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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진짜 하나도 도움이 안 되네.”

         

         시야에 열려 있던 수백… 거의 천개 가까이 되는 네트워크 창들을 모조리 닫아버린다.

         결국 장장 한나절을 통째로 투자한 사이버웨어 업그레이드 시도는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온갖 인간군상이 만연한 도시 메인 네트워크도 둘러보고, 블랙 마켓에서 판매하는 엄선된 프로그램들도 확인해봤는데… 그중 어느 것도. 도시 바깥에서 지내면서 나름대로 마개조한 내 사이버웨어만큼 깔끔하고 효율적이지 않았다.

         

         여기서 더 강해지거나 외부의 위험에 대비하려면 역시 추가적인 시술을 받아서 몸 자체를 바꾸든지, 외부 장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 이유는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최첨단 슈트와 총, 기본 임플란트까지 준비해준 박사가 좋은 사이버웨어를 제공한 걸 수도 있고, 네오 헤이븐의 인터페이스를 참고해서 바꾼 게 잘 먹혔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아직 날짜가 원작보다는 훨씬 과거인 만큼 발전이 더딘 걸지도…?

         

         띵…!

         

         로비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묘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는 접수대 직원 씨의 눈을 피해, 로비 한 켠에 마련된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멘과 도미노의 옆자리에서 가서 착석했다.

         

         “……? 의외로군. 그 녀석한테 잔뜩 시달려서 늦을 줄 알았는데.”

         

         “…잔뜩 시달려?”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본 도미노가 손으로 이상한 제스처를 취했다.

         한 손으로는 고리를 만들고… 다른 손가락을 막 넣었다 뺐다 하는 그런 오묘한….

         

         “?! 미쳤어?! 그딴 짓은 안 했어!! 그냥 단순히 하소연에만 어울려준 것뿐이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음담패설에 정말로 식겁했다.

         집단과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기본인 세상이니, 만나는 모든 사람이 할아버지나 슈나이더 씨네처럼 교양인이길 바랄 수는 없지만…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아니나다를까, 오멘은 내 말의 뒷부분만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꾸해왔다.

         

         “하소연…? 흥! 입 싼 데어데블이 뭐라고 떠들었나 본데… 미리 말해두지. 나는…! 놈과는 달리 빈민가에 특별한 애착이 없다. 오히려 경멸하지! 그저 자기들보다 더한 바닥이 있다는 사실에 자위하며, 주어진 밥그릇이나 핥느라 바쁜 하루살이 짐승들….”

         

         “…….”

         

         말꼬리를 흐린 그는 착용한 마스크를 연신 매만졌다.

         이건… 진심으로 경멸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어두웠던 환경과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이 그의 감정을 애증으로 비틀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증거로 건너편에 앉은 도미노도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겉모습은 무슨 백전노장이면서, 호레이쇼나 이들이나 뒷세계에 한 발 걸친 용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센티멘탈 한 게 조금 우스웠다.

         무례한 태도나 극악무도한 소문과는 별개로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일면을 발견한 걸지도……. 잠깐만.

         

         “……오멘? 도미노? 너희들, 몇 살이야.”

         

         “? 23살이다. 그리고 작전 중 호칭은 닉네임으로 통일하도록 하지, 아이보리.”

         “나는 22살. 오멘이 투덜거리는 건 반은 흘려들어도 돼.”

         “…닥쳐라, 녹턴.”

         

         ……시발. 황망함에 나도 모르게 눈가를 꾹 눌렀다.

         액면가는 기본으로 30, 40은 깔고 들어가는 애들이 진짜로 나보다 연하라니…? 세상살이의 가혹함을 탓해야 할지, 약물과 저거너트 개조시술의 부작용을 탓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데어데블 씨? 넌 몇 살이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느새 소파 뒤로 다가와서 자기도 물어봐 달라고 손을 파닥거리는 호레이쇼에게 질문했다.

         

         “엣헴…! 팀의 최고 연장자인 이 몸은… 무려 24살! 아, 누님은 여전히 누님이니까 걱정하지 마!”

         

         “……난 27이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해줘.”

         

         “예입!!”

         

         화들짝 놀란 그들의 반응이나 표정도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듬직했던 용병 팀원들이 한순간에 파릇파릇한 대학 새내기나 이제 갓 전입해온 신병으로 보이는 기분은… 아무도 이해못할 것이다.

         

         …이제부터 그 동생들에게 보호받으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면 더더욱…!!

         

         

         

         우우웅…! 하고, 거대한 플랫폼처럼 생긴 승강기가 움직인다.

         원래는 지표면에 가까운 곳에 사는 옐로우나 그린 등급 시민권자들이 위쪽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고 퇴근할 때 이용하는 시설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집결한 용병들과 현장을 확인하러 나온 브로커들로 가득했다.

         

         우리 팀처럼 개성이 흘러 넘치는 용병들도 많았으나, 영화에서나 보던 특수부대 마냥 통일된 제복과 총기로 무장한 이들도 다수.

         각자가 아군을 확인하듯 서로 힐끔거리기만 할 뿐, 옐로우 섹터에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었다.

         

         쿠궁—!

         

         승강기가 멈추자 빽빽하게 탑승하고 있던 위험인물들이 전부 내리고, 나는 여지껏 멀리서만 본 ‘밑 동네’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위쪽 건물들을 휘감고 있던 환락의 보라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에 그 자리를 차지한 건 회색의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들. 그리고 벽면을 빼곡하게 차지한 별의별 크기와 색깔의 간판 군세.

         

         거기에 밤의 어둠, 여러 전자기기와 홀로그램의 불빛까지 더해지니 그 풍경은 흡사… 못 본지 너무나 오래된 것 같은 서울의 야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새빨간 십자가만 몇 개 추가하면 정말 딱 일터인데 아쉽다.

         

         “무슨 문제 있나, 아이보리?”

         

         “…아니, 없어.”

         

         아까 전에 호텔에서 나이를 들은 뒤로,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나를 배려하기 시작한 오멘이 플랫폼에서 내리지 않고 머뭇거리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 다른 건 몰라도 심각할 정도로 차이나는 보폭을 신경 써주는 건 조금 고마웠다.

         

         “…씨발. 형식적인 거주지 조사라더니… 이건 본격적인 전쟁이잖아…?”

         “야! 아까 경찰들이 통제선 만든 곳이 어디야! 설마 우리집도 포함된 건 아니겠지?!”

         

         우르르 몰려가는 용병 무리를 본 행인들이 수군거리면서 물러난다. 몇몇 눈치 빠른 가게들은 있던 손님도 쫓아내고 문을 걸어 잠궜다.

         

         저 앞쪽에 차량과 철책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작전구역으로 용병들만 들여보내는 전투경찰들이 보였다.

         주변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구르는 주민들이 한가득. 무법자들에게 공격당한 정착지에서 느꼈던 을씨년스러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초조한 공기가 느껴졌다.

         

         “!! 제 시간에 맞춰서 왔군!”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이미 수주한 의뢰를 무단으로 때려치우진 않아. …설령 그게 좆 같은 메가 코프의 의뢰라 해도.”

         

         데어데블이 이를 갈거나 말거나, 통제선 바로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브로커가 재빨리 출입을 통제하는 전투경찰에게 고용 현황을 보여주고 통과시켜줄 것을 재촉했다.

         

         “…그러신다고 딱히 절차가 빨라지진 않습니다. 어디… 호레이쇼, 도미노, 오멘. 그리고……?”

         

         건네받은 정보와 실물을 비교하다 말고, 패드에서 눈을 뗀 경찰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왠지… 어디선가 겪어본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사이버 엔지니어가 오기엔, 상당히 험악한 자리라고 생각됩니다만….”

         

         “……?”

         

         이게 대체 무슨 뜬금없는 말일까. 근처의 용병들과 브로커 씨가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데도 경찰은 오직 나만을 바라본 채로 말을 이었다.

         

         “…안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부디 주의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안위를 신경 쓰는 사람이 적어도 둘은 존재하니까요.”

         

         “어… 감사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통제선을 통과한다. 옆에서는 팀원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절한 경찰을 만나봤다면서 어이가 없어 한다.

         

         “후우…!”

         

         이상한 경찰로 인해 살짝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다.

         마약조직 페인킬러의 본거지는 옐로우 섹터의 브라이트사이드(Brightside) 대로에 있는 건물들 중에 있는 걸로 추정된다고 파일에 적혀 있었다. …기업이 친히 관심을 보인 일 치고는 조사가 꽤나 느슨하다.

         

         작전개요도 나사가 좀 빠져 있었다.

         무력화 단계, 제압 단계, 회수 단계. 총 3공정으로 단숨에 일을 진행해서 불필요한 자산손실을 방지하겠다고 했는데, …그 의문은 브라이트사이드 대로에 도착하자 역으로 증폭되었다.

         

         [ 작전구역 도착. 해커가 포함된 회수팀은 무력화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대기해 주십시오. ]

         

         씨발. …불길한 통신이 들어온다.

         

         밝은 이름과는 다르게 여기 있는 건물들은 몹시 어두컴컴했다.

         벽에 기댄 채 땅에 널브러진 약쟁이들이나 인근을 포위한 병력들을 불안하게 노려보는 양아치들이 없었다면 폐건물이라고 착각했을 법한 외관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위이이잉…!!

         

         …파라다이스에서 준비한 건 용병만이 아니었다.

         소름 끼치는 기계음과 함께, 미리 도착해 있던 엑사테크제 이동형 포탑들이 가동한다. 연구소에 설치돼 있던 것보다는 화력이 약한 모델이 분명했으나, 절대 이런 곳에서 굴릴 만한 장비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도 안된다.

         

         이 사회에서 마약을 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정면에서 설마… 하는 표정으로 덜덜 떨면서 버티고 있는 깡패들도 증거가 없는 이상 불법 조직에 가담한 범죄자가 아니었고.

         경찰들이 통행을 제어했다고는 해도 안에 무고한 주민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대로 다 죽여버리는 걸 ‘무력화 작업’ 이라고 당당하게 이름 붙였을 리가 없다. 그건 너무…… 너무…!

         

         

         [ 무력화 작업 개시. 조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시민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아…….”

         

         탄식과 함께 무자비한 섬광이 시야를 가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콩콩이루시안 님의 20코인 후원…!
    batch 님의 25코인 후원! 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오늘도 라면에 떡사리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설명없이 일부 사이버펑크 용어가 난무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는 꼭 글만 읽으셔도 불편함이 없도록 묘사와 설명에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추후에 연구소 파트를 수정해서 단어설명을 추가하겠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임플란트 = 몸 안에 들어가는 기계 부품
    사이버웨어 = 임플란트나 뇌 속에 설치해서 휴대하는 모든 프로그램이나 툴
    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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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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