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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익숙한 맛으로 나를 감동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신소희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히려 내가 보여준 진심 어린 반응이 이전의 과장된 감탄보다 훨씬 그럴듯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것으로 한 가지 확실하게 알긴 했다. 나는 절대로 연기는 해선 안 되겠다는 거.

       

       비록 내 속내를 모르는 신소희이긴 했지만, 만족한 표정을 봤으니 다행이었다. 그나마 마지막에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음식이 나와서 살았다.

       

       물론, 이미 이전에 한 입씩이라도 이것저것 먹어버린 나는 떡볶이를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다만, 신소희의 개인적인 투쟁이 끝난 것을 보고 안심한 나와, 어쨌거나 자신이 이겼다는 것에 안도한 신소희와는 달리 아직 여전히 엄청나게 찝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유하늘이었다.

       

       물론 유하늘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신소희에게 자신이 부자라고 속인 것과 비슷한 모양이 되어버렸으니까. 실제로는 오늘 먹어 본 음식을 전부 한 번씩은 맛봤을 평범한 서민 가정의 아이였으니,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여주겠다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 신소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만도 했다.

       

       결국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눈을 반짝이고 있던 이수아나 정말 오랜만에 먹은 추억의 맛에 감동한 나와는 다르게, 유하늘은 어딘가가 몹시 켕기는 표정으로 떡볶이를 천천히 씹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신 말해주는 건 안 될 일이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도 그림이 이상하게 될 테니까.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식사도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포크를 놀리는 소리만 들렸을 뿐.

       

       역시 모인 아이들이 십 대들이라서 그런지, 내가 1인분을 다 먹지 못해도 떡볶이가 남는 일은 없었다. 여기 있는 아이 중에서 특별히 살이 찐 아이들은 하나도 없는데 대체 저 많은 음식이 어디로 다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뭐, 남는 음식이 없다는 것은 딱히 나쁜 일은 아니긴 하다만.

       

       결국 건더기는 다 먹고 소스만 남은 접시를 보면서, 나는 내심 감탄했다.

       

       *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이수아와 유하늘이 돈을 내겠다고 해도 기어코 자기 돈으로 계산하고 나온 신소희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때, 이 정도면 꽤 괜찮지? 나중에 또 오고 싶지?”

       

       “그러게, 또 올 수 있으면 좋겠네.”

       

       이건 진심이었다. 애초에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맛이었으니까. 너무 자주 오면 그건 그거대로 질리겠지만, 가끔 생각날 때 한 번씩은 충분히 올만 했다. 내가 또 하굣길에 다른 쪽으로 새었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오늘 먹었던 거 전부 맛있었어.”

       

       정작 ‘서민 음식 먹고 감동한 아가씨’ 포지션은 이수아였다. 나는 마지막 메뉴인 떡볶이에만 감동했지만, 이수아는 오늘 먹는 내내 눈을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혹시 얘는 먹는 것이 취미인 것은 아닐까 하고 고민이 되었을 정도로.

       

       “오늘도 얻어먹었으니, 다음에는 내가 살게. 나도 이 동네에서 꽤 오래 살아서 여기저기 아는 곳이 많으니까.”

       

       “그, 그래?”

       

       이수아가 적극적으로 나서 그렇게 말하자, 신소희는 조금 당황했다.

       

       “응! 대접받았으면 그만큼 대접을 해 줘야지!”

       

       이수아는 지난번에 내 저택에서 식사했을 때도 비슷하게 반응했었다. 받은 것은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건전한 사고방식이로군. 언제나 올곧아 보이는 것은 그저 외모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원작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조연으로 등장할 때나 본인이 공략 대상이 되었을 때도 철저하게 착한 역할이었으니까.

       

       친구 하나 없어서 졸업식 때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을 뻔한 예사라에게 일부러 다가와 말을 걸어줬을 정도로 착했으니,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다만, 신소희는 그 말을 듣고 식은땀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 이수아도 부잣집 아이였으니까. 분명 뭔가 ‘산다’라고 하면 결코 싼 음식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알고 있는 곳’이라는 말은 그냥 ‘아, 이 동네에 순대국밥 잘하는 곳 있는데’와 의미는 같았지만, 장소의 급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한 끼에 부담스러운 가격을 자랑하는 고급 식당일 수도 있고, 비싼 호텔에 딸린 뷔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겉모습과는 다르게 이수아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신소희도 ‘대접받았으니 대접한다’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나한테 식사 대접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부담스럽겠지.

       

       그렇다고 저렇게 순수하게 웃으며 말하는 걸 거절할 수도 없을 거다.

       

       아무래도 이렇게 번갈아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한동안 계속될 모양이었다.

       

       “아, 그…….”

       

       그리고 그때까지도 마음이 편치 않은 듯 보이던 유하늘은, 결국 입을 열었다.

       

       “미안!”

       

       그리고 갑작스럽게 신소희에게 고개를 푹 숙이면서 그렇게 소리쳤다. 길가를 가던 사람 중 몇 명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아, 깜짝야. 뭐, 뭐야?”

       

       그 소리에 놀랐다가,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을 느끼고 조금 쪽팔렸는지 얼굴을 살짝 붉힌 신소희가 물었다.

       

       “아니, 그, 있잖아…….”

       

       유하늘은 잠시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망설이듯 양손 집게손가락을 마주하고 신소희의 눈을 피하다가, 겨우 결심했는지 눈을 꾹 감고 말했다.

       

       “사, 사실 나는, 오늘 먹어 본 음식 전부 자주 먹었었어!”

       

       “…….”

       “…….”

       “…….”

       

       침묵.

       

       나는 유하늘을 만나기 전부터 유하늘이 어떤 캐릭터였는지 알고 있었기에 뭐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이수아는 함께 다니면서 유하늘이 서민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아니, 사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유하늘이 외부에서 들어온 장학생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으리라.

       

       물론 학교도 다르고, 이제 만난 지 이틀째인 신소희는 본인이 말해주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는 방법이 없었을 테고.

       

       “어…… 그러니까.”

       

       “난 외부 입학으로 들어간 장학생이야. 미안!”

       

       “아니, 아니, 잠깐만. 가만 있어 봐.”

       

       신소희는 머리 아프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사실 부잣집 아가씨가 아니라 외부에서 입학한…… 그러니까, 평범한 가정에서 사는 애라고.”

       

       “응.”

       

       유하늘이 엄청나게 죄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신소희는 그런 유하늘을 보고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왜 그런 걸로 사과하냐?”

       

       “어?”

       

       “내가 너를 뭐라고 생각했건, 그냥 착각이면 착각인 거고, 오해이면 오해인 거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 할 필요는 없잖아.”

       

       신소희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말했다.

       

       ……표정만 보면 찐따 갈구는 일진의 구도이긴 했지만, 대화의 내용은 너무 착해서 좀 인지부조화가 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 하지만, 음식으로 우리를 놀래주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래서 놀랐잖아. 쟤는.”

       

       신소희가 엄지로 나를 척 가리키며 말했다.

       

       “어?”

       

       여전히 벙찐 표정인 유하늘이 다시 한번 그런 얼빠진 소리를 냈다. 신소희는 한숨을 푹 쉰 다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아무리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해도 말이야. 그런 대저택에서 살 정도의 부자는 잘 없지 않아? 보통은 넓은 고급 아파트나 비싸 보이는 단독주택에 사는 정도 아닌가? 게다가 쟤가 사는 거기는 그…… 뭔 문화재인가 그렇다며.”

       

       “등록문화재.”

       

       “그래, 그거.”

       

       내가 옆에서 살짝 알려주자, 신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쟤 정도 되는 부자니까 서민 음식은 먹어보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거거든? 솔직히 부자라도 걸어서 통학하면 길거리 음식 정도는 먹어본 적 있겠지.”

       

       그 말에, 옆에서 이수아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수아는 길거리 음식 몇 개 정도는 이미 먹어봤다는 듯한 눈치를 보였었다.

       

       “그리고 사는 곳이 아파트 같은 곳이면 더더욱 친구들이랑 여기저기 다녀봤을 거고. 아무리 그래도 쟤처럼 만화 캐릭터처럼 사는 인간이 그렇게 흔하겠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너도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금태녀 아니냐.

       

       물론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서 굳이 분란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뭐. 그런 거로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입을 헤 벌리고 신소희를 빤히 바라보는 유하늘의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신소희는 시선을 살짝 피하면서 말했다.

       

       한동안 그 표정 그대로 멍하니 신소희를 바라보던 유하늘은,

       

       “너, 진짜 좋은 애구나…….”

       

       하고 감탄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거기서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오는데.”

       

       신소희는 기겁했다.

       

       “좋은 애 맞긴 해.”

       

       하지만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아, 금태녀 놀리기라니, 참을 수 없지. 물론 유하늘은 놀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맞아. 좋은 애.”

       

       우리 둘이 말하는 것을 보고 이수아도 참전했다. 물론, 아마 이수아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 거다.

       

       얼굴에서 빛이 쏟아지는 인물이랑, 은은하지만 신소희보다는 강한 빛이 나오는 두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조금 분위기가 묘하긴 했지만. 뭐, 어차피 저 빛은 나한테만 보이는 빛이었으니까.

       

       “이익, 하지 마. 너희들, 진짜로 하지 마라.”

       

       신소희가 어두운 길거리에서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얼굴을 붉힌 신소희가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 이상 놀렸다간 진짜로 화낼 것 같아서, 나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내도 무섭다기보단 귀여울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지, 게임에서 손이 맵다는 이벤트가 있었으니까.

       

       *

       

       “…….”

       

       어제보다도 더 늦게 들어간 탓인지, 오늘은 아예 양혜인이 대문 앞까지 나와 있었다. 외출할 때면 메이드복 위에 걸치는 검은 코트를 입은 채, 배꼽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자세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양혜인의 모습은 솔직히 조금 무서워 보였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인상의 사람이었으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양혜인은 나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아, 네.”

       

       그 분위기에 조금 압도되어서,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돌아보니, 분위기에 압도된 것은 나 하나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 셋을 집 안으로 또 들여보내는 것은 조금 그럴 것 같아서, 나는 이쯤에서 인사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배웅해줘서 고마워.”

       

       “너같은 길치를 어떻게 그냥 두겠냐.”

       

       마치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보겠다는 듯 너스레를 떨며, 신소희가 말했다.

       

       “오늘 고마웠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신소희는 순간 말이 막혔다가, 이내 크흠, 하며 크게 기침하고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

       

       “그, 그렇게 마음에 들었으면, 뭐. 다음에 또 같이 가 줄 수도 있고.”

       

       아주 교과서적인 츤데레라서 기분 좋아질 정도였다.

       

       “너희 둘도. 오늘도 같이 다녀줘서 고마워.”

       

       “고마울 거 없어. 좋아서 같이 다니는 거니까.”

       

       유하늘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맞아. 좋아서 다니는 거니까.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지.”

       

       이수아도 지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세 사람에게 한 번씩 웃어 보이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안녕, 내일 보자.”

       

       그리고 그렇게 말하곤, 뒤로 돌았다. 양혜인은 저택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의 뒤에 따라붙었다.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세 사람이 걸음을 돌리는 소리는 한참이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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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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