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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9

       “그, 사라야.”

        

       언제나처럼 학생회실에서 민원을 들고 찾아오는 학생들의 불만을 다 무시해버리고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고 준비 중인데, 손아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응?”

        

       손아름이 나를 부르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손아름이 나를 불렀을 때 나에게 좋은 일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대화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일에 관련된 거라면 사양이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것도 다 손아름 때문이었으니까.

        

       “이제 시험이잖아.”

        

       “어, 뭐…… 그렇지?”

        

       나는 손아름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다. 혹시 시험 관련된 일인 걸까? 기말고사 때 학생회가 해야 하는 일이 있기라도 한 걸까? 만약 있더라도 나는 할 생각 없다. 위원 중 아무나 잡아서 시킨 다음 나는 도망가야지.

        

       “시험공부는 잘 되고 있니?”

        

       “어…….”

        

       솔직히 말하자면, ‘대단히’ 잘 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낙제를 받을 생각은 없지만, 영 집중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랄까, 돈이 있으니까 공부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으니까. 사실 회사를 물려받는다고 해도 내가 직접 경영할 생각도 없고. 아마 사라도 직접 경영할 생각은 없을 거다.

        

       그야 당연하지.

        

       그렇다. 사라는 나보다도 훨씬 더 니트기질이 심했다. 아마 할 수 있으면 침대 위에서 잠만 자면서 의식 안에서 내 여기저길 만지면서 지내는 것을 원할 테니까.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아니야?

        

       아니, 아니라는 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너 요즘 말투가 좀 날카롭다?

        

       뭐, 그건 나도 의식하고 있긴 하지만.

        

       뭐랄까, 사라와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마음을 계속 터놓고 지내게 되어서, 지금은 이렇게 사라와 티격태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실 이런 생활은 꽤 즐겁기도 했고. 사라랑 그만큼 친밀해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거나, 서로의 일부만 알고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이 잘 통하는 기분이었다.

        

       ……흥.

        

       봐, 사라도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이상하게 얼굴을 보지 않고 말을 할 때는 서로 이렇게 말싸움하더라도, 막상 의식 안에서는 열심히 달라붙는다. 그 태도가 묘하게 귀여웠다.

        

       물론 요즘에는 사라가 나보다 훨씬 크게 나타나서 조금 무서웠지만.

        

       “사라야?”

        

       아.

        

       안타깝게도 내가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는 사라와 나의 의식 시간은 같은 모양이었다. 꿈을 꿀 때처럼 현실의 시간이 훨씬 빠르거나 느리게 지나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사라가 내 옆에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사라와 대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응?”

        

       “시험공부는 어때? 잘 되고 있어?”

        

       손아름이 다시 한번 물었다.

        

       “아, 어.”

        

       나는 내 근처에서 책상 위의 서류를 탁탁 치우고 있던 하늘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행동을 엄청나게 느리게 하며 이쪽의 대화에 집중하던 하늘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 허둥대며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그야, 뭐.

        

       솔직히 나도 사라도 천재라고는 할 수 있는 머리는 아니라, 1학기 내내 대충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반이라도 기억하면 잘했다고 칭찬받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는 굉장히 좋은 선생님이 있었다.

        

       하늘이는 저렇게 보여도 전교 최상위권이거든.

        

       도중에 공부를 안 한 기간이 있어서 등수에 변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늘이는 악착같이 그 상위권이라는 천장에 매달려 절대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1등이 아니라고 실망하는 그녀였지만…… 아니, 고작 등수가 2등 떨어진 걸로 그렇게까지 실망하면 내가 엄청나게 무안해지는데.

        

       그런 하늘이가, 요즘에는 내 근처에서 나를 열심히 마크하고 있었다. 수업 도중에 필기한 내용을 나에게 열심히 보여주고…… 기왕이면 외우라고 압박을 가했다.

        

       심지어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가서도 나를 열심히 따라다니며 가르쳐 주었으니, 그 열정 하나는 학교 화영 고등학교의 선생들이 가진 모든 열정을 더한 값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러니, 엄청나게 잘 되고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겠다.

        

       “나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는 있어.”

        

       하지만 나는 공부를 시켜도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그렇기에 양심적으로 엄청나게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를 위한 약간의 변명으로 ‘내 나름대로는’이라는 말을 붙였다.

        

       열심히?

        

       그리고 내가 별로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있는 사라가 내 양심을 쿡쿡 찔렀다.

        

       아, 그럼 너가 하던가.

        

       죄송합니다.

        

       “…….”

        

       너무 대답이 빠르게 나와서 조금 벙쪘다.

        

       “그렇구나…….”

        

       나의 대답에 손아름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 위의 바보 털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왜?

        

       평소의 손아름이었다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쪽이 가장 좋은 대답일 것이다. 모범생인 손아름은 내가 노느라 공부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테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구나’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뭐랄까, 태도만 보면 꼭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잖아.

        

       혹시, 다른 사람을 갈구면서 즐거움을 얻는 성격일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성격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럼, 이건 필요 없겠구나…….”

        

       손아름은 가슴에 안고 있던 노트를 살짝 내려다보면서 축 늘어졌다.

        

       “……그게 뭔데?”

        

       왠지 물어보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나는 조심스럽게 그 노트에 관해 물어보았다.

        

       “아, 이건 내가 수업 시간에 필기한 거야. 나도 장학생이니까, 노트 필기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도 별로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그, 그래?”

        

       그런데, 그런 노트 필기를 나한테 보여주겠다는 말인가?

        

       학생에게 있어서 노트 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 확실하게 체감했다.

        

       고등학생 때는 그래도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 애들은 별로 없었지만, 대학생 때는 본인의 필기를 보여주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과제 같은 것은 그럭저럭 보여주긴 했지만, 본인이 시험을 위해서 필기한 것은 굉장히 탐탁지 않아 했다.

        

       아마 학과 성적이 상대평가로 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필기를 보여줘서 쟤 점수가 더 잘 나오면 열받으니까.

        

       하긴, 필기가 쉬운 것은 또 아니었으니까. 수업 시간 내내 열심히 집중해서 필기한 것을, 수업 때 거의 집중도 하지 않던 애들이 그냥 보여달라고 하면 싫어할 만도 하지.

        

       “어…….”

        

       손아름은 조금 고민하는 내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필기를 보여주고는 싶은데 딱히 명분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그럼, 조금만 보여줄래?”

        

       이렇게 물어보는 게 맞나?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의 그 걱정은 굉장히 쓸데없는 것이었다.

        

       손아름은 나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얼굴에 화색을 띠면서 나에게 노트를 넘겨주었으니까.

        

       이거 진짜로 봐도 되는 건가.

        

       수업 내내 집중도 하지 않고 꾸벅꾸벅 졸다가 하늘이한테 옆구리나 찔리던 나라서, 남의 노력의 결정체를 이렇게 공짜로 받아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분명히 내가 먼저 보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묘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나는 손아름이 넘긴 노트 필기를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 필기는 정말로 대단했다.

        

       머리 위의 바보 털이나, 내 뒤를 쫓아오겠답시고 당당하게 눈에 보이는 자리에 숨어있던 손아름이라, 그녀가 무려 장학생이며 선도위원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 노트는 영어 노트인 모양이다. 영어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손아름의 올곧은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노트에는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적은 올곧은 글씨체의 글씨가 정갈하게 쓰여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 들여가며 쓴 것 같다.

        

       심지어 노트 중간중간에는 컴퓨터로 프린트한 팁이 작게 인쇄된 책갈피 같은 것이 적절하게 끼어 있어서, 이 노트를 만드는데 들어간 노고가 감이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물론 나는 하늘이의 노트도 보았다. 분명 우등생의 노트였다. 읽기 좋게 잘 정리되어있었고, 나라도 보고 쉽게 잊기 힘들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노트는…… 뭐랄까, 그냥 노력이 아니다.

        

       이 노트는 즐기는 자의 노트였다.

        

       그야말로 수업 듣는 것을 즐기고, 이런 노트를 만드는 것이 일종의 ‘취미’의 영역에 도달한 자의 노트.

        

       나는 손아름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얘는 이 학교에 어째서 왔을까.

        

       하늘이는 이 학교를 동경했다. 마치 만화 속에나 나올법한 화려한 학교를 동경해서, 자신을 그 학교에 맞춰서 들어온 아이였다.

        

       그렇다면 손아름은?

        

       ……어쩌면, 얘는 공부하는 게 그저 좋은 아이가 아니었을까.

        

       이 학교의 선생들은 성격은 글러 먹었어도, 일단 바깥에서는 꽤 유명한 강사들이었다.

        

       수업 시간에 딴청 피우지 않고 제대로 수업을 듣는다는 가정하에,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는 수업들이었다.

        

       어쩌면, 손아름은 이 학교에 ‘공부하러’ 왔던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본 애 중에 최강의 별종이 바로 얘가 아닐까.

        

       나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손아름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추측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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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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