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9

       

       

       

       

       

       “진짜 맛있긴 엄청 맛있네.”

       

       혼자 쌀떡볶이의 1/3을 순식간에 해치우며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쌀떡이 쫄깃하고 맛있죠?”

       

       밀떡을 집어 먹던 나는 그런 알렉스에게 말을 걸며 쌀떡 하나를 입에 넣었다. 

       

       ‘음. 맛있구만.’

       

       큼지막한 떡이 입 안에서 씹을 때마다 쫀득하게 달라붙는 식감이 맘에 들었고, 매콤하고 진한 소스, 단맛이 잘 배어 있는 떡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 

       

       크으. 

       

       이게 쌀떡볶이지.

       

       밀떡파로 이적한 지 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본가를 잊은 건 아니었다.

       

       알렉스는 엄지를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네. 솔직히 제가 쌀떡파지만 파는 쌀떡볶이들 중에 양념이랑 떡이랑 너무 따로 노는 형편없는 쌀떡볶이가 많았는데, 레온 님이 하신 건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드네요. 비법이라도 있으십니까? 혹시 돈 주고 사야 되는 정보라면 기꺼이….”

       “하하, 아뇨. 돈 주고 살 정도의 정보는 아니고요.”

       

       누가 정보원 출신 아니랄까 봐 머릿속 백과사전에 뭐라도 채우려고 하는 것 봐.

       

       “사실은….”

       

       내가 비법에 대해 말해 주자, 알렉스는 오오,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엿과 설탕을 넣은 물에 미리 떡을 넣고 끓여서 단맛이 배게 한다라…. 그런 비법이 있었군요. 저도 나중에 떡볶이를 만들 일이 있으면 써먹어 봐야겠습니다.”

       “쌀떡파에겐 꼭 필요한 방법이죠.”

       

       알렉스는 감사 인사를 한 뒤, 다시 쌀떡을 빠르게 집어 먹었다. 

       

       ‘아니, 진짜 빠르네.’

       

       이대로 가면 쌀떡볶이를 알렉스 혼자 순식간에 다 먹어치워 버릴 것 같아, 나도 곧 부지런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왜, 그런 것 있잖은가.

       분명 누구도 말하지 않았는데 누구 한 명이 빨리 먹기 시작하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들 점점 빨리 먹게 되는 현상.

       

       나와 알렉스가 번갈아 가며 점점 템포를 올리자, 옆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수다를 떨며 먹던 레키온과 데보라, 실비아, 그리고 아르까지도 우리를 보고 급히 쌀떡볶이에 포크를 가져다 댔다. 

       

       “잠깐만, 벌써 쌀떡볶이 쪽이 반이나 사라졌는데?”

       “알렉스랑 레온 님 둘이 먹는데 벌써?”

       “알렉스 너…!”

       “질 수 없죠. 쌀떡볶이가 사라지기 전에 저희도 얼른….”

       

       언제나 여유로워 보이는 실비아조차도 이번에는 꽤나 전투적으로 포크를 들이밀었다. 

       

       “으악! 밀떡파가 영역을 침범한다!”

       

       알렉스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쌀떡볶이들을 보며, 레키온의 포크를 칼싸움하듯 팅, 하고 쳐냈다. 

       

       “야, 쳐내는 게 어딨어?”

       “여기 있다, 짜샤.”

       “근데 너 이렇게 나 붙들고 있으면 둘 다 손해만 보는 거 알지? 지금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쌀떡은 사라지고 있다고.”

       “후후, 암살자가 왜 단도를 두 개씩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하지?”

       “어? 야! 왼손 포크는 반칙이지!”

       “아, 맛있다.”

       “쀼우, 아르두 쌀떡!”

       

       갑자기 쌀떡에 쏠린 관심에, 나는 슬쩍 밀떡 쪽으로 이동해서 혼자 여유롭게 말랑한 밀떡을 먹었다. 

       

       ‘음, 역시 둘 다 매력이 있다니까.’

       

       달달매콤하고 부드러운 떡이 그야말로 술술 넘어갔다. 

       

       ‘쌀떡은 하나 하나 쫄깃하게 음미하면서 먹는 느낌이라면, 밀떡은 술술 넘어가는 맛이 또 있지.’

       

       포크로 한 번에 두 개를 찍어 입 안에 넣으며, 나는 쌀떡 경쟁이 붙은 쪽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았다. 

       

       “근데 진짜 맛은 확실히 있다.”

       “쌀떡도 지금 먹어 보니까 괜찮은데?”

       “하나 하나가 알찬 느낌이라고 할까요.”

       “흥, 이제야 쌀떡의 맛을 좀 알겠냐?”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면서….”

       “쀼움, 쀼움. 마싰당!”

       

       그렇게 얼마 후.

       

       “아, 잘 먹었다.”

       “떡볶이를 이렇게 많이 먹은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사실 나도 그래. 떡볶이만으로 배가 부르네.”

       “저도 과식을 좀 한 것 같네요.”

       “아르두 마니 머거써.”

       

       떡뿐만 아니라 어묵 한 조각까지도 깔끔하게 비워 버린 모두는 최고급 가죽 소파에 몸을 기댔다. 

       

       나 역시 배불리 먹고 포크를 내려놓은 지 좀 된 터라, 한국인답게 바닥에 앉아 소파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여섯이서 먹기에는 좀 많다 싶을 정도로 넉넉하게 했는데, 이걸 다 드셨네요.”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를 해 주셨는데, 남길 순 없죠.”

       “배 불러도 이건 먹어야 해요.”

       “저도 오랜만에 맛있는 떡볶이를 먹었다 보니 좀 많이 먹긴 했네요.”

       “아르 만족해써….”

       

       아르는 내 옆으로 꾸물꾸물대며 다가와 나와 똑같이 소파 의자에 목을 기댔고.

       나는 아르의 뚠뚠한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르는 내 손길을 즐기며 작게 뀨우 소리를 냈다.

       

       “레오온, 레온은 왜 항상 쏘파에 올라가지 않구 바닥에서 이러케 기대?”

       “응, 내가 살던 곳에서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았거든.”

       “우응, 신기한 곳이넹. 근데 이거 하다 보니깐 편한 것 같기두 해.”

       “그치?”

       

       나는 의자에 뒷목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입은 살짝 벌린 아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새삼 진짜 많이 컸네, 우리 아르.’

       

       이것도 지금 크기 조절을 해 놓은 거고, 레벨80을 넘어가며 풀린 성장까지 하면 본래 모습은 훨씬 더 큰 걸 감안하면 정말 세월이 무상했다.

       

       ‘이 뚠뚠하고 말랑한 배가 한 손바닥에 들어올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태어난 지도 얼마 안 된 녀석이 자기 주장은 뚜렷하고, 늘 당당하려고 하지만 막상 겁은 많아서 툭하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지금도 마음 여린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저렇게 덩치는 커 가지곤 작은 것 하나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감동 받고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볼따구를 마구 늘리고 싶었다. 

       

       “뀨웅….”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 나오는 뀨 소리는 아르가 아주 편안하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 한바탕 요리를 하고 배불리 먹었더니 슬슬 졸음이 몰려 왔다. 

       

       ‘딱 잠 올 시간이긴 하지.’

       

       게다가 오전에는 떡 만들기 체험까지 하고 오지 않았는가.

       

       체험 학습 이후 식곤증까지.

       

       이건 성인 군자가 와도 잠들지.

       

       “하암….”

       

       나는 하품을 한 번 하고, 뚠뚠한 아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금세 잠들어 추욱 늘어진 아르의 대왕 젤리를 만지작거리며, 편안한 기분으로 잠들었다. 

       

       ***

       

       휴가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법이라고 했던가. 

       

       “으아악! 벌써 휴가가 하루 밖에 안 남았어!”

       “으….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건지.”

       

       휴가 복귀 날짜가 같은 레키온과 데보라는 함께 머리를 싸맸다. 

       

       “그래, 그래도 그동안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아르랑 시간도 많이 보냈으니 만족해야지….”

       “근데 알렉스는 어디 갔지? 아침부터 안 보이네.”

       “그러게. 휴가 복귀였으면 말을 안 하고 갔을 리가 없는데…. 혹시 혼자 어디 놀러 간 거 아니야? 우리보다 휴가가 긴 걸지도 몰라.”

       

       레키온은 ‘알렉스 이 녀석…. 부럽다!’라면서 주먹을 쥐었다. 

       

       “삼쵼, 휴가 이제 얼마 안 남아써여?”

       

       둘의 대화를 들은 아르가 다가와서 묻자, 레키온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해졌다. 

       

       “으응, 아르야. 좋은 아침이야.”

       “조은 아침이에여, 삼쵼!”

       

       아르가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풀린 발음으로 말하자 레키온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레키온은 아르의 볼을 가볍게 만지며 설명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삼촌은 내일 저녁에 다시 기사단으로 복귀해야 돼. 황실 직속 기사단으로 가게 됐으니 또 엄청나게 열심히 수련을 하겠지.”

       “우응…. 아쉬워여….”

       

       아쉽다는 아르의 반응에 레키온이 자신의 심장 부근을 움켜쥐었다. 

       

       “크윽…. 나도 벌써 아르와 잠시 헤어져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단다. 마왕의 침공으로부터 제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아르도 이 삼촌의 마음 이해하겠지? 아니, 이미 나와 같은 마음일 거야.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 하는 그 마음….”

       “쀼, 쀼우. 마, 마자여.”

       

       레키온의 말에 아르는 살짝 시선을 피해 눈알을 굴리며 대답했다. 

       

       레키온은 그런 아르의 대답에, 더 참지 못하고 아르를 꽈악 끌어안았다. 

       

       “크으윽! 아르야아아아!!”

       “얼씨구. 나랑 다른 임무로 떨어졌을 때나 그렇게 해 보지.”

       

       거의 대성통곡을 하는 레키온을 보며 데보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 뒤에서 듣고 있던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켠 뒤 말했다.

       

       “알렉스 님은 좀 이른 시간에 나가시던데요. 아까 잠깐 화장실 갈 때 우연히 마주쳤었어요. 제 기억으론 뭘 사러 간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사러요?”

       

       레키온이 고개를 갸웃할 때쯤.

       

       달칵.

       

       “어, 제 말하면 온다더니.”

       

       나갔던 알렉스가 등장했다.

       알렉스는 손에 조그만 상자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뭔가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침 일찍부터 어디 갔다 온 거야? 너 휴가 많이 남았다고 어디 놀러라도 간 줄….”

       “받아라.”

       “어?”

       “데보라 너도.”

       “나도?”

       

       알렉스가 레키온과 데보라를 향해 작은 상자를 내밀자, 둘 모두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가왔다. 

       

       레키온이 상자를 받아 들었고, 곧 조심스레 열어 보았다. 

       

       “……!”

       “이건….”

       

       둘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반지?”

       “그래. 너네도 내일 복귀고, 나도 휴가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 복귀하고 나면 또 언제 볼지 어떻게 아냐. 서로 바쁜데. 그리고 너네 둘 다 곧 생일이잖아. 생일 선물 겸, 커플 축하 겸 주는 거니까 받아라.”

       “알렉스….”

       “디자인은 그냥 내가 알아서 정했다. 주는 대로 껴라.”

       “알렉스으으으!”

       

       레키온은 매우 감동을 받은 듯했지만, 아르에게 한 것처럼 꽉 끌어안지는 않았다.

       

       “정말 고마워. 잘 낄게.”

       “고마워. 손에도 딱 맞고 디자인도 부담스럽지 않고 좋네. 레키온한테 맡겼으면 끔찍한 디자인을 골라 왔을 텐데.”

       “내 안목이 어때서?”

       

       레키온은 입을 삐죽이더니 왼손 약지에 반지를 껴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쀼우! 삼쵼, 온니! 추카해여!”

       

       아르도 젤리손뼉을 치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근데 이짜나여. 생일 선물이 모에여?”

       “응?”

       “응?”

       

       아르의 갑작스러운 의문에, 레키온과 데보라뿐 아니라, 내 입에서도 자동으로 응? 소리가 나왔다. 

       

       ‘잠깐만.’

       

       내가 속으로 뭔가 큰일이 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레키온이 대답했다. 

       

       “생일 선물? 그야 태어난 날을 기념해서 생일에 주는 선물이지. 생일 축하라든지, 생일 파티라든지, 그런 말 못 들어 봤니?”

       “구, 구런 게 이써여? 아르는 못 받아 밨는데….”

       

       아르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었다.

       

       헉.

       

       그제서야 레키온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듯, 나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아르는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레오오온….”

       

       아르의 똘망똘망하고 커다란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아르한테 왜 생일 추카 안 해 준 고야?”

       “그게 말이지, 아르야. 설명해 줄 테니 일단 뚝 그치고….”

       “뿌에에에에에에엥!!”

       

       그리고 결국 아르는 호텔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다.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