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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9

       

       

       교복 변경 해프닝이 있었던지도 며칠이 지났다. 

       

       결국 기존의 교복을 계속 입는 것으로 결정되고, 나도 국민복따윈 내팽개치고 새로 수선한 가꾸란 교복을 입고 등교한지도 며칠.

       

       그러기를 약 2주간은, 나름대로 조용한 나날이었다. 

       

       『아무튼, 몸뻬인지 뭔지 안 입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맞아맞아……』

       

       아침 조례가 시작되기 전, 양복자랑 아이까와가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연히 원래대로의 세라복 차림이었다. 

       

       ‘이 녀석들, 이게 다 내 덕분인 것을 알까.’ 

       

       저번 렌까의 집에서 시마즈 당주와 전화통화를 해서, 내가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가겠다고 담판을 지었던 덕분인 것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여학생들은 다들 몸뻬를 입고 있었겠지.

       

       ‘그나저나,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가긴 했는데……’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갔지만 그쪽에서 별다른 명령 따위가 내려오지는 않았다. 

       

       대동아공영회의 계획을 방해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있었지만 놈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내 쪽에서 뭘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고, 교내의 대동아공영회 소속 교수들이 이상한 일을 벌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런 평화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나도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학교를 다니며 평범하게 수업을 받았다. 물론, 평범하다고는 해도 헌터 아카데미이니만큼 전투기술을 익히거나 모의 전투를 하거나 그런 것이었지만 말이다.

       

       비록 잠깐일지라도, 그동안 바라마지 않던 평범한 일상. 하지만 그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도,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덥다.

       

       덥다! 

       

       덥다는 것이었다!

       

       『그치만 모오, 갑갑해—! 있지, 사또미 쨩. 내지에서는 반소매 세라복이 있다면서? 긴소매 너무 더워!』

       『으응, 나도 조선에서 나고 자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반소매 세라복은, 아마 중학교나 그렇잖아? 전문학교나 대학교에서 반소매 제복이라니, 그건 없지요.』

       『그런가? 아이들이 부럽네—』

       

       아침 조례가 시작되기 전, 양복자도 늘어진 채로 부채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교복이 바뀌지 않은 것은 좋긴 한데, 긴팔 세라복이 더운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가꾸란 차림의 남학생들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송병오 녀석도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여름이니까 말이지. 아침부터 이렇게 더우니, 원. 이번 여름은 얼마나 더울지 모르겠군!』

       

       어느덧 6월 중순이었으니, 슬슬 낮이고 밤이고 더워질 때가 온 것이다. 학교에 등교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이렇게 덥다. 교실에는 에어컨은 커녕 그 흔한 선풍기도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말야! 그래도 뭐, 조선이 내지보다는 덜 더울테니까 다행이려나? 소다소다! 그러고보면 무라사끼 군은, 어릴 때 내지에서 살다가 왔지? 거긴 어땠어?』 

       

       말없이 앉아있던 무라사끼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흥! 내지에서는 훨씬 더웠다!』 

       『어떻게 버텼어?』

       『기합이다! 기합으로 버티는 거다!』

       

       무라사끼 녀석다운 대답이었다. 양복자는 질렸다는 듯 넌더리를 내며 말했다.

       

       『기합이라니, 바보 같아! 그런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구…… 으에, 앗쓰이(더워)…… 뇌가 구워질 것 같아……』

       

       그렇게 교과서로 부채질을 하던 양복자는,

       

       『앗! 왔다—! 류까 쨩! 빨리! 하야끄하야끄!』

       

       하며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돌아보니 은빛 댕기머리의 여학생, 이유하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오, 유하. 왔냐.”

       “……철하.”

       

       이유하가 우리 분대원들이 모인 곳으로 와서 내 옆자리에 앉자, 우리 분대원들은 이유하를 중심으로 앉아서 뭔가를 바라는 것마냥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에 그리 보시오?』

       

       시선을 참다 못해 이유하가 그렇게 묻자 양복자가 재촉했다. 

       

       『그거 있잖아, 류까 쨩! 빨리!』

       『후우……』

       

       이유하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곧 그녀를 중심으로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얼어붙지 않을 정도의 약한 빙결을 방출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 에어컨……!’

       

       교실 곳곳에서 다른 분대의 학생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만한 실력의 빙결 능력자는 잘 없으니까.’ 

       

       애초에 빙결 방출계 능력자가 잘 없기도 했고, 방출계 능력은 마력 효율이 특히나 나빠서 조금 덜 차갑게 한다고 마력이 많이 아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걸 몇 분 넘게 유지하면서, 일정 범위의 공간 내에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1학년 수준에서는 대단한 실력인 것이다. 

       

       우리 분대는 이유하 보유 분대다……! 역시 친구를 잘 두고 볼 일이다. 나는 내 옆에 앉은 이유하에게 말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이유하. 역시 네가 최고다.』

       『그대까지 그런 소리요? 내 이럴까봐 일부러 늦게 왔거늘……』

       

       여름이 시작된 이래로 우리 분대원들에게 적잖이 시달려온 이유하였다. 그렇잖아도 수업과 실습, 개인적인 훈련만으로도 힘들텐데 거기다가 인간 에어컨 역할까지 하려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유하의 냉기가 미치는 범위는 딱 우리 분대원들이 앉아있는 범위까지만이었지만, 그것도 오래 지속하려면 꽤 어려울 터.

       

       그런 이유하의 고생은 알겠다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 인간 에어컨을 포기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안 돼. 난 너 없으면 죽어.』

       『……그런 말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려.』

       

       그렇게 이유하 곁에 붙어있는데,

       

       『아라, 시라바야시 상. 그리고 리 상.』

       

       하고 말하는 목소리는 어느샌가 우리반 교실로 들어온 흑발의 여학생, 렌까였다. 렌까는 이유하에게 붙어있는 나를 보고 어쩐지 못마땅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럴때는 리 상이 부럽군요. 리 상, 저에게도 시원함을 좀 나눠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이유하는 렌까를 슬쩍 보더니 냉랭하게 대꾸했다.

       

       『시마즈 공녀, 그대는 썩 부유하지 않소? 교실에 선풍기라도 들여와서 쏘이시구려.』 

       『…….』

       

       머쓱해진 렌까는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어왔다.

       

       『흠, 흠. 시라바야시 상. 잠시 시간 되시나요?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잠시 밖에서……』

       『더워. 나가기 싫어. 여기서 얘기해.』 

       『이곳에서는 곤란한 이야기라서요.』

       

       여기서 말 못할 얘기라면, 대동아공영회와 관련된 이야기이려나. 나는 별 수 없이 렌까를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고, 렌까는 나를 본관 뒷편의 그늘진 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렌까에게 물었다.

       

       『뭔데?』 

       『후훗.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다만, 시라바야시 상이 리 상과 사이좋게 어울려 있는 모습이 질투가 났달까요.』

       『…….』

       『농담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불렀습니다만.』

       

       렌까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혹시, 대동아공영회의 계획에 대해, 분대원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으셨겠지요? 당신의 분대원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렌까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간단히 대답했지만, 이것 역시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고민이었다.

       

       나는 아직 분대원들에게 대동아공영회의 계획과, 내가 그곳에 입회했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 분대원들이 나와 함께 결의했던 것은, 학교를 위험에 빠트리는 대동아공영회에 대한 단순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동아공영회의 목적이 일본의 세계정복이라는 것을 내 분대원들이 알게 되면……

       

       이유하같은 조선인 멤버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앞뒤 안 가리고 싸우려고 할 것이고, 반면 무라사끼같은 일본인 멤버는 대동아공영회에 진심으로 동의해서 놈들 편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애써 구축한 분대원들간의 유대감이 갈라져버리는 것이다. 

       

       『말하지 않았어. 아무래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시라바야시 상은 미래에 있을 서양 세력과의 전쟁에서 조선이 일본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지만, 그걸 모두가 이해하지는 못하겠지요. 당신의 분대원들 중, 혹시라도 적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 대동아공영회의 계획에 대해 알게 된다면…… 제 아버님은 자비가 없을 거예요.』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마인(魔忍)을 보내서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대동아공영회와 시마즈의 당주는 내 분대원들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렌까도 모르는 것이 있다면…… 나 역시 대동아공영회 놈들의 뜻에 동의해서 입회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면승부는 승산이 없고, 내부에서 방해공작이라도 펼치기 위해서 들어간 것이었으니까. 

       

       『뭐, 그래…… 아! 나도 묻고싶은 게 있는데.』 

       

       나는 말을 돌리고 렌까에게 물었다.

       

       『이 학교 소속으로 있는 대동아공영회 교수들이 누군지, 안 알려줄 셈이야?』 

       

       같은 편에 속하게 되었다지만, 그동안 교수 놈들이 해온 짓이 있다보니 여전히 못미덥기는 했다. 누구누구인지나 알아야 불안이 덜할텐데. 하지만 렌까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너도 모른다고?』

       『예. 아버님도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애당초 저 역시 대동아공영회의 계획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저번 본가 방문 때의 일이었으니까요.』 

       『흐음……』

       『필요하다면, 알려주시겠지요.』

       

       자기 딸한테도 딱 필요한 정보만 알려주는 건가. 렌까는 그저 자기 아버지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뭐, 이제 나도 같은 편 됐는데 물어보면 알려주지 않으려나.』

       『시라바야시 상이 물어봐도 아버님은 알려주시지 않을 거예요. 시라바야시 상은, 아직 아버님의 신뢰를 얻지 못했으니까요. 교수들에게 보복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겠지요.』

       『나도 이제 너네 편인데, 내가 그 교수들을 죽이기라도 할까봐?』

       『그렇다고는 하지만, 원한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제2실습장 때에도…….』

       『그건 그렇지. 솔직히 엄청 괘씸해.』

       

       제2실습장에서 있었던 일. 만세운동 때 죽은 학생들을 시체들을 되살려 자기들의 도구로 쓴다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후훗. 교내 아공회 소속 교수들도 불안해하고 있을 겁니다. 자기들이 죽이려던 생도가 갑자기 같은 편이 되었으니, 무척이나 심배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려나.』 

       『예. 게다가 시라바야시 상은, 저의 아버님 뿐만 아니라 그 위의 회장님도 관심을 보인다지 않았습니까? 교수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소홀히 취급받지 않을까 염려해야 할 입장일지도 모른답니다.』

       

       하긴. 내가 교수들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교수들이 나를 걱정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슬슬 들어가죠. 아침조례가 있을 시작입니다.』

       『그러자.』

       

       렌까의 말마따나 슬슬 출석을 부를 시간이 다가왔다. 그렇게 본관 뒷편에서 나가려는데, 렌까가 문득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아. 조금 전에는 농담이라고 했지만, 실은 농담이 아니었답니다.』

       『뭐?』

       『하지만, 겨울에는 서로의 입장이 반대가 될 터……  그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후후후.』

       『……?』

       

       뜬금없이 농담이 아니었다느니 겨울에는 반대가 될 거라느니, 도무지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렌까.

       

       『뭔 소리야.』

       『이렇게요. 잠시, 눈을 감아 보시겠습니까?』

       

       갑자기 눈을 감아보라니. 나는 별 의심 없이 그 말대로 했다. 그러자 가볍게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화륵!

       

       『으악!』

       

       나를 향해,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불길이……! 가 아니라, 후끈하고 뜨거운 열기가 순간적으로 나를 감쌌다가 사라졌다. 내가 깜짝 놀라자, 

       

       『아하핫……』

       

       렌까는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배까지 부여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안그래도 더운데 뭔 짓거리야, 미친 년아!’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사실 정말로 불길이 치솟은 것은 아니라서 살짝 후끈했다가 사그라들 정도였기도 했고. 그냥 분위기 전환 겸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걸까.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눈길로 렌까를 바라보자 렌까는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요? 겨울이라고 생각하면, 좋지 않나요?』

       『재밌냐, 이게.』

       『조선에는, 여름에도 불을 쬐다가 물러나면 허전하다는 속담이 있는데 겨울에는 어떨까요. 아직 멀었지만, 조선의 겨울은 몹시 혹독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오히려 저에게 부탁하게 될 거랍니다? 후후……』

       

       렌까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럼, 또 뵙지요.』 

       

       몸을 홱 돌려 도망치듯이 먼저 자리를 떠나 버렸다. 나는 후끈해진 공기 속에서 땀을 훔치며 그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마음 속으로 렌까의 위험도를 상향조정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시마즈 렌까…… 얘는 미친 년이 맞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새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현재 작중 배경도 마침 지금과 비슷한 6월 중순입니다만, 1939년 여름의 폭염이 그렇게 역사적인 더위였다네용. 독자 여러분들도 다들 더위 조심하세요……!

    그나저나, 오랜만이지용?

    2주간 컨디션 불량으로…… 아니, 이후 전개를 짜내느라 어쩔수없이 휴재를 했습니다만, 연재를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네요. 글 생각하면 할수록 늘어가는 것은 고민 뿐……

    그래도 어느정도 방향은 잡았으니, 오늘은 우선 한 편만 올립니다마는 다음주부터는 쭉쭊 성실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다음주 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당! 즐거운 주말 되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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