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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전서구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은 의뢰를 완료했다고만 적혀있었다. 나는 프란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에도 몰래 빠져나가야겠죠?”

       “그래야겠지.”

         

       뭐, 금방 다녀올 테니 상관없겠지. 지금 프란체에게 용건이 있는 사람은 없을 거 같고.

         

       “헬레나한테 말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나는 나갈 준비나 하고 있을게.”

         

       나는 방문을 열었다. 헬레나는 문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헬레나.”

       “네, 넷?!”

         

       화들짝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헬레나.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잠시 안으로 들어와라.”

       “네? 무슨 일이세요?”

       “그런 게 있으니까 빨리 들어와.”

         

       헬레나가 눈치를 보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문을 닫으며 헬레나를 쏘아보았다.

         

       “헬레나.”

       “네?”

       “공녀님께서 잠시 외출하실 거다.”

       “어, 그러면 소 공작님께…….”

         

       나는 말 없이 헬레나를 노려보았다.

         

       “말씀드리면 안 되겠죠……?”

         

       눈치가 빠르군.

         

       “그래. 금방 다녀올 테니 혹시라도 누가 찾아오면 시간 좀 끌고 있어.”

       “시간을 끌라고요? 어떻게요?”

       “그건 네가 알아서 잘 생각해야지.”

         

       헬레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알아서 핑곗거리는 생각해두고. 잘 부탁한다. 절대 우리가 나갔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에에…….”

         

       그렇게 곤란한 표정을 지어도 바뀌지 않는단다.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행방불명인가요…?”

       “잘 알고 있네.”

       “허, 헉!”

         

       헬레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 잘 부탁한다. 절대 들키면 안 돼.”

       “네, 네!”

         

       헬레나가 황급히 방을 나갔다. 저렇게 순진해서야 이 험난한 공작가에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쯧쯧.

         

       뒤돌아서 프란체를 바라보니 움직이기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프란체가 중얼거렸다.

         

       “또 벌어진 철창 틈으로 들어가야겠네.”

       “거기는 이제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뭐? 그럼 어떻게 나가?”

         

       나는 프란체를 들어 안았다.

         

       “뭐, 뭐 하는 거야?”

       “꽉 잡으세요.”

       “어떻게 하려고!?”

       “창문에서 단번에 철창을 넘을 겁니다.”

         

       프란체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정신이야? 그런 게 가능해?”

       “소드 마스터에게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나는 창틀에 발을 걸쳤다. 프란체는 양팔을 내 목에 걸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저번처럼 되는 건 아니지…?”

       “그때보단 느릴 테니 걱정마세요.”

         

       흐읍.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폐가 팽창하며 다리 근육이 올라온다. 타앗! 창틀을 부수면 안 되기에 저번보다는 가볍게 뛰었다. 그렇게 우리는 허공을 날아가며 철창을 넘었다.

         

       털썩! 안전하게 착지까지. 혹시라도 누가 있을까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정문 쪽이 아니라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됐어요.”

         

       나는 프란체를 내려놓았다.

         

       “후우. 이건 언제쯤 적응하려나.”

       “금방 적응하실걸요.”

       “참.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놓고 태연하구나.”

       “얘기는 걸으면서 합시다. 시간이 없어요.”

         

       프란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셀다스 프레이아를 만나기 위해 술집으로 향했다. 프란체가 가는 길에 물었다.

         

       “그런데 정말 카자르 유플레인이라는 사람이 내가 마법을 사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니?”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카자르 유플레인은 게임에서 굉장히 유능한 마법사였다. 보조 마법이 특기인 그는, 없으면 파티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필수적인 캐릭터였다.

         

       마력에 대한 재능도 탁월하고 마법적 지식도 많은 그는 게임 중반부부터 참여하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혼자서 마법을 연구하고 있을 시점일 거다.

         

       프란체에게 수학을 어느 정도 가르쳐줬으니 카자르에게 마법을 배우는 건 금방이겠지.

         

       “근데 그 사람에게 어떻게 배우지? 공작저 안으로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너는 항상 그렇게 넘어가더라.”

       “그럼 진짜인데 어떻게 대답합니까.”

         

       눈을 얕게 뜨고 나를 응시하는 프란체. 그렇게 쳐다봐도 나올 건 없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저번에 왔던 술집 앞에 도착했다.

         

       “잠시만 기다려.”

         

       프란체가 품안을 뒤적거리며 싸구려 토끼 가면을 꺼내 썼다. 왜 항상 저 가면이야? 다른 가면도 있을 텐데.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 토끼 가면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프란체는 검지로 가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내가 처음 공작저를 탈출했을 때 구매한 가면이야. 내게는 의미가 깊은 가면이지.”

         

       음, 기념품 같은 건가. 그럼 인정이지.

         

       “궁금한 건 풀렸니?”

       “예.”

       “그럼 들어가자.”

         

       딸랑-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술집의 문이 열렸다. 시선이 우리에게 몰리더니 내 얼굴을 확인하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내가 저번에 살기를 뿌린 덕이겠지.

         

       나는 프란체를 데리고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원은 곧장 우리를 알아봤다.

         

       “마스터께서는 안쪽 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프란체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접수원을 굽어봤다. 토끼 가면 말고도 사교계에서 사용했던 가면까지 쓴 모양이다.

         

       안쪽 방으로 들어서자 셀다스 프레이아를 만날 수 있었다.

         

       “금방 찾아왔군.”

       “그래.”

         

       프란체가 소파에 앉았다. 셀다스 프레이아는 고개를 꺾으며 다리를 책상 위로 올렸다. 시건방지게 꼰 다리가 심기를 거스르게 만든다. 싸가지 없는 놈.

         

       “그럼 곧바로 의뢰 결과를 말해주지.”

         

       셀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뒤에 걸린 큰 지도에 한 곳을 가리켰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시골이었다.

         

       “여기가 카자르 유플레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자세한 건…….”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봉투를 가리켰다.

         

       “이 봉투 안에 그의 정보가 다 들어있다.”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이곤 셀다스를 굽어봤다,

         

       “의뢰를 진행하는 속도가 빠르군.”

       “엑시드 정보상을 무시하지 말라고.”

         

       셀다스 프레이아는 백작가의 후계자이면서도 암흑 길드를 운영하고 있다. 암흑가에서도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귀족.

         

       내가 그를 포섭해야 하는 이유는 압도적인 정보력도 있지만, 나중에 있을 사업에 관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사업은 시작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셀다스가 말했다.

         

       “그래서, 이제 보수를 받고 싶은데. 내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었지?”

         

       힐끔. 프란체가 나를 살며시 올려다봤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고,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프란체가 대답했다.

         

       “너라면 저번에 엘다스 후작가에서 파티가 열린 건 알고 있겠지? 내가 그 파티에 참여했다는 건 알고 있을 테고.”

         

       셀다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파티에서 영식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단다. 정보상으로 유명한 엑시드의 정체가 셀다스 프레이아가 아니냐는 소문.”

         

       가면의 틈새로 보이는 찌푸려진 눈살. 상당히 불쾌한 듯했다.

         

       “그럼 고작 소문으로 들은 걸 혹시나, 싶어 찔러봤는데 내가 미끼를 물었다는 건가?”

       “그런 거지.”

         

       셀다스가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제대로 한 방 먹었군. 정체가 들통났다는 생각에 너무 급해진 모양이야. 그냥 잡아뗐으면 되는 문제였는데.”

         

       그러게 왜 그랬어. 근데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완벽하게 정체를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충격이 크겠어.

         

       셀다스는 깍지를 낀 채 책상에 팔을 걸었다.

         

       “그 소문을 퍼트린 영식에 대해선 알고 있나?”

       “그것까지는 알려줘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이것 참 능구렁이 같은 손님이시군.”

         

       가면 틈새로 눈을 얕게 뜬 게 보였다. 저것은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의미다.

         

       “그래, 보수는 그걸로 됐어.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그럼 이제 끝인가? 돌아가도 되겠지?”

       “아니. 아직 용건이 남아있어.”

         

       묵직해진 셀다스의 목소리.

         

       “사업에 관한 얘기다.”

         

       프란체가 슬쩍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사업에 관한 내용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사업이라, 아직 완벽하게 준비하진 않았어.”

       “구상 단계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셀다스가 턱을 어루만졌다.

         

       “구상 단계라도 괜찮으니 들어볼 수 있겠나?”

       “의복으로 사업을 열 거야.”

       “의복? 어려운 길을 가는군.”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게임의 모든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숨겨진 루트를 제외하고 모든 루트를 공략했던 나는 이 세계에서 어떤 사업이 적합한지,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굳이 의복 사업을 고른 이유가 있지.’

         

       지금 시점에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장인이 존재한다.

         

       그 장인은 스토리 중반부부터 서브 퀘스트로 만날 수 있는데, 그때 도와주면 제국 최고의 의상 제작자로 거듭난다.

         

       그 장인만 먼저 데려올 수 있다면 의복 사업에는 문제없을 거다.

         

       “어려운 길이라, 그건 네가 상관할 바 아니니 됐어.”

       “그런가. 자신감이 넘치네. 아직 사회의 쓴맛을 보지 못해서 그런가?”

       “사업 하나 실패한다고 해서 흔들릴 집안이 아니라서 말이야.”

         

       문제는 공작에게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점이지만.

         

       “그래서, 사업에 관해서 내게 맡길 의뢰는 뭐지?”

       “의복 사업에 적합한 부지를 찾는 것. 그리고 그 땅을 값싸게 매입하는 것.”

       “많이 어려운 문제인데. 부동산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그래서 여기에 의뢰하는 거 아니겠어?”

         

       피식. 셀다스가 웃었다.

         

       “한낱 정보상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네.”

         

       너는 한낮 정보상이 아니잖아. 나는 다시 프란체에게 속삭였다. 눈이 동그래진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그게 사실이냐는 눈빛.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프란체는 다시 셀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정보상이라고 위장할 생각이지? 네가 암흑 길드를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어.”

         

       가면 틈새로 보이는 휘둥그레진 눈. 적지 않게 당황한 셀다스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군.”

       “이미 알고 있으니 잡아 떼도 소용없어.”

       “쯧. 정보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왜 여기를 찾아오는 거야?”

         

       셀다스는 혀를 차며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휘젓곤 말을 이었다.

         

       “그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사업은 언제 시작하는 거지? 대가는 뭘 줄 거고.”

       “대가는 다음에 얘기하고. 사업이 시작되는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카자르 유플레인을 찾은 것과 관계가 있나?”

       “그것도 대답해줄 이유는 없는 거 같네.”

         

       그래, 잘하고 있다. 셀다스는 저렇게 호기심을 계속 자극해줘야 하는 놈이니까.

         

       “쯧. 전부터 까다로운 손님이로군.”

       “일단 사업에 관해선 이 정도만 알아둬. 정식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다시 찾아올 테니까.”

       “그래. 아, 만일 내 정체를 함부로 까발리는 날에는…….”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이렇게 좋은 거래처가 생겼는데 그걸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잖아?”

         

       셀다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이군.”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굽어봤다.

         

       “그럼 이만 자리를 비우지.”

       “그래. 다음에 올 때는 극진히 모시도록 하지.”

         

       그렇게 우리는 술집을 나왔다. 공작저로 돌아가는 길에 프란체가 물었다.

         

       “그런데 의복 사업은 어떻게 된 거야? 제국에서 의복 사업은 정말 힘들다는 거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아마 그때 가서 보시면 공녀님도 납득하실 겁니다.”

       “그래… 너한테는 다 생각이 있겠지. 나중에 나한테도 알려주지 않으련?”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잠시 후.

         

       공작저에 도착했다. 나는 프란체를 안은 다음, 철창을 뛰어넘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창문을 열어둔 덕분에 들키지 않고 저택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후우. 머리 아프네. 매번 이렇게 다녀야 한다니.”

       “걱정 마세요. 금방 익숙해질 테니까.”

         

       나는 다시 창틀에 발을 올렸다.

         

       “어디 가려고?”

       “계획의 핵심이 되는 카자르 유플레인을 데리러요.”

         

       내 목적을 위해선 카자르 유플레인이 있어야만 한다.

         

       프란체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목적도 있지만, 언젠가 이 제국의 산업 자체를 바꿔버릴 계획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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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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