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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황제의 아이들’이라는 말은 사실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다.

        

       여기서 공식적인 명칭이 아니라 함은, 나나 루카스, 제이든 같은 인물들이 직접 내세우는 명칭은 아니라는 말이다. 황제의 아이들이라고 따로 분류된다고 해서 무슨 비밀 결사 문장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암호명이나 그런 멋진 설정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제도상으로 우리는 그저 황제의 아들, 딸일 뿐이고, 법적으로는 앨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자 그대로 황제에게 입양된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법적으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명분으로는,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다.

        

       황제가 그러모은 존재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실력을 자랑하는 존재들이다. 심지어 종종 공식 석상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사라졌다가 돌아왔을 때는 꼭 제국의 어디선가 뭔가가 사라지거나, 사람이 죽거나 실종당했다.

        

       그 죽음과 실종은 종종 사고사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마치 경고라도 하듯 잔혹한 범죄 현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국에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찾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곤 했다.

        

       그러니, 바보가 아니라면 황제가 그러모은 그 괴물들이 어떤 일을 벌였다는 것 정도는 금세 연상할 수 있으리라. 재능이 충만하긴 하지만 거의 황성에만 있는 앨리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피가 섞이지 않은’ 존재들은…… 황제가 쓰는 최고급 장기 말이었다. 명령하기만 하면 어떤 일이건 말끔하게 수행하고 돌아오는.

        

       물론 대부분의 평민은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급 귀족들은 소문 정도는 들어봤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고 넘길 것이다. 확실하게 정황증거를 수집할 능력이 되는 고위 귀족들만이 우리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게 황제의 노림수이기도 했고.

        

       목숨이 아깝다면 알아서 꿇어엎드려라.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아마 앞으로 이 제국 전체에 천천히 퍼져나가겠지.

        

       *

        

       뭐, 아무튼.

        

       그러므로, 내가 받는 시선은 대부분 내가 ‘황녀’라서 받는 시선이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는…… 아마 내가 ‘진짜 황녀’가 아니라서 들리는 소리일 거고.

        

       “실비아.”

        

       “예.”

        

       나보다 살짝 앞에서 걷던 앨리스가 자리에 멈춰서더니, 나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내 뒤 말고, 옆에서 걸어.”

        

       “……알겠습니다.”

        

       앨리스의 말에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앨리스 옆에 섰다.

        

       물론 그렇다고 막 엄청나게 친밀해 보이는 거리를 유지하지는 않았다. 사실 아무리 동성 관계라고 해도 서로 손을 잡고 돌아다니거나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건 만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다. 아니, 물론 여기도 따지자면 그 비슷한 세계이기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게임에서 캐릭터끼리의 신체접촉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았다. 주인공과 러브라인이 형성되어 키스 장면이 있는 여자 캐릭터, 아주 가끔 나오는 반가움의 포옹 정도를 제외하면 주연 간의 신체접촉은 거의 없었다.

        

       ……그게 정말로 실제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섬세하게 생각하여 넣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래픽과 모션의 한계 때문에 만들어 넣기 귀찮아서 그랬던 건지는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만.

        

       “당당하라고 했던 건 너잖아. 황녀라면 당당하게 나와 똑같이 행동하라고.”

        

       “하지만, 황녀님.”

        

       “그리고 여기서는 ‘앨리스’야. 같은 존재잖아? 학생끼리는 서로 위도 아래도 없다는 거 몰라?”

        

       그런 것 치고는 교장 앞에서 너무 당당하게 고개를 빳빳이 하고 있던데.

        

       내 침묵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앨리스는 내 눈을 슬쩍 피해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 일단 황녀님의 명령이니 따르기로 했다.

        

       아카데미의 반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마 완전 랜덤 배정은 아닐 거다. 서로 필요한 인물끼리 겹치는 반에 있는 것을 보면.

        

       나와 앨리스라는 황족을 포함한 귀족 30명은 각각 15명으로 나뉘어 다른 반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앨리스와 굳이 찢어질 필요가 없었듯, 레오 그레이스, 그리고 클레어도 같은 반이 되었다. 두 사람이 남매라는 것을 감안하여 그렇게 한 모양이다.

        

       그리고 공작가의 장남과 그 가신인 남작가의 장남이 같은 반에 소속된다던가, 서로 약혼한 사이인 두 사람이 같은 반에 소속된다던가 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 관계있는’ 자는 모두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배치되었다. 그런데도 15명으로 딱 나뉜 것은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렇게 되도록 뽑았기 때문일까.

        

       참고로 나는 이 학교 학생에서 귀족 반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아제르나 전기의 특장점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엑스트라 캐릭터한테도 어느 정도 서사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물론 메인 시나리오에 대놓고 영향을 줄 정도의 서사가 있지는 않다. 기껏해야 하지 않아도 본편에 전혀 영향이 없는 사이드 퀘스트로 진행이 되거나, 아니면 대사 몇 줄이 주어지는 정도다.

        

       하지만 그 사이드 퀘스트가 작품이 진행되면서 뒤편에서도 쭉 이어진다거나, 그 대사 몇 줄이 작품의 각 장에서 조금씩 이어지며 바뀌고, 심지어 후속작에서도 해당 캐릭터가 등장하여 전작과 이어지는 대사를 한다든지.

        

       솔직히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그래픽과 모션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었지만 그런데도 세계관에 생동감이 있었던 이유는, 그 많은 캐릭터가 실제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플래티넘 메달을 따기 위해선 그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도전과제—브론즈, 실버, 골드 메달을 죄다 따야 하는데, 그 ‘메달 따기’에 모든 네임드 NPC의 인물 카드 작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인물 카드를 작성하려면 그 모든 대사를 한 번씩 전부 봐야만 했다.

        

       바꿔 말하자면, 숨겨진 사이드 퀘스트나 저 맵 구석 어딘가에 박혀있는 NPC를 하나하나 다 찾아서 말을 걸고 다녀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걸 두고 사람들은 ‘NPC 마라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에 대한 공략을 썼다. 망할 제작사 같으니.

        

       그나마 후속작에서는 편의성이 대폭 개선되어서 내가 말을 건 캐릭터가 표시가 된다던지 굳이 퀘스트를 따로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 된다던지 했지만, 그렇다고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대사가 있는 NPC는 고유 모델링도 있고 대사도 있는 캐릭터, 고유 모델링은 없지만 고유한 이름은 있는 캐릭터, 그리고 이름이 그냥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 평민 학생, 양복을 입은 남자’같이 고유의 이름도 없는 캐릭터로 나뉜다.

        

       그리고 귀족 반 NPC는 전부 고유 모델링이 있는 캐릭터였고.

        

       그 폴리곤 덩어리를 실제 사람의 얼굴에 1대1로 매칭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보라색 롤빵 머리’라던가 ‘초록색 트윈테일’이 딱히 흔한 헤어스타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적어도 귀족 반에 있는 애들의 서사는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사실은 내 주변 상황이 안정되자마자 노트에 미리 적어두었던 내용이 있었다. 전부 한글로 적었으니 아무도 읽지는 못할 거다.

        

       그리고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 오랜만에 그 내용을 전부 읽었고.

        

       “자, 잠깐! 잠깐만요!”

        

       그렇게, 아카데미 첫날을 앨리스와 함께 시작하려는데 뒤쪽에서 조금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원래 학교라는 곳이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학생들 모두 나름대로 학교에 적응하여 오는 시간이 제각각이 되는 법이지만, 이 나라에서 ‘학교 비슷한 것’에 다녀본 애는 극소수다. 귀족 대부분은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는 전부 가정교사를 고용해 홈스쿨링을 하고, 평민 아이들은…… 음, 보통은 공장에 나가니까. 부르주아의 자식이 아니라면.

        

       그랬기에 첫날에는 이렇게 복도에 학생들이 북적거린다. 묘하게 나와 앨리스 주변만 한산한 것이 기분 탓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한다만, 덕분에 우리 주변이 아닌 곳은 더 북적거려서, 과장 조금 보태 우리를 두고 주변에 사람으로 둥글게 결계가 쳐진 모양새였다.

        

       그런데 그 결계를 억지로 뚫고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클레어!”

        

       아니, 두 사람이었다. 여자 하나, 남자 하나.

        

       여자는 클레어였고, 남자는 레오였다. 이럴 수가 두 사람 다 거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은 개뿔, 사실은 예상하고 있었다. 입학식 때 나를 바라보는 클레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해본 내 시선에서나 거물이지, 배경 상 지금은 내가 두 사람을 합친 것보다 더 거물이었다. 남들이 인정하건 안 하건 나는 황녀였으니까.

        

       “으앗!”

        

       “…….”

        

       나는 클레어가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며 오다가, 우리 얼굴이 보이는 곳까지 와서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한 것을 보고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뭐지, 이 순정만화 여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와 행동은.

        

       멀리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이렇게 직접 보고 나니 더욱 순수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표독하게 화장하고 다니던 게임에서의 클레어와는 다르게, 내 앞에 있는 클레어는 얼굴에 화장기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예뻤다. 앨리스와 비견될 만큼.

        

       “아…….”

        

       비틀거리긴 했지만, 수련을 게을리한 것은 아닌지, 클레어가 꼴사납게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잠깐 비틀거리더니 척, 자세를 잡고 섰다.

        

       “화, 황녀님.”

        

       그리고 얼른 허리를 살짝 숙이며 교복 스커트 앞을 살짝 짚었다. 드레스를 입은 귀족이 황녀에게 인사하듯.

        

       그리고 그런 인사를 받은 앨리스는, 교내에서 학생들 사이에 위아래는 없다고—

        

       “여기, 이쪽도.”

        

       —하는 일 없이, 내 쪽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예?”

        

       “이쪽도, 황녀인데.”

        

       조금 당황한 듯 다시 물어보는 클레어에게, 앨리스는 다소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가 휙 돌아가려는 것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았다. 순간 무너질 뻔한 표정을 관리하느라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니,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학생 사이에 위아래는 없다면서……?

        

       아, 물론, 앨리스가 나와 클레어의 관계를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앨리스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클레어는 ‘그저 황녀와 인연을 맺기 위해 억지로’ 찾아온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귀족 반의 아이들을 전부 알고 있듯 앨리스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원작에서도 주인공 이름을 따로 보거나 듣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추는 장면이 있었으니까.

        

       클레어는 그레이스 남작가의 사람.

        

       황제의 측근 중 하나고, 황제가 직접 임명해 영지를 하사한 가문이라 남작가로서는 권력이 대단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남작가가 공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아카데미를 거대한 무도회라고 상정하고 귀족으로서 처음으로 말을 거는 예법을 생각한다면, 클레어는 처음부터 거하게 틀려먹었다.

        

       공작가, 백작가의 사람이 먼저 공식적으로 말을 걸기 전에 남작가의 가주도 아닌 자가 말을 걸었고,

        

       심지어 나란히 서 있는 ‘서로 동등한 황녀’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만 예를 취하는 우를 범했다.

        

       “클레어……!”

        

       뒤늦게 그 뒤를 찾아온 레오 그레이스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음.

        

       원작에서는 착해빠진 것으로 유명한 캐릭터다. 다만 인기 투표를 하면 남자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늘 최상위권이었다. 일본에서는 여자들도 꽤 하는 게임이었고, 오히려 그 정의롭지만 묘하게 소시민적인 감성이 플레이어가 공감하기 좋은 캐릭터였으니까.

        

       나도 꽤 마음에 들었고.

        

       하지만…….

        

       그렇게 소시민적인 캐릭터이기에, 지금 상황을 보고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버린 거겠지.

        

       “…….”

        

       주변이 정적에 휩싸인다.

        

       앨리스도, 클레어도, 레오도, 그리고 나도.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도.

        

       한마디도 안한다.

        

       아니, 이 어색한 분위기 대체 어쩔건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선작수가… 조회수랑 추천수가… 어마어마하게 놀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전작부터 따라와주신 분들, 그리고 처음 뵙는 분들,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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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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