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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동부군관구 브란베르크 남동쪽 62km, 상공.

       오전 02시.

         

       “5분 뒤 목표지점에 도착이다. 각 제대 장비 점검 후 보고.”

         

       “1제대 이상 무.”

         

       “2제대 이상 무.”

         

       “3제대도 이상 없습니다.”

         

       “좋아.”

         

       달빛 하나 없는 어두운 새벽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차가워진 늦가을의 공기를 가르며 다섯 대의 스텔스 헬기가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작전명 마리오네트.

         

       목표는 동부군관구에 퍼져있는 혁명전선의 고위급 인사를 한날한시에 토벌하고, 조직의 통제권을 완벽하게 차지하는 것이었다.

         

       제국과 티탄과의 전쟁은 10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베르너가 장교로 입대하게 되었던 것도, 전쟁 이후 18살을 맞이하면서부터였다.

       

       국토는 이미 황폐화 될 대로 되어 있었고, 티탄의 막강한 전력 앞에선 총통도 혁명파도 황도파도 살아남기 위해 뭉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 직후였다.

         

       단순히 소중한 사람들이나 재산과도 같은 거시적인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때는 곳곳에서 들끓었던 개인의 사상과 신념은 미적지근해졌다.

         

       실패와 경험으로 토대로 내려오는 지혜와 지식은 빛이 바래졌고, 젊은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할 원로들은 한 줌의 흙더미로 사라졌다.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던 가치가 사라진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현실 속에 파묻혔다.

         

       그러한 변화는 혁명전선- 나아가 혁명파 잔당이라 한들 거스를 수 없었다.

       

       어째서 전쟁 이전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국수파와 황도파가 손을 잡고 혁명파를 처단했는가?

         

       그것은 다른 이들보다도 혁명파가 보유한 강력한 응집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국민파가 내세우는 민주적인 이념와, 국수파가 내세우는 하나로 뭉친 국가와, 황도파가 내세우는 안정적인 사회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혁명파의 전신(全身)이나 다름 없는 제국노동당이 문제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당장 제국 전체가 휘청이는 마당에 그런 것을 신경 쓸 사람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의 의지를 올바르게 이어나갈 사람들이 모조리 티탄과의 전장에서 죽어나갔다.

         

       모든 전역에서 집계된 하루 평균 사망자는 약 2천 5백여명. 

       

       10년을 기준으로 잡아도, 대강 천만명 정도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살해당했으니, 혁명파의 계보 역시 전쟁과 함께 완전한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종전 이후 별안간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한들, 팔과 다리, 심지어 뇌까지도 괴사당한 상태.

         

       혁명전선은 그런 혁명파의 괴사당한 오른팔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긴급수술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썩어버린 뇌와 팔 다리를 모조리 교체해버리고, 혁명파를 안전국의 충실한 ‘협력’ 조직으로 재편하면 되는 것이다.

         

       “국장님.”

         

       그때, 베르너의 통신기에서 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인 통신 채널이었다.

         

       “정말 이런 중요한 작전을 제게 맡기셔도….”

         

       “이미 한번 말했잖아. 소위만큼 제격이 없다고.”

         

       대충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됐기에, 베르너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걱정을 일축했다.

         

       “정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테스트야. 카린 소위, 네가 우리 안전국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시험 말이야.”

         

       베르너 그라임이 현장에 동행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교전에 돌입할 인원은 경비소대장인 카린 메이븐 소위였다.

         

       얼떨결에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셈이었으니 카린으로서는 마냥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카린의 경력과 순수한 전투 기량으로 따지자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애초에 경비소대장이라는 직책을 카린에게 맡긴 사람부터가 베르너였다.

         

       사신 카린 메이븐.

         

       그녀가 절친의 도움으로 에메랄드 레이크 요새에 적응했을 당시까지도 그 별명은 떠나지 않았다.

         

       아군을 죽음으로 몰고 다니는 사신이 아닌, 티탄을 죽음으로 몰고 다니는 사신으로 변했을 뿐.

         

       다른 사람들이 그녀 때문에 죽임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살아남았던’ 것이지.

         

       고아원은 티탄의 침공을 받았다. 16살도 채 안되는 나이에 그녀는 변변찮은 무기로 티탄 두 개체를 때려잡았다.

         

       인간 정도 크기의 소형 개체였다곤 해도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 후에도 똑같았다.

         

       군 보호 시설에서의 생활을 끝마치고 입대한 훈련소가 습격당했을 때에도, 제대로 된 총기교육조차 받지 않고 티탄을 사살하는 데에 성공했다.

         

       보충대에서도 매한가지였다.

       

       아군의 오폭으로 극심한 포격피해를 입은 보충대에서 그녀는 빠르게 현장을 이탈했다.

         

       안전국에 처음 착임했을 당시, 카린에 관련된 전투 보고서를 읽자마자 베르너가 그녀를 전투장교로서 점찍어둔 이유였다.

         

       당장 그레이브야드 사령관이었던 베르너 그라임조차 전생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으니, 그녀의 위상이 실제로 어땠는 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직접 만난 카린 메이븐은 전투에 대한 선천적인 감각이 무척이나 뛰어난 사람이었다.

         

       태어나기를 전투원으로 태어났다는 말이었다.

         

       베르너 그라임은 그레이브야드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몇몇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다가도 제대로 밀어주기 시작하면 확실하게 빛을 발한다.

         

       테스트 삼아 데리고 갔던 브란베르크에서도, 제 한 몫은 제대로 해내지 않았던가.

         

       회귀 동안에 갈고 닦아온 베르너의 인선 능력은 안보전략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하지만 카린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요…?”

         

       “나는 너를 믿는다. 그러니 카린 너도 너 스스로를 믿을 필요가 있어. 그런 생각은 속에 품지도 마라.”

         

       “….”

         

       “변명도 허용하지 않겠다. 깔끔하게 작전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도록.”

         

       베르너는 그렇게 말하곤 통신을 종료했다.

         

       헬기의 창문 너머 얼마 떨어지지 않은 조그만한 마을의 전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혁명의 요람이자, 앞으로 그들의 씨앗이 자라날 혁명가들의 장원.

       

       혁명전선 본부, 통칭 말벌집.

         

       “안전국, 횃불을 들어라. 벌집을 불태울 때가 되었다.”

         

       그 말과 함께 베르너가 탑승한 헬기와 나란히 달리고 있던 헬기들이 일제히 대열을 이탈했다.

         

         

         

       ***

         

         

         

       작전명 마리오네트의 서막이 올랐다.

         

       개요는 간단했다.

         

       혁명전선의 지도세력을 모조리 잡아 족치고, 그 자리를 다이엔을 통해 접촉한 간부에게 넘겨주는 것.

         

       다이엔 슈미트는 메신저이자 길잡이로서의 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베르너 그라임은 자연스레 안전국이 새롭게 주도할 혁명전선의 핵심 인원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절한 당근과 보상을 약속하자, 혁명전선의 내부 정보들이 봇물 터지듯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미 기존 혁명전선의 사상은 빛이 바랜지 오래였다.

         

       혁명파 중에서도 가장 극단주의적이며 폭력적인 성향을 띄고 있는 단체이니만큼, 그들에게 실리와 합리란 없었다.

       

       당연히 내부에서도 불만이 누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애시당초 대체 어떤 테러단체가 연회가 열리고 있는 군 사령부를 냅다 습격한단 말인가?

         

       좋게 말하자면 망설임 없는 결단력과 추진력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객기였다.

         

       동부군 사령관을 살해한다고해서, 동부군관구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작전을 감행했으니 말이다.

            

       뿐만아니라 조직의 말단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관리하는 주제에 그 수뇌부는 옹기종기 한 마을에 모여 살았으니.

         

       혁명전선의 전략적 시야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베르너가 이끄는 안전국의 경비소대- 타격대는 성공적으로 혁명전선의 본거지에 침투할 수 있었다.

       

       내부자를 통해 모든 정보를 입수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상태.

       

       

       이미 마리오네트 작전은 반절 성공하고 시작했던 것이다.

        

       퓨퓨퓻!

       퍼억, 퍽!

         

       그것을 증명하듯, 고작 한 시간도 채 안되어 혁명전선의 본부는 제압당했다.

         

       마을의 집 사이사이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지하 통로도 다이엔이 제공해준 지도로 미리 다 파악해둔 직후였다.

         

       침입자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 도주하려던 이들은 미리 설치되어있던 부비트랩들에 속절없이 당했다.

       

       물론 베르너 그라임의 적절한 지휘와 카린 메이븐의 신속한 현장 보고도 작전 성공에 한 몫을 더했다.

         

       “1제대, 함께 붉은 지붕 집의 자전거가 세워진 벽면으로 이동바람.”

         

       “본부, 여기는 1제대장. 목표지점 후방 작은 헛간을 관측. 문이 5cm 정도 열려있는데, 매복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중화기 사용을 허가. 불태워버려도 무관하다.”

         

       “수신양호, 화려하게 가겠습니다.”

         

       “3제대, 현재 아군의 사선에 전개했다. 320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2제대, 전방의 복층 건물에 상대 저격수 및 기관총 전개가 예상된다. 아군 공격형 무인기 사용 허가. 선제 격멸 후 보고 바람.”

         

       심지어 베르너는 적 대공화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헬기를 직접 무인 조종이 아닌 유인 조종 시스템으로 전환한 뒤.

         

       작전 지역의 상공에서 머물며 현장을 육안으로 직접 관측.

         

       각 제대에 세부적인 명령을 하달하기까지 했다.

         

       나름 안전국에 소속되기 이전부터 난다긴다했던 경비소대원들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지휘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국장님이 헬기를 직접 조종하신 거라고? 그러면서도 전황을 살피고?”

         

       “미쳤군. 전쟁영웅은 전쟁영웅인 이유가 있다니까.”

         

       “쉿, 야이 새끼야. 국장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셨잖아! 우리끼리 있을 때도 입조심하는 버릇 좀 미리 들여놓으라고.”

       

       “그런데 그 국장님은 어디 가셨어?”

         

       “아… 그게….”

       

       그렇게 공식적인 작전이 종료된 직후.

         

       타다다다당!!!

       

       베르너는 항복한 이들을 몇몇 구역에 세워둔 뒤, 혁명전선에서 노획한 무기로 가차없이 쏘아 죽였다.

         

       후환을 남겨둘 수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노획한 무기로 죽인 이유는, 안전국과 결탁한 내부자들이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일부 반동 세력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다는 증거로 위조하기 위함이었다.

         

       철저하면서도 무자비한 처사.

         

       “후.”

       

       마지막 포로까지 처리한 베르너는 숨을 내뱉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항복한 이들을 죽이는 것은 반인륜적인 짓이라며 후회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떠나왔다.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결정한 이상, 반드시 지키는 것이 그의 신조였고 말이다.

         

       그 와중에도 부하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베르너는 홀로 묵묵히 그 업보를 쌓아나갈 뿐이었으니.

         

       “…국장님.”

         

       카린 메이븐은 제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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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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