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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9

     이름을 바꾼다.

     이전의 이름이 아닌 새로운 이름을 가지는 것으로, 상징을 바꾼다.

     제국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건 좀 그렇지만, 이게 생각보다 효과적이다.

     바르셀로나.

     바르셀 후작령에서 ‘바르셀’이 그대로 남은 건 아직 노스트럼이기 때문.

     만일 제국령이 되었다면 제국식으로 도시 이름이 바뀌고 그러겠지만, 나는 도시 이름을 바르셀로나로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안 되지.”

     “그렇죠?”

     

     로버트 경은 지도에 새롭게 새겨진 바르셀로나라는 단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르셀 후작가는 역적의 가문이 되었잖습니까.”

     “그래.”

     “에르트랑 영애는 모르가니아 첩보부에서 정보를 토해내고 있고.”

     “그렇지.”

     “그러면 아예 바르셀이라는 단어를 빼고 ‘로나’라는 도시로 하거나, 아니면 ‘그레이로나’라고 하는 게 더 옳지 않겠습니까?”

     “나는 자기 이름을 도시 이름이나 국가 이름으로 하는 그런 취향은 아니야.”

     그건 합스베르크 황제의 취향이다.

     “역적 가문의 이름에서 단어를 붙인 격이기는 하지만, 이래야 지도를 새로 만들거나 이름 바꾼다고 헛된 세금 나갈 일이 없지 않겠어?”

     “으음….”

     “뒤에 ‘로나’만 붙이면 되는 거잖아.”

     “색칠도 새롭게 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 지도를 새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노스트럼 왕국의 지도는 변했다.

     바르셀 후작령이 그대로 지브롤터로 편입되면서 그 땅이 그대로 지브롤터로 넘어왔지만, 지도에 표기되는 부분은 수정이 필요했다.

     지브롤터 후작령.

     그리고 그 후작령 아래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지구.

     백작가를 후작가로 정정하고 바르셀 뒤에 로나만 붙이면 기존 지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누군가는 보기 흉하다고 새로 만들고 그러거나 하겠지만….

     “로버트 경.”

     “예, 도련님. 저는 언제든지 맞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바로 정답 알려줄 건데?”

     “…300점까지 맞출 수 있습니다만?”

     “좋아. 마드리드 자작. 정식으로 귀족이 되었으니, 한 번 맞춰보게. 왜 바르셀로나가 된 것 같나?”

     “지도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최소한 1년, 아니 3년 이내에 노스트럼의 지도를 새로 만들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정답이야. 495점 주지.”

     “5점은 어디에서 빠진 겁니까?”

     “최소 1년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지.”

     나는 집무실에 넓게 펼쳐진 노스트럼 왕국의 지도를 가리켰다.

     “앞으로 한 달마다 지도에 있는 명칭이 바뀔 예정이거든.”

     “…한 달마다 새로 만드는 걸로 예산을 빼돌릴 줄 알았습니다.”

     “안 돼. 지금 예산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서.”

     나는 테이블 위에 간식용으로 먹다가 놔둔 포크를 냅킨으로 닦은 다음, 그걸 지도를 향해 던졌다.

     “지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바르셀.

     후작령이라는 단어에 정확히 포크가 박혔다.

     “한 번 만드는 건 어려워도 양산은 쉽지 않습니까? 제국의 인쇄술을 이용하면.”

     “그 한 번 만들 때마다 들어가는 예산도 아낄 때야.”

     “뭐, 어디 전쟁병기라도 만드시려고요?”

     “어.”

     나는 두 번째 포크를 집어들었다.

     “영지전은 우리가 이겼고, 앞으로도 계속 노스트럼을 상대로 이기겠지만, 그 뒤에 상대해야 할 적이 문제거든.”

     “…노스트럼이 적이 아니면, 흡?”

     “괜찮아. 여기 도청장치나 그런 거 없으니까.”

     그대로, 지도의 끝을 향해 던진다.

     “제국은 아무리 신분제가 유명무실해졌다고 하더라도 제국이지. 황제가 ‘전쟁을 하겠다’라고 선언하면 즉시 국가 전체가 전시체제에 돌입하는 곳이라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황제가 지금까지 그렇게 도련님께…아.”

     “그레이 지브롤터와 노스트럼을 별개로 본다면?”

     포크가 박힌 곳은 지브롤터 협곡의 너머.

     “제국 입장에서는 지브롤터의 의향과 관계 없이, 노스트럼을 밀어버릴 수도 있는 거거든.”

     “…….”

     “왜? 그야 당연히, 노스트럼이 지브롤터를 자꾸 건드리려고 하니까.”

     “후작가가 되었음에도, 말입니까?”

     “바르셀을 잡아먹어 넓은 영지를 구축하고 있고, 심지어 우리는 지금 수많은 귀족들을 상대로 약점 하나를 쥐고 있지.”

     나는 손날을 세워 내 목에 겨눴다.

     “면검부.”

     “…….”

     “그리고 애초에 한 번 날을 세운 이상, 한 번 더 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어?”

     목을 슥슥 긋던 시늉을 하던 손을 아래로 내린다.

     “겉으로는 차마 말로 못하고 있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공식적으로 알려진 마스터만 셋.

     ‘그레이 지브롤터가 마스터인가’에 관해서는 아직 이견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상급 기사 수준은 될 것으로 모두가 추정 중.

     “귀족들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이제 둘 중 하나가 되어버린 거야. 엄밀히 따지면 그 안에서도 갈래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레이냐, 나리아냐.”

     “정확해.”

     그레이 지브롤터를 따르며 지브롤터-혹은 제국편에 설 것이냐.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따르며 왕국과 함께 할 것이냐.

     “어느 쪽이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끝났지. 귀족들이 머저리도 아니고.”

     모두, 알고 있다.

     “자기 기사단장을 헌신짝처럼 버렸잖아. 누가 그런 자를 따르겠어?”

     

     영지전을 일으킨 이는 제로스 바르셀 기사단장이지만, 제로스 바르셀을 앞장세워 진짜로 지브롤터를 한 번 밟으려고 했던 이가 누구인지.

     “따르기는 하더라도, 적어도 그 속에는 불안감이 가득할 거야. 언제 끈 떨어질지 모르고, 언제 버림받아서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귀족들 모두가 알고 있다.

     영지전이 지브롤터의 승리로 끝났는데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따르는 자는 제로스 바르셀과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는 걸.

     “도대체 누구를 따라야하는가. 그게 오늘 첫 ‘회담’을 통해 결정되겠지.”

     후작성 입구.

     우리가 수백 명의 시신을 만들어냈던 그곳은 깔끔하게 정리되었으나, 대리석 벽돌 사이로 스며든 붉은 피가 아직 남아있어 조금은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도로.

     “차기 여왕께서 오셨군.”

     그 도로에,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마차를 탄 채 내려 후작성을 올려다보고 있다.

     머리 위에 왕관을 쓰지는 않았지만,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로버트 경. 직접 마중을 나가게.”

     “이미 늦은 거 아닙니까? 그냥 들어오시는데요.”

     “…하여튼.”

     나는 느긋하게 솜누스 차를 들이켰다.

     “행동력 하나는 정말 끝장나는군.”

     영지전 이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그냥 도망친 채 ‘아무튼 제로스가 잘못함’만 선언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

     바르셀 후작가를 왕족을 기만하고 능멸한 죄로 전부 형장의 이슬로 보내고.

     바르셀 후작령을 바르셀로나로서 관리하도록 지브롤터에 편입시키고.

     지브롤터를 후작가로 격상시키고.

     

     나아가 그 보호령이라고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임시 총독이라고 할 수 있는 자,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백작위를 수여하여 지브롤터가 노스트럼을 떠나가지 않게 하였으니.

     그건 세인트 지오의 행동이 아니었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사고는 아버지가 치고, 수습은 전부 딸이 했다.

     차기, 여왕으로서.

     

     * * *

     잠시 뒤, 골드캐슬 응접실.

     “경하드립니다, 여왕 폐하.”

     “…….”

     나와 마주앉은 나리아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응접실.

     나리아는 품에서 흑장미와 같은 마도구를 꺼내더니, 마석에 마나를 흘리며 가볍게 귀를 두드렸다.

     우리끼리의 사인.

     “도청은 없습니다. 도촬도 없고요.”

     “그러면.”

     “눕지는 마시고.”

     “쳇.”

     나리아는 바로 소파의 옆으로 누우려고 했으나, 곧 다시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며 볼을 부풀렸다.

     “오는 동안 계속 불편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었는데, 좀 편한 곳에 있지도 못하는 겁니까?”

     “애초에 편한 이야기를 하러 온 것도 아니잖습니까.”

     “화제는 심각해도 말은 좀 편하게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대공 각하와 12대신들은 간혹 원탁에서 술판을 벌인 채로 예산을 짜고 그러셨다던데.”

     “그렇게까지 편해지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만, 눕지는 마세요. 옷 구겨집니다.”

     “음, 그럼.”

     나리아는 군화를 벗더니, 그대로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렸다.

     “이제 좀 편하군요. …이런 것도 아스타시아에게 해주는 겁니까?”

     “아스타시아는 책상에 이렇게 시건방지게 맨발 올리고 그러지 않습니다.”

     나는 소파 옆에 있는 두툼한 방석을 나리아의 발 아래에 받쳤다.

     습관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냥 몸에 익은 배려다.

     “건방이라. 그런 말 하는 사람은 그레이 당신이 유일할 겁니다.”

     “글쎄요. 뒤에서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공주가 지브롤터를 어떻게 중재한 것 하나가지고 벌써 여왕이 된 것처럼 시건방을 떤다고 하던 것 같던데요?”

     “적어도 면전에서 하지는 않죠.”

     나리아는 두 팔을 들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건방 좀 떨면 어디 덧납니까? 당장 지브롤터가 분노하여 제국령이 될 뻔한 걸 후작가로 만드는 걸로 사태를 수습한 건데.”

     “수습한 거 맞습니까? 우리가 다 준비해준 거 그대로 퍼먹었으면서?”

     “서류 준비하고 결재 도장찍고 하는 거 제가 했습니다.”

     “그러면 인정하죠.”

     나리아가 손을 앞으로 뻗으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나는 나리아에게 가만히 엄지만 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쳇.”

     “어디서 신체접촉 시도를.”

     “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이거늘.”

     “여자 손은 아스타시아와 가족만 잡습니다.”

     “저는 가족 아닙니까? 피가 이어지지 않는 누나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백번 천번 양보해서 설령 그런 관계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이라고 해야겠죠.”

     “그레이 오라버니.”

     “…….”

     진심으로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미치셨습니까.”

     “부탁이 있습니다.”

     “아니, 하지 마세요. 부탁은 해도 되는데, 그 오라버니라는 말은 집어치우십시오.”

     “그러면 오빠?”

     “혹시 ‘반역’당하고 싶으시다면, 계속 하시고.”

     “흐흐흐.”

     나리아는 키득거리며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레이 지브롤터 백작, 바르셀로나 총독.”

     “아직 지브롤터의 성을 가지고 있고, 바르셀로나 백작이라는 것도 아니기도 하며, 총독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에 뭔가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그대가 이곳의 총 책임자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며, 제가 이곳을 관리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

     현재.

     나의 상급자라고 할 수 있는 이는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다.

     “고맙습니다. 그 때의 말, 그대로 실현되었군요.”

     “그 때?”

     “저를 여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말.”

     나리아가 자신의 머리 위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왕관없는 여왕.”

     “하늘에 태양이 두 개가 떠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달이라고 하죠.”

     “달이 금색이기도 합니까?”

     “간혹 금색으로 반짝이기도 하죠. 어두운 밤하늘에서는 더더욱.”

     “지금은….”

     “태양이 저물고, 달이 떠오르며 동서로 두 개가 같은 하늘에 보이는 시기.”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하지만 곧 태양이 저물고, 어둠이 찾아오겠죠. 밤이.”

     “혹시 요즘 많이 힘듭니까? 그런 식으로 정서적인 표현도 다 하시고.”

     “…정치적 수사만 지껄이는 귀족들 상대하다보니.”

     “저도 그런 쪽으로는 제법 하는 편인데.”

     “그레이를 상대하는 거랑 부왕(父王)을 따르던 머저리들을 상대하는 거랑 같습니까.”

     현재, 그녀가 가진 직책.

     오로솔 아카데미 학생회장 겸 애국동아리 회장 겸 노스트럼 왕국 내정집행위원 제 ’13’대신 겸 원탁재상 겸-

     여왕(女王).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왕이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도 왕이다.

     “여왕으로서, 명령입니다.”

     노스트럼은 지금, 옥좌가 두 개다.

     “약혼. 어서 하시죠. 지브롤터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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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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