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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배척하던 두 집단의 갑작스러운 동거.

       예상했던 대로 그렇게 평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선 넘어오면 뒤진다.”

       “닥치고 식량이나 넘겨!”

         

       선 하나를 그어놓고 뱀 교단과 이단 심문관들은 으르렁거렸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높은 건 저쪽이었지만, 질로 따지자면 이쪽이 훨씬 나았다.

         

       나는 직접 으르렁거리는 녀석들을 지휘했다. 내가 아니면 나설 자도 아니었거니와, 이 토벌전을 상대하려면 인원이 많을수록 편했다.

         

       “얼굴만 봐도 역겹군.”

       “시끄럽군. 뱀 교단.”

         

       얼굴을 들이대고 으르렁거리는 라다토크와 이자벨라의 사이에 탁 끼어들었다.

         

       “힘 자랑하는 건 그만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죠.”

         

       먼저 식량을 모았다.

         

       식량의 합계는 딱 일주일을 견딜 정도. 적어도 이주를 버텨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더군다나 땔감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이건 우리 꺼다.”

         

       대놓고 텃세를 부리는 이자벨라에게 나는 인상을 팍 눌러썼다.

         

       “절반 주세요.”

       “절대 못 한다.”

       “주세요. 당장. 다 같이 죽고 싶어요? 지금 피라도 한 번 보면, 한쪽이 몰살당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거라고요. 그쪽 부하들 죄다 죽게 내버려 두려고요?”

       “하지만 이건 원래 우리 거다.”

       “개소리하는군. 비늘. 그건 네놈들이 태양신교에게서 빼앗아간 공물일 텐데.”

       “무능력한 녀석들에게서 탈취한 물건이지.”

       “이래서 이단과는 공존할 수 없…”

       “그만!”

         

       이런 싸움광들을 봤나. 이단이라고 날이 선 건 알겠는데, 좀 참아라. 제발.

         

       “저기요. 이자벨라 사제님.”

       “뭐지?”

       “그쪽 사정은 알겠는데, 좋게 좋게 가자고요. 임시 동맹하겠다면서요? 전부 내놓으라는 게 아니에요. 절반. 아니지, 1/3은 어때요? 그 정도는 줄 수 있잖아요.”

       “……”

       “생존을 생각해요. 누구 하나 검에 맞아 죽는 순간, 남은 건 전쟁뿐이라고요. 더군다나 여기는 지금 땅 밑. 눈의 악마에게 실시간으로 먹혀가는 중인데, 쓸데없이 힘 뺄 필요 없잖아요?”

         

       나는 바닥을 쾅쾅 내리쳤다.

         

       “공동의 적이 눈앞에 있으니까 일단은 협력하세요. 1/3도 못 주겠다면, 저희도 참을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해줬으면 좋겠네요.”

       “…좋다. 하지만 땔감은 주지 않겠다. 그건 우리도 부족하니까.”

       “마음대로 해요. 어차피 그건 필요 없어요.”

         

       우리에게는 잿불이 있었다. 태양신교 고유의 성법. 불을 피워낼 수 없는 저들과는 달리, 우리는 자체적으로 불을 피워낼 수 있었다.

         

       “형제님. 지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거래…”

       “라다토크님. 다 아는 사람이 왜 그래요? 제일 중요한 목적이 눈앞에 있잖아요. 저 이단들은 나가서 족쳐도 돼요. 하지만 여기서 눈의 악마가 풀려난다면, 사람들이 떼거리로 죽어 나갈 거라고요.”

         

       나는 당근과 채찍으로 라다토크를 다스렸다.

         

       “디모나 이단심판관님을 생각해요. 라다토크님이 없으면, 그분을 보필할 사람이 없잖아요? 저희는 여기서 살아나가야 해요. 눈의 악마를 잡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요. 더군다나, 따로 남겨두었던 이단심문관들이 저희의 소식이 끊기면 분명 교단 본부에 지원 요청을 할 거예요.”

       “…이곳만 나가면 승기는 우리에게 기우는 것이로군요?”

       “맞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좀 조용히 하자고요. 어차피 우리는 따로 식량을 어느 정도 챙겨왔잖아요? 저쪽에서 1/3을 받고, 그 식량으로 버티면 한동안은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을 거예요.”

       “형제님의 말이 맞습니다.”

         

       라다토크가 거대한 덩치를 일으켰다.

         

       “눈앞의 이단에 잠깐 대의를 잊어버릴 뻔했군요. 감사합니다.”

       “에이. 저랑 라다토크님 사이에 무슨 감사가 필요해요. 저희는 운명공동체잖아요?”

       “맞는 말씀입니다.”

         

       거대한 얼음 공동은 둘로 갈라졌다. 이단심문관들과 뱀의 교단.

       불편한 기류가 흘렀지만, 서로를 없는 듯 대했다. 이자벨라와 라다토크가 따로 부하들을 관리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냥 이렇게 차가운 곳에서 버티기만 하는 걸로 끝난다면 토벌전이 아니지.

         

       나는 바닥에서 일어섰다. 한 번 더 진동한 땅이 한 차례 더 아래층으로 가라앉았다. 조금씩 좁아지는 공간과 금이 가기 시작하는 벽.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전부 들으란 듯이 크게 말했다.

         

       “이상하다! 벽에 난 균열 너머로 뭐가 보이는 거 같은데!”

       “뭐? 자하드 형제. 그게 사실인가?”

       “뭐가 보인다고?”

         

       이단심문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안 보는 척 이쪽을 흘깃거리던 뱀 교단들도 슬그머니 벽 쪽에 붙었다.

       벽의 균열. 그 안쪽에는 얼음과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단심문관 중 하나가 슬쩍 말을 건넸다.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니요. 제대로 봤어요.”

         

       슬슬 등장할 때가 됐지. 베이그니스의 기생충들.

         

       녀석이 활동하면, 그 기생충들 또한 움직인다. 베이그니스가 모든 것을 삼키기 전에, 가장 먼저 맛을 본다고 하여 그들을 와인 감별사, 즉 소믈리에(Sommelier)라고 불렀다.

         

       왜 하필 와인 감별사냐.

         

       그들이 인간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붉은 피로 적셔진 녀석들이 와인을 삼킨 것과 같다고 하여, 소믈리에라고 불렸지.

         

       꿈틀거리며 벽의 균열에서 집게가 툭 튀어나왔다.

         

       “뭐, 뭐야?!”

       “이건 또 무슨…!”

       “눈의 악마의 사역마들이네요.”

         

       단순 기생충들이지만, 그 단어가 좀 더 친밀할 터.

         

       거대한 집게가 얼음을 깼다. 꽃게를 닮은 성인 인간만 한 크기의 생물체가 쓱 이단심문관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행동한 건 라다토크였다. 뻗은 검이 두꺼운 등딱지를 쪼갰다.

         

       “전원 전투 준비.”

         

       연이어서 깨진 벽들 속에서 소믈리에들이 등장했다. 나는 손에 잿불을 펼쳤다.

         

       자. 한 번 해보자.

         

       눈의 악마 토벌전!

         

       겸사겸사 폭렙할 기회다!

         

         

         

       . . .

         

         

         

       첫째 날.

         

       싸움은 다소 거칠었다. 라다토크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한 번에 두꺼운 등딱지를 깨부수지 못했다. 고전하는 건 이단심문관들이나 뱀의 교단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파훼법이 생겨났다. 얼음을 주 활동무대로 삼던 소믈리에들은 불을 두려워했다.

         

       그건 즉, 태양신교의 이단심문관들은 그들에게 있어 쥐약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뭐야 이 새끼들!”

       “생각보다 약하잖아!”

         

       이단심문관들은 신나게 소믈리에들을 해치웠다. 나 또한 쓱 섞여 들어갔다. 잡아먹힌 뱀 교단 중 하나가 놓친 검을 주워들고 거대 집게에 열심히 맞섰다.

         

       스킬 숙련도와, 레벨은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에서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니까 짧게 말하자면, 이건 내게 있어 공짜 레벨업 사냥터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잿불을 다룰 수 있고, 이 녀석들에게 있어 상성 상 최악이나 마찬가지니까!

         

       “으하하하!!”

       “자하드 형제! 화끈하군!”

       “질 수 없지!”

       “악은 불꽃으로 정화한다!”

         

       우리는 소믈리에 파티를 벌였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뱀 교단은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런 시발?!”

       “뭐 이리 딱딱해!”

         

       뱀 교단은 분투하고 있었다. 그들의 성법은 주로 암습과, 뒤통수를 치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불꽃을 다루며 전면전에 특화된 태양신교와는 정반대의 입장.

         

       검은 날카로웠지만, 소믈리에들에겐 검보다는 둔기가 더 효과적이었다. 두꺼운 껍질을 뚫어도, 대다수가 치명상을 주지 못했다.

         

       “뭣들 해?! 다들 똑바로 안 해?!”

         

       그나마 전선이 유지되는 건 뱀 교단의 성기사들 덕분. 이자벨라의 지휘 아래 그들의 검이 번득이면 소믈리에들이 기괴한 비명과 함께 체액을 쏟아냈다.

         

       하지만 들이닥치는 숫자에 비하자면 그건 태양 앞의 촛불에 불과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도와줘야 해요.”

       “형제님. 그건 안 됩니다.”

         

       라다토크가 딱 잘라 거절했다. 거대한 중검에 불꽃이 어른거렸다. 간단한 휘두름에 소믈리에의 다리가 전부 박살이 나 흩어졌다.

         

       와 씨. 세긴 세네. 진짜.

         

       “임시동맹이라고 했지만, 섣불리 손을 뻗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어차피 전부 이단들. 오히려 저들이 저 괴물들에게 죽는 편이 낫습니다.”

       “왜요?”

       “어차피 이곳을 나가도 저들에게 남아있는 건 태양신교의 단죄의 검뿐입니다. 그리고 식량도 부족한 지금, 저들이 괴물의 손에 죽어준다면, 저들이 가진 식량 대부분이 저희에게 굴러 들어올 겁니다.”

       “손 안 대고 코 풀기. 딱 이런 느낌이네요.”

       “맞습니다.”

       “맞는 말이다. 형제.”

       “굳이 우리가 손을 뻗어줄 필요는 없지.”

       “어차피 더러운 이단들. 괴물들의 손에 찢겨 죽는다면, 바라던 바다.”

         

       아니지.

         

       그건 안 된다. 안 되고 말고. 재들이 죽건 말건 상관없는데, 보스전 스테이지에서는 머릿수가 필요하다니까?

         

       나는 가슴을 당당히 폈다. 잿불을 일으켰다. 다가오는 소믈리에를 거칠게 베어냈다.

         

       “전 도와줄래요.”

       “예? 형제님. 제 말을 이해 못하신…”

       “아뇨. 이해했어요. 하지만 라다토크님. 들어보세요. 우리는 저들과 임시 동맹을 맺었어요. 잠시라지만, 등을 맞대고 같이 싸우겠다고 약속한 거나 다름없다고요.”

       “……”

       “우리가 내뱉은 말들은 전부 태양신 ‘라’가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분 앞에선 오로지 진실만을 내비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가 중얼거렸다.

         

       -지금 뻔뻔하게 속마음을 감추는 녀석이 눈에 보인다만.

         

       닥쳐요. 좀. 중요한 순간인데.

         

       “우리가 그분을 등에 업은 이상, 내뱉은 말에는 모두 그만한 무게가 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더구나, 이단들을 단죄하는 건 언제나 이단심문관과, 이단심판관의 역할이 아니었나요?”

       “……”

       “오직 여러분들만이 행할 수 있는 이단 심판을 저 괴물들에게 넘길 건가요? 그 숭고한 명예와 위업을 고작 저딴 게딱지들에게 넘길 거냐고요!”

         

       나는 열변을 토해냈다.

         

       “이단! 좋아요! 이단을 심판하는 건 좋다고요! 하지만 그걸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저희밖에 없어요!”

       -네놈은 이단심문관도 아니지 않느냐.

       “오로지 저희만이 이단들을 심판해야 해요! 그 무게와 영광을 고작 괴물들에게 넘기려 한다면, 그 누가 이단심문관들을 믿겠나요! 누가 여러분들을 지지하겠나요!”

       “하지만 아무도 보는 이가…“

       ”다들 아시잖아요. 외면하지 마세요. 우리가 어디에 있던,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나는 검을 들었다. 앞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우리는 늘 ‘라’와 함께 해요.”

       -……

       “태양이 나와 함께하며, 그분의 불꽃이 내 몸에 가라앉을지니.”

         

       나는 당당하게 뱀 교단 녀석들이 그어 놓은 선을 넘겼다.

         

       “저는 우리의 과업을 저 괴물 같은 녀석들에게 넘기지 않겠어요. 이단을 심판하는 건 오로지-이단심문관의 역할입니다.”

       “…그 말이 맞아.”

       “우리의 과업을 저딴 괴물들에게 넘길 수는 없지.”

       “우리만이 해야 하는 것.”

       “우리밖에 하지 못하는 것.”

       “괴물들에게 죽는 것은 의미 없는 죽음이지만.”

       “우리 손에 죽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회개이니.“

       ”라께서 지켜보신다.“

       ”아무도 지켜보는 이가 없더라도, 그분이 우리와 함께한다.“

         

       이단심문관들이 나와 같이 선을 넘었다. 라다토크가 내 옆에 섰다. 눈에서 맹렬히 불꽃이 타올랐다.

         

       “내가 틀렸습니다. 형제님. 저 괴물들에게 저희의 과업을 넘기지 않겠습니다.”

         

       라가 탄식했다.

         

       -네놈은 그냥 뱀 교단에 들어가야겠다. 그 혀야말로 뱀의 혀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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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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