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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9

       본능.

         

       그것은 본능이었다.

         

       이성에 의해 한계까지 억눌려 있던 생존에 대한 본능이, 이성 대신 몸을 숙였다.

         

       콰콰콰콰!

         

       간발의 차.

         

       조금 전까지 목이 있던 자리를 날카로운 검기가 찢어발긴다.

         

       생명의 위기…는 아니었다.

         

       제아무리 백우진이 은은하게 미쳐있다곤 하나, 현경의 고수가 유심히 지켜보는 와중에 실수랍시고 상대의 목을 벨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었으니.

         

       굳이 말하자면 지금 벗어난 것은 패배의 위기 정도일까.

         

       툭!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독고천은 멍한 시선으로 비무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했던가.

         

       조금 전이 그랬다.

         

       확실한 승리를 넘어 더 많은 걸 가져가려 했던 욕심이 전부 되돌아왔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바로 그 대가였다.

         

       “아이고, 아까운 머리카락 다 날아가서 이를 어째.”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조롱.

         

       화는 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화가 나긴 났는데 그보다 더 큰 의문이 이를 억누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명치를 노리고 들어와야 할 공격이 별안간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그것이 원래의 초식이라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변초였나? 아니다.

         

       ‘그 동작에서 파생될 수 있는 변초란 변초는 모조리 예상했다.’

         

       독고천의 선명한 눈과 천재적인 오성은 검이 휘둘러지기 전부터 상대의 초식을 간파한다.

         

       초식이 전개되기 직전에 보이는 눈의 움직임, 발끝의 방향, 어깨와 팔 근육의 움직임 등.

         

       작고, 사소한 것들을 단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아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 그림에는 변초가 자아낼 수 있는 변수 또한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그림이 틀렸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했다.

         

       지금까지 그가 파훼한 초식들이 전부 거짓이었거나, 백우진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했거나.

         

       양쪽 모두 믿기 힘든 사실이다.

         

       만약 초식들이 전부 백우진이 엉터리로 전개했다면 그토록 현묘할 수 없었을 것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면 대체 어떻게 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니.

         

       곁눈질로 백우진을 힐끔 살핀 독고천이 고개를 저었다.

         

       ‘…직접 다시 보는 수밖에.’

         

       묻는다고 알려줄 놈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 기분만 더 상하게 만들 테지.

         

       애초부터 묻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독고천이다.’

         

       언젠가 지금의 하늘을 깨부수고 그 위에 군림할 새로운 하늘.

         

       원하는 것은 오직 제힘으로 얻어낼 뿐.

         

       그는 검을 들어 봉두난발이 되어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제 머리카락을 스스로 잘라냈다.

         

       어정쩡한 것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니.

         

       짧은 머리 위로 느껴지는 시원한 감각.

         

       불쾌했다.

         

       그는 이 감각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러한 기분을 안겨준 백우진을 제 손으로 죽이는 그 날까지.

         

       “어우…, 시원하겠네.”

       “…….”

         

       이제는 화가 나지도 않는다.

         

       아니, 더 이상 화가 들어찰 공간이 없다고 해야 하나.

         

       분노가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도리어 차분해진다고 했던가.

         

       독고천은 현재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중이다.

         

       너무 화가 나고, 또 화가 나서 도리어 차분해졌다.

         

       정확히는 단 하나의 일념이 다른 상념을 모조리 잡아 먹었다.

         

       자신이 겪은 굴욕을 고스란히…, 아니, 두 배, 세 배로 갚아주고 싶다는 일념.

         

       “그럼 자네도 시원하게 해주지.”

         

       눈앞에서 독고천이 사라졌다.

         

       잠시 후 나타난 곳은 백우진의 오른편.

         

       거세게 타오르는 두 검기가 맞부딪힌다.

         

       꽈앙-!

         

       움직임 하나하나에 배어 있던 여유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상대함에 있어서 이토록 진심이 되어본 적은.

         

       그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선보인 적 없던 검법을 꺼내 들었다.

         

       파천제왕신공(破天眞王神功).

         

       하늘을 깨부수고 나아가 진정한 왕으로써 군림하겠다는 오만하다 못해 광오한 신공.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았던 검기가 서서히 제 몸집을 줄여나갔다.

         

       축소가 아닌 압축.

         

       넘실거리던 기운이 일정한 형태로 촘촘하게 눌러 담겼다.

         

       이윽고 그의 기세가 변화했다.

         

       주변을 전율에 휩싸이게 만드는 패도적인 기운.

         

       마치 대국을 통치하는 왕과도 같은 지배자의 위엄이 그에게 서렸다.

         

       “영광으로 알거라.”

         

       말투 또한 그에 맞춰 변화했다.

         

       “독고세가의 무공을 첫 번째로 견식하게 된 것을 말이다.”

         

       그가 검을 휘둘렀다.

         

       맥이 빠질 정도로 단순하고, 밋밋한 내려베기.

         

       그러나 결과물은 놀라웠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독고세가에 전해져 내려온 것은 오직 하나, 패(覇).

         

       앞서 있는 모든 것을 깨부수라는 염원뿐이니.

         

       투콰콰콰-!

         

       백우진을 향해 파도가 휘몰아쳤다.

         

       앞을 가로막는 무엇이든 깨부수고 나아갈 것만 같은 패도적인 기운의 파도.

         

       이를 본 몇몇 고수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경기를 일으켰다.

         

       “저, 저것은…!”

       “파천제왕신공!”

         

       무림제일세가.

         

       과거 독고세가는 그렇게 불렸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정파 무림을 구성하는 열다섯의 대들보가 전부 독고세가의 손에 무너졌기에.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파천제왕신공 덕분이었다.

         

       독고세가의 직계들만이 익힐 수 있다고 알려진 절세의 무공.

         

       그러나 그들의 권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백여 년 전, 갑작스러운 혈사로 인해 독고세가의 직계들이 모조리 살해당하고, 파천제왕신공 또한 실전되어 그때부터 그들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백 년 만에 실전되었던 파천제왕신공이 나타났다.

         

       그것도 영락하다 못해 몰락하기 직전의 독고세가의 후손에게서.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생각한 비무가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다.

         

       두 사람의 기운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쪽은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깨부술 듯 파괴적이었고, 다른 한쪽은 그 모든 것들을 흘려보낼 정도로 유연했다.

         

       팽팽한 형세 속에서 독고천은 이를 악물었다.

         

       ‘왜냐, 도대체 왜…!’

         

       시작부터 지금까지.

         

       전부 팽팽했다.

         

       그래선 안 됐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계속해서 숨겨둔 패를 뒤집고 있지 않은가.

         

       비장의 패를 꺼냈으면 응당 자신이 압도해야 정상인데, 어찌하여 동수를 이룬단 말인가!

         

       ‘저 검술 때문이다…!’

         

       그는 이 비정상적인 비무를 만들어낸 원인으로 그가 펼쳐내는 검법을 지목했다.

         

       이름조차 모르는 저 검법에 담긴 유의 묘리가 스스로 파천기(破天氣)라 명명한 패도적인 기운을 모조리 흘려내고 있다.

         

       파천제왕신공의 파괴력이라면 능히 깨부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에 차오른 자만심을 걷어내고 보니 명확하게 보인다.

         

       그의 검법이 자신의 파천제왕신공과 견주어도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 어마어마한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질 수 없다, 절대…!’

         

       백 년 동안 실전되었던 파천제왕신공을 세상에 보인 날이다.

         

       그런 날을 패배로 장식할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절기를 보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품어갈 즈음.

         

       파천기를 상대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던 백우진이 별안간 뒤로 물러났다.

         

       의아한 행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전투가 끝나기라도 한 듯, 제 검을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이를 본 독고천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이냐. 아직 비무가 끝나지 않았거늘, 어찌…!”

         

       바로 그때였다.

         

       “와아아아-!”

         

       영문을 알 수 없는 관객의 환호성과 함께 하늘로부터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진 것은.

         

       그는 곧장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그곳에 하늘은 존재하지 않았다.

         

       비가 내렸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까만색 비가.

         

         

       * * *

         

         

       열아홉을 상대하는 다섯의 옥면신룡조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약세였다.

         

       독고천이 손수 뽑은 열아홉의 조원들은 하나 같이 능력이 출중했다.

         

       보통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면 단합이라도 덜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제갈진.

         

       용의 자리마저 포기하고, 독고천이라는 사내의 지낭이 되기를 자처한 그의 지휘 아래 나머지 조원들이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었으니.

         

       당선영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안 돼.’

         

       유화연의 검봉조를 맞이하여 싸울 때도 시종일관 약세였다.

         

       그러나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계속해서 버티다 보면 빼앗긴 승기를 되찾아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지금은 그때와 달리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뒤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처참한 패배뿐.

         

       그녀는 이 형세를 뒤집기 위한 수를 끊임없이 궁리했다.

         

       명확한 해결법이 보이지 않아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던 그때.

         

       “언니.”

         

       등을 맞대고 있던 제갈연지가 말을 건네왔다.

         

       “이대로 가면 가망이 없어요….”

         

       의지가 꺾이려 하는 것일까.

         

       “조금만 기다려봐. 어떻게든 수를….”

         

       어떻게든 의지를 북돋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쏟아내려 할 때, 제갈연지가 말을 가로챘다.

         

       “방법이 있어요. 이 불리한 상황을 역전할 단 하나의 방법이.”

         

       확신에 찬 말투.

         

       이를 들은 당선영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소심하고, 유약한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거 써요, 언니.”

       “…그거라니.”

       “언니가 최근에 가장 많이 연습하던 그거 있잖아요.”

         

       당선영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모두와의 수련이 끝나고 야밤에 홀로 연습하던 것을 제갈연지가 어찌 알고 있을까.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건 미완성이라 쓸 수가 없어.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걸 준비하려면 전열에서 빠져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거, 뭔지 모르겠지만 하쇼.”

         

       난데없이 장삼이 끼어들었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패배하는 건 매한가지 아니오? 그럴 거면 차라리 발악이라도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오만.”

         

       이에 다른 조원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당선영을 중심에 두고 동, 서, 남, 북 각각의 방위에 네 사람이 섰다.

         

       그녀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명.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자신 없다.

         

       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해볼게.”

         

       조원들이 이토록 믿어주는데 이를 배신할 수는 없지.

         

       몰려드는 파상공세를 네 명이 막아서고 있을 때, 당선영은 홀로 눈을 감았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은 구결을 속으로 되뇐다.

         

       실패는 곧 패배이기에, 단전의 내기를 모조리 혈도에 쏟아붓는다.

         

       ‘할 수 있어.’

         

       강철보다 단단한 의지를 전신에 새기며, 눈을 뜬다.

         

       암기를 쥔 손을 쉴 새 없이 휘두른다.

         

       방향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적들이 아닌, 하늘.

         

       비표, 우모침, 유엽비도, 철전, 단혼사, 비화, 독접.

         

       지닌 모든 암기를 털어낸다.

         

       하늘을 향해 치솟았던 암기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땅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만천화우(滿天花雨).」

         

       당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최고 절기 중 하나가 그녀의 손에서 펼쳐졌다.

         

       새까만 암기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쐐애액!

       

       

       쐐액-!

         

       “크억!”

       “크르륽…!”

       “꺄아악!”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마찬가지로 하늘을 수놓은 수백 개의 암기를 열아홉이서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지가 낮은 순서대로 하나둘씩 암기에 전신을 난자당한 채 쓰러지기 시작했다.

         

       비무를 위해 예기를 죽여 만든 암기라 죽지는 않을 테지만, 고통은 상당할 터.

         

       “으으으…!”

         

       비가 멈췄을 땐 열여덟의 파천신룡조가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쓰러지지 않은 제갈진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이럴 수가….”

         

       고작 한 수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집힐 줄이야.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오라버니.”

         

       제갈연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제갈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 나는…!”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 발 빠르게 움직인 제갈연지가 철선으로 그를 날려버렸기 때문.

         

       퍼억!

         

       “크헉…!”

         

       볼품없이 나가떨어진 제갈진을 끝으로 열아홉의 파천신룡조가 모조리 쓰러졌다.

         

       남은 이는 독고천 한 사람뿐.

         

       조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그의 주변을 둘러쌌다.

         

       이를 본 백우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독고천을 조롱했다.

         

       “이제 오 대 일이네?”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로써 무위 에피소드가 끝이 나게 되었읍니다.

    독고천의 참교육은 한 번에 끝내선 아깝기에, 말했듯이 맛보기로만 봐주시길 바랍니다.

    고작 패배만으로 그를 몰락시키긴 아까우니까요…!

    미리 말씀드렸듯, 내일은 휴재를 가질 예정입니다.

    하루 쉬고, 다음 에피소드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매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좋은 하루 되십시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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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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