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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자색 마탑은 괴짜들이 모인 곳이다.’

       

       이 명제에 대해서 3년간은 부정하고, 3년간은 망설이고, 3년간은 납득한 끝에⋯⋯ 한 치도 틀림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근속연수 9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찾아온 거대한 깨달음이었다.

       

       명제가 참이라는 증명은 그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중이었다. 광기에 물들어버린 자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울부짖는 꼴이 보이는가.

       

       

       “후배님의 이론은 무적이고 내 팬티 모델링은 신이다!!”

       

       “환상 마법은 여자 속옷이나 재현하려고 배우는 게 아니야악-!!”

       

       “내가엄청난환상마법을개발하면우리후배님이나한테쇼타집사의반바지길이를짧게해준다고약속했어”

       

       “손이 다섯 개처럼 느껴지는 환상 마법 개발했는데 혹시 맞아보실 분? 보수로 귀여운 마탑주님이 콩나물 싫다고 칭얼거리는 음성녹음 드림!”

       

       “이 곡선이 아니야. 나는 오늘도 가슴의 아름다움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어⋯⋯ 나는 궁극의 가슴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

       

       

       자색 마탑의 환상마법사 로레이는 오늘도 정다운 마탑의 사고뭉치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나사 빠진 마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이 갓 자색 마탑에 들어왔던 시절은 어땠던가. 그 시절에는 피폐하고 우울한 마법의 구도자들로 가득했다.

       

       부를 바란다면 금색 마탑이다. 단순한 복수를 바란다면 적색 마탑이다. 탐구를 바란다면 청색 마탑이다. 그리고, 어딘가 음습하게 뒤틀린 이들만이 자색 마탑으로 온다.

       

       그저 부유함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지려고 드는 이.

       그저 복수가 아니라, 세상에 없었던 끔찍한 고통을 가하고 싶은 이.

       그저 탐구가 아니라, 세상에 가려진 장막을 들추고 엿보려 하는 이.

       

       일반적인 세속의 가치가 아니라 비틀린 무언가를 찾으려는 이들이었건만.

       

       

       당장에 저 남자. 

       

       “후배님의 말은 다 맞아. 예산을 타 왔으니까. 예산을 타 오는 사람은 신이고, 신의 말씀은 맞는 말이니까, 후배님의 말은 다 맞는 거지.”

       

       후배님을 숭상하며 팬티의 어느 부분에 투명도를 주는 것이 가장 이로운가에 대해 연구 중인 저 사람은, 놀랍게도 자색 마탑에서 15년간 수학한 마법사다. 무려 ‘전대 자색 마탑주’ 시절을 거쳐 갔다던 남자다. 

       

       후배님의 뒤틀린 사상에 뇌가 오염되기 전에는 ‘쾌락을 고통으로 전환하는 저주’를 연구 중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박살 내버린 귀족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그에게서 인생의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가겠다며 핏발 선 눈으로 연구를 거듭하던 남자였는데.

       

       후배님과 몇 번 어울린 뒤로는 저렇게 망가져 버렸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마탑의 구성원이 죄다 젊은 피뿐인 자색 마탑의 특성상, 근속연수 15년이면 어엿한 고참이다. 과장 조금 보태면 다른 마탑의 원로와 비비는 포지션이라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다. 실제로 다른 마탑의 원로가 나타나면 대가리를 박아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윗물이 저러고 있으니 아랫물도 정상이 아니었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종이에 쇼타 집사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저 여자는 근속연수 6년 차다. 결혼을 약속한 소꿉친구가 마을에 들린 용병과 눈이 맞아 도망가 버리자, 어떻게든 다시 빼앗아 오겠다며 ‘정신 파괴’와 ‘유혹’을 연구 중이었건만.

       

       “종이 안에⋯⋯ 사람이 있잖아⋯⋯!!”

       

       후배님의 무시무시한 집사 군단에게 휘말린 이후로 사람이 변했다. 이제 그녀의 목표는 환상 마법으로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남자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게 다 후배님⋯⋯ 그러니까, 유력한 대마법사 후보이자, 『자탑의 살아 움직이는 환상』 마법을 만든 천재 마법사이자,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이라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컬러의 소유자이자, 마탑주님과 사귀는 사이가 아닐까 의심을 받고 있는.

       

       후배라고 낮춰 부르기에는 쫄려서 모두가 ‘후배님’이라고 높여 부르고 있는── 환상 마법사 ▒▒▒가 원흉이다.

       

       “아이씨, 또 자기 이름에 『인식장애』 걸어놨네⋯⋯.”

       

       지 이름에 자물쇠를 걸어놓는 단단히 미친놈이기도 하다. 

       

       ===============================================================

       

       자색 마탑의 일인자가 누구냐고 하면 당연히 자색 마탑주님이다. 

       

       귀엽고 덜렁거리시지만 감히 마탑주님을 업신여기는 이들이 없다. 아무리 성질이 더럽고 음습한 놈이어도 마탑주님 앞에서는 복종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따스한 태양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겉옷을 벗겨내었듯이, 마탑주님의 귀여움이 인성에 하자 있는 마법사들조차도 교화시켰던 것인가? 

       

       설마.

       

       다들 마탑주님의 로우킥을 한 대씩 맞아봤기 때문에 설설 기는 것이다.

       여기에 마침 좋은 예시가 있다. 근속연수 3년짜리 파릇파릇한 신입의 일이다.

       

       “3개월만에⋯⋯ 드디어 완성했다! 『멜버튼의 명중 감소 역장』! 새겨진 문양을 바라보면 초점이 어긋나, 제대로 타격할 수 없게 만드는 나만의 아티팩트! 이거라면 내 고향 마을을 불태운 녀석에게 복수를 할 수⋯⋯.”

       

       “새, 새로 만든 거야? 흐응⋯⋯.”

       

       “타, 탑주님, 어느새, 이, 이것만은 안 돼-!!”

       

       톡. 펑.

       

       “미, 미안⋯⋯ 툭 치는 걸로 부서질 줄 몰랐어⋯⋯. 그, 그런데⋯⋯, 이름이 조금 거창한 것 같은데, 『멜버튼의 설탕 코팅』은 어떨까⋯⋯?”

       

       “아흐흐흐흑⋯⋯!!”

       

       자기가 죽기 살기로 연구해서 만든 게 손짓 한 번에 으깨지면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법. 세상이 그렇듯, 자색 마탑 역시도 강자존의 율법이 지배하고 있었다.

       

       마탑주님이 정말 재미로 마법들을 깨고 다니시지는 않을 것이다. 환상 마법은 전투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정말 구리다. 저 멜버튼 뭐시기도 실전으로 들어가면 옆구리에 칼침이나 맞았으리라.

       

       마탑 안에서 연구만 해 오던 샌님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어째서 자색 마탑이 그토록 인기가 없는지, 환상 마법이 대체 어떻길래 하나같이 구리다고 하는 건지. 

       

       다 실전에서 기합 한 번에 날아가 봐야 깨닫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실전에서 처맞기 전까지는 먹힐 줄 알았다. 값진 교훈을 얻는 대신 내 얼굴에는 커다란 흉터가 생겼다. 겸사겸사 왼쪽 눈도 수강료로 지불했었고.

       

       그러니 마탑주님은 예방 차원에서 쓴맛을 보여주시는 것이리라. 

       

       “파삭파삭⋯⋯ 에헤헤⋯⋯.”

       

       “⋯⋯⋯⋯.”

       

       재미로 깨부수시는 게⋯⋯ 아니겠지?

       

       ===============================================================

       

       자색 마탑의 이인자가 누구냐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후배님이 유력하다.

       

       누군가는 대마법사의 재목이라서 후배님이 이인자다, 누구는 환상 마법을 잘하니까 후배님이 이인자라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인자란 자고로 일인자의 오른팔이 아니겠는가. 설령 무능하고 멍청한 사람이어도, 일인자에게 지극히 예쁨받고 있으면 그 사람이 이인자가 되는 법이다. 일인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 더더욱.

       

       “있지, 슬슬 다른 모델링도 만들 때가 된 것 같은데⋯⋯.”

       

       “엑스트라는 이목구비만 대충 뭉개놔도 되겠지만, 역시 하트 같은 고급 모델이 필요하겠죠.”

       

       “음⋯⋯, 저어, 내 신체 데이터 알려줄까⋯⋯?”

       

       “싫어요.”

       

       “으에.”

       

       보아라, 저 다정다감한 모습을. 자색 마탑 내부에서는 ‘뭔가 묘한 분위기는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그런 건 아닌 것 같다’가 중론이지만, 내 생각엔 두 사람은 이미 연인관계가 맞았다. 

       

       결정적인 증거도 있었다.

       

       이건 어느 날, 『투명화』를 걸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엿들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다.

       

       

       “어, 오늘도 씻으러 가세요?”

       

       “아, 안 씻는 것처럼 말하지 마!”

       

       “다들 귀찮아하니까요. 선배님들도 잘 씻어야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마탑주님도 그랬잖아요?”

       

       “그, 그런 걸 보여줘 놓고⋯⋯!”

       

       대체 마탑주님한테 뭘 보여준 거냐 후배님아.

       

       후배님은 처음 마탑에 들어왔을 때부터 남다른 면이 있었다. 매일매일 씻는 데다가, 수시로 손을 씻었으니까. 이게 말로만 듣던 결벽증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탑주님도 매일매일 씻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씻는다고 안 죽는다. 안 씻는다고 병에 걸리기를 하겠는가, 아니면 벌레가 생기길 하겠는가? 병에 걸리고 벌레가 생기는 건 오염된 공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탑의 공기는 클린 마법과 성수로 관리되고 있다.

       

       그러니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씻는 두 사람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대체 둘이 뭘 하길래 매일 씻는다는 말인가? 남에게 들키면 곤란한 어떤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러면 그 흔적이란?

       

       이 건에 대하여 생각해 둔 여러 가설이 있지만, 언급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후배님 덕분에 마탑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 신선한 지원금도. 신선한 마법도.

       

       다들 들뜬 거겠지. 대마법사의 탄생은 마탑의 격을 현격히 높여주니까.

       

       또한, 이제야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설레고 있을 테고.

       

       마탑주님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서툴다. 천부적인 감각으로 ‘그냥’ 해내기 때문이다. 마탑주님의 오리지널 마법 역시 괴악한 것들뿐이라 감히 시전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반면, 후배님의 마법은 마탑주님의 것과 다르다. 더럽게 많은 연산력이 필요할 뿐, 인력과 시간을 갈아 넣으면 재현 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 남을 가르치는 솜씨도 훌륭한 편이었다.

       

       이대로 후배님이 쭉쭉 커서 대마법사가 된다면, 그리고 자색 마탑에 가르침을 베풀어준다면⋯⋯.

       

       많은 것이 바뀌겠지.

       

       ===============================================================

       

       귀리죽을 퍼먹으며 반지 모양 아티팩트를 깎아내고 있으려니, 근속연수 15년의 팬티 애호가 선배 찰리가 말을 걸어왔다. 

       

       “로레이, 잘돼가냐?”

       

       “아, 예. 대충은요.”

       

       “너도 참 특이하단 말이지. 유적 탐사가 숙원이라면⋯⋯ 금색 마탑이 제일 낫지 않았나? 돈도 많고, 마법도 유용하고.”

       

       “누누히 말하지만, 동생과 함께하는 유적 탐사가 목표라니까요.”

       

       

       나와 내 동생은 모험가가 꿈이었다. 대륙 각지의 유적을 탐사하고, 세계의 비밀을 밝혀내는⋯⋯ 부모님처럼 멋진 모험가가 되는 것. 

       

       그러나 꿈은 꺾였다. 동생은 마차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나비에 정신이 팔려 마차에 치일 뻔한 나를 구하려다, 대신 휘말리게 된 것이다.

       

       내가 환상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건 그것 때문이다. 

       

       『로레이의 빙의』.

       

       내가 연구하고 있는 마법이다. 그 효과는 타인의 몸을 강제로 조종하는 것. 나는 이 마법을 사용해서, 동생에게 내 육체를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 

       

       완성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분명.

       

       

       숙원을 곱씹고 있자, 찰리 선배는 의자를 끌어와서 앉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라, 아티팩트 조정은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어요?”

       

       “지원금도 들어오고⋯⋯ 2황자님이 방문했다는 소문도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마탑에 발 들여놓는 신입들이 꽤 많아.”

       

       “별일이 다 있네요. 자색 마탑에 사람이 몰리는 날이 올 줄은.”

       

       “가난하고 꼬질꼬질하던 시절에는, 주워 먹을 것도 없었으니까 도둑놈들도 마탑에 안 왔는데. 이제는 달라. 분명 흑심을 품고 들어오는 녀석들이 있을 거야.”

       

       “뭐⋯⋯ 마탑주님이 알아서 혼내주시지 않겠어요?”

       

       “마탑주님이 손 쓰기 전에 우리가 닦아내야지. 네가 몇 년 차더라?”

       

       “9년이요.”

       

       “아아, 그래서⋯⋯ 네가 모르는구나.”

       

       찰리 선배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로레이, 자색 마탑에서 노인을 본 적 있냐?”

       

       “없죠. 나이가 많아 봤자 40대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구나,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찰리 선배가 표정을 굳힐 정도의 이유가 있었던 걸까. 

       

       “다른 마탑에는 바글바글한 원로가 자색 마탑에는 왜 없는지, 끽해야 고작 20년 공부한 놈들이 왜 최고참인지, 그 이유를 잘 생각해 봐.”

       

       “예⋯⋯.”

       

       찰리 선배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탑주님, 너무 편하게 여기지 마라.”

       

       그 말을 끝으로 찰리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 내려앉은 그늘과, 무언가를 돌이켜 생각하는 듯한 눈동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색 마탑에는 어두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도 몰──

       

       

       “야!! 후배님이랑 마탑주님 뽀뽀한대!!”

       

       “뭐?! 당장 가야지!”

       

       

       찰리 선배는 채신머리없이 발랄하게 뛰어나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편하게 여기지 말라매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주말은 잘 보내셨나요?
    뭔가 뭔가, 아침에 눈 뜨고 생각하니까 설레고 새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겨울을 타는 걸까요⋯⋯?

    핫핫, 오늘도 저희 매점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이 프렌즈!
    새로운 챕터, 기운 넘치게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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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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