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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세상의 절반을 준다는 게 무슨 의미죠?”

       

        빌런의 모습이 사라지자 한유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꿈을 기지로 삼아 현실을 침공하자는 말이겠지. 시원하게 까였지만.”

        “후…… 후우우!”

       

        긴장의 끈이 풀린 한유리가 주르륵 주저앉았다.

       

        “방심하지마. 이제 시작이니까.”

        “시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빌런, 놈은 이제 자신의 모든 걸 동원해 우리를 노릴 거야. 놈의 목표는 모든 이방인의 ‘동화’. 뻔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가장 극렬히 저항하는 저항군인 셈이지.”

       

        사락!

       

        그리 말한 나는 손을 들어 ‘빛’을 만졌다.

       

        <성녀> 안젤리카가 빚어내고, <재창조>의 한유리가 그 양을 증폭시킨 신성력. 단어로만 알던 그 미지의 힘이 병실을 가득 채우니 더 없이 신기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앞서 말했던 대로, 이제 시작이다. 신비한 힘을 마주해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우리에게 없다는 소리다.

       

        “안젤리카.”

        “네!”

        “두 아이를 지켜줘. 이게 내가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한유리.”

        “네, 네?”

        “너는 최후의 순간까지, 신성력의 <창조>를 부탁해. 최악의 순간에는 안젤리카를 돕도록 하고.”

        “아, 알았어요. 제 능력이 닿는 곳까지 최선을 다할게요!”

        “그건 저를 믿지 못하는 말투입니다. 제 능력은 당신의 상상 이상입니다.”

       

        억울한 듯한 안젤리카가 작게 항변했다. 

       

        뭐, 나도 안다. 그녀의 능력이 정신이 나간 수준이며, 위험할 일 따위가 발생할 확률은 지극이 낮다는 것을.

       

        ……그냥, 요 며칠간 알게된 성녀의 ‘진짜’ 모습이 걱정을 키운다고 해야하나.

       

        그 다음.

       

        느린 걸음으로 병실 구석,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다가간 나는…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무서웠지?”

        “으응…….”

        “소미는 안 무서워! 아빠랑 엄마가 지켜줄 테니까!”

       

        제각기 다른 두 아이의 반응에 입 안이 썼다.

       

        마지막이 다가온다. 그 생각이 머리를 뜨겁게 만들었다.

       

        ……조금은 급하게 결정하고, 시행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후회는 들지 않았다.

       

        꽈악!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 따듯한 어린아이 특유의 체온이 괜스레 마음을 간질이는 기분이다.

       

        [ 현상 거절. ]

       

        그 상태로, 능력을 개방했다.

       

        [ 임하늘과 임소미의 신체 활동을 소폭 둔화시킨다. ]

       

        진언을 읊는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능력의 발현이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 두 아이는 잠에 빠져든다. 꿈을 꾼다. 둘도 없이 행복한 꿈이다. 그 꿈을 꾸는 동안, 두 아이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피로가 날아가고, 개운해질 때까지 깊은 잠에서 깨지 않는다. ]

       

        스르륵!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임하늘과 임소미의 몸이 축 쳐졌다.

       

        “……끝인가요?”

        “……그래.”

       

        한유리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슬쩍 발을 뗀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꼬옥.

       

        자연스럽게 팔을 둘러 내 품 안의 아이를 안아주는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엄마가 미안해…… 이 도시에서 만나서, 너희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

       

        또, 소리죽여 흐느끼는 한유리의 모습에 입이 다물어졌다.

       

        그녀는 떠올릴 것이다.

       

        이 회색빛 도시에서 두 아이를 만난 것을, 그 아이들이 그녀에게 치근대며 맛있는 밥을 조르던 것을, 그녀가 차린 밥상에 행복한 미소를 꽃 피우던 두 아이를.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한유리.”

        “……네?”

        “아침이 오면, 소갈비찜… 다시 해주라. 엄청 맛있었거든.”

       

        쿵! 쿵! 쿵!

       

        활동을 개시한 인형…… 회색빛 도시의 ‘주민’들이 병실 문을 두드린다.

       

        빌런, 꿈속을 걷는자. 놈이 개입한 걸까? 문에서 느껴지는 충돌이 이전보다 훨씬 격렬하다.

       

        “……네!”

       

        한유리가 눈물을 미처 훔치지 못한 채로 밝게 웃었다.

       

        ……저런 모습을 보니 괜스레 송수아가 떠오른다. 일평생을 함께한 친구라고 하더니, 울면서 웃는 모습조차 퍽 닮았네.

       

        [ 현상 거절, 회색빛 도시에서의 ‘신성력’이 지닌 치유의 힘을 거절한다. 별도의 진언이 있을 때까지, 신성력은 파괴의 힘만을 지닌다. ]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진언을 외기 시작했다.

       

        정신을 집중한다. ‘신성력’이 빚어낸 기적,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폭발을 위해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다.

       

        [ 현상 거절, 병실 안을 가득 채운 ‘신성력’의 확산을 거절한다. ]

       

        사아악!

       

        내 의지에 따라, 새하얀 빛을 머금은 신성력이 모이기 시작한다.

       

        한데에 모인 신성력은 이윽고 하나의 덩어리가,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하나의 구체가 되어간다.

       

        [ 현상 거절, 압축된 신성력의 방출을 거절한다. 임계점에 도달해 ‘분열’이 일어날 때까지, 구체는 압축을 반복한다. ]

       

        우우우웅-!

       

        빛이 압축되어간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 구체는 신이 내린 기적의 산물이 아니다. 오직 파괴만을 위해 이 세계를 질주할 대량살상무기에 버금가는 하늘의 재앙이다.

       

        “멈추십시오! 진정! 내, 내가 한 제안을 거부할 셈입니까!”

       

        콰아앙!

       

        이변을 알아챈 걸까?

       

        복도 밖에서 빌런의 경악 섞인 외침이 들려온다. 동시에 터지듯 부서지는 문.

       

        촤아아악!

       

        “이 앞으로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 앞으로, 수호의 의지를 다지는 <성녀>가 불꽃처럼 일렁이는 신성의 칼날을 드리운다.

       

        진심을 다한 모양인지, 사석에서의 맹한 표정이 아닌 진정한 성녀의 자태를 품은 모습이다.

       

        “임혜성. 중요한 것은 제가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

        “이 신성력을 오롯이 이용할 사람은 당신. 부디 실수 없이 일을 끝마치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학생회장님의 생각도 같을 것입니다.”

        “마, 맞아요!”

        “걱정하지 마. 나는 이 분야의 프로니까.”

       

        드르륵!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놈이 원하는 것은 이 세계의 존속. 그 꿈을 깨트릴 ‘폭탄’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그리고…… 터뜨리는 거다.

       

        훅!

       

        창문을 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밖으로 뛰어내렸다.

       

        “미, 미친!”

       

        빌런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 현상 거절, 중력과 만류인력 법칙의 작용을 경감한다. ]

       

        지상에서 까마득히 높은 5층의 높이. 하지만 능력을 사용해 추락 속도를 경감한다. 

       

        편안히 지상에 내려선 내 손에는 신성력으로 만든 구체가 들려있었다.

       

        “호접지몽. 마치 고사 속의 이야기처럼, 슬프도록 즐거운 꿈이었다.”

       

        이 꿈속에서 행복한 경험을 만끽하는 게 아찔한 즐거움을 몰고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행복했던 순간의 시간을 놓치기 싫었을 수도.

       

        우우웅!

       

        극도로 압축된 신성력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야한다. 나를 비롯한 모두를 위해, 그리고…… 하늘이와 

        소미,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스르륵.

       

        “……!”

       

        이 순간에도 내가 뛰어내린 창문에서 날아든 빛이 스며든다. <재창조>의 한유리가 창조의 힘으로 만든 신성력이 매순간 파괴력을 더하는 것이다.

       

        팟!

       

        “자, 잠깐! 대화, 대화를 합시다!”

        “……순간이동 능력자라도 되는 줄 알겠다.”

       

        바로 그때, 빌런. 꿈속을 걷는자가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불쑥 나타났다. 

       

        제아무리 놈이 직접 빚은 꿈이지만, 참 불합리한 능력을 지닌 녀석이다.

       

        “제, 제가 오해했습니다! 세상의 절반이 아니라, 칠 할을 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아직도 헛소리네.”

       

        이 회색빛 도시를 만든 놈 치고는 여유가 없는 모습이다. <히사있>을 읽었을 때의 놈은 이러지 않았는데, 어떤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 건가?

       

        “음?”

       

        그러고보니,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꿈속을 걷는자’ 자체는 나름 전투력이 약한 편에 속한다. 말 그대로 ‘꿈’을 창조하는 능력은 있었으나, 전투 능력은 그에 못미쳤으니까.

       

        그렇기에.

       

        놈은 ‘호스트’와 함께 움직인다. 

       

        빌런은 호스트를 움직여 전투에 임하고, 호스트는 대가로 강력한 힘을 얻는다. 언뜻 보기엔 참 합리적인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잠시 잊고 있었는데, 네 호스트. 어디있냐?”

        “그, 그…… 그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미친 또라이 놈은 말도 꺼내지 마십시오!”

       

        ……싸웠나?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이놈은 ‘힘’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놈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따라서 자연히, 나름 합이 잘 맞을텐데?

       

        “정신병자. 쓰레기. 미친놈. 병신. 그 하찮은 노오오옴! 감히이이이!”

        “……?”

       

        무언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트러블이 있던 모양이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호스트에게 욕을 늘어놓는 빌런. 그 모습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면 꼭 그러더라.”

       

        우우웅! 우웅!

       

        ‘압축’이 한계에 달한 걸까? 비명을 내지르는 구체를 든 채로,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악당이 시간을 끌면, 항상 패배하더라고.”

       

        [ 현상 거절, 신성력에 가해진 모든 제약을 해제한다. ]

       

        삐이이이-!

       

        마치 물을 끓이는 주전자처럼.

       

        신성력을 뭉쳐 빚어낸 구체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호스트에게 원색적 비난을 퍼붓던 빌런의 얼굴이 곧장 흙빛으로 물들었다.

       

        “당신은 두 아이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겪을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두렵지. 그저 외면할 수 없을 뿐.”

        “……뭐라고요?”

        “나는 불 같은 사랑에 빠졌다. 임하늘, 임소미.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말이야.”

        “그, 그렇다면! 그 무식한 계획은 그만두시죠!”

        “아니.”

        “그게 무슨……?”

        “그렇기에 이 세계를 파괴한다. 죽음이라는 끔찍한 관문이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아이들을 가만히 둘 수 없다. 그게 내가 깨달은 사랑이오, 부성애다.”

        “다, 당신! 미쳤어. 미쳤다고! 히어로가! 히어로가 어찌 인명을 경시하는 건데!”

       

        인명 경시? 히어로? 지금 나랑 장난하나? 그건 네 자기소개잖아?

       

        ‘꿈속을 걷는자’의 발악에 헛웃음이 나왔다. 미안하지만, 녀석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것도 한참이나.

       

        퍽!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 직후.

       

        새하얀 빛이 구체를 중심으로 터져나온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지는 감각 속, 한계를 맞이한 신성력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이글거리는 밝은 빛을 토해낸다.

       

        그 섬광은 너무나도 밝아 일순간 내 시각을 앗아갈 정도였다.

       

        “어둠 속에…… 빛이 있으라.”

       

        구체에서 뿜어져나온 섬광이 장내를, 이내 회색빛 도시를 휘감는다.

       

        삐이이이이이이————!!

       

        귀가 먹먹해진다. 

       

        전신이 타오르는 불쾌한 감각 속,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해당 회차는 초반부 2화가 추가되며 밀린 회차입니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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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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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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