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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23 – 전 멀쩡한데>

     

    귀엽네. 부끄럼을 타는 오크노디를 보며 응시생들은 마음이 힐링되는 한편, 의아함도 느꼈다.

    무식하게 큰 원숭이수인이야 그렇다 쳐도 동료로 있는 여자모험가나 턱수염 하나는 봐줄만한 남자는 그리 강해보이지도 않는데.

    동료빨이 아니라면 무슨 수로 저런 조그만 애가 수석이 되었을까.

     

    “1차 관문을 수석으로 통과한 오크노디 양에게는 특권을 드리겠습니다. 이후의 관문은 치르지 않고 즉시 입학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사방에서 부러움의 시선이 쏟아졌다.

     

    “축하합니다.”

    “운이 좋구나, 쥐방울아.”

    “얼른 받아. 넌 통과할 자격 있어.”

     

    지젤, 손오천, 이사벨.

    모두가 그녀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시험관 명호스님마저도 어서 특권을 사용하지 않고 뭐하냐며 기다리고 있다.

    그런 기대를.

    오크노디는 가볍게 깨부쉈다.

     

    “싫어요.”

    “특권을 사용하지 않겠단 말입니까?”

    “그걸 쓰면 저만 합격하잖아요.”

    “즉시합격은 수석에게만 부여된 특권이니까요.”

    “저는 동료를 버리지 않아요.”

     

    동료들의 눈에 감동의 빛이 어렸다.

     

    “아이답구나.”

    “미련한 짓이야.”

    “그래서 더 순수해.”

     

    응시생들은 그녀의 결정에 한 마디씩 했다.

    누군가는 비난하고, 누군가는 칭찬하고, 누군가는 질시했다.

    그래도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 사실.

    이 아이는 순수하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다음 발언이 선사하는 충격은 더욱 커다랬다.

     

    “제가 버림받는다면 몰라도요.”

     

     

    * *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

    이 게임의 NPC들에게는 호감도 기능이 있다.

    앞선 밀짚모자녀처럼 아무래도 좋을 엑스트라에게만 달린 예능용 기능이 아니다.

    주조연 캐릭터 모두에게 각자의 호감도 파라미터가 존재한다.

    단짝처럼 함께 다니는 친구에게도, 과제에서 힘을 합친 동기에게도 호감도는 있다.

     

    ‘호감도를 일정수치 이상 올리면 동료시스템이 개방되었지, 분명?’

     

    문제는 이놈의 호감도에 있다.

    던전은 보통 길고 힘들다.

    파티원들의 실력에 맞지 않는 난이도의 던전을 고르거나, 비호감 몬스터가 출현하는 던전에 진입하거나, 부정적 이벤트를 겪거나, 동료시너지가 안 좋다거나.

     

    온갖 이유로 호감도는 줄어든다.

    그것이 일정 수치 이상 줄어들면?

     

    평소에 호감을 열심히 쌓고 동료가 되어 함께 던전에 들어가더라도, 나올 때에는 대판 싸우고 헤어지며 남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남남이 되는 수준을 넘어서 마이너스에 도달하면 아예 적대관계가 된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함께 하기를 원해도, 동료들은 때때로 나를 배신한다.

     

    -넌 이제 친구가 아니야.

    -다시는 부르지 마.

    -다음에 또 눈에 띄면 가만두지 않겠어.

    -당신은 지루해.

    -근육 너무 커. 부담스러워.

    -네가 쓸데없이 크니까 중량함정에 전부 걸리잖아! 던전에 같이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아, 다시 떠올려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어째, 지금 동료들이 보이는 모습이 근육떡대남캐 시절 내가 받았던 충격을 담고 있다.

     

    “오크노디양. 어째서 우리가 당신을 버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쥐방울 자식……. 꽤 찝찝한 소리를 해대는데. 고용주가 신경을 쓰는 이유를 알겠어.”

    “왜 그런 버림받는 건 익숙하다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어린 나이에.”

     

    아. 이 사람들은 여기가 게임을 모티브로 한 게임세계라는 걸 모르지?

    호감도 기능에 대해 설명하기도 어려울 테고.

     

    “그냥, 그래왔으니까요.”

     

    치킨이 맛있고, 스탯석이 유익한 것처럼, 동료들이 헤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할 말이 궁한 건 어쩔 수 없다.

     

    “허어…….”

     

    시험관 명호스님이 긴 탄식을 흘렸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소승이 준 것은 벌이 아닌 상이니, 본인이 원치 않는다면 동료들과 함께 시험을 치른다고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차 관문 석탑쌓기 이벤트를 수석으로 통과했습니다.]

    [보상으로 주어진 수석특전 <즉시입학>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관계로, 시험은 계속 치르게 됐다.

     

    “재수 없어.”

    “뭐야 저게. 동료애?”

    “뭣 모르는 꼬맹이니까 할 수 있는 짓이지.”

     

    시기와 질투, 힐난의 수군거림이 끊이질 않았다.

    착한 얼굴로 안됐다, 용기 있네,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조금 떨어져서는 욕을 한다.

     

    “아- 배고프다. 시험 도중엔 밥 안 주나?”

    “쥐포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그거라도 줘봐.”

     

    남의 속도 모르고 배나 벅벅 긁으면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밥 타령이나 하는 먹보원숭이.

     

    “쥐방울아. 너도 하나 먹을 테냐?”

    “오천씨가 집은 거만 아니면요.”

     

    [일반요리 <허니버터육포>를 섭취했습니다.]

    [섭취횟수상승(2/1000)]

     

    먹은 요리는 가급적 두 번 먹지 않는 주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로 해둘까.

     

    “사이좋은 팀이네.”

    “이 쥐방울이랑? 내가?”

    “이 시끄러운 떡대랑 제가요?”

    “부러울 정도로 좋아 보이는 걸? 에소니아 모험단 시절 단장과 베테랑 선배들이 그랬거든.”

     

    이사벨의 단장은 죽었다고 했었지.

    딱히 이런 원숭이수인이랑 친해질 마음은 없지만.그래도 모처럼 구한 요리사가 우리가 친한 모습을 보고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면야.

     

    “실은 친한 거 맞아요. 오천아저씨는 힘도 세고, 키도 크니까. 든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던 거냐? 쥐방울 주제에 제법 기특한 소리도 할 줄 아는데.”

    “거짓말이에요. 나가 죽어.”

     

    조금 굽혔다고 바로 우쭐거리는 모습에 울컥해서 다시 티격태격해버렸다.

     

     

    * *

     

     

    배려심이 깊은 아이다.

    자신도 불우한 과거를 겪은 주제에 몇 살은 더 많은 어른인 자신을 배려하다니.

    이사벨은 생각했다.

    꼭 생명의 은인이라서가 아니라도 이 아이의 곁을 지키고 싶어졌다고.

     

    ‘더럽고 추악한 것은 많이 보아왔지. 그렇지만 정말로 빛나는 사람은 환경에 굴하지 않아.’

     

    진흙탕 속에서도 빛나는 보석이 있다.

    대부분은 주변의 탐욕에 짓밟혀 빛이 바래고, 언젠가는 흐릿한 빛마저도 사라지지만.

    운이 좋으면 그 빛을 눈여겨본 자들이 보석을 건져내고 깨끗하게 닦아주며, 보다 밝게 빛나도록 정성들여 깎아주기도 한다.

     

    ‘수인치고는 배려가 깊어.’

     

    손오천이라는 수인.

    무심한 듯이 행동하고 있지만 아이의 귀를 더럽히는 목소리를 지우려는 행동이 빤히 보인다.

    지젤이라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정신이 수인에게 집중된 사이, 더러운 말을 일삼던 자들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며 얼씬거리지도 못하도록 떨쳐내고 있다.

    좋은 아이와 좋은 어른들.

    요즘 같은 세상에는 흔치 않은 팀이다.

     

    ‘고마움을 아는 어른은 드물지.’

     

    사회는 욕망과 이기심을 가르친다.

    더 많이 탐하고 더 독하게 이기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몸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그런 시간들을 겪고도 순수함을 잊지 않았다면.

    그저 동료들과 함께 있고 싶을 뿐인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는 훌륭한 어른이다.

    지젤과 손오천은 충분히 훌륭했다.

     

    “짬이 나면 요리라도 한 번 해줄게.”

    “오오. 정말이냐?”

    “모험가의 요리라. 기대되는군요.”

    “주문도 가능해요?”

    “재료만 있다면.”

     

    그래서 그런지, 이사벨에게도 욕심이 생겼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채식요리는 싫어해?”

    “뭐든 잘 먹어요.”

    “다행이네.”

     

    2차 관문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숲지대.

    눈에 띄는 식재료는 하나같이 채소뿐이었다.

     

     

    * *

     

     

    1차 관문 전에도 그랬듯이 시험장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특별한 풍경은 곧 이어질 시험에 대한 힌트.

    이번에 눈에 띄는 건 숲이다.

    그것도 조금 전까지 지진으로 시원하게 갈려나간 바위산과 달리, 조금도 지진에 휘말린 흔적이 없는 아주 멀쩡한 숲.

    보통 숲이 아니라는 거지.

    짐작되는 시험후보군은 하나같이 끔찍하다.

     

    야생서바이벌.

    사냥대결.

    숲 탈출.

     

    서바이벌이면 이 무성한 숲 속에서 며칠을 계속 지내야 한다.

    사냥대결이면 좀 전에 어그로가 잔뜩 끌린 주조연들 사이에서 사냥감 쟁탈을 벌여야하고.

    숲 탈출이면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환경이 더 거칠어진다.

     

    셋의 공통점.

    이게 제일 중요하다.

     

    왜애앵-

     

    활짝 펼친 손 옆으로 삐뚤삐뚤 날아오르는 녀석.

    더러운 피 도둑놈.

    모기가 있다.

     

    “쥐방울아, 그렇게 손이 느려서 잡을 수나 있겠냐?”

     

    손오천이 보란 듯이 솥뚜껑만한 두 손을 활짝 펼치고는 짜아악─! 하고 손을 쳤다.

    뭐야, 지도 놓쳤으면서.

    손바닥을 피해 빠져나온 모기를 보고 한 소리 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투둑

     

    모기가 힘없이 근처 덤불 위로 떨어졌다.

     

    “뭐에요, 방금 그거?”

    “박수도 빨리 치면 모기가 기절하지.”

    “대박.”

     

    내 안의 손오천을 향한 호감도가 올랐다.

    지금이라면 먹어본 맛의 사탕 정도는 줄 수 있어.

     

    “먹을래요?”

    “오, 사탕이냐? 좋지.”

     

    조심스레 사탕주머니를 풀어 사탕 한 알을 커다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크기 차이가 이렇게까지 심하니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와그작 와그작

     

    한 입에 사탕을 털어넣자마자 씹어 부수는 소리가 무참히 울려 퍼졌다.

    혓바닥으로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뭐든 이빨로 씹고 부수는 재미를 추구하는 편인가.

    사탕 먹는 법부터 나랑은 영 맞지 않는다.

     

    ‘역시 좋아하기 힘든 녀석이야.’

     

    사탕은 입 안에서 데굴데굴 굴려먹어야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사탕을 뒤적거리는데 갑자기 원숭이 놈이 퉤 하고 사탕을 뱉었다.

     

    또각

     

    얼마나 세게 뱉어냈는지 나무에 부딪힌 사탕이 반으로 쪼개졌다.

     

    “아앗, 뭐하는 짓이야!”

    “너야말로 뭘 먹고 다니는 거냐?”

     

    손오천이 사탕주머니를 내려다보며 황당해하였다.

     

    “이거, 독 사탕 아니냐.”

    “전 멀쩡한데요?”

     

    주변의 시선이 또 다시 따가워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껴먹는 독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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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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