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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정원사가 당황한 듯 입을 벌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이걸 맞고도 멀쩡한가 했더니, 다른 기능은 없고 그냥 정신만 침식시키는 건가.

         

       아무래도 이 애벌레가 뿜은 이 액체가 장미한테 위협적인 모양인데.

         

         

       내가 머리를 갸웃하고 있자, 애벌레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더니 다시 꼬리를 들어 아까 그 액체를 더 뿜어대기 시작했다.

         

         

       “으아악!”

         

         

       설마 양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판단한 건가.

         

       막 징그럽게 생기진 않았지만, 일단 벌레한테서 나온 불순물이라 생각하니 맞고 있기 힘들었다.

         

         

       “에이! 더럽게!”

         

         

       안 그래도 못 씻어서 찝찝해 죽겠는데, 대체 뭐하는 짓이야!

         

         

       이대로 맞고만 있는 것도 열 받았다.

         

       맞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꽃에 도착하자마자 애벌레를 낚아채려고 했는데, 딴에는 생명이라고 꽃을 타고 쓰윽 피해대는 게 아닌가.

         

       이 자식이?

         

         

       “오케이, 한 번 해보자는 거지.”

         

         

       본격적인 애벌레 채집을 시작하기 위해 자세를 잡고 꽃을 최대한 안 건드리는 선에서 손짓했다.

         

       하지만 약 오르게 미묘하게 안 잡히는 것이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지금!”

         

         

       그러던 중 빈틈을 발견해서 얼른 손을 뻗었지만, 갑자기 액체가 아닌 무언가를 발사하는 것이 아닌가.

         

       손에 칭칭 감기는 것으로 그것이 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갓!”

         

         

       실에 대체 뭐가 있는 것인지 실이 묻은 부위가 꼭 녹아드는 것처럼 따가웠다.

         

       정원사가 함부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게 이런 점인 건가.

         

         

       애초에 푸른 액체로 접근도 힘들뿐더러, 겨우 접근하면 이런 식으로 묶은 뒤에 푸른 액체를 또 쏘아 댈 테니.

         

       거기에 자신이 소중히 하는 꽃까지 인질로 잡혀 있어서 자신이 부리는 식물들로 처리한다는 방법도 쓰지 못할 거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에잇!”

         

         

       내 손을 감은 실을 오히려 내 쪽으로 당겨서 애벌레가 나한테 날아오게끔 하려고 했는데, 또 딱 끊어버리더니 꽃받침 쪽으로 숨어버리는 게 아닌가.

         

         

       아오, 진짜.

         

       그냥 곱게 잡히지 끝까지, 그냥…!

         

         

       거기다가 실로 묘하게 자신 주변으로 뭔가를 설치하는데, 무시하고 잡으려고 했더니 손이 짝, 달라붙어 버려서 떼는 데에 한참 걸렸다.

         

         

       이게 그 스트링 트랩, 이라고 불리던 그 건가.

         

       상대를 묶어놓기에 최적화된 스킬이라고 커뮤니티에서 말하던 거 같은데.

         

       이래서 그렇게 말했던 거구나.

         

         

       이렇게 계속 시간을 끌어봤자.

         

       홧김에 꽃과 함께 통째로 애벌레를 잡아버릴 각오로 손을 뻗었고, 이 정도로 해야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이대로 애벌레를 잡아내면 꽃이 부러진다는 것.

         

         

       “친구야! 도와줘.”

         

         

       소외신을 부르자, 소외신이 나와서 애벌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 보인 모습만 보면 소외신이 정원사보다는 약해서 솔직히 큰일 날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소외신이 레서 판다처럼 팔을 벌려 위협하니….

         

       

       “끼, 끼이.“

         

         

       애벌레는 그대로 경직이 된 채 내 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압도적인 공포를 마주한 생물처럼.

         

       이것도 계속 언급되던 그녀, 라고 하는 사람이랑 관련이 있는 걸까.

         

         

       그 틈을 노려서 얼른 애벌레를 낚아챘고, 결국에는 애벌레를 꽃에서 떼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끼끽!”

         

       “끄악!”

         

         

       하지만 반격이라도 하듯 그 길쭉한 다리로 내 손을 찔러대는 바람에 바로 바닥에 내팽개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애벌레가 꽃에게 다시 접근하려고 했다.

         

         

       안 돼, 어떻게 떼어냈는데…!

         

         

       “거기까지.”

         

         

       하지만 애벌레는 다행히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정원사의 손짓으로 꽃에게 닿기도 전에 바닥에서 자라난 줄기가 애벌레를 꼬챙이처럼 꽂아버렸다.

         

         

       피용!

         

         

       “키이이이익!”

         

         

       인형을 누르면 날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애벌레가 큰소리를 냈다.

         

       그것도 모자라 다는 듯이 뒤이어 두 줄기가 더 자라나 확실하게 꽂아 넣었다.

         

         

       그것으로 애벌레의 움직임은 완전히 멎어버렸다.

         

         

       “후, 하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닥에 누워버렸고, 소외신이 또 울상이 되어서 나한테 날아왔다.

         

       소외신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요, 그냥 힘들어서 그래.”

         

         

       아까부터 계속 욱신거리는 복부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자고 일어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얼른 쉬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지.

         

       목을 들어서 꽃이 있는 쪽을 보고 있으니, 정원사가 조심히 다가가고 있었다.

         

       마치 몇 년은 보지 못한 가족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애벌레가 많이 씹어먹은 탓인지 일부가 제법 뜯겨 있었지만, 그래도 정원사가 가까이 다가가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 아.”

         

         

       그 모습에 정원사가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때 꽃에서 뭔가 꼼지락대면서 나오기 시작했고, 마치 오랜 잠을 자다 일어난 것처럼 하품했다.

         

         

       크기는 소외신 정도고, 은색 장발과 하얀 피부가 꼭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친구….”

         

       ”어, 언니?“

         

         

       장미에서 나온 그 아이는 정원사를 향해 양팔을 뻗었다.

         

       결국 정원사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턱을 타고 내려갔다.

         

         

       그토록 강한 존재가 이토록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던 외신이 그랬다는 점이 더더욱.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려다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닫았다.

         

       그동안 정원사도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 지 생각해보면 잠시 마음껏 감정을 표출하도록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일어났네. 몸은 괜찮니?“

         

       ”응, 기운은 없지만 뭐랄까, 개운해.“

         

         

       하지만 안타까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일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뭔가 희미한 것이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꼭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저 아련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에게 불행을 안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런 배드 엔딩은 결코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것이 비록 외신이더라도, 모두가 행복한 편이 훨씬 낫잖아.

         

         

       그때 소외신이 주머니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어 내 손을 툭툭 쳤다.

         

         

       ”왜?“

         

         

       혹시 무슨 의견이 있나 싶어서 쳐다보니, 소외신이 사탕 하나를 나한테 내밀고 있었다.

         

       아니, 자살하는 약은 또 왜!

         

         

       설마 이거 먹고 빨리 편해지라는 의미인가?

         

         

       또 내 마음을 읽었는지, 소외신이 빠른 속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면 대체….

         

       괜히 정원사에게 보여서 밉상 찍히고 싶지 않아서 사탕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고 했다.

         

         

       ”그거는….“

         

         

       정원사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결국 들켜버리고 만 것인가!

         

         

       아, 안 돼!

         

       아직 죽고 싶지 않….

         

         

       “진짜로… 처음부터 우릴 도울 목적으로….”

         

         

       반사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리며 가드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말이 들려왔다.

         

       조심히 팔을 내리며 정원사를 보았다.

         

         

       늘 정색하는 모습, 날 위협하는 모습만 보여서 잘 몰랐는데, 눈물이 맺힌 아련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꼭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져서.

         

         

       사탕이 필요해 보이는 것 같아서 정원사에게 살포시 내밀자, 정원사가 얼른 받고는 장미에게 달려가 입에 사탕을 넣어주었다.

         

       아이가 사탕을 손으로 들고 입으로 핥더니, 행복하다는 듯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행동을 계속했다.

         

         

       동시에 아이의 몸이 점점 불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끝에는 형체를 완전히 되찾았다.

         

         

       마냥 쓸데없는 약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쓰이게 되네.

         

       엄.

         

         

       아이가 아주 괜찮아진 것을 확인하고는 정원사가 일어서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늘 나에게 정색하던 모습만 보이던 녀석이 희미하더라도 미소를 짓고 있으니, 그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 저기.”

         

       ”고마워.”

         

         

       뭔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정원사의 손을 잡고 지지대 삼아 일어섰다.

         

         

       가만히 서로 바라보고 있으니 정원사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돌아가면 얼른 씻어야겠네. 미끌미끌해.”

         

       “…그러게.”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장미에게 돌아가는 것이 정원사 딴에는 작별 인사라고 한 모양이었다.

         

       하여튼, 끝까지 솔직하지 못한 외신일세.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 정원에서는 어떻게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놓았다고 들었어.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건 아니지?”

         

         

       내 말에 정원사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어쨌든 나는 사람을 죽였어. 너희들도 나를 용서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하지만….”

         

       “됐고, 이거나 받아.”

         

         

       정원사가 나뭇가지를 뻗어 나에게 뭔가를 주었고, 받아 보니 민들레꽃과 특이한 문양이 박힌 나뭇잎이었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정원사가 설명했다.

         

         

       “기사라면 우릴 죽였다는 증표가 필요할 거 아니야. 증거로 머리카락을 재출하고, 민들레는 가지고 있어.”

         

       “고작 이런 걸로 기사단이 속을까?”

       

       

       정원사와의 대화는 무연에게 들리지 않으니 적당히 풀어서 설명하니 그녀는 순수하게 답해주었다.

       

       

        

       “그, 그럴 거로 생각해요. 실제로 이 나뭇잎은 흔히 정원사에게서 나오는 부산물이라고 하니까….”

         

          

       그래도 조금 걱정되기는 한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연이 한 말이니까 확신을 해도 되겠지.

         

         

       그나저나 민들레는 뭐지.

         

       아직 자란지 얼마 안 된 것인지, 꽃봉오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민들레는?”

         

       “네가 앞으로도 외신들을 도울 생각이라면 훗날 도움이 될 거야. 인간에 대한 악의로 뭉친 녀석도 존재하니까.”

         

         

       정원사가 살짝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든 ■■를 처리하려면 더더욱.”

         

       “뭐라고?”

         

         

       분명 뭐라고 말했는데, 꼭 노이즈라도 낀 것처럼 지지직거려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내 귀에만 그렇게 들린 줄 알았더니, 정원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구나. 나보다도 더 강한 누군가한테 간섭받고 있는 모양이네. 그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설마 그녀를 말하는 건가 했는데, 정원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거. 내가 그녀보다 약하진 않아.”

         

       “…평외신이 어떻게.”

         

       “인간에 가치 판단으로 우릴 규정하는 건 잘못된 행위야. 나는 너희가 말하는 평외신 같은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너희가 말하는 정원사라는 건, 오히려 내 친구인 거지.”

         

         

       그러면 우리는 또 감시자와 같은 대외신이랑 한 번 부딪친 거라는 뜻인데.

         

         

       “그러면… 너는 대체 누구야?”

         

       “너는 괜찮다고 해도, 그 뒤에 여자는 내 이름을 들으면 제정신을 유지 못 할 것 같은데.”

         

         

       아앗.

         

       생각해보니 그렇겠네.

         

         

       아마 잠깐 나가 있어달라고 해도 사색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지 않을까.

         

         

       어리버리하는 내 모습을 보며 정원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인간이 최초로 죄를 범한 정원, 그곳에 있던 겁쟁이 정도로만 말해줄게.”

         

       “겁쟁이라.”

         

         

       나나, 무연이랑 다를 게 없잖아.

         

       겁쟁이 트리오가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른 가. 내 친구도 좀 쉬어야 하니까.”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을까?”

         

         

       내 말에 정원사가 미묘한 표정으로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정원사와는 그 말을 끝으로 작별하고 정문을 향해 나갔다.

         

       여전히 많은 꽃을 보고 있으니 정원사가 지금껏 어떤 기분이었을지 적적한 기분이 되었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요되는 살인이라.

         

       어쩌면 진짜 외신이라는 존재는 오해로 둘러싸인 존재들이 아닐까.

         

         

       “후우….”

         

       “그, 그래서, 탄튼 씨?”

         

         

       무연이 나를 부르기에 조금 울적한 기분으로 무연을 보았다.

         

         

       “네, 무슨 일일까요?”

         

       “이 손수건은 언제 떼면 될까요?”

         

         

       아.

         

       정문을 완전히 나가고 나서야 무연은 드디어 시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

         

         

       거대한 불길이 치솟는 화로의 지하.

         

         

       화로 지하에 있는 기사단 주둔지의 원탁에 부단장이 앉아 있었다.

         

       그들이 출발하기 전에 계약했던 표식을 바라보면서.

         

         

       무연의 복귀 신호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빛나고 있는 탄튼의 표식을 바라보며 부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냥꾼까지는 상정 내였는데, 설마 그 정신병자가 해낼 줄이야. 역시 무연 덕분인가. 대체 어떤 동기로 겁을 삼키고 행동한 거지.”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손가락 표식 중 하나의 빛이 완전히 사라진다.

         

       아가르타의 것이었다.

         

         

       “…알량한 년.”

         

         

       운명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고도 부단장은 무덤덤하게 업무를 계속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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