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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사자왕.

       

       

       그것은 의외로 처음에는 멸칭으로 불렸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골짜기에서 왕 노릇을 하는 그에게 붙여진 멸칭.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자신을 왕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멸칭에 담겼던 조롱은 이제는 공포로 변해버렸다. 적어도 네메아 요새의 병사들에게는 그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스스로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출구 없는 미궁을 헤메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자문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을 뜨면 끔찍한 지옥을 반복할 수밖에…….

       

       

       사자왕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전부 깨끗하게 닦아냈을 텐데. 아직 손에 피가 묻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사자처럼 피를 즐기는 성격이었으면 좋았을까.

       

       

       그러나 사자왕은 곧 주먹을 강하게 쥐는 것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자신의 고뇌는 그저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목숨을 잃은 자들은 그마저도 할 수 없으니까.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나무를 기둥처럼 세워놓았고, 벽과 천장을 짐승의 가죽으로 덮어버린 움작에서. 그는 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쪽에는 약간의 음식과 타들어가는 향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단신으로 요새를 공격할 때가 아니면. 항상 이곳에서 홀로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식음조차 전폐하고 말이다. 그런 족장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했었다.

       

       

       “식사는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없이 축늘어진 사자왕의 등을 지켜보던 여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자의 귀가 머리 위에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땅으로 떨어진 꼬리는 그녀의 기분을 대변해줬다.

       

       

       “자린인가. 무슨 일이지?”

       

       

       “……기도는 끝나셨습니까?”

       

       

       “그래, 그러니 짧게 부탁한다.”

       

       

       사자왕의 목소리에서는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눈치챈 자린은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만. 차마 족장 앞에서 내색하지 못하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네메아 요새에 새로운 영웅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또 다시 희생양을 쌓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됐다, 신경 쓰지 마라.”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영웅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대부분 사자왕에게 목숨을 잃었다. 목적이 무엇인가. 복수를 위해서인가? 아님 그저 황금에 눈이 먼 것뿐인가?

       

       

       “기도할 시간이 늘겠군.”

       

       

       사자왕의 목소리에서는 죄책감까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자린은 차마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그만 움막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녀 역시도 알 턱이 없었다.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 신이시여, 부디 있다면 제발 답을 내려주십시오. 그러나 매정하게도, 그들의 신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저 멀리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자린은 한숨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힘들 족장을 위해서라도, 자신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부족을 돌봐야만 했으니까.

       

       

       [사자왕은 당장 앞으로 나와라!!!]

       

       

       “?!”

       

       

       매정할 정도로 적막했던 골짜기의 바람이었건만. 오늘은 어제와 달랐다. 골짜기의 깊은 곳까지 가득 채울 기세로 울려퍼지는 목소리. 그 소리는 차라리 포효에 가까웠다.

       

       

       “방금 그 소리는 뭐였지?”

       

       

       “모, 모르겠습니다.”

       

       

       “일단 들린 방향으로 가지.”

       

       

       “네! 알겠습니다!”

       

       

       그것은 움막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던 사자왕조차, 밖으로 뛰쳐나오게 만들 정도의 힘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사자왕은 아까 모습과 완전히 다른 인상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동족에게 언제나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데도. 자린은 순간 표정이 무너질 뻔했지만.

       

       

       억지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공과 사는 구분되어야만 한다. 어쨌든 지금은 이 소리의 근원을 먼저 해결해야만 했다. 사자왕과 자린은 목책으로 달려가서 바깥을 확인했다.

       

       

       “하……?”

       

       

       흙과 모래만 가득한 황량한 대지를 밟고 서있는 것은 한 명의 사내와 작은 꼬마였다.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그들의 앞에서 힘껏 소리쳤다.

       

       

       “사자왕! 그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미친놈인가?”

       

       

       자린은 남자의 첫 인상을 단 한 마디로 요약했다. 갑자기 적진에 홀로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뭐? 결투? 차라리 죽여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이성적일 거다.

       

       

       “족장님, 여기는 저와 부족의 전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아니, 내가 직접 나선다.”

       

       

       “족장님!!”

       

       

       “오랜만에 혼자서 여기까지 찾아온 전사다.”

       

       

       엄밀히 따지면 옆에 아이가 있긴 했지만. 전투원으로 보이지는 않으니까. 혼자라고 할 수 있겠지. 사자왕은 무심코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과거를.

       

       

       “전사가. 아니, 남자가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남자로서 기꺼이 응해줄 수밖에.

       

       

       * * *

       

       

       “정말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지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목책을 바라보았다. 정면 돌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설마했는데. 정말 단 둘이서 여기까지 찾아와 도발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혼자서 간다는 것을, 지크가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이 데려온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로 마스터는 여기까지 혼자서 찾아올 생각이었다. 정말 끔찍하게도.

       

       

       물론 마스터의 강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안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느새, 아이작은 지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버렸으니까.

       

       

       “마스터, 아까 그 약속. 정말 지켜주시는 거 맞죠?”

       

       

       “물론이다.”

       

       

       “정말이죠?”

       

       

       “남자는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는다.”

       

       

       여기로 오기 전에, 지크는 아이작에게서 겨우 약속을 하나 받아냈다. 일단 상대와 직접 대화를 해보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물러나겠다고. 아이작은 흔쾌히 약속을 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사자왕에게도 사연은 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실 수 있는 겁니까?]

       

       

       [성벽이 무너지지 않았다. 사자왕 정도의 실력자라면 능히 요새를 함락시키고도 남을 수 있었을 터.]

       

       

       [그렇다면, 더더욱 대화를 해봐야겠군요.]

       

       

       [그래. 그래서 내가 직접 가는 것이다.]

       

       

       애초에 마스터도 사자왕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지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자왕이 마음만 먹었다면, 아마 요새는 진작에 함락되었을 터.

       

       

       “드디어 나왔군.”

       

       

       마스터의 말을 듣고 지크는 고개를 돌렸다. 굳게 닫혀있던 목책의 문이 열리고. 앞으로 나온 것은 군대가 아닌, 단 한 명의 사내였다. 그러나 기세는 군대 못지 않았다.

       

       

       당당한 붉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강철과도 같은 튼튼한 그의 등은 꼿꼿히 펴진 상태로 앞을 바라보았고. 그의 두 다리는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윽고, 그의 걸음이 멈췄다. 아이작은 고개를 들었다. 사자왕은 아이작보다 덩치가 훨씬 거대했다. 2m는 가볍게 넘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사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자왕 우르칸이다.”

       

       

       “나는…….”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콰앙!!

       

       

       “이제 곧 죽을 테니까.”

       

       

       “마스터!!”

       

       

       눈 깜짝할 사이였다. 자세조차 취하지 않은 사자왕이 주먹을 휘둘렀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음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지크는 바로 눈치챘다.

       

       

       저 괴물과 자신에게는 아득한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냐. 감히 마스터에게 기습을 가하다니! 그러나 사자왕은 지크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오랜 세월, 어지간한 인간들은 사자왕의 일격조차 버티지 못했었다. 검이든 갑옷이든, 심지어 방패까지 종잇장처럼 부숴버리고. 순식간에 목숨을 취하는 죽음의 일격.

       

       

       그러나.

       

       

       그는 멀쩡했다.

       

       

       심지어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아주 약간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원래대로 되돌린 남자는 직접 주먹을 들어서 바로 휘둘렀다.

       

       

       콰아앙!!

       

       

       이윽고 다시 일어난 굉음. 사자왕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처음엔 알 수 없었다. 목책 위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동족의 목소리만이 귓가에 맴돌 뿐이다.

       

       

       “그렇군, 내가 밀린 건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사자왕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어느새, 목책까지 밀려난 상태였다. 그것도 추하게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을 나뒹구는 상태로.

       

       

       그것은 사자왕이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 한낱 인간에게 밀렸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쁠 법도 했건만. 사자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호탕하게 웃었다.

       

       

       “60년 만인가? 내가 힘으로 밀렸던 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그녀를 빼다박은 듯한 모습에. 사자왕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이작의 앞에 다시 섰다.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는가?”

       

       

       “사과하지,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이작 실버테르, 철의 방패 길드 마스터다.”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칼집째로 풀어서 지크에게 건네주었다. 난데없이 무기를 받게 된 지크가 당황하는 눈초리로 아이작을 보면서 말했다.

       

       

       “마스터! 무기는 왜……?”

       

       

       “남자들의 싸움에 무기는 사치다.”

       

       

       “아니, 마스터!! 약속은요?!”

       

       

       “검사인데 검을 쓰지 않는 건가?”

       

       

       지크와 사자왕은 동시에 물음표를 띄웠다. 지크야 당연히 마스터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이고. 사자왕 또한 검사인데 검을 쓰지 않는 사내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사내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외쳤다.

       

       

       “남자는 때로는 주먹으로 말해야 하는 법.”

       

       

       “……!!”

       

       

       그제야 사자왕은 사내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증오도, 그렇다고 황금을 보는 눈도 아닌. 오작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눈빛. 이윽고, 사내는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와라, 사자왕.”

       

       

        네 이야기를 들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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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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