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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3월의 흐리고 쌀쌀했던 어느 날, 첨탑의 종이 9번 울렸다.

         

       ─ 지금부터 제1024기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의 입학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입생 및 귀빈 여러분께서는 지정된 자리에 착석하여 주시고,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올바른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입학식은 아카데미 북부의 노천극장에서 진행된다.

         

       노천극장 한가운데에는 연설대와 함께 의자 두어 개가 놓여있었다. 두 의자는 수석과 차석을 위해 학교 측에서 마련해 둔 것이었다.

         

       개막식 리허설부터 시작해서 폐막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정은 무대 중앙부에서 이루어진다.

         

       극장의 경계선을 따라 선생님들이 늘어섰다. 교수진은 입학식 도중 만일의 사태가 생길 것에 대비하여 언제라도 스태프 소환 마법을 장전해두고 있었다.

         

       메리가 헤를라인도 그러한 교수 중 하나였다. 팔짱을 낀 채 상급 골렘 두어 마리를 뒤에 세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지계마도 적성을 지닌 신입생들에게 로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메리가 옆에는 클라이스가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클라이스의 눈가 밑으로 진한 다크써클이 보였다.

         

       ‘황자랑 박터지게 싸웠나 보네.’

         

       클리온 황자 또한 틸레트 아카데미에 지원해 합격했다. 합격한 과정에서 황실 가산점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두고 의혹이 있긴 있었지만, 금세 묻혔다.

         

       어쨌거나 황자는 특별반으로 들어간다. 특별반은 입학성적이 뛰어나 월반이나 조기졸업을 할 가능성이 높은 신입생들이 배정받는 반이다. 보통 20등에서 25등 사이의 합격자들까지 이 반에 소속된다.

         

       ‘거기 담임은 앞으로 피곤하겠어.’

         

       메리가는 동태 눈깔이 된 친구를 곁눈질하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만 놓고 따지자면 클라이스나 메리가나 한계에 부딪히기 직전이었다.

         

       문제는 최근 틸레트 아카데미의 뒷산에서 증식하고 있는 육식성 마수였다.

         

       아카데미의 뒷산은 주로 저학년의 실습장으로 쓰이곤 했었다. 뒷산에는 대부분 하급 마수만 서식했기에 관리만 잘 해준다면 성도의 시민들에게 피해를 줄 일이 절대로 없었다. 어차피 하급 마수는 마법을 쓰지 않고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약했고.

         

       그렇기에 하급 마수는 괴물을 처음 마주하는 1학년생들에게 전투법을 알려주기 위한 희생양으로 사냥되곤 했다. 평소라면 아카데미 이사회의 관리감독 하에 늘 적당한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어야 할 터였다.

         

       분명 그래야 할 터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해. 드레이크 수가 단기간에 급증할 리가 없어.’

         

       중급 마수에 해당하는 아이언 드레이크의 급작스러운 범람. 그것이 이사회에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이유였다.

         

       아이언 드레이크는 보통 산 깊은 곳에서만 산다. 산맥지대에 가면 널리고 널린 게 드레이크라지만, 아카데미의 뒷산은 규모가 작은 산이었는지라 서식하는 개체의 수가 많지 않았다.

         

       그런 드레이크가 근 몇 개월간 산기슭을 넘어오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으니 이 산을 관리하는 이사회의 교수들에겐 실로 골치 아픈 일이었다.

         

       육식성 마수의 개체수 증가는 곧 하급 마수의 개체수 감소로 이어진다. 강한 마수는 약한 마수로부터 에너지를 얻기도 했으니까.

         

       전투마도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잡을 수 있는 하급 마수와는 달리, 중급에서부터는 성격이 포악한 종이 그 급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들은 사람을 선제공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느 정도 훈련을 받은 고학년생이라면 몰라도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학한 1학년 대부분은 중급 마수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설령 입학 전에 마도를 열심히 갈고 닦은 학생이라 할지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공격 마법을 많이 아는 것과, 그 마법을 적당한 때 사용하며 전투를 치르는 건 다른 문제였다.

         

       드레이크의 범람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두고 교수들이 의문을 제기한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다만 조사대를 보냈음에도 아직까지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나마 원인으로 지목된 건 뒷산 최심부에 위치한 동굴.

         

       수평동굴 내부와 그 근방에서 하급 마수의 시체가 널려 있다는 사실뿐이다.

         

       ‘뭐 어쩌겠어. 조사대가 추가 조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현재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혹시라도 뒷산을 넘어 노천극장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드레이크 무리를 사전에 확인하고 막는 것이다.

         

       아카데미 교수진의 절반은 뒷산으로 향하는 입구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수가 튀어나오면 즉시 진압할 수 있도록.

         

       날씨가 흐린 탓에 입학식은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중이었다.

         

       오늘따라 메리가의 예감이 좋지 않았다. 수년 전 전쟁터에서 잃어버렸던 한쪽 눈이 쿡쿡 쑤셔왔다.

         

       제발, 별다른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

         

       ─ 이상으로 교장 선생님의 신입생 환영 인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신입생 대표 공동선서가 있겠습니다.

         

       단상의 한쪽에는 두 학생이 교장의 뒷모습을 관람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한 명은 수석으로 입학한 엘프 남학생이다.

         

       다른 한 명은 차석으로 입학한 금안족 여자아이…는 아니다. 가지런한 단발을 한 붉은 눈의 여자아이였다.

         

       실시간으로 부재중인 금안족 소녀를 대신하여 3등 입학생인 로테가 대타로 앉아있는 것이었다.

         

       ‘왜 안 온 거지?’

         

       로테는 에테르가 왜 입학식에 오지 않았는지 이유를 추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교장의 입학식 축사 내용이 도통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비록 입학식에 참석하는 건 자유라지만 틸레트 아카데미의 신입생들은 절대다수가 이 학교에 입학한다는 걸 무궁한 자랑으로 생각한다. 경쟁률도 장난 아닐뿐더러, 졸업만 한다면 출세가도가 보장되는 학교였으니까.

         

       심지어 평민이나 노예가 졸업하면 못해도 황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하사받는다. 하류층에게 있어 틸레트 아카데미는 제국에서 신분 상승으로 향하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수석과 차석이 누리는 영광은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전쟁영웅이 개선(凱旋)하는 수준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그 명예에 취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랬기에 매년 수석과 차석은 학교에서 강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참석해왔다.

         

       가끔가다 안 나타나는 괴짜가 있긴 하지만, 그랬던 적은 틸레트 천 년 역사를 통틀어 열 명 안팎에 불과했다. 즉 우수 입학생의 불참은 이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이변이 올해 나타났다. 무려 200년만의 일이었다.

         

       “차석으로 들어온 친구는 무슨 일이 있길래 나타나질 않고 있는 겁니까?”

         

       동료 교수의 물음에 메리가는 킥킥거리며 대답했다.

         

       “어디서 잠이라도 퍼질러자고 있는 거 아닐까요?”

         

       결국 시간이 될 때까지 차석 입학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 차석 입학생이 현재까지 참석하지 않은 관계로 3등 입학생이 수석 입학생과 함께 신입생 선서문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수석과 차석의 입학선서문 낭독은 틸레트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원래는 틸레트도 다른 아카데미처럼 수석만 입학선서문을 읽었지만, 언젠가부터 차석도 같이 읽는 것으로 바뀌었다. 오래전 제국이 마수에게 멸망할 뻔했을 때 틸레트에서 배출한 수석과 차석 졸업생 부부가 나라를 구했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그때부터 나라를 구할 영웅들이 더 나타나라는 의미로 공동선서가 시행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졸업생들 사이에서 풍문으로 나돌곤 했다.

         

       ─ 버멜 호르데 군과 로테 살리에르 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앞으로 서 주시기 바랍니다.

         

       로테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수석으로 입학한 엘프 남학생을 흘겨보았다.

         

       엘프 또한 금안족과 마찬가지로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한 종족이다. 단상 아래를 내려다보면 벌써부터 남학생의 팬이 되어있는 여학생들이 즐비해 있었다.

         

       ‘왜 일리야드에서 공부하지 않고 여기 들어온 거지?’

         

       로테의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로테가 종족차별주의적인 사상을 지닌 건 아니다.

         

       다만 인간과 엘프 사이에는 분명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그 간극은 쉽게 좁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국에서 유학하려다가 포기하고 돌아간 엘프만 한 일년에 한 트럭이었다.

         

       로테의 예상은 얼추 맞은 모양이었다. 버멜은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놓고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버멜은 특히 아카데미 뒷산이 있는 북쪽과, 중앙광장과 분수대가 있는 남쪽을 번갈아 보았다. 두 지점이 서로 정반대 위치에 있었는지라 오히려 당사자보다 로테가 더 정신 사나울 지경이었다.

         

       근심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일어서는 버멜을 보며 로테는 이 엘프가 틸레트에 입학한 이유를 짚어봤다. 당장 떠오른 가설은 하나였다.

         

       엘프는 종족 특성상 인간보다 공계마도사의 자질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가 월등히 많았다. 엘프의 수도에 자리한 일리야드 아카데미는 그런 공계마도사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고.

         

       따라서 만일 어떤 엘프가 공계마도가 아닌 다른 원소마도의 자질을 갖고 태어난다면, 차라리 틸레트에 입학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로테는 그렇게 생각했다.

         

       로테는 버멜의 눈동자를 흘끔거렸다.

         

       옥빛이 살짝 감도는 감람색. 공계마도를 관장하는 정령의 축복을 받은 눈 색깔이다.

         

       로테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여기서 수석을 할 실력이면 일리야드에도 충분히 합격할 텐데…. 오히려 입학 장학금은 일리야드가 더 많이 주지 않나?’

         

       틸레트와 일리야드는 서로 같은 급에 해당하는 아카데미다. 둘 중 어디가 더 높다고 쉽게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육을 받으려면 익숙한 환경에서 받는 게 나을텐데…….’

         

       제국과 엘프국 사이에선 문화양식 말고도 차이점이 또 하나 존재했다. 바로 정치제도였다.

         

       제국엔 신분제가 남아있었다. 반대로 엘프들의 나라인 카우렐리아는 수십 년 전 혁명이 일어난 이후로 통령과 의원 내각이 자리하게 된 국가였다.

         

       정치제도가 다르면 국민이 전반적으로 품고 있는 생각도 달라진다. 실제로 제국인은 상당수가 신분제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데, 이는 카우렐리아에서 나고 자란 엘프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아니야. 굳이 이런 것까지 생각할 필욘 없잖아. 여기 입학한 이상 모두 같은 동기인걸.’

         

       이 이상 생각하는 건 괜한 오지랖이었다. 로테는 짤막한 한숨을 내쉬고는 한 손으로 선서문의 한쪽 끝을 집어들었다.

         

       기다란 선서문의 반대쪽 끝은 버멜이 잡았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버멜 군이 규정 하나를 읽으면, 로테 양이 다음 규정을 읽어주시면 돼요. 그렇게 차례대로 하나씩, 아시겠죠?”

         

       두 사람에게 귀띔해주러 다가온 교감을 향해 로테와 버멜은 고개를 끄덕였다.

         

       ─ 신입생 대표 두 분께서는 큰 목소리로 선서문을 낭독해주시길 바랍니다.

         

       버멜이 나지막한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결국 이렇게 되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노천극장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 하나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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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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