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9

    <229 – 당신의 실력을 증명해>

     

    “오크노디. 공녀님이 자쿠라는 남학생한테 오크노디에 대한 상담을 하고 싶다는데 같이 갈래?”

    “갈래!”

     

    티토소가의 제안에 솔깃함을 느끼고 찾아갔더니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다.

     

    “비밀얘기를 당사자랑 같이 하는 경우가 어딨어요? 티토소가 이 바보.”

    “으앙. 죄송해요 공녀님!”

    “이젠 공녀님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이 바보소가.”

    “그치마안… 입에 붙어서 자꾸 공녀님이라고 불러지는 걸 어떡해요오…”

     

    아카디아가 티토소가를 메챠쿠챠 혼내는 사이, 자쿠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편지 보여줄래?”

    “오냐.”

     

    ━━━

    저는 당신이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장학생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답니다.

    오크노디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사실도요.

    빚을 갚고 싶다면 편지를 건네준 아이의 안내를 받아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세요.

    거부할 생각은 않기를 바라요.

    당신의 강의일정과 과제현황은 이미 전부 파악했고 교우관계도 형편없어서 딱히 이후의 일정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까요.

    ━━━

     

    “우와, 심했다. 친구 없는 애한테 너 친구 없다고 팩트로 때리다니!”

    “…그걸 면전에서 말하는 네가 가장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리고 멋대로 친구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마라. 내게도 친구는 있다.”

    “친구 누구?”

    “말할 수 없다.”

    “거봐. 역시 없잖아.”

    “…….”

     

    시치미 뚝 떼고 있지만 이미 이 과묵한 1학년 엑스트라 NPC의 심리쯤은 예측했다.

     

    “말하면 그 친구까지 재단의 장학생 취급을 당할까봐 그러지?”

    “…!”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치는 자쿠.

    식은땀까지 흘리는 모습이 쫄아도 단단히 쫄았다.

     

    “흐음… 혹시 내가 아는 사람?”

    “아, 아니다.”

    “뭘 속이고 그래. 전에 봤잖아. 모브랑 같이 동아리 다니던 거.”

     

    헤헤 웃으며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니 자쿠의 표정이 아주 사색이 되었다.

    그 꼴을 본 아카디아가 티토소가 대신 나를 목표로 삼고 꾸중을 했다.

     

    “디. 여학생이 조신하지 못하게 남학생에게 귓속말을 하고 남자를 쩔쩔 매게 하면 못써요.”

    “네에~.”

    “후우. 뭐 언제는 안 이랬나 싶네요. 이왕 온 김에 그냥 대놓고 말할게요.”

     

    아카디아는 비밀놀이에 실패했음을 깨닫고 그냥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저는 재단에서 디에게 학살지령을 내렸다는 의심을 하고 있어요.”

    “네에!?”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디의 진술이 언젠가 재단에서 디를 독립시키는 일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헛소리다.”

     

    자쿠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남의 일이라고 형편 좋게 말하지 마라. 재단의 장학생이 재단의 품을 떠나는 꼴을 위에서 순순히 지켜볼 것 같은가? 반드시 보복에 당할 것이다.”

    “우린 아카데미가 있어요.”

    “그래. 너희 세비체 공작가문을 백작가문이 될 때까지 공격했던 아카데미 말이지. 그들이 오크노디라고 잘도 순진하게 놓아주겠군.”

     

    아카디아가 폰게임에 돈을 썼다가 개인의 실책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슬픔을 억누르는 얼굴이 되었다.

     

    짜악!

     

    “끄아악!”

    “자쿠. 못된 말 금지!”

    “주, 죽일 셈이냐 망할 괴물꼬맹이!!”

    “어허!”

    “자, 잘못했다.”

     

    손을 슥 들어 올리자 자쿠가 바로 항복선언을 했다.

    한 대 맞고 조용해질 거면서 어디서 까불어.

     

    “아카디아 언니. 저는 언니가 공녀님이든 백작영애든 신경 쓰지 않아요.”

    “디…!”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든.

    이벤트에 실패하면 평민 내지 노예로 전락하고 성공해도 공작령에서는 내려오게 될 것을.

    세비체 가문이 다시 공작가문이 되는 것은 아카디아가 졸업하고 큰 성공을 거두며 이를 국왕폐하에게 치하 받아 여공작이 된 뒤의 일이다.

     

    “그래도 재단이 학살지령을 내렸냐고 묻는다면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아마도 안 시켰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본인의 일인데 발뺌을 하다니… 대답할 수 없다는 건가요? 재단의 일에 제가 개입하게 되면 위험에 처하게 될까봐? 웃기지 마요! 디는 저희 공작가의 위험한 일에도 개입했으면서 저는 그럴 수 없다니, 이런 건 치사하잖아요!”

     

    마음은 알겠지만 정말로 곤란하다.

     

    “저는 정말 모르는 일인걸요?”

     

    삐에로가면단이 내 몸의 원주인한테 학살지령 일을 시켰을까?

    아무도 날 못 알아본 걸 보면 아닐 것 같은데.

    그래도 장학생들이 얘들을 거쳐간 것은 정황상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조나와 처음 여관에서 만났던 빙의 첫날을 떠올리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주식차트를 봐도 이게 오를 차트인지 내릴 차트인지 종잡을 수 없는 심정과 똑같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발뺌을 할 건가요? 조금만 위험한 일이다 싶으면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위험에 몸을 들이고, 저희에게는 비밀로 하고. 그런 생활을 계속 하려는 건가요?”

     

    아카디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자쿠가 쇠락한 세비체 가문의 이야기를 입에 담을 때에도 보이지 않았던 커다란 슬픔이 그녀의 눈가에 가득 어렸다.

    힝.

    아카디아를 슬프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아카디아의 포인트 많이 주는 이벤트는 당분간 일정에 보이지도 않고.

     

    “넹.”

     

    플레이어가 정에 이끌려서 NPC한테 끌려다녀서야 쓰겠나.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단호하게.

    선을 그을 줄도 알아야 가성비 좋은 고인물루트를 돌 수 있는 법!

     

    “디…”

     

    충격 받은 얼굴의 아카디아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할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오늘 얼굴 봐서 즐거웠어요!”

     

     

    * *

     

     

    종종걸음으로 가볍게 달리다가 어느새 귀신처럼 스슥하고 사라지는 오크노디.

    그 뒷모습을 쫓던 아카디아의 얼굴에 망연자실한 감정이 떠올랐다.

    역시 악마의 아이들이라 불릴 정도로 악마적인 재능과 그에 걸맞은 어긋남을 지닌 자들만이 선택받는 ‘집사’의 아이들 중 하나.

    심지어 그 선두를 달리는 수석장학생답게 오크노디는 매정하게 아카디아에게 선을 그었다.

     

    “재단의 인간과 진심으로 서로 의지하는 관계라도 되길 바란 건가? 바보 같기는.”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요. 상처받은 아카디아 님을 굳이 더 괴롭혀야겠어요?”

     

    착해빠진 티토소가는 오크노디를 쫓아가야할지 아카디아를 달래야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아카디아의 곁에 남아 눈을 부릅뜨며 자쿠에게 삿대질을 했다.

    물론 원체 얼굴 자체가 무해한 소동물처럼 기가 약해보이는 탓에 하나도 무섭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약함이 때로는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자쿠는 가슴이 찌릿한 기분을 느꼈다.

    양심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개소리.”

     

    양심이 소리를 낼 때, 그 소리를 따라간 이들은 모두 장학생이 되지 못했다.

    입학시험에서 탈락하거나 그보다 전에 재단의 견습장학생 후보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자체적인 검증시험에서 거름 당했다.

    약해지면 뒤처진다.

    뒤처지면 더 가혹한 지령을 받는다.

    그 뒤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

     

    “너희야말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아카디아님의 어디가 이기적인데요!”

    “재단의 실체가 얼마나 거대한지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재단에 이적행위를 할 것을 요구했지. 그것 자체가 오크노디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내게는 더욱 그렇고.”

    “겁쟁이.”

    “오크노디한테도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나?”

     

    티토소가는 베에 혀를 내밀고는 돌아섰다.

     

    “가요, 아카디아님. 저런 슈퍼겁쟁이랑 얘기할 거 없어요.”

     

    힘없이 티토소가의 손에 이끌려 돌아가는 아카디아.

    그 처량한 뒷모습에 이끌리면 안 되는데.

    이런 짓을 한다고 피차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는데.

    괜히 바닥에 대고 발길질을 한 자쿠가 두 사람을 따라갔다.

     

    “잠깐만.”

    “뭔가요, 슈퍼슈퍼겁쟁이씨.”

    “재단의 다음 행보를 알려주겠다.”

    “네?”

    “너희가 정 재단의 품으로부터 오크노디를 구하고 싶다면 재단의 다음 행보를 막아라. 그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곱게 단념해라. 두 번 다시 오크노디나 나를 귀찮게 굴지 말란 말이다.”

     

    아카디아의 힘없는 시선에 생기가 돌아왔다.

    희망을 되찾은 표정에 자쿠의 심장이 미친 듯이 신호를 보냈다.

    희망이란 절망을 봉인한 판도라의 상자의 가장 밑바닥에 남은 최악의 절망을 일컫는 이름이다.

    어설픈 동정심은 이 바보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기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끝내 양심의 목소리를 견뎌내지 못했다.

     

    “다음 주에 아카데미에서 대운동회가 열린다. 재단은 대운동회에서 상급반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상을 입힐 작정이다.”

    “누구라도 상관없이 상급반 전원을 노리는 작전인가요?”

    “그래. 이것은 모든 하급반 장학생들에게 하달된 공통지령이다. 실패하더라도 대가를 치르지는 않지만 성공한다면 재단의 평가가 높아질 기회이지.”

     

    말해버렸다.

    이 사실을 의식하고 수상한 자를 찾겠다며 설치기 시작하면 오히려 재단의 눈에 가장 먼저 띌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질렀다.

    여기까지 저질렀다면 어설프게 발을 빼느니, 아예 확실하게 담그는 편이 낫다.

     

    “힌트를 주지. 재단은 아카데미의 학생들의 절망을 바란다. 절망하는 학생에게는 손을 뻗고 이용하기 더욱 쉬우니까. 가장 빠르게 절망을 창궐시킬 수 있는 방법은 변방진영과 제국진영의 균형붕괴를 한층 더 가속시키는 일이지.”

    “표적은 변방출신 상급반 학생들.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는 뜻이군요.”

    “에엣. 그건 오크노디랑 아카디아님도 포함된다는 거잖아요!”

     

    티토소가의 외침에서 아카디아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어쩌면 깨달아서는 안 될 금단의 깨달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상관없다면 표적은 제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겠죠. 만일 제가 일부로 빈틈을 드러낸다면… 불나방처럼 저를 위협하는 장학생들이 늘겠죠?”

    “그럴지도.”

    “고마워요. 기회를 주어서.”

    “글쎄.”

     

    자쿠는 생각했다.

    이것이 재단에 맞설 능력이 있음을 검증할 기회가 될지, 모처럼 오크노디가 허락한 그녀의 아카데미 생활을 끝낼 계기가 될지.

    그 결과가 판가름 날 대운동회의 날을 맞이하는 것이 조금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고.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