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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새벽녘부터 루시와 한바탕한 린은 도적 길드 건물 지붕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지하 수도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건물 높이는 발터크루아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상당했다.

         

         

        “내려다 보는 맛이 있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린은 항상 올려다 보는 입장이었다.

         

        아니면 뒷모습을 좇거나.

         

        아르실도, 그녀도, 루시도, 그 외 용사 파티도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해준 적은 없었다.

         

        최근 들어서 루시가 같이 있어주긴 했지만, 여튼간에 옆을 보거나 내려다보는 건 그에게 낯설기만 했다.

         

         

        “경치가 참 좋죠?”

         

        “글쎄, 어디를 집중해서 봐야할 지 모르겠어.”

         

         

        어느새 다가온 정보관은 똑같이 옆에 앉으며 먼 곳을 바라봤다.

         

        린은 놀란 기색을 숨기며 태연하게 맞장구를 쳤다.

         

        왜 래빈이 아니라 이 녀석이 나타나지?

         

        예상과 어긋났다.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 보기 위한 게 아니라구요. 그냥 이 높이에서 보는 풍경 전체를 그림처럼 둘러보는 거에요.”

         

        “음, 설명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눈에 들어오는만큼만 전체를 보라는 거에요.”

         

        “전체라… 도적 길드는 저 안에 있는 소소하고 상세한 정보들을 캐내서 먹고 사는 거잖아?”

         

        “그것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이쪽은 진행하는 스토리가 계속 디테일이 달라져서 죽을 맛이거든.

         

        린은 마른 세수를 하며 아예 하늘을 올려다 봤다.

         

        역시 내려다보는 건 그의 성향에 맞지 않았다.

         

         

        “곁에 있던 여자 분은 어디에 두시고?”

         

        “자고 있어.”

         

        “거짓말.”

         

         

        무슨 자신감으로 단언을 하나 슬쩍 곁눈질을 하자 정보관은 씨익 웃었다.

         

         

        “어제 잠깐 안내하는 동안에도 여자 분 시선이 당신한테서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다구요?”

         

        “낯선 곳에 왔으니 유일한 동료인 날 찾는 거였지.”

         

        “아뇨아뇨아뇨, 낯선 곳에 왔다고 해서 걷는 속도부터 보폭, 거기에 숨 쉬는 템포와 들숨날숨까지 맞춰서 쉬려고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답니다?”

         

         

        루시가 그랬어?

         

        전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왜 새벽에 린한테 섭섭함을 토로했는지는 납득이 갔다.

         

        루시의 관심이 너무 무거운 린이었다.

         

         

        “다퉜어.”

         

        “네에? 두 분이요? 뭐 때문에?”

         

         

        작전을 위해 아침에는 혼자 있겠다고 했더니 바로 거절당했다.

         

         

        ‘작전이라니까?’

         

        ‘무슨 작전인데?’

         

        ‘지난번처럼 혹시라도 주위에 마족이 있는지, 그 외에도 우리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는 확인하는 거야.’

         

        ‘나도 같이 하면 되잖아.’

         

        ‘같이 하는 거잖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 주변 동태를 살펴달라니까?’

         

        ‘그게 어떻게 같이야!’

         

         

        루시는 린의 옆구리로 파고들더니 냉큼 그를 안았다.

         

         

        ‘붙어 있지를 않는데 어떻게 같이야!’

         

         

        입을 삐죽 내밀고 버티기에 들어가버린 루시.

         

        린이 아무리 흔들고 붙들린 채 방안을 걷고 뛰어도 요지부동이었다.

         

         

        ‘루시 왜이리 말을 안듣니.’

         

        ‘린이야말로 왜 날 밀어내려고 하는 건데? 꼭두새벽부터 누굴 만나려고? 방금까지 나랑 껴안고 있다가 굳이? 마침 딱 좋을 때였는데… 조금만 더 했으면 내 혀로 린의 전부 마킹….’

         

        ‘응? 뭐라고?’

         

        ‘…몰라, 나는 싫어. 안 떨어질 거야. 린은 내 거야. 린한테도 내가 전부야. 다른 사람은 필요없어.’

         

         

        래빈과의 새벽 이벤트를 보려면 당장 지붕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린도 필사적으로 루시를 설득했다.

         

         

        ‘루시, 까먹은 거 같은데 우리는 전 동료들한테 쫓기고 있는 입장이야.’

         

        ‘린만 원한다면 그 반대로 만들어 줄 수 있어. 녀석들이 우리한테서 도망치고, 우리가 쫓는 거지.’

         

         

        어림도 없는 소리.

         

        DLC 최종 보스를 잡으려면 용사 파티는 온존해야만 했다.

         

         

        ‘황태녀는 의심이 많아서 제국 곳곳에 눈과 귀를 뿌려두었을 거야. 래빈이라면 분명히 다 파악해 놨을 거고. 거기에 대한 것부터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지인 찬스로 가능한 많이 얻어내야 해.’

         

        ‘그 자리에 내가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루시.’

         

         

        린은 한숨을 쉬었다.

         

         

        ‘어제 너 래빈 뚫어져라 보면서 계속 주먹 쥐었다폈다 한 거 다 알아.’

         

        ‘…그럼 주먹은 안 쓸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래빈에게 얻어야할 황태녀 끄나풀 정보도 중요했지만 슬슬 아르실에 대한 것도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나이드리안의 소원은 이미 실행에 옮긴 지 오래라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아르실의 소원은 미리 준비할 수도 없고 시기적으로도 지금부터 가능했다.

         

        여튼, 소원이라는 명목으로 목줄을 틀어쥔 방패기사로부터 그녀들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황태녀와 방패기사 편에 계속 붙어서 린과 루시를 끝까지 방해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 루시가 도저히 놔주지 않는다.

         

        대화도 안하고 안간힘을 쓰던 린은 눈가가 붉어진 채로 자기에게 매달리려 하는 루시를 발견했다.

         

        힘으로 한다면 분명히 루시가 일방적으로 끌고 다닐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린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맞춰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린은 비장의 수를 내밀었다.

         

         

        ‘루시, 나랑 잠시 떨어져 있게 되는 거니까 잘 참아주면 나중에 루시가 원할 때 둘이서만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할게.’

         

        ‘그런 건 의미없어. 나는 린이랑 늘 함께 있고 싶은 걸.’

         

        ‘어떤 상황에서도 루시가 원하면 바로 단 둘이 있는 거야.’

         

         

        루시는 린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고민했다.

         

        막무가내처럼 보여도 억지를 부려도 되는지 안되는지 재빠르게 계산을 해놓고 움직이는 그녀였기에 린의 제안이 얼마나 파격적인지 알고 있었다.

         

        이윽고, 루시는 조심스럽게 린에게 물었다.

         

         

        ‘얼마나 같이 있을 수 있어?’

         

        ‘음, 지금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그건 싫어.’

         

         

        루시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루. 린과 온전히 단 둘이서만 있는 하루.’

         

        ‘하루?’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같이 해줘야 해. 거부권은 없어.’

         

         

        이미 루시가 고민하고 있던 것만으로도 시간을 다 잡아먹었다.

         

        곧 동이 튼다.

         

        린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알았어.’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손가락까지?’

         

        ‘응.’

         

         

        새끼손가락을 걸며 루시는 환하게 웃었다.

         

         

        ‘안지키면 린 두 다리 부러뜨린 다음에 내가 평생 안고 다닐거야.’

         

         

        극적 타협으로 린은 간신히 지붕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대신 루시는 자신의 마력을 완전히 감추고 근처 어딘가에 매복했다.

         

        작정하고 숨으면 나이드리안도 찾기 힘들어 하는 용사였다.

         

         

        “무작정 다른 여자랑 이야기하지 말라고 뭐라 해서.”

         

        “아하… 굉장히 단순하고 그분다운 이유네요.”

         

         

        하지만 꼬였다.

         

        그를 맞이하러 나온 것은 래빈이 아니라 정보관이었다.

         

        다행이도 린이 질문하기 전에 정보관이 먼저 편지를 내밀었다.

         

         

        “원래는 대장이 먼저 당신을 발견했지만 말이죠. 길드 연합체 사절이 온 바람에 사무실에 붙들려 계세요.”

         

        “이건?”

         

        “위조 신분증 2장, 저어기 여자분 머리칼이 눈에 너무 띄니까 염색약 1개, 그리고 대장이 대충 눈짐작으로 사이즈 재서 구매한 여자 속옥 위아래 세트 5개, 마지막으로 대장이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보내는 의뢰서 하나.”

         

        “의뢰서?”

         

        “밥값을 하라네요.”

         

         

        정보관은 기지개를 피고 하품을 했다.

         

         

        “후으~음! 자 전달할 건 다 전달했으니 전 이만 자러 가봅니다. 어제부터 밤샘이었다구요.”

         

        “아, 잠깐.”

         

         

        짐꾼의 낭을 뒤적이다 작은 스프레이 두어개를 정보관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받아들면서도 정보관은 내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탈취제야. 효과가 굉장히 좋은 탈취제.”

         

         

        본보기로 정보관에게 앞뒤로 직접 뿌려줬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지하 수도 담당인 그녀의 몸에서 코가 시큰해질 정도의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탈취제를 뿌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냄새가 모두 잡혔다.

         

         

        “세상에.”

         

         

        소매에 대고 킁킁거리던 정보관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빨아도 냄새가 안 빠졌었는데….”

         

        “도움이 돼서 다행이네.”

         

         

        정작 탈취제를 건네는 린은 무표정이었다.

         

         

        “고생했어, 정보관.”

         

         

        그러나 정보관은 탈취제를 들고서 린을 빤히 흘겼다.

         

        고양이나 여우가 살짝 얼굴을 빗겨서 보는 요망한 각도였다.

         

         

        “아도라.”

         

         

        정보관은 눈웃음을 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아도라에요. 도적 길드의 정보관 아도라.”

         

         

        그리고는 린이 미처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빙글 뒤를 돌았다.

         

         

        “탈취제 고마워요, 린 씨.”

         

         

        흐느적흐느적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이제보니 아도라의 피부는 루시처럼 하얗구나.

         

        지하 수도에 틀어박혀 있어서 그런가?

         

        은근히 존재감이 있는 인물인데 전생자 이씨 시절에는 출현한 적이 없는 엑스트라였다.

         

         

        “린, 저년한테 이름 알려줬어?”

         

        “아니, 애초에 난 내 이름 웬만해서는 안 알려줘. 성만 알려주면 족하잖아?”

         

        “그런데 어떻게 린의 이름을 아는 거야?”

         

         

        하지만 어제 스킬 [상급: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로 사무실 안을 엿들었던 린은 대충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루시, 최근에 내 이름 딴 사람한테 알려준 적 있어?”

         

        “어….”

         

        “래빈이지?”

         

        “…응. 미안해.”

         

        “우리는 쫓기는 몸이니까 우리 이름을 다른 사람한테 함부로 가르쳐 주는 건 조심하자.”

         

        “미안해….”

         

         

        시무룩해진 그녀를 달래기 위해 린은 두 팔을 벌렸다.

         

        루시는 단박에 달려들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등을 토닥여주자 루시는 곧바로 풀어진 표정으로 암고양이처럼 고롱거렸다.

         

        아도라가 준 래빈의 편지를 뜯어 읽어본 린은 잠시 뒤, 그걸 루시에게 건넸다.

         

        의아해하며 편지를 읽어가던 루시는 끝에 가서 인상과 함께 편지지를 와락 구겼다.

         

         

        “루시, 아까 그 아도라 라는 정보관. 어땠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마족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어.”

         

         

        이거 일이 복잡해지겠구만.

         

        린은 실로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 혼잣말을 했다.

         

         

        “아, 이거는 예정에 없던 건데.”

         

         

        정보관이 우리에게 적대적인 무언가였으면 손쉽게 체크메이트였을텐데.

         

        편지에는 린이 예측하고 경계하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씨에게, 누가 나한테 이런 파티 가입 제안을 보냈어.]

         

         

        래빈이 쓰다가 빡이 쳤는지 굵은 잉크 자국이 크게 있었다.

         

         

        [필요한 거 다 지원해줬으니까 밥값을 해줘야겠어.]

         

        “하, 올 것이 왔군.”

         

         

        그리고 동봉된 검은색 바탕에 붉은 글씨가 씌여진 초대장이 하나.

         

         

        [바라는 것이 있는 당신, 래빈 더 시프에게 마(魔)용사 파티 영입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마용사.

         

        용사 파티의 마족 버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용사 파티처럼 이름이 아닌 직업군으로 서로를 부르지만 하나같이 강적이자 난적.

         

        DLC의 신캐이자 주적인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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