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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에린시아~ 이거 먹어보라니까? 정말 맛있을걸? 큭큭큭.》

       《시, 싫어요… 벌레잖아요….》

       《왜? 벌레 못 먹어?》

       《큭큭. 동족이라서 못 먹나보네.》

       《먹어. 어차피 먹지 않으면 안 끝난다는 거,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으득, 으드득.

       

       《우웁…! 우웨엑!》

       《푸하하! 바보 같은 년. 먹으라고 진짜 먹으면 어떡하냐. 에린시아.》

       《큭큭. 어때? 동족의 맛은?》

       

       제발…, 나 좀 내버려둬….

       속이 뒤집어질 거 같아…….

       

       《오늘은 술래잡기야. 에린시아. 재밌겠지?》

       《근데 더 재밌는 게 뭔지 알아? 잡히면 뒤지는 술래잡기야. 어서 도망치는 게 좋을걸? 하하하!》

       

       타다다닥!

       

       《꺄악-! 놔, 놔주세요…!》

       《푸흡. 그걸 달리기라고 하는 거냐?》

       《잡혔으니 이제 뒤질 차례군?》

       

       퍼억!

       퍽!

       

       《끄으……, 아… 아파…….》

       《그럼 아프라고 때리지. 행복하라고 때리겠냐? 그래도 고운 얼굴엔 상처 안 나게 해줄 테니 걱정말라고.》

       《푸흡, 달리기가 느린 네년 다리를 탓해야지 어쩌겠어?》

       

       퍽!

       

       《흐윽… 제발… 그만 때려요….》

       《다~ 널 위해서라고. 그렇게 약해서야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나 있겠어?》

       《큭큭. 그래. 그런 말도 있잖아. 죽이지 못 하는 고통은 날 강하게 만들 뿐이야! 같은?》

       

       왜….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난 그냥… 즐겁게 공부가 하고 싶을 뿐인데….

       

       《에린시아? 네가 왜 이렇게 당하고 사는지 모르겠지?》

       《그건 네가 약해서야. 네 가문이 약해서고. 약육강식이란 말 들어봤지? 약한 인간이 강한 인간에게 물어뜯기는 건 당연한 거라고. 간단하지?》

       

       엘든…….

       그렇게 한심스런 눈으로 보고만 있지 말고….

       제발, 제발 나 좀 한번만이라도 도와주면 안될까……?

       

       《풉. 엘든 공자? 이 년, 자네한테 손을 뻗는 걸 보니 도와달라는 거 같은데… 교육해줘야 하지 않겠나?》

       《…술이나 마시러 가시지요. 블런드 공자님. 이미 쓰러진 것엔 흥미없습니다.》

       《어허. 어서 오게. 자네가 어떤 인간인지 보여주란 말일세. 헛된 희망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 없음을 이 가련한 여인에게 알려주어야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아…….

       아아…, 안 돼….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이 지옥에서 꺼내줘….

       

       꽈악.

       

       《끄으윽…! 아, 안 돼에…!》

       《큭큭. 그래. 엘든, 그게 자네이지. 희망을 갈구하는 그 손을 짓밟아버리게. 다시는 헛된 희망을 가지지 못 하도록 말일세.》

       

       흐윽….

       

       흐으윽….

       

       힘들어….

       

       죽을 거 같아….

       

       그래도… 난 너희를… 원망하지 않았어…….

       

       죽도록 힘듬에도 도망치지 않은 건 나였으니까…….

       

       배움의 기쁨을 위해… 지옥의 고통을 참기로 선택한 건 나였으니까…….

       

       

       흐윽….

       

       

       하지만…….

       

       

       

       진짜….

       

       

       

       《고, 공녀님? 우세요?!》

       

       

       

       그때는….

       

       

       

       《공녀님!? 일어나보세요…!》

       

       

       

       너무 힘들었었어…….

       

       

       

       

       **

       

       

       

       

       “악몽이라도 꾸신 거에요?”

       “아….”

       

       잠에서 깬 르미앙이 침대 머리맡에 상체를 기댄 채 앉아있었다.

       마리엔이 그런 그녀의 곁에 앉아 물수건으로 팔과 목에 묻은 식은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시길래 혹시나 해서 들어왔다가 깜짝 놀랐잖아요.”

       

       푸른빛 동공은 넋이 나가고, 뙤약볕에 말린 듯 갈라져버린 입술은 다물지 못 했으며, 식은땀에 눌러붙은 머리카락도 떼어내지 못 하는 르미앙.

       아가씨의 처음 보는 모습에, 마리엔도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르미앙 또한 마찬가지였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엔 악몽을 꿨던 적이 없었다.

       고통과 눈물, 모두 아카데미에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왔고, 3년간 배운 지식과 지혜를 토대로 실험과 연구 속에 파묻혀 살아왔었다.

       3년간 이어진 지옥 속에서 아득바득 버텨낸 값으로 받은 학문의 지식과 지혜로써, 그 지옥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던 것이다.

       

       후회하지는 않았다.

       괴인족장의 저주만 아니었다면 3년이란 시간을 지옥이라 칭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을 뿐.

       그땐 정말 죽을만큼 힘들었으니까.

       오죽하면 아버지의 신신당부를 어긴 채 정체를 드러낼까, 했겠는가.

       언제 닥칠지 모를 저주의 죽음보다 당장 닥친 학대의 고통이 더 두려웠던 그날들이었다.

       

       다만, 저주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끝끝내 말리던 아버지에게 미안해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었던 아버지를 위해, 정체를 드러내지도 4인방의 악행을 일러바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몸에 새겨진 흉터도 꽁꽁 숨겨야 했던 것이다.

       모두 자신의 고집이 빚어낸 일이며, 자신의 고집이 빚어낸 선택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홀로 감당하는 것이 옳다 생각했으며, 복수 대신 망각을 택했던 르미앙이었었다.

       

       물론 학대로 생긴 흉터가 이따금씩 욱씬거릴 때마다 그날의 공포가 강제적으로 회상됐고, 그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착각이 들어 온몸이 떨려 주저앉고는 했었다.

       

       지리멸렬한 기억들.

       

       어쩌면 그것을 잊기 위해 더욱 연구와 실험에 매달리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기억들에 이번 혼약대전 최종 후보를 그 4인방으로 선택했던 것이었고.

       

       완전한 망각을 위해.

       완전한 해방을 위해.

       

       물론 그 끝에 망각과 해방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러한 노력들 덕인지 모르겠으나, 단 한번도 악몽을 꾸었던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당혹과 충격이 안면 가득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무얼까.

       왜 이제 와 악몽이 꿔진 걸까.

       이해할 수 없는 르미앙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닦으며, 마리엔이 걱정스레 물었다.

       

       “근데… 공녀님.”

       “응.”

       “그… 혼약대전은 ‘무조건’ 최종 후보 중에서 혼약감을 뽑아야 하는 거잖아요?”

       

       르미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약대전 역사상 기권 후보가 나온 적이 없었던 것처럼, 단 한 차례도 혼약대전의 우승자가 선출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4인의 최종 후보 중 한 명을 골라 혼약식을 올리는 것으로써 혼약대전이 성대한 마무리를 짓는 것이었다.

       그것이 윈터펠 대공가의 전통이었고, 오라버니들과 언니들도 그 전통을 따라 우승자와 결혼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렇지.”

       “혹시 생각은 해보셨어요?”

       

       르미앙의 복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마리엔.

       복수가 시작된 이후로 빛을 잃은 꽃처럼 말라가는 아가씨가 걱정스러웠다.

       특히 엘든 라펠리온이 기권을 하면서부터 부쩍 말라가는 것 같았다.

       때론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종이에 낙서를 하기도 했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그 좋아하던 연구와 실험도 마다한 채 하루종일 고민에 빠져있던 것이었다.

       

       광명을 찾기 위해 시작한 일임을 알지만, 이 상태로라면 그 끝에 과연 광명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마리엔이었다.

       솔직히 말리고 싶었었다.

       간혹 그날의 공포에 질려하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쉬이 떨쳐내지 못 하는 걸 알면서도, 과연 옳은 선택일까…라는 걱정이 들었던 까닭이다.

       

       마리엔의 걱정을 읽은 르미앙이 애써 웃어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난 괜찮을 테니까.”

       “…걱정되는걸요.”

       “그럼 마리엔, 넌 내가 누구와 결혼했으면 좋겠어?”

       “흐응….”

       

       어려운 질문이다.

       4인방 중 한 명을 고르란 건, 르미앙의 흉터들을 알고 있는 이에겐 가혹한 질문이었다.

       그에 답을 못 하고 있자, 르미앙이 대신 답을 내려주었다.

       

       “둘 중 한 명이야.”

       “네?”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이. 아니면… 끝까지 후회하지도 참회하지도 않는 이. 둘 중 한 명이 나와 결혼하게 되지 않을까?”

       “아….”

       

       전자의 경우는 모두에게 해피엔딩이겠지만, 후자의 경우엔 배드엔딩이 될 것 같은 느낌.

       그에, 마리엔은 애매한 탄성을 흘릴 따름이었다.

       부디 제 아가씨만큼은 해피엔딩이길 바라며.

       

       

       

       

       **

       

       

       

       

       똑똑.

       

       기운을 차린 르미앙이 집무실에 앉아있었다.

       대공가의 막내딸.

       혼약도 맺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 막내딸에겐 집무실에 앉아 검토해야 할 공적인 서류도, 처리해야 할 결재도 없었다.

       그저, 엘든 라펠리온이 던진 난제를 풀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공녀님.”

       

       그곳으로 들어서는 이.

       겔우드였다.

       

       “어서 와요. 여기 앉으세요.”

       

       사상 첫 기권자에 대한 감시와 조사를 명한 대공녀께 그간 입수하고 파악한 것들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르미앙을 따라 소파에 앉은 겔우드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며칠 후면 대면식이 있을 예정이었고, 혼약대전 총 책임자는 초췌해진 주인공의 얼굴이 신경쓰일 수밖에였다. 

       르미앙이 마리엔에게 그랬듯, 애써 웃어보이며 답했다.

       

       “괜찮아요. 그보다, 졸업 후 특별한 동향이 있었나요?”

       “딱히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기권 후에는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더군요.”

       “어떤 점에서요?”

       

       르미앙이 상체를 당기며 흥미를 표했다.

       

       “별채에서 밤시중도 일절 받지 않고 있으며, 음주 또한 일절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엘든 라펠리온이요?”

       

       믿기 힘든 보고에, 르미앙이 반문해야 했다.

       주폭자, 호색한.

       그 2가지 이명은 엘든 라펠리온을 대표하는 대명사였다.

       더군다나 그것은 별채 내부에서 행해지는 것이었고,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까지 구태여 촌극을 벌일 이유는 없었다.

       

       아니면.

       

       “혹여, 미행과 감시를 눈치챈 건 아니고요?”

       

       겔우드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돈값은 충분히 해내는 자이니까요.”

       “…알겠어요. 증언의 신빙성도 충분한가요?”

       “네. 별채의 시녀가 직접 증언한 것입니다. 외려 시중을 거부했다고 하더군요.”

       “…다른 점은요?”

       “기권을 선언한 이후부턴 독서를 즐기고 있습니다. 매일 도서관에 들린다더군요.”

       “네?”

       

       르미앙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그만큼 황당한 이야기였다.

       책을 땔감으로 썼다면 썼지, 결코 그 속에 든 활자를 즐길 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점심에는 함께 독서하던 이와 그레이트 홀에서 식사를 한 후, 호위기사와 훈련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잠깐. ‘함께’ 독서하던 이와 식사를 했다고요?”

       “네.”

       “누구인가요?”

       “아리엘 엘론드 백작영애입니다.”

       “네…?”

       

       아리엘 엘론드.

       그 이름에, 르미앙의 동공이 확장했다.

       의외의 이름, 기억의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있던 이름, 꺼낼 필요가 없는 여러 이름들과 함께 상자 속에 담아 구석 어딘가에 방치해 두었던 그 이름이 들려온 것이다.

       동시에, 늘 소설만 읽을 뿐 학업에 관심이 없었던 금발의 롤빵머리 생도가 떠올랐다.

       

       독서광과 망나니.

       반대되는 성질을 가져 결코 섞일 수 없는 조합은 의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시는 분입니까?”

       

       르미앙의 머릿속에 한가지 새로운 가설이 떠오른다.

       단 한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던, 어느 경로로든 접근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설이.

       

       

       사랑.

       

       

       극명한 대척점을 가진 성질을 강제로 끌어당겨 섞을 수 있는 그 힘이라면, 이 복잡하며 황당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물과 기름조차 섞을 그 강력한 힘이라면, 풀리지 않는 난제에 골머리를 싸매던 연구가를 해방시켜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자리 좀 마련해 주실래요?”

       

       “엘든 공자와의 자리 말씀이십니까?”

       

       “아뇨. 아리엘 백작영애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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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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