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

    군인들이 잔뜩 경계를 서고 있는 주차장에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탑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차량의 위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뭔가가 잔뜩 쓰여 있었다.

    그 차량의 운전석이 열리자, 그곳에서 후배가 튀어나와 큰 소리를 외치며 달려왔다.

    “선배! 저 왔어요!!”

    “그래, 잘 들리니까. 소리 지르지는 말고.”

    여전해 보이는 후배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났다.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아서, 후배에게는 꼭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맡겨두었다.

    시간이 상당히 촉박했을 텐데 이정도면 상당히 우수한 일처리다. 

    후배가 나온 탑차의 화물칸이 열리자, 갑자기 짙은 피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육중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등장한 것은 거대한 크기의 사람이었다. 

    저런 대형 탑차의 화물칸이 아니라면 차량에 탈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사람.

    키가 거의 3m는 될 법한 거인.

    더욱더 대단한 점은 키만큼이나 벌크업되어 있는 거대한 근육이었다.

    빵빵한 근육과는 달리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그 늙은 나이를 짐작케 했다.

    “할아범은 전보다 더 커졌구만.”

    오른 손에는 거대한 석장, 왼손에는 커다란 책, 목에는 염주. 

    하고 다니는 꼴은 스님 같지만, 사실 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노인네다.

    사실 노인의 얼굴을 보면 스님 같은 느낌을 받기 힘들다.

    왜냐면 커다란 대못이 눈에 빼곡하게 박혀있으니 말이다.

    그는 딸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눈에 대못을 박아 넣었다.

    ***

    나는 노인네에게 지낼 곳을 안내해주었다.

    “영감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다.”

    노인은 곧 있을 내 계획에서 꼭 필요한 핵심 인사 중 한명이었다. 

    수색이 실패로 끝났을 때를 대비한 보험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노인네가 가진 오브젝트는 사용할 때마다 위험하지만 노인은 흔쾌히 내 의뢰를 받아 들였다.

    아마 예전에 딸을 찾을 때 도움을 많이 줘서 그 은혜 갚기로 도와주는 게 아닐까?

    노인이 가진 ‘예지의 서’의 능력은 심플했다. 

    근처에 있는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는 능력이었다. 

    이번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물건을 찾을 때는 완벽한 오브젝트였다.

    책을 사용하려면 양 눈을 대못으로 파괴해야 하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라온다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저 말도 안 되는 덩치도 부작용의 하나였는데, 분명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이어질 게 뻔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책의 사용을 멈추라고 언제나 말하고 있었지만, 노인네가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다.

    물론 왓슨을 계속 들고 다니는 시점에서 설득력이 없겠지.

    ‘예지의 서’는 왓슨과 비교하면 하위호환이라고 할 수도 있는 오브젝트지만, 이번 사건 해결에는 필요했다.

    아마 이번 사건도 왓슨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감이지만 절대로 부탁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부탁이라는 직감이 있었다.

    ‘사건 해결 자체를 왓슨에게 부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 직감을 무시하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서울숲을 돌아다니며 오브젝트를 보고하고 그 포상금으로 먹고 사는 프리랜서부터, 탐색 작업을 주로 수행하던 연구소의 탐색반까지.

    내 영향력이 닿는 만큼 닥치는 대로 손을 빌렸다.

    아쉬운 점은 중앙 연구소 조사반의 검은 양복 녀석을 못 불렀다는 점인데, 요즘 청문회 다니느라 바쁘니까 어쩔 수 없겠지.

    계획은 2가지. 수색을 하는 A와 오브젝트를 사용하는 B다.

    플랜A는 조사와 수색의 전문가들이 행하는 캠프 수색 작업이었다.

    이들의 수색으로 오브젝트가 발견된다면 최선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평범한 수색인 플랜 A는 거의 확실하게 실패할 게 뻔했지만, 당연히 해봐야 하니까 플랜 A다.

    이들도 찾지 못했다면 플랜 B로 넘어가는 수밖에.

    오브젝트의 힘으로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는 ‘예지의 서’ 정도면 확실하게 물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지의 서’의 범위는 넉넉하게 캠프 전역을 커버할 수 있으니 찾지 못할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만약 못 찾는다면? 

    미사일 공격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왓슨에게 부탁해야 하는 걸까?

    ***

    높게 쌓아올려진 성벽 위에서 캠프를 내려다본다.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에 캠프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나비를 만드는 오브젝트를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척 보기에도 그 난이도가 상당했다.

    “와, 저기 이재민 캠프 맞아요? 사람들이 꼭 보초를 서듯이 배치되어있는데요?”

    “그래서 문제야. 침입이 힘들어.”

    소란을 일으키면 ‘이재민 캠프’ 근처에서 기삿거리를 찾는 ‘데일리 오브젝트’ 같은 곳의 기자들이 잔뜩 몰려와서 사진을 마구 찍어댈 것이다. 

    ‘캠프 강제 진압.’, ‘공권력의 탄압’ 이런 기사가 나오게 하지 않으려면 조용하고 신속하게 일 처리를 해야만 했다.

    플랜 0 – 캠프 내의 사람을 최대한 신속하게 모두 생포한다.

    플랜 A – 수색 인원들로 캠프 내를 수색한다.

    플랜 B – 캠프 중앙에서 노인네가 목표 오브젝트를 ‘예지의 서’를 통해서 찾는다.

    “결국 플랜 제로가 성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요?”

    후배는 작전 지도와 계획표를 번갈아 보면서 골똘히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선배, 그냥 다 쏴죽이면 안 돼요? 어차피 생존자 없다면서요? 군인도 있는데 다 쏴 죽여 버리죠!”

    후배가 다시 참신한 헛소리를 시작했다.

    “아! 총이면 소리가 크니까 기자들이 몰려와버리겠네요! 게다가 군인들도 자세한 사항은 모른다고 했죠? 으으, 어쩌지? 방법이 없나?”

    회색 사신에게 나비를 억제할 모종의 수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아직 캠프에서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영향을 미치는 데 오래 걸리는 건가? 

    아니면 회색 사신이 직접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건가?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은 정말 불편하군.

    그러고 보니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회색 사신은 어디로 간 거지?

    ***

    역시 저 탐정들은 내 도움이 없으면 일을 해결하지 못 하는 것으로 보였다.

    중앙 연구소에서 저들에게 직면한 문제가 ‘아귀’였다면 이번에는 ‘나비 감염자’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미 상대가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증명할 수 없어서 인간 취급을 해야만 하는 슬픈 상황이었다.

    탐정과 그 조수의 무의미한 회의를 듣고 있자니 깨달음이 왔다.

    그래, 모두 터트려 죽이면 해결되는 것이다.

    아귀 때처럼 힘들 일도 없다.

    나비 감염자는 내가 건드리면 터져버리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벽도 나름의 쓰임새가 있던 것이다.

    ***

    유령화로 벽을 넘어서 도착한 끝에 발견한 것은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사실상 죽어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데일리 오브젝트’의 기자라고 했던가?

    뭔가 입을 오물대면서 말을 하는 거 같던데, 뭐라고 한 걸까?

    나비 감염자들이 잔뜩 모여서 기자에게 나비를 먹이고 있었다.

    가죽처럼 변한 남자는 순식간에 다시 부풀어 올라 인간의 형상을 다시 취했다.

    중앙 연구소에서 본 것과는 나비들의 행동이 조금 달라보였다.

    좀 더 똑똑하고 끔찍해졌다고 해야 하나? 

    사람 하나 파먹는 속도도 상당히 빨라진 것으로 보였다.

    나비들은 나를 보는 것이 처음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미소를 방긋방긋 지으며, 뚜방뚜방 천천히 걸어가서 톡 하고 건드리자.

    펑하고 터져나갔다.

    물풍선처럼 터진 인간의 자리에는 갈기갈기 찢긴 가죽의 잔해와 피에 푹 젖은 나만이 남아있었다.

    깜짝 놀란 나비 감염체들은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럼 즐거운 술래잡기 시작이야!

    ***

    으아아아아악! 

    저 멀리 떨어진 캠프 한 구석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고 숨을 천천히 쉬었다.

    절대로 들키면 안 돼. 절대로 들키면 안 돼.

    들키면 다시 나비로 돌아가 버려.

    찰박찰박.

    부드러운 발바닥이 바닥의 모래를 천천히 밀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힉”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숨을 삼키는 소리를 내버렸다.

    분명 멀리 있었는데, 분명히 멀리서 소리가 들렸는데!

    통통통.

    작고 귀여운 노크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통통통통.

    노크소리는 점점 빨라져만 갔고, 나는 숨 쉬는 것도 잊고 사신이 제발 지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쾅.

    컨테이너 벽이 뚫리고 작은 사신의 팔이 튀어나왔다.

    “으아아악!” 

    쾅.

    쾅.

    쾅.

    컨테이너 벽이 뚫리고 사신의 팔이 튀어나오길 반복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벌벌 떠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컨테이너에 뚫린 커다란 구멍에서 사신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눈을 황금색으로 빛내는 끔찍한 사신이었다.

    그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나에게는 마치 ‘찾았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으아아악! 살려줘!”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도망쳤다.

    하지만 이 캠프는 4면이 모두 벽으로 막힌 닫힌 공간.

    그 어디에도 도망칠 곳은 없었다.

    괴물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잡힌 나는 핏물로 변해 흩어지는 육신을 나비가 되어 바라보았다.

    ***

    이번 근무지는 편하긴 했지만, 이상한 것투성이었다.

    강철로 된 벽으로 민간인 캠프를 봉쇄하고 철저하게 감시하라는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단단히 주의를 준 것치고는 너무나도 평온한 근무라는 점도 그랬다.

    언제나처럼 조용한 근무지를 뒤로하고 성벽 위 초소에서 내려와 후임과 라면을 끓여 먹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열어줘! 당장 열어! 괴물이… 괴물이 온다! 빨리 열어어어어어!”

    캠프 주민이 철문을 미친 듯이 두들기며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초소 인수인계할 때 들었던 썰이지만, 저런 시도는 상당히 빈번히 있었다고 했다.

    저런 식으로 주의를 끌어서 문을 열게 만들고, 문이 열리면 마구잡이로 뛰어 들어와 바깥으로 탈출하는 시도를 했다고 했다.

    그 뒤로는 어떤 소리가 나든, 무시하는 것이 초소 매뉴얼이 되어버렸다.

    다만 의아한 것은 보통 환자가 생겼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는데, 괴물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핑계였다.

    쿵쿵. 하고 울리던 두들기는 소리는 하나 둘 사라져가더니, 이내 모두 사라져버렸다.

    “뭐야, 역시 별일 아니잖아? 안 그래?”

    옆에 있는 후임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서 확인해보니 후임은 얼굴을 새하얗게 한 채, 입을 벌리고 문 쪽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굳게 닫힌 철문 틈 사이로 걸쭉한 핏물이 쉴 새 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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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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