

         

       간호사들이 있어야 할 데스크에는 아무도 없고 그 대신에 천장에 밧줄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는데, 그 끝부분에는 교수대처럼 사람 목 하나가 쏙 들어갈 크기의 고리가 있었다.

       그 고리에서는 기분 나쁜 액체가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썩은 피처럼 보이기도 했고, 혹은 어둠이 형체를 이루고 바닥에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은 각도에 따라서는 묘하게 안개가 끼어있는 듯 보이는 것이 목을 매단 사람이 성불하지 못하고 혼령으로 남아 그 자리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복도의 가장 먼 곳, 어둠이 내려앉은 미지의 공간 속에서 무언가 쳐다보는 듯 희끄무레한 형체가 있는 듯 사람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내가 요트에서 놀고 있는데 예지가 딱 보이더라고. 내 몸뚱이가 무슨 이상한 병원에 있는데, 이야. 나는 무슨 꿈이라도 꾸는 줄 알았어. 그런데 오감은 다 느껴지고, 무슨 겨울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이 춥더라고? 그래서 그때 딱 느꼈지. 지금 나한테 예지가 왔다, 예언자의 능력이 발휘가 된 거다!”

         

       윌리엄은 그림에 감탄하고 있는 이들을 보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내용을 말이다.

         

       “그런데 이 예언이라는 게 뭐냐, 말로 표현하면 손색이 있다 그 말이지. 그렇다고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끄집어내서 영화로 만들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내가 고민을 좀 했는데, 마침 내 앞으로 화가 한 놈이 지나가더라고. 그 무슨,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인재라면서 우리 집 꼰대 새끼가 후원을 한 놈이었는데…. 내가 그놈보고 딱 그랬지. 야, 너 이리 와 봐.”

         

       그의 말투는 매우 경박했다.

       마치 길거리에 널려있는 건달처럼 말이다.

       하지만 언밸런스하게도 그의 말투는 상류층이 쓰는 영어였기에, 그 괴리감은 커다랬다.

         

       “그렇게 불러서 내 위대한 예언을 기록하게 시켰다 이 말이지. 그놈이 명성대로 실력은 좀 봐줄 만한 건지 그림을 괜찮게 뽑아냈더라고? 그래서 그림 여러 개 그리게 시켜서 이렇게 동화책으로 만들어서 들고 온 거 아니냐. 어때, 존경심이 좀 드나?”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괴리감은 윌리엄을 더더욱 망나니 같아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외형이 잘생길수록, 그의 말투가 고상할수록 그의 망나니 같은 행동이 더욱 커다랗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망나니인 것과는 별개로 그의 예언은 제대로 된 것이 맞았다.

         

       기괴하고 을씨년스러운 병원 복도 곳곳에 한국이라고 특정할 수 있는 글자나 물건들이 잔뜩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눈곱만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윌리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그림은 정말 예언자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상해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대단하군요.”

         

       진성은 그림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대단한 것이 윌리엄인지, 그림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수식어도 붙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는 그대로 다음 장을 넘겨보았다.

         

       그가 다음 장을 넘기자 보이는 것은 한층 더 기괴하게 변해있는 복도의 풍경.

         

       윌리엄의 눈으로 본 풍경을 묘사한 것인지 일인칭 시점으로 묘사가 되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더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새하얀 빛을 품었던 병원의 복도는 아까와는 다르게 곰팡이라도 핀 것인지 군데군데 검게 변색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조명이 꺼진 것인지 곳곳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으며, 교수대의 밧줄처럼 계산대 위에 자리 잡고 있던 밧줄은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닫혀있던 모든 병실의 문이 반쯤 열리게 되었고, 그 사이로 어둠이 연기처럼 변해 흘러내리듯 바닥에 깔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낡아빠진 휠체어 위에 등을 돌린 채 웅크리고 있는 깡마른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팔락.

         

       진성이 다음 페이지로 넘기자 복도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변해있었다.

         

       병원 복도 대부분은 어둠에 잠기고, 자그마한 불빛과 깜빡이는 조명이 간신히 일부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반쯤 열렸던 병실의 문은 전부 활짝 열렸으며, 깡마른 사람이 세 사람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한 사람은 낡아빠진 휠체어 위에서 등을 보인 채 계속 웅크리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데스크에 엎어져 있었다.

       한 사람은 깡마른 팔을 쭉 늘려서 벽을 벅벅 긁고 있었고, 한 사람은 팔다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거미처럼 천장에 붙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은 마치 사람이라기보다는 관에서 막 꺼낸 바싹 마른 시체를 보는 것 같았다.

         

       팔락.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그들의 얼굴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무저갱 같은 뻥 뚫린 구멍이 있었고, 코에는 지네가 사는 듯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크게 벌어진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끓는 소리가 흘러나올 것처럼 썩은 피가 가득 고여 있었다.

         

       네 귀신은 하나같이 일인칭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윌리엄을 보고 있었다.

       휠체어 위에 웅크리고 있었던 귀신은 목을 180도를 돌린 채 구멍이 뻥 뚫린 눈으로 윌리엄을 노려보고 있었고, 거미처럼 천장을 기어 온 귀신은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이것 보라는 듯 시계추처럼 자기 머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벽을 박박 긁고 있던 귀신은 어느새 윌리엄에게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고, 데스크에 엎어져 있던 귀신은 새라도 된 것처럼 팔을 활짝 벌리고 가죽을 늘어뜨린 채 허공에 떠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의 아래에, 글귀가 적혀있었다.

         

       동화책이 위에 그림이 있고 아래에 글자가 적힌 것처럼 말이다.

         

       『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

       『 우리는 당신을 놓치지 않습니다. 』

         

       삐뚤삐뚤한 붉은색으로 적힌 그 글자는 꽤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저승사자가 선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팔락.

         

       하지만 이러한 음산한 느낌도 다음 장으로 넘기자 사라져버렸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귀신들이 색색의 꼬챙이에 꿰뚫려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으로 빛나는 꼬챙이에 꽂힌 채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이대로는 갈 수 없다는 듯 윌리엄을 향해 한껏 팔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꼬챙이를 만들어낸 주인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커다란 곰 인형을 휘둘러 그것을 쳐내었다.

         

       그리고….

         

       팔락.

         

       “어?”

         

       그리고 다음 장에 그 구원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으니.

         

       구원자는 눈을 그대로 실로 자아 만든 것 같은 새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었고, 값비싼 보석을 박아넣기라도 한 듯 영롱한 빛의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하지 않았음에도 광택이 나는 백옥 같은 피부를 갖고 있었다.

         

       “엘라?”

         

       그렇다.

       그 외모는 엘라의 것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아그네스는 그림을 보고 당연히 엘라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나….

         

       “아니, 엘라가 아닌데…?”

         

       이윽고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림 속의 구원자는 엘라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가슴을 가지고 있었으며, 엘라가 절대로 입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한 색상의 노출 가득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엘라가 아니라고 쐐기를 박듯, 아래에 글귀까지 있었으니.

         

       『 동생의 부탁으로 구하러 왔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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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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