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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네가 또 왜 여기서 나와…? (3)

       

       

       

       

       

       

       검존의 내기에 구양천의 처소가 흔들린다. 이장로는 곧바로 내기를 펼쳐 처소를 감쌌다.

       거칠고 사납다. 검을 들지 않은 검수의 내기가 이리도 날이 서 있다니.

       

       ‘용은 나이 들수록 커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구나…….’

       

       이장로의 턱을 타고 땀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검존의 흔들린 감정을 뚫고 조금 흘러나온 내기가 이 정도였다.

       

       천하 삼대 고수.

        그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검존은 분명히 증명하고 있었다.

       

       “선을 넘는구나 구륜.”

       “내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선배가 더 잘 알 거요.”

       

       고수의 시야는 넓다. 당장 이장로급의 고수가 내기를 모두 사용하면, 파악할 수 있는 영역으로 구가의 반은 내려다볼 수 있었다.

       

       당장 가주나 검존같은 고수의 일거수일투족까지 파악할 수 없으나. 다른 이들의 행동은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가진 존재감은 무인에게 더 확실히 다가온다.

       

       그래서 이장로는 알 수 있었다.

       

       “진즉, 알고 있을 터인데 어찌 모르는 척하는 것이오?”

       

       이장로는 위설아를 떠올렸다.

       말이 안 되게 고운 미모를 가진 여아지만, 이장로가 보는 시선에선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다.

       

       위설아는 사람이 가졌어야 할 존재감이라는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경외감, 혹은 두려움. 

       

       이 모순적인 두 단어가 위설아를 보면 떠오른다.

        본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한데 텅텅 비어버린 위설아의 속엔 무언가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빛인가 어둠인가. 이장로의 수준에선 그것까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검존이라면, 검존 또한 그걸 볼 수 없을까?

       

       “그 아이, 정체가 무엇이오 선배.”

       “내 손녀는 인간이다 구륜!”

       

       검존이 탁상을 손으로 쾅 내리쳤다.

        쩌적하며 탁상은 부러져 내려앉았고, 순간 검존의 내기가 폭발했다.

       

       그 탓에 처소를 보호하기 위해 내기를 둘렀던 이장로의 몸에 큰 충격이 들어왔다.

       

       허나 티를 내지 않았다.

       이장로는 끓는 핏물을 꿀꺽 삼키며 다시 말을 잇는다.

       

       “의선을 찾으면, 그 아이에게 다른 걸 채워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요?”

       

       의선은 감히 신이 내린 의원이라 불리는 노인이지만, 과연 그런 일도 할 수 있을까? 

       

       당장 등 뒤로 다가와도 모를 법한 얕은 존재감, 과거 철야살수대(撤夜殺手隊)의 주인이자 살수들의 왕이라 불리던 암왕(暗王)과 마주했던 때에도 이리 존재감이 얕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위설아의 속은 다른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선천지기(先天眞氣)나 단전을 채운 내기와는 본질이 달랐다.

       

       이장로는 위설아의 몸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함을 느꼈다.

       

       ‘대체 그건 무엇일까….’

       

       인간에게 무지함이란 곧 공포(恐怖)다. 이장로는 위설아에게 분명 공포를 느꼈다.

       그 작은 아이에게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하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본능이 그리 말했다. 저건 열어봐선 안 되는 것이라고.

       

       “선배가 이제 와서 숨어 사는 것도 그 탓이요? 다른 이들에게 보일까 봐?”

       

       다른 무인이 위설아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 만일 이장로와 비슷하게 본다면?

       

       애초에 중원에서 위설아에게서 이러한 걸 볼 수 있는 수준의 무인은 몇 없으리라.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그들이 이장로처럼 위설아의 비밀을 보게 된다면?

       

       작은 아이에게 보이는 알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까. 

       

       물론 검존의 표정을 보면 오로지 그 이유 탓은 아닌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등 뒤를 울리는 찌르르한 감각. 

       

       마치 주위에 띄워진 수십 개의 보이지 않는 검 끝이 이장로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검존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이 검은 모두 검존의 것이다.

       검수가 닿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심검(心劍)이 이것일까.

       

       검수가 아닌 이장로는 알 수 없었다. 

       

       “더 물어보면 후배를 망설임 없이 썰 거 같구먼.”

       “구륜, 자네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 또한 그 덕이니 서운해하지 말게.”

       “나는 선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아이를 왜 품고 사는지 알 수 없소. 궁금하지도 않소.”

       

       남이 어떤 생각을 하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가야 할 길만 보기도 벅찬 삶이다.

       그게 이장로가 가진 생각이었다.

       

       “예전의 선배였다면 걱정도 하지 않았겠지.”

       

       이장로의 눈에는 검존이 위태로웠다.

        영원히 녹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검존이라는 검이 심마에 의해 무뎌진 게 느껴진다.

       

       정파의 기둥, 정파의 하늘, 검존은 그리 불리며, 그리 불릴 가치가 있는 이였다.

       저 왜소한 육체에 담았을 하늘에 이장로는 경외심 또한 품은 적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리 높던 하늘에 조금씩 금이 간 게 보였다. 이장로는 그런 검존을 보며 말했다.

       

       “선배가 그 아이가 사람이라 말한다면 그렇게 생각하겠소, 품을 생각이라면 그 또한 그리하시오. 내 뜻이 중요한 일은 아닐 터이니, 다만.”

       

       이장로는 부서진 탁자를 뒤로하고 몸을 일으켰다.

       가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이장로는 곧바로 남궁세가로 향해야 했다.

       

       “선배가 택한 일을 후회하진 마시오. 그만큼 초라한 일은 없을 것이오. 선배가 가장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장로가 처소를 빠져나가고 얼마 가지 않아 검존의 내기가 사라졌다.

       날카롭게 서 있던 내기를 회수한 검존이 이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아이, 사람이 맞긴 한 거요?’

       

       이장로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사람이 맞냐고? 자신은 손녀는 분명 사람이었다.

       

       마경(魔境).

       검존이 위설아를 데리고 온 곳. 검존은 그때의 기억을 지웠다. 

       

       처음 아이를 만났던 순간부터. 아이의 어여쁜 입에 자신이 담긴 순간, 같이 손을 잡고 들판을 거닐던 순간.

       그런 모든 순간순간이 검존에겐 위설아가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위설아가 무엇을 가지고 있던 그 아이가 세상에 찾아올 혈겁에 중심에 있을 운명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그런 운명을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 갈고 닦은 검이리라, 검존은 자신의 검에 맹세했다.

       

       위설아가 무엇이든지. 혈겁이 무엇이든지.

       

       검존은 자신의 손녀를 위해서라면 남아있을 하찮은 삶 따윈 망설임 없이 태워버릴 수 있었다.

       이어 검존이 자신이 부숴버린 탁자 조각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모은다. 

       

       “미안하구나….”

       

       태어나 세월이 그렇게 흘렀음에도 감정 하나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검존은 자신이 수양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위설아가 사람이 아니라면 어떠한가.

       사람으로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 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리라.

       

       검존은 그러기 위한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몇 시진 뒤.

       

       검존은 위설아가 세가에서 사라졌음을 뒤늦게 눈치채게 된다.

       

       

       

       

       

       ******************

       

       

       

       

       

       마차를 타고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엉덩이가 뻐근하다.

       밖을 보니 해는 이미 저물어있었다. 조금 있으면 숲길이기에 슬슬 쉬어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곧이어 마차가 세워지고 야영을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근처에 계곡이 있어 야영하기 좋은 지역이었다.

       하도 앉아있어서 그런가? 몸이 다 뻐근했다. 

       

       무연은 왠지 모르게 퀭한 얼굴을 하고 있더니 갑자기 수련하겠다며 검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불침번 전에는 온다고 하니 알아서 하겠지.

       

       시종들이 식사 준비를 시작하고, 나는 멀지 않은 들판에 서 있었다.

       

       사천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정말 못해도 며칠은 남았을 거다. 언제나 그렇듯, 이 더럽게 큰 땅덩어리는 이동하는 데만 한참이다.

       

       괜히 과거에 무림맹에서 하늘에서 활공이 가능한 마물을 길들이려 하던 것이 아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역시 녹각견처럼 실패했다.

       결국, 무림맹이 판단하길 마물을 길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마는 달랐지만 말이지.’

       

       우습게도 무림맹이 수년의 연구를 진행해도 못했던 일을 천마는 할 수 있었다.

       천마는 마물을 길들였다.

       

       그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마물이 고개를 조아린다.

        세가의 전각쯤은 한입에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마물조차 천마에겐 순한 양이었다.

       

       전생에 화산파를 중원에서 지우던 날에도, 천마는 상공에 거대한 마물을 타고 나타났다.

       마물 조차 길들인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과연 그런 걸 할 수 있는 자가 인간이 맞을까.”

       

       떠올리기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어서 그만 생각해야 했다. 우선은 앞에 놓인 일들을 떠올려야 한다.

       

       잡생각을 지우고자 몸에 내기를 둘렀다. 나름대로 수련을 거듭했지만 짧은 사이에 나아지기엔 너무 적은 내공량이었다.

       아직 2성에 머문 구염화륜공이 3성에 오르기까진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육체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우선 둘째치고 보면 가장 시급한 것은 내공량이 문제였다.

       

       구절엽과의 대련에서도 느꼈던 부분이다.

       턱없이 부족한 내공에 할 수 있는 것을 못 한다.

       

       이건 실전에서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왼발을 내디디면서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팡!

       

       빠르게 내지른 주먹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한 번 했다고 단전에서 내공이 쭉 빠지는 감각이 든다.

       

       꾹 참고 다음 초식을 잇는다. 

       

       팔에서 다리로 다시 다리에서 팔로. 유연하지 못한 육체 탓에 원하는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내기는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결국, 무공이란 육체가 기억하는 감각의 영역이다.

       무인의 경지란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쉬이 내어주지 않는다.

       

       닥치고 수련을 반복하라 이 말이었다.

       

       그렇게 똑같이 몇 번의 동작을 반복하니 벌써 아랫배가 찌릿하게 울린다.

       내공이 다 떨어졌다는 의미였다.

       

       “후우….”

       

       남은 찌꺼기를 뱉듯 호흡에 마지막 내기를 뱉어냈다.

       짧게 수련을 했으나 벌써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부족한 내공이 계속 발목을 붙잡는다.

       

       머릿속에 계속 마도흡천공에 대한 생각이 지나갔다. 

       

       이는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이다.

       정말 몸에 마기가 쌓이지 않는다면, 사실상 내공을 쌓는데 이보다 좋은 심공은 없으리라.

       

       하지만.

       

       “겨우 탈출했는데, 그 좆같은 길로 다시 기어들어 가고 싶진 않아.”

       

       마기가 쌓이지 않더라도 결국은 천마의 무공이다.

       고작 마석 두어 개 흡수한 거로 마기가 쌓였는지 아닌지 제대로 확인도 못 할뿐더러.

       

       스스로 그곳과 연관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이것은 저주다. 회귀가 축복이라면 저주가 같이 딸려온 것이리라. 

       최소한 제대로 알아보고 확인해보는 게 중요했다.

       

       수련한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한 시경쯤 지났으려나.

       짧게 하던 수련을 이내 멈추고 계속 돌리던 구염화륜공 또한 멈추니 밤바람이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심법의 특성상 추위를 덜 느낄 텐데 이 정도라면 아마 땀에 젖은 탓일 것이다.

       야영지로 돌아가 갈아입을 옷을 부탁하고 계곡으로 향했다.

       

       귀찮아서 그냥 밥 먹고 드러눕고 싶으나 아직은 꼴에 명가자제라는 이름표를 유지하고 싶기에 티를 좀 내야 했다.

       흐느적거리며 계곡에 발을 담그려던 순간.

       

       -꺄아악!

       

       귀를 찢는 비명에 고개가 휙 돌아갔다.

       다름 아닌 식자재를 담는 짐마차쪽이었다.

       

       곧바로 무슨 일 난 건가 싶어서 마차 쪽으로 빠르게 뛰었다.

       뭐지? 산적이 습격이라도 했나. 마경문이 출몰한 이후로 산적 같은 건 거의 사라졌다 들었는데.

       

       마차 쪽으로 다가가니 시종이 마차 쪽을 기웃거리며 겁에 질려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미 무연은 물론이고 다른 호위들도 비명을 듣고 모여있었다. 

       

       “그….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여서요.”

       

       시종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짐마차 안에?”

       

       음식 냄새를 맡고 들짐승이라도 숨어들었나? 이왕이면 먹을 수 있는 동물이면 좋겠는데.

       

       금방 호위가 등불을 가져와 마차 안을 비췄다. 

       그러자 마차 안에서 무언가 움직인다.

       부스럭거리면서 나타나는 것이 느낌상 작은 짐승은 아닌 것 같아 호위가 검을 뽑아 든다.

       

       이윽고 비친 것은.

       

       “으음…. 응…?”

       

       다름 아닌 당근을 입에 물고 있는 위설아였다.

       

       나는 그걸 보고 한동안 입을 열 수 없었다.

       …네가 왜 또 여기서 나와?

       

       ‘…아, 인생.’

       

       뭔가 크게 좆된 것같이 보이는 상황에 오랜만에 두통이 몰려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요일 연참을 하고싶긴 하지만.

    좀 있으면 2차 백신을 맞아야 하기에 3일치의 비축분이 필요합니다…

    우선 열심히 써보겠지만….제 느린 손이 어디까지 감당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힘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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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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