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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시요람 1주차 일정을 끝내고 맞이한 일요일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시간에 기상했다.

     

    마냥 잠에 취해 침대 위에서 비비적 거리기에는 심리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은 오늘도 영양바로 때웠다.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 도무지 식욕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영양을 채워야 하니 영양바와 비타민 같은 거라도 주기적으로 섭취하고 있다.

     

    생활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굴릴까 생각하다가, 잠시 계획을 점검할 필요성을 느껴 그만두었다.

     

    ‘이제 2주차 시작인가…’

     

    내 방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고민에 잠겼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정리해볼 생각이다. 고작해야 1주차지만 얻은 것들은 꽤 있었다.

     

    시요람에서 지급해준 학습용 패드에 펜을 끼적였다.

     

    ‘신체능력.’

     

    고작해야 닷새 남짓이었지만 신체능력이 눈에 띄게 올랐다.

     

    막 초인이 되어 빵빵한 잠재력, 성장의 가호가 주는 배율, 특례입학생으로 받는 추가적인 배율, 아트라 교수의 빡센 수업.

     

    그 모두가 성장을 북돋아 준 결과, 고작 닷새 만에 신체의 성장이 눈에 띄고 있었다.

     

    ‘마력.’

     

    어제는 리아나 교수에게 마력 입문을 도움받았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력에 입문할 수 있었고, 나도 이제 엄연한 초인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이제 막 기초운용에 들어간 것에 불과하다.

     

    강기나 강체, 기초 마법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상태라 별 차이는 없어 보여도 마력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뀐다. 다시 한번 성장의 가속이 붙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고유능력.’

     

    공간지각, 팔방미인, 마력친화.

     

    세 가지의 고유능력을 동시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아직 깊이 체감하진 못했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뭔가 개선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부분은 아트라 교수와의 대련에서 자세히 알아볼 생각이다.

     

    물론 이것마저 이제야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다.

     

    ‘고유’의 구축은커녕, 자기 능력을 파악조차 제대로 못 했으니 원…

     

    고유능력은 보통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겁화와 창해가 시조가 갖춘 고유능력을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혈통에 의해서 내려오거나, 혹은 아예 스스로 전혀 다른 고유능력을 각성하는 경우도 있다.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경우? 없는 것은 아니다.

     

    마력을 각성했지만, 고유능력이 없는 초인이 인고의 노력 끝에 고유능력을 각성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나는 두 개의 경우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누구들처럼 정통한 혈통으로 물려받은 것도, 태어나면서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평생을 기울인 노력을 통해 습득한 것도 아니다.

     

    전부 아니다. 그냥 운 좋게 게임 캐릭터 설정 좀 건드리다가 얻은 게 전부다.

     

    고유능력과 제약… 생각하니 또 부아가 치민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좀 팔자를 피는가 싶던 인생에 굴곡을 추가해준 개같은 게임이 떠올랐다.

     

    〈세이비어〉에서 캐릭터를 생성할 때 보통 한 가지의 능력을 선택하여 가져갈 수 있다.

     

    세계관에 흔히 널려있는 보통의 능력을 가져갈 수도 있고, 혹은 특별한 효과의 능력을 가져갈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능력을 받지 않고 맨몸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서 1회차에는 피똥을 쌌다. 바닐라를 즐기고 싶다는 마음에 능력을 거부하고 맨몸으로 시작하는 선택을 해버렸다. 덕분에 정말 대차게 말아먹었다.

     

    역설적으로 역대 회차 중에서 1회차가 최장기간을 생존했지만…

     

    아무튼, 이 설정 부문에 나사가 좀 빠져있다.

     

    처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가 있다.

     

    여기서 제약이라는 설정을 통해 제약 하나당 플레이어에게 특수한 보정을 추가할 수 있다.

     

    이때 플레이어가 제약을 하나 받았다면, 가져가는 능력은 제약으로 받은 하나와 본래부터 가져가야 했던 하나를 합쳐 두 개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똥망겜은 아니다.

     

    처음의 제약 하나에 얻는 것이 없다. 제약 하나를 받는다면, 총합으로 가져가는 능력은 하나에 불과하다.

     

    처음 받는 제약은 사실상 두 번째 제약과 능력을 받기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는 시스템.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시스템인가. 제작진에게 메일을 보내봤지만, ‘그것을 고려하고 설정한 것’ 이라는 형식상의 답변만을 받을 뿐이었다.

     

    사실상 첫 번째로 받는 제약은 뭐 하나 얻는 것은 없고, 손해밖에 없는 장사다.

     

    맘같아서는 내다 버리고 싶지만, 두번째, 세번째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덤터기를 써야했다.

     

    결국 능력3:저주3으로 비율을 맞추고서야 게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쯧.’

     

    개발사에게 받은 형식상의 메일. 이것들도 의문이다. 개발사의 정체는 뭘까. 이딴 똥겜을 만든 이들의 정체는 뭐냔 말이다.

     

    모른다. 알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사정상 그쪽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일단 넘긴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차근차근 알아보자.

     

    다음 의문이다.

     

    본래 세계와 게임 속 세계.

     

    이능이라는 것이 없던 현실적인 세계와, 마력과 고유능력, 던전과 탑이라는 환상 속의 개념이 있는 이쪽 세계.

     

    나는 ‘본래 세계’의 이하율이다. 현재로서는 이렇게 확신하고 있다. 이것 말고는 뭐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거지 같던 옛날 집을 기억하는 이하율이고, 집이 타버린 후 거기서 도망쳐 빌빌거리다가 보육원에 들어간 이하율이다.

     

    그 보육원마저 불타버려 방황한 끝에 정착하고, 적당히 살아가던 이하율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가상의 요소가 가득한, 이쪽 세계의 이하율은 누구냐?

     

    처음부터 들었던 의문이다.

     

    원래 세계의 이하율인 내가 이곳으로 넘어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의문점은 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의 신분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게임이라면 그런 설정이구나 넘기면 되지만, 내가 이곳을 진짜로 존재하는 세상이라 인정한 시점에서는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 오늘에서야 내 신분에 대해 조회해봤다.

     

    일단 대한민국이라는 틀은 유지하고 있는지라, 내가 알고 있는 사이트들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덕분에 인터넷으로 서류를 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홀로그램으로 표시되는 여러 서류를 샅샅이 확인했다.

     

    [연성 보육원]

    0세 ~ 7세까지 기록. 대문 앞에 놓인 갓난아기인 나를 발견 후 입소 절차를 밟았다. 화재로 인해 실종 및 사망 처리. 자세한 기록은 화재 탓에 소실되었다.

     

    [일보 보육원]

    8세 ~ 18세까지 기록. 실종되었다가 1년 반 만에 발견. 당시에는 눈이 멀었고 오른팔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 후 절차를 걸쳐 해당 보육원에 입소. 하지만 몸의 장애도 장애인데다가, 마치 인형처럼 죽은 듯 생활하던 탓에 특별한 기록은 없었다.

     

    퇴소 직전에 보육원에 화재가 있었다. 이때는 특별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고 기록되었다.

     

    ‘음…’

     

    눈쌀을 찌푸렸다. 불쾌한 감각에 팔을 쓸어내리자 오싹 솟은 닭살이 느껴졌다.

     

    연성 보육원. 뭐 하는 곳인지 모른다. 처음 들어보는 보육원이다. 애당초 보육원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일보 보육원.’

     

    귀에 익은 이름이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있었던 보육원의 이름인데.

     

    불쾌하기 짝이 없다. 정확히는 공포라고 해야 할까. 이름이 똑같은 이하율일때도 설마 했는데, 진짜로 비슷한 부분이 있어 소름이 끼친다.

     

    다른 부분이라 해봐야 처음의 연성 보육원 부분.

     

    본래 세계에서는 부모의 집에 있을 시기였다. 좇같은 것은 화재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

     

    부모의 집도 화재로 날아갔고, 이쪽 세계의 보육원도 화재로 날아갔다.

     

    또 거의 1년간 떠돌아다녔다는 공통점도 있다.

     

    당시의 나는 당연히 죽을 줄 알았다. 오른팔에 불이 붙은 채로 의식이 날아가는데 당연히 죽을 거로 생각하지.

     

    하지만 눈이 떠졌다. 어째서인지 오른팔에만 끔찍한 화상이 남은 채로.

     

    연유를 파악하기도 전에, 당시의 나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 여차여차 다른 보육원에 입소하게 되었으니, 그게 일보 보육원이다.

     

    당시 나는 출생신고도 안 돼 있는 유령 아동이었다. 일보 보육원에 가서야 출생신고도 일가창립의 형태로 진행했다고 전해들었다.

     

    ‘하아…’

     

    답답하기 짝이 없는 심정이다. 난 의자에 몸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이쪽 사정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찾아보니 내 명의로 빚도 달려있었다.

     

    보아하니 생활비를 목적으로 금융권에 손을 댄 모양이다. 그 액수만 수천만 원. 당시에는 별 신용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대출받은 건지 의문일 따름.

     

    다행히 시요람에서 주기적으로 품위유지비를 지급해주는 덕분에 당장 돈에 쪼들리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자를 생각하면 최대한 빨리 갚는 것이 좋겠지. 최하급 영웅, 헌터 수준만 넘어도 수천만 원 정도는 금방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 아파…’

     

    생각할 거리가 많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는 리아나 교수 곁에서 푹 잠들어 그나마 덜했지만, 오늘부터는 또 수면 시간이 줄어들 테니 머리가 아파질거다.

     

    수면 수업이라 했던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옅게 잠들고, 딱 맞춰서 1시간 만에 일어날 거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설마하니 몇 시간을 내리 퍼질러 잠들 줄은 몰랐다. 리아나 교수의 외투를 덮고는 쿨쿨 잠들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처음엔 다들 그런다고 리아나 교수가 웃으며 말해줬지만, 솔직히 말해 쪽팔린 감이 없지 않아 있다.

     

    ‘3주차였나?’

     

    수치심에 애꿎은 책상을 꾹꾹 누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지난번에 다운받아 둔 학사일정 파일을 가져왔다.

     

    오늘이 1주차의 주말.

     

    3주차 월요일, 화요일에는 1학년 필수 참가인 던전공략 일정이 있다.

     

    1학년 각 반의 생도들을 4~5명으로 묶어 4급 던전에 들여보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일정이다.

     

    일정은 1박 2일 예정.

     

    던전 공략 및 몬스터 토벌은 영웅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덕분에 던전 공략과 몬스터 토벌 일정은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학사일정이다.

     

    던전공략이 끝난 뒤, 바로 다음 주인 시요람 4주차에는 성장의 탑 입장이 있다.

     

    시요람의 존재 이유나 마찬가지인 성장의 탑.

     

    그 혜택은 크게 2가지로, 하나는 시요람 소속의 생도가 적용받는 성장의 가호이며, 다른 하나는 성장의 탑에 대한 입장권이다.

     

    성장의 탑에서는 가뜩이나 보정 받은 성장 배율이 더욱 증폭되고, 탑이 제공하는 특별한 시련 따위를 경험할 수 있다.

     

    더욱이 시련 도중 신체가 결손나거나,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것은 모두 허상으로 남는다.

     

    즉, 어떤 방식이든 시련이 종료되면 외부로 뱉어내는 것이 전부다.

     

    상처와 같은 부정적 흔적은 모조리 사라지고, 성장과 같은 긍정적인 부분은 모두 포함한 채로 뱉어진다.

     

    실전의 위험성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한 실전을 탑 내부에서는 목숨과 부상의 위험 없이 실전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그것도 평소보다도 증폭된 성장의 가호와 함께.

     

    시요람에서 가장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로, 무려 닷새 동안 성장의 탑에 입장해있는 장기 일정이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던전 공략이 2주 뒤고, 성장의 탑 입장이 3주 뒤다.

     

    거진 한 달. 성장의 탑도 입장한 이후이니 그때쯤 되면 충분히 성장했겠지.

     

    이 정도 성장 속도라면, 한 달쯤부터 슬슬 원작 지식을 활용해 던전을 돌아다녀도 되지 않을까.

     

    가장 먼저 공략할 던전은 이미 구상해뒀다.

     

    영국의 한 소도시 부근에서 찾을 수 있는 던전.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목표다.

     

    고백의 목걸이.

     

    착용한 자가 속으로 읊조리는 말을 음성으로 표출하는 아티펙트.

     

    자백제 겸 사용하려고 해도, 그 조건이 꽤 까다로워 용도가 마땅치 않았지만, 지금의 내 사정은 좀 다르다.

     

    침묵의 저주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그것만 있으면 이 뭣 같은 침묵의 저주는 사실상 비껴가는 것과 다름없다.

     

    ‘좋아.’

     

    가까운 목표는 정했다. 그나마 현실성 있는 목표가 잡히자 의욕이 더욱 샘솟는 기분이다.

     

    그리 다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표 조율은 끝났으니 몸을 굴릴 생각이었다.

     

    .

    .

    .

     

    그렇게 시요람 2주차가 시작됐다. 무난하게 성장하는 주간이었다.

     

    공용강의에는 머리를 굴렸고, 전공강의 때는 머리와 함께 몸도 굴렀다.

     

    구르기는 했지만 모두 앞으로 구르고 있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충실한 나날이었다.

     

    “이하율 생도에게 대련을 신청합니다.”

     

    이변은 수요일 날 벌어졌다.

     

    공용강의 『실용검술기초』 시간.

     

    한 생도가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카롭다는 인상이 강한 남자 생도였다.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 안쪽에서는 이쪽을 못마땅하게 보는 심정이 전해졌다.

     

    “……”

     

    …몬스터한테 습격당한 것도 아니고, 목숨에 위험을 느낀 정도도 아니다.

     

    이 정도면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선작과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원동력이 됩니다!

    +

    요즘 감기가 정말 독하네요.

    플러스 전날 걸린 목감기에게 아직까지도 괴롭힘 당하는 중 입니다…

    요즘 밖에 날씨가 참 살벌한데 독자님들도 감기 조심하시길..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아카데미 장애인 전형 생도가 되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created a game character.
Instead of taking several perks, I added restrictions.

▶Restriction (I): “Curse of Sensory Seal”
─Permanently seals a chosen sense.
─Choice: Sight, Taste, Smell

▶Restriction (II): “Curse of Short Life”
─You are born with a body doomed to a short life.

▶Restriction (III): “Curse of Silence”
─Speaking causes you pain.

When the next day came, I couldn’t se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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