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

   ‘이그니스.’

     

   마차 바닥을 박찬 크라슈의 검에서 푸르른 불길이 피어올랐다.

   이그니스는 상위 신의 불길인 만큼 정화의 힘도 지니고 있다.

     

   ‘그 말인즉슨.’

     

   서걱!

     

   베어진 검은 인간이 화염에 휩싸여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검은 인간과 상성이 무척이나 좋다는 소리지.’

     

   크라슈는 망설임 없이 검은 인간 사이를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상인 여성도 재빨리 봉 한 자루를 들고, 검은 인간을 부수는 걸 보니 문제없을 것 같았다.

     

   “크림슨가든.”

     

   하지만 검은 인간이 이 정도 수로 나왔다.

   그렇다면 분명 근처에 정화되지 않은 세계 침식이 남아 있으리라.

     

   [ 직선 방향 300미터다. ]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어이, 검은 인간을 만드는 세계 침식을 지우고 올 테니까 상대하고 있어.”

   “예! 부탁드릴게요!”

     

   크라슈는 그 즉시 발아래 오러를 끌어모았다.

   그러곤 바닥을 박차자 그의 몸이 폭발적으로 쏘아졌다.

     

   검은 인간은 크라슈가 달리면 달릴수록 그 수가 많아졌다.

   하지만 크라슈의 이그니스 앞에 놈들이 할 수 있는 건 별거 없었다.

     

   순식간에 숲 안을 도착한 크라슈의 눈에 덩어리진 세계 침식이 보였다.

   나무 사이에 검은색의 액체가 뒤섞여 뻐끔뻐끔 가스를 내뿜는 모습은 딱 봐도 정화되지 못한 세계 침식이었다.

     

   “삼킬 게냐.”

     

   따라온 크림슨가든이 나뭇가지에 앉아 물었다.

     

   “그래, 타이밍 좋게 나타나 줬으니까.”

     

   크라슈는 망설임 없이 세계 침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새까만 기운이 크라슈의 손을 타고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몸 안에는 이미 극혈침독으로 인한 세계 침식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별다른 저항감 없이 흡수한 크라슈는 한차례 숨을 내쉬었다.

     

   제 육감 덕에 다행히 광증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걸로 검은 인간은 더 생기지 않을 거다.

     

   그렇게 크라슈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크라슈.”

     

   크라슈가 크림슨가든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췄다.

   숲 사이로 고개를 들자 상인 여성과 함께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상인 여성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녀는 봉을 위협적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어딜 내 마차에 손을 대려 해! 당장 꺼져!”

   “서로 돕고 살자고, 무법지대를 지나가는 놈들은 다 친구잖냐.”

   “그래, 겸사겸사 나 아랫도리 여자친구 역할도 좀 해주라. 낄낄.”

     

   그들은 딱 봐도 도적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평범한 도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무법지대에서 멀쩡히 돌아다닌다는 건 저 중 실력자가 한 놈 정도는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잘됐군.”

     

   그러는 사이 크림슨가든이 스산하게 웃었다.

     

   “둔검, 연습 상대로 딱 맞잖느냐.”

     

   아무래도 스승을 잘 골랐다고 생각하며 크라슈가 목을 두둑 풀었다.

     

   “동감이야.”

     

   무도 대회 가기 전 몸 좀 제대로 풀고 가자.

     

     

   * * *

     

     

   주로 무법지대를 지나는 마차를 노리는 도적의 인원은 총 여덟.

   그중 대장 격인 오렐은 상인 여성을 보며 침샘을 삼켰다.

     

   여성은 무법지대를 다니는 일이 거의 없어서 여자가 고팠는데 오랜만에 맛 좋은 먹잇감이었다.

     

   “어이, 니들 내가 먼저다.”

   “하여튼 대장, 욕심 더럽게 많아. 더럽게만 쓰지 마.”

   “내 마음이지 이것들아.”

     

   그는 흉악한 크기의 도끼를 가볍게 붕붕 휘둘렀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상인 여성도 그걸 보고, 긴장한 눈치였다.

   검은 인간들 탓에 종이 울려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게 실수였다.

     

   그사이에 도적단이 이렇게 접근했을 줄이야.

   다른 녀석들이라면 상대 가능했지만 저 대장이 더해지면 혼자서는 무리였다.

     

   뚜벅-

     

   그러는 순간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인 여성은 그 발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화색을 보였다.

   그녀의 반응을 눈치챈 도적들은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다.

     

   “응? 꼬마?”

     

   거기에는 소년 한 명이 서 있었다.

   도적 한 명이 의아함을 품은 순간.

     

   퍼걱!

     

   일직선으로 날아든 검이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일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설마하니 저 어린 소년이 검을 던져 도적을 죽일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적이다! 죽여!”

     

   오렐은 대장답게 눈치가 빨랐다.

   소년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때마침 소년은 검을 던진 탓에 빈손이었다.

   그 틈을 노려 도적 두 명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보고도 소년은 겁먹는 기색 하나 없었다.

   단지, 손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그 순간 소년의 손에 쥐어진 것은 방금전에 던진 검이었다.

     

   “무기가 없는 줄 알았냐?”

     

   갑작스러운 검의 등장에 도적이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소년의 검은 도적의 목에 정확히 박혀 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그 움직임은 일개 도적이 상대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곧이어 옆에서 달려들던 다른 도적의 턱 또한 소년은 후려쳤다.

   그러자 도적은 뇌가 뒤흔들린 충격과 함께 혀를 쭉 내밀며 바닥에 쓰러졌다.

     

   소년은 가차 없이 그의 머리에 검을 박았다.

     

   싸아아아-

     

   불어온 바람을 따라 나무들이 천천히 흔들렸다.

   기분 나쁜 긴장감이 도적들 사이에서 이어졌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소년으로 순식간에 세 명이 죽었다.

   그것만으로 분위기가 뒤집힌 것이다.

     

   “내가 나선다. 니들은 저 여자나 제대로 잡아놔.”

     

   결국 대장인 오렐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우람한 체격의 근육질인 그는 소년과 비교하면 너무 컸다.

     

   승부는 불 보듯 뻔한 결과.

   그러나 오렐은 소년을 얕보지 않았다.

     

   감이 말하고 있다.

   저 꼬맹이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말이다.

     

   “괜찮겠냐?”

     

   크라슈는 그런 그를 보며 느긋하게 검의 핏물을 털어내었다.

     

   “너 혼자 덤벼서.”

   “푸핫!”

     

   오렐이 거친 웃음을 터트렸다.

     

   “너 같은 꼬맹이는 머리만 쥐어도 터트릴 수 있어.”

   “그래, 좋네. 누구 머리가 먼저 터지는지 해보자고.”

     

   크라슈가 그리 말한 순간 오렐이 먼저 바닥을 박찼다.

     

   쿵쿵쿵!

     

   그 큰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울림이 들판 전체에 퍼졌다.

   마치, 들소 같이 달려든 도끼 위에 붉은색 오러를 서렸다.

     

   연기처럼 일렁이는 오러는 그가 엑스퍼트 급의 실력자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달려든 힘을 그대로 담아 크라슈의 허리를 향해 도끼를 내려쳤다.

     

   채에에엥!

     

   그 순간 크라슈의 검이 그 자리를 메꾸며 도끼를 막았다.

   하지만 덩치가 차이 나는 만큼 완력은 오렐이 더 높았다.

     

   그 때문인지 크라슈의 몸은 살짝 부웅 뜬 채로 옆으로 밀려났다.

     

   오렐의 눈이 번뜩였다.

   아까 도적 단원들을 상대로 보여준 것에 비해 크라슈의 무위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러도 자신보다 약간 모자란 정도.

     

   ‘아까 그놈들이 당한 것도 겉모습에 방심해서지.’

     

   원래였다면 그리 쉽게 당하지 않았으리라.

   오렐의 도끼가 대기를 가르며 다시금 크라슈와 부딪쳤다.

     

   쾅, 쾅!

     

   연이은 공격 속에서 오렐은 확신했다.

     

   자신이 더 강하다.

     

   게다가 놈의 검은 느렸다.

   저런 검으로 어떻게 자신의 도끼를 막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까까지 큰소리치던 건 어디 갔냐!”

     

   오렐이 위협을 위해 소리를 토해내며 마구잡이로 도끼를 휘둘렀다.

   크라슈는 대답할 겨를도 없는지 계속해서 도끼를 막을 뿐이었다.

     

   “킁.”

     

   오렐은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자는 여자가 아니면 딱히 괴롭히는 취미가 없다.

   그러니 빨리 끝내고 맛난 먹이를 먹으러 갈 속셈이었다.

     

   그의 도끼가 점점 더 매섭게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검과 도끼가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소음은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게 1분.

     

   5분.

     

   10분.

     

   “허억, 허?”

     

   오렐의 거친 숨이 울려 퍼졌다.

   그는 아직도 도끼를 계속 휘두르고 있었다.

     

   분명 다음 공격으로 끝낼 생각을 한 게 벌써 수십 번째다.

   그런데도 크라슈는 멀쩡했고, 오렐은 지쳐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크라슈의 검은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렸다.

   그건 담긴 힘과 오러가 별 볼 일 없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크라슈는 도끼와 맞부딪칠 때마다 휘청거렸다.

   그런데도 다음 공격을 휘두르면 어느샌가 그 자리에 검이 있었다.

     

   ‘이래서는.’

     

   마치, 자신이 크라슈의 검을 향해 일부러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그랬던 건가?

   자신은 정말로 그의 검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고 있던 게 아닐까?

     

   그의 머릿속에 혼란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다 했냐?”

     

   흠칫!

     

   하늘의 어둠이 내려앉은 밤 아래, 크라슈의 푸른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크라슈의 어조는 처음과 같았다.

     

   오렐이 애써 숨을 삼켰다.

   그러곤 도끼를 손이 터져라 쥐었다.

     

   “하, 하하, 무슨 잔재주를 부리는 모양인데! 그것도 끝이다.”

     

   그러곤 억지로 여유를 부리며 외쳤다.

   그걸 보고, 크라슈는 옅게 미소를 그려 보였다.

     

   “다행이네. 네 덕에 제 육감 없이도 감을 잡아가는 것 같거든.”

     

   꿈틀.

     

   대장 사내의 굵은 눈썹이 움직였다.

   마치, 크라슈가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꼴이었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오렐은 기다랗게 숨을 당겼다.

   꼬맹이 상대로 그 기술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놈의 기묘한 검술에 더 당하면 자신이 먼저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쿵!

     

   신호 없이 오렐이 다시금 바닥을 박찼다.

   그러자 크라슈는 검을 늘어트린 채 또다시 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뱀의 입 속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미는 기분이 들었지만, 오렐은 공포를 억눌렀다.

   대신 어느 때보다도 억세게 도끼 위에 오러가 서렸다.

     

   하지만 그의 도끼가 휘두르는 장소에는 또다시 크라슈가 느릿한 검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잡았다!’

     

   오렐의 눈이 번뜩였다.

   그 순간 그의 도끼가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방금까지 크라슈의 검을 내려치려던 도끼는 오러의 흔적만 남기고, 크라슈의 옆구리를 향해 도끼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환영퇴부(歡迎槌斧)

     

   그가 가지고 있던 비장의 비술이었다.

     

   이대로 크라슈를 양단해 두 동강 내주겠다.

   곧 뿌려질 핏물을 기대하며 오렐이 웃은 순간이었다.

     

   채에에에에엥!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거센소리가 들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꿈뻑-

     

   오렐의 눈이 한차례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

   그는 지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도끼에 닿은 느낌이 살이 아니라 철이었기 때문이었다.

     

   “야.”

     

   크라슈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너 그거 어디서 배웠냐?”

     

   도끼와 검의 너머 그의 푸른색 눈에서 안광이 흘러나왔다.

     

   “큭?!”

     

   그것을 본 오렐의 몸이 움츠러뜨렸다.

   맹수와 마주친 소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크라슈는 지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놈이 사용하는 환영퇴부가 어떤 놈의 비술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맘때쯤에 제국에서 도망쳤던가?’

     

   얼마 전 제국에서 있었던 대량의 살인 사건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마을 하나를 혼자서 학살을 벌인 남자 때문이었다.

     

   그 탓에 제국은 기사단을 출동시켰고, 학살마는 제국 국경을 넘어 끝내 도주했다.

   크라슈도 원래라면 제국이 해결할 일이라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놈의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세계 침식자의 힘을 받아들이고 종이 되었으니까.’

     

   백귀 시절의 비앙카와 같이 놈도 세계 침식자의 종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살견 베르크만

     

   놈이 주로 사용하던 것이 바로 저 환영퇴부였다.

     

   “너 도살견 놈의 부하냐?”

     

   오렐의 얼굴이 굳었다.

     

   ‘이놈이 도살견의 부하던 말던 딱히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도살견이 나중에 스타론 왕국에 숨어든다는 거다.

     

   ‘그리고 샬롯에게 잡혔지.’

     

   바깥 정보에 관심 없던 크라슈가 이것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도 샬롯 때문이었다.

     

   도살견의 죽음은 샬롯이 제국까지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으니까.

   16살에 세계 침식자의 종을 혼자서 완전히 압도해 쓰러트린 위용은 영웅담으로 논해지기 충분했다.

     

   “됐다. 흐름이 깨졌어.”

     

   그 순간 크라슈의 검이 움직였다.

     

   “어?”

     

   오렐이 의문을 가진 순간 그의 거구가 천천히 쓰러졌다.

   목이 잘린 채 바닥을 나뒹구는 그를 보고, 크라슈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도살견은 결국 샬롯에게 죽임당할 운명이다.

   그 부하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발, 발하임니임!”

     

   나머지 도적 네 명과 사투를 벌이던 상인 여성이 울먹거리며 크라슈를 불러왔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혀를 차며 검 위에 이그니스를 피워 올렸다.

     

   빠르게 끝내고 잠이나 청해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라슈가 강해지기를 시전했다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