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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거슬리는 마법사를 처리하고서 즉시 그 옆에 있던 궁병도 처리했다.

   

   그제서야 다른 고블린들이 나를 추격해 왔지만 이미 난 목적을 달성한 상태였다.

   

   원거리에서 공격할 놈들이 없으면 내가 난전에서 꿀릴 건 없지.

   

   자. 계속해보자고!

   

   한 마리의 고블린이 무너졌을 때 고블린들은 여전히 나를 향한 증오를 쏟아냈다.

   

   두 마리 고블린이 무너졌을 때 그들의 움직임에 망설임이 생겼다.

   

   그리고 세 마리 고블린이 무너졌을 때 그들 사이에 공포가 새겨졌다.

   

   아비규환이었다.

   

   공격을 하려는 자.

   

   동료를 앞세우려는 자.

   

   도망을 치려는 자.

   

   포기하고서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자.

   

   혼란이 퍼진 고블린들은 이미 무리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고블린들은 개인일 때 가장 약한 종족.

   

   개인이 되어버리는 그들을 쓰러트리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마지막 고블린을 처리한 나는 메이스를 크게 휘저어 거기에 붙어 있는 잔해를 털어냈다.

   

   후아. 원래는 버티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고양감 때문에 다 처리를 해버렸네.

   

   덕분에 레벨도 4로 올랐고 시련도 통과했으니 결과는 나쁘지 않아.

   

   다만 전투를 하던 중에 내가 내뱉은 말들을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미친 놈.

   

   아무리 메스가키 스킬의 효과를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건 아니잖아.

   

   뭐? 허접? 좆밥 고블린? 경험치용 잡몹?

   

   아무리 메스가키가 되었다지만 그런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른 내 자신이 환멸스러웠다.

   

   이러다가 언젠가 진짜 메스가키가 돼버리는 거 아냐?

   

   평소에도 웃음을 흘리며 허접허접 같은 단어를 달고 다닐 자신을 떠올리고 나니 절로 손이 떨렸다.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돼.

   

   서른 가까운 나이를 처먹었던 남자 새끼가 그러는 건 아니잖아.

   

   메스가키 스킬 때문에 번역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소리치진 말자.

   

   한 때 덕후여서 메스가키가 뭐였는지 알고 있었던 내가 밉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내 입으로 그 딴 소리를 지껄일 수는 없었을 텐데.

   

   후우.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어쨌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됐지.

   

   포셀이랑 했던 훈련이 의미가 있었다.

   

   그 녀석은 진짜 온갖 상황을 상정하고서 나를 굴려대니까 전투 중 그 어떤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대처를 하는 게 가능했다.

   

   처음으로 포셀한테 고맙다는 감정이 생겨났다.

   

   그래봐야 메스가키 스킬 때문에 고맙다는 소리를 전할 순 없겠지만.

   

   으음. 그런데 있잖아.

   

   시험이 끝났는데 왜 아직도 할배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거지?

   

   어이. 할배. 아무리 삐졌어도 시험을 통과했으면 보내줘야 할 거 아냐.

   

   동상엔 아무런 상처도 없고 그를 공격할 고블린도 없는데 여기서 더 시간을 끌어서 뭐 할 건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려 왔다.

   

   고블린들의 가벼운 소리와는 다른 묵직한 소리.

   

   비교를 하자면 포셀이나 베네딕이 지닌 발소리에 가까우리라.

   

   그를 들은 순간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어 다급하게 고갤 들었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덩치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의 덩치는 발소리만큼이나 거대했다.

   

   포셀의 덩치도 인간치고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지만 저것은 격을 달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것은 애초에 인간 외의 생명체였으니까.

   

   피부를 감싼 갈색의 가죽과 그 아래에 너무도 비대해서 당장에라도 가죽을 찢고 나올듯한 근육.

   

   내 얼굴보다도 거대해서 그 자체로도 충분한 위협이 되는 주먹.

   

   우뚝 튀어나온 주둥이와 붉은 색으로 물든 눈동자.

   

   그리고 머리 위에 달린 두 개의 뿔 미노타우르스.

   

   …이게 왜 여기서 나오는 거야?

   

   너는 지금 여기에서 나올 차례가 아니잖아.

   

   아카데미 2학년 중반에나 나올 녀석이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 건데.

   

   아 물론 루엘의 시련에서 네가 나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

   

   근데 그걸 32레벨을 달성하고 여기에 들어왔을 때잖아.

   

   지금 내 레벨은 4라고. 4.

   

   적정 레벨의 던전에 들어가면 고블린이나 오크를 만나는 4!

   

   게임 시작하고 30분도 안 돼서 찍는 4레벨!

   

   좆같은 할배.

   

   한 번 시비를 걸었다고 이런 식으로 보복을 하는 거야?!

   

   너 설정 상 영웅인 루엘의 목소리잖아.

   

   세상을 구한 영웅이자 신을 모시는 성기사라는 양반이 이렇게 치졸해서 어쩌자는 거야?

   

   어?!

   

   이 개 같은 새끼야!

   

   – 쿠오오오오오!

   

   미노타우르스의 고함에 몸이 굳었다.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시선을 한 군데에 둘 수가 없다.

   

   이빨에서 시작된 떨림이 몸 전체로 퍼진다.

   

   본능이 내 머릿속에서 외친다.

   

   도망쳐.

   

   도망쳐야 돼.

   

   그러지 않으면 죽어.

   

   저 괴물을 봐.

   

   입에서 나오는 뜨거운 입김을 봐.

   

   저 더러운 이빨을 보라고!

   

   괴물은 너를 입 안에 집어넣고 잘근잘근 씹어서 삼켜버릴 거야.

   

   너는 위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 죽게 될 거야.

   

   그러니까 도망. 도망치라고!

   

   빨리!…

   

   “흡. 흐읍.”

   

   갑작스레 공포의 감정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씨발.

   

   공포 극복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나 혼자 질식사로 뒈졌겠는데?

   

   겨우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이렇게나 무섭다니.

   

   이게 바로 존재의 격이 다르다는 건가.

   

   침착하자.

   

   저 녀석을 이길 수는 없어.

   

   내가 아무리 발악을 한다 해도 무리야.

   

   지금 내가 지닌 힘으로는 미노타우르스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을 테니까.

   

   이게 게임 안이었다면 달랐겠지만…

   

   이건 현실이야.

   

   마우스와 키보드로 컨트롤을 하던 게임이 아닌 현실.

   

   다급히 호흡을 정돈 하고서 자세를 다잡는다.

   

   이길 수는 없어도 말이야. 버티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난 방금 전에 고블린들을 상대하면서 꽤 시간을 끌었어.

   

   아마 수호의 시련이 클리어 되는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 저 괴물을 상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시련을 통과할 수 있겠지.

   

   그래. 조금만 더 해보자.

   

   어차피 여기에 온 이상 도망칠 수도 없잖아.

   

   여기서 내가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할배가 웃는 꼴을 보고 싶어?

   

   그렇겐 못하지. 절대로.

   

   저 놈이 웃는 꼴을 보느니 죽고 말 거야.

   

   미노타우르스는 나를 보지 않는다.

   

   저 놈의 붉은 눈은 어디까지나 여신의 석상만을 바라보고 있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놈은 아무렇지 않게 저 거대한 손으로 석상을 짓뭉개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나겠지.

   

   하하. 젠장.

   

   방금 전에 메스가키 노릇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바로 뒤엎어야겠네.

   

   조금 엇나가는 순간 저 괴물한테 참교육을 당하게 되겠지만 그런 미래는 상상하지 말자.

   

   메스가키라는 건 원래 그런 거잖아?

   

   자신이 지는 미래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을 저지르고 보는 빌어먹을 꼬맹이라고.

   

   메스가키가 되었으면 메스가키답게 행동을 해야지.

   

   좆같아도 지금은 그렇게 해야해.

   

   “야!”

   

   내가 소리를 치자 미노타우르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 눈을 마주한 순간에 몸이 딱하고 굳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다시 괜찮아졌다.

   

   공포 극복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거다.

   

   “더러운 소주제에 뭘 보고 있는 거야? 냄새나♡ 징그러워♡ 역겨운 짐승 새끼♡”

   

   몸에 힘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도발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것이다.

   

   대상이 하나라 버프의 수치가 그리 크진 않은 것 같지만 도발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미노타우르스가 몸을 돌려 내 쪽으로 움직인다.

   

   자아. 이제 내 업보를 감당할 시간이야.

   

   방패를 치켜들었다.

   

   막고 버텨내는 건 지겹도록 해봤어.

   

   하루의 절반 정도는 포셀이랑 비슷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걸 똑같이 반복할 뿐이야.

   

   할 수 있어.

   

   앞을 봐.

   

   긴장하지 마.

   

   긴장을 해봐야 움직임이 더 늦어질 뿐이야.

   

   어차피 저 놈은 소대가리잖아.

   

   생각이 없다고.

   

   무작정 주먹을 휘둘러 댈 게 뻔해.

   

   그러면 포셀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쉽지 않겠어?

   

   그러니까 괜찮아.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동안 어느새 미노타우르스가 내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거 덩치에 비해 너무 빠르신 거 아뇨?

   

   천천히 좀 삽시다. 친구. 그러다 진짜 한 순간에 훅갑니다?

   

   속으로 그런 농담을 하고 있으려니 미노타우르스가 주먹을 내질렀다.

   

   피할 수는 없었다.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철벽도 똑같이 고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난 다급히 방패를 들어 미노타우르스의 주먹을 가로 막았다.

   

   쿠웅.

   

   방패에 미노타우르스의 주먹이 닿은 순간 무언가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어라?

   

   방패를 쥔 손이 밀려나며 몸이 반으로 접힌다.

   

   대지를 밟아야 할 발이 허공에 떠오르고, 결코 와서는 안 될 충격이 팔과 옆구리를 타고서 몸 전체에 울려 퍼진다.

   

   비명을 지를 틈은 없었다.

   

   내 몸이 날아간다는 것을 느낀 순간 내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

   

   좆됐다는 사실 뿐이었다.

   

   …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든다.

   

   생각보다 고통은 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구나.

   

   그냥 몸 전체의 감각이 맛이 가 있었다.

   

   우와아. 제기랄. 주먹으로도 마취가 되는 구나?

   

   귀에서 이명이 울린다.

   

   계속해서. 미친 듯이.

   

   섬광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러다 이명이 약간 줄어들었을 무렵부터 고통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내장의 어디가 상하기라도 한 건지 숨을 쉬는 게 버겁다.

   

   계속해서 위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거대한 갈색의 물체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지랄났네.

   

   저걸 상대로 버티라고?

   

   좆같은 할배.

   

   죽일 거면 좀 편하게 죽여주던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으나 메스가키 스킬의 전능감이 사라졌다.

   

   왤까.

   

   지금 저 미노타우르스는 분명 열이 받아서 나를 노리고 있는 데 말이야.

   

   다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는 순간 옆구리에 무언가 닿았다.

   

   그 순간 시야가 암전했고.

   

   …

   

   흐읍. 큽. 흐악.

   

   아파.

   

   씨발. 씨발. 씨이이이발. 아프다고.

   

   고개를 드는 것조차 버겁다.

   

   다리에는 감각이 없어서 그를 움직인다는 것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메이스와 방패가 들려있어야 할 두 손은 허전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저 먼 곳에서 내게 다가오는 발소리는 선명하다.

   

   죽는 건가?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잘 와닿지는 않았다.

   

   이리도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 몰라서 그런 건가 싶다.

   

   허나 그를 떠올리고 나니 마음속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죽는다.

   

   어떻게?

   

   미노타우르스의 발에 짓밟혀서.

   

   저 빌어먹을 소가 지닌 거대한 손에 찢겨서.

   

   우악스런 이빨에 씹혀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다.

   

   죽음이 나의 앞에 있었다.

   

   머리가 싸늘하게 식는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죽음의 예감을 공포극복이 막아주려 하지만 불가능하다.

   

   공포 극복이 공포를 막는 것보다 공포가 차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니까.

   

   댐이 무너졌는데 그 앞에 선 개구리 하나가 무얼 하겠는가.

   

   발소리가 멈췄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뜬다.

   

   주먹을 치켜 들고 있는 미노타우르스의 모습이 보였다.

   

   난 그를 보고서 다시 눈을 감았다.

   

   – 쿠오오오오오.

   

   나는 이대로 죽는 거구나.

   

   콰앙!

   

   체념에 빠진 그 순간 미노타우르스의 주먹이 무언가에 막히는 소리가 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교육 당할 뻔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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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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