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9

    문신투성이 연금술사는 여동생을 지키듯이 서서, 시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태양을 닮은 하얀 꽃. 땅을 담은 기름. 뒤섞여 불어나는 보라색 잎사귀.’

    연금술사가 염원을 담아서 연금술 시료를 집어 들자, 세 가지 재료가 마구 섞여서 하얀 불꽃의 파도를 만들어 냈다.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드는 불꽃의 벽에 휩쓸린 뇌 없는 괴인들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마구 굴렀다.

    그리고 인과가 뒤틀린 것처럼 알아서 나무가 쓰러져서, 괴인들을 짓눌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상에, 연금술사가 하늘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하늘 위에는 하얀 털 뭉치에 주황색 피부를 가진 미니 사신이 얌전한 얼굴로 웃으며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다.

    하늘에 둥실둥실 떠올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주황 사신은 사실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세계가 나서서 돕는 것 같은 기분이야.’

    나무가 쓰러지고, 돌부리가 다리를 걸고, 갑자기 흙이 미끄러지고.

    부자연스러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만약 주황 사신이 없었다면, 이미 시체가 되어버렸겠지.

    그때 무너진 나뭇더미를 뚫고 괴인의 손이 마구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시 마도서를 태우는 불꽃이 아무런 효과가 없어. 설마 진짜로 마도서가 아닌 건가?’

    하지만 주황 사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황은 극히 불리했다.

    대부분의 오브젝트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하얀 꽃의 불꽃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연금술사의 주무기가 통하지 않으니, 그저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시약도 무한하지 않아.

    이대로라면 답이 없어.

    어떡하지? 

    연금술사의 미간은 고민으로 깊어져만 갔다.

    ***

    콩.

    높은 공중에서 떨어졌다고 상상하기 힘든 소리와 함께 황금 사신이 단단한 바위에 떨어졌다.

    ‘!’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 위에 누워서 황금 사신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생이 일부러 떨어트렸어!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건가?

    황금 사신은 주황 사신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고민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소란을 떨면 싫어하는 푸른 사신처럼, 황금 사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실수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모르겠어.’

    땅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자신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주황 사신은 접점이 전혀 없어서,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주황 사신과 자주 노는 황금 사신이 있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살짝 시무룩한 표정으로 생각을 거듭하던 황금 사신은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에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해로운 오브젝트!’

    숲 전체에 퍼져나가는 해로운 오브젝트들의 기척.

    그 기척을 느끼자, 황금 사신은 기운을 되찾아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역시 동생이 떨어트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나무들이 잔뜩 쓰러지고, 땅이 이리저리 파인 숲속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문신투성이 연금술사는 어느새 홀쭉해진 시료 주머니를 붙잡은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확실해. 오래전에 사라진 연금술이야.’

    오래전에 사라진 연금술의 도구인 ‘옥 말뚝’처럼 보였지만, 차마 연금술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에 연금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심 연금술을 모방한 마도서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연금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도서에게 치명적인 불꽃이 통하지 않는 것은 부차적인 이유였다.

    연금술 특유의 느낌이 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녀가 쓰는 연금술처럼 ‘염원’에 바탕을 두지 않은, 고대의 연금술로 보였다.

    세계의 근간인 ‘염원’에 바탕을 두지 않고, 세계 바깥에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고대 연금술.

    하지만 그녀는 고대 연금술에 대해서 역사서에서 읽어본 수준으로밖에 알지 못해서, 대처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연금술사는 시료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서 주변을 돌아보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여동생이 보였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 어두운 숲 깊숙한 곳에서 황금색 섬광이 번쩍였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의 빛.

    연금술사는 미간을 살짝 좁히고 도대체 무슨 빛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여동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외쳤다.

    “황금 사신이!”

    “아!”

    그제서야 익숙한 빛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황금 사신의 에너지원을 이용한 광선검의 광채!

    강력한 위력의 황금 사신 광선검이면 저 괴인들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겠지.

    연금술사는 드디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황 사신은 태연한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고도를 높이며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

    아직 건설 중인 제임스 타워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큰 소리로 외치는 고함.

    단단한 진압용 방패가 묵직한 일격을 받아내는 소리.

    화약의 힘으로 쏘아 보내진 작살이 굉음을 내며 지면에 단단히 틀어박히는 굉음.

    제임스 타워 진입로는 수많은 사람으로 틀어막힌 채, 전쟁터에 가까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제임스 연구소 소속 보안팀이 높은 위치에 서서, 하얀 불꽃을 화염 방사기처럼 마구 쏘아 보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대 오브젝트 화염 방사기 효과 없음!”

    “모든 종류의 대 오브젝트 무기는 무용지물로 보인다. 물리적인 충격을 주는 무기를 사용해라.”

    “예!”

    제임스는 그 상황을 침착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뇌가 파먹힌 괴인들.

    그야말로 오브젝트라고 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브젝트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하얀 불꽃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저 물리력으로는 잠시 무력화만 시킬 수 있을 뿐이라서, 전투는 지지부진하게 길게 이어졌다.

    ‘이상하군.’

    세희 연구소에 만연한 정신 오염을 측정하기 위해서 새로 제작하고 있는 측정기를 바라보며, 제임스는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저 오브젝트들에게서 상당한 정신 오염이 감지되는군.’

    아무리 봐도 정신 오염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오브젝트들이었지만, 정신 오염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것도 정신 오염을 발산하는 수치가 아니라, 정신 오염에 침식되었다는 수치가 표시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테스트를 해봐야겠어.’

    결심을 마친 제임스가 보안 요원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보안 요원들이 깜짝 놀라서 제임스를 만류했다.

    “사장님, 위험합니다!”

    제임스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기 충격기를 꺼내 들었다.

    접근이 힘들 정도로 난동을 부리는 정신 오염자를 제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였다.

    전선을 쏘아 보내서 정신 오염을 제거하는 전기 충격을 원거리에서 가할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한 기능.

    제임스는 침착하게 괴인을 겨누더니, 전기 충격기를 격발했다.

    ***

    심장에서 자라난 것 같은 거대한 옥 말뚝.

    텅 비어있는 뇌.

    정말 끔찍하게 생긴 괴인들이 세희 연구소를 향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내 감각에 잡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숫자!

    내가 감지하는 영역만 해도 이 정도인데, 서울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일지 대충 예상이 갔다.

    사실 예상할 필요도 없이 뉴스를 잠깐만 확인해 봐도 엄청나게 난리가 난 상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늘에 갑자기 적색 벽이 나타나고, 괴물들의 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저 괴물들에게 습격당한 사람들도 같은 괴물이 된다는 것이 보고되었으니 각별히 주의를 바랍니다.]

    서울 전역이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뇌를 파먹고, 동료로 만드는 괴물은 인구가 많은 서울에서 굉장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저 녀석들이 어느 순간부터 명백하게 ‘세희 연구소’를 노리고 포위를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감히!’

    나는 점점 쌓여만 가는 괴물들을 공간 절단으로 싹 쓸어버릴 생각으로 앞으로 나섰지만, 그 순간 괴물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지성이 없어 보이는 괴물의 질서정연한 행동.

    그 행동 속에서 나는 조종하는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괴물들 사이에서 굉장히 이질적으로 생긴 존재가 튀어나왔다.

    온몸이 녹색 옥으로 만들어진 인간 형상의 무언가였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오브젝트’라고 단언할 수 없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초현실적이고 괴이한 현상이니까, 당연히 ‘오브젝트’라고 해야 했지만.

    내 직감은 저것은 절대로 ‘오브젝트’가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 근육질 녹색 옥인에게선 보면 볼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끝없이 멀고, 이질적인 무언가와 연결된 느낌.

    미니 사신들도 그 기운을 느낀 것인지, 굉장히 짜증 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니 사신들이 뿜어내는 감정을 읽어보니, 나랑 비교도 안 되는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저 ‘이상하게 기분 나쁜 녀석이네.’ 정도였다.

    하지만 미니 사신들에겐 저 녹색 옥인이 지구상에서 같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불쾌함을 참지 못한 미니 사신들이 일제히 녹색 옥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귀 사신이 하얗게 빛나는 검을 휘둘렀고, 황금 사신 용사들이 광선검을 휘둘렀다.

    그 외에도 붉은 사신의 불덩이를 날려 보내고, 푸른 사신의 물바늘을 잔뜩 쏘아 보냈다.

    그 순간에도 계속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녹색 옥인이 소리쳤다.

    “가짜라지만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이렇게까지 영락하다니!”

    녹색 옥인은 굉장히 슬픈 표정으로 통탄하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커다란 녹색 옥 벽이 나타나더니,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쿠웅!

    녹색 옥 벽이 나타나는 그 순간.

    세계에 무언가가 떨어진 것만 같았다.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가짜 연금술로 만들어진 납 인형.”

    녹색 옥인의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아귀 사신과 미니 사신들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정신을 잃어버리고 바닥을 뒹굴었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