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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어머. 루크, 언니랑 산책하는거니?”

    “안녕, 루크. 사탕 먹을래?”

    “저긴 몬스터가 나와서 위험하니까, 저쪽으로는 오지마. 알겠지? 그럼 잘가!”

    루크와 예르나가 산책을 하고 있으니, 만나는 숲지기들마다 아는체를 해왔다.

    엘프 숲지기가 루크숲에서 발견한, 숲의 이름과 똑같은 아이.

    그것은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닌가?

    사실 루크는 저도 모르는새에 루크숲의 숲지기들에겐 이미 마스코트가 되어있었다.

    그들 모두 루크를 구경하고자 일부러 예르나의 GPS를 보고 쫓아온 사람들인 것이다.

    얼결에 건네받은 사탕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루크가 대답했다.

    “그, 그래. 다들 수고해주어서 참으로 고맙구나.”

    “수고는 뭘! 이게 일인데!”

    “너무 깊숙히 들어오면 안돼, 알겠지?”

    “예르나언니 손 놓치지 말고!”

    아이의 인사를 받은 숲지기들은 또 싱글싱글 웃으며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걸어갔다.

    루크는 그런 애취급이 당황스러웠다.

    ‘이 나이를 먹고 어린 소녀의 취급이라니.’

    깊은 자괴감이 들기는 했지만, 내색할수야 없는 일이었다.

    굳이 다들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인사를 해오는데, 일부러 그 분위기를 망치고싶지 않았으니까.

    ‘내 기분을 희생해서 그들의 삶에 일순간이라도 웃음을 짓게 할 수 있다면야……. 남는 장사겠지.’

    루크도 그렇게 생각하며 감정을 다잡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본래 마법사라면 감정정도는 반드시 제어할 수 있어야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숲의 공기와 마나는 루크의 기분을 낫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렇게 산책을 이어나가, 거의 루크숲에 있는 모든 숲지기들과 인사를 한번씩 한 듯한 기분이 들고 나서야, 예르나가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볼까?”

    “그래, 그러도록 하지.”

    예르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GPS의 화면에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고있는 루크를 보면서 생각했다.

    ‘동물원 엄청 가고싶은가봐.’

    언제 한번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뭉글뭉글 피어왔다.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나 몬스터도 많으니까, 적당히 날씨가 풀리면 봄에…….’

    그런생각을 하던 예르나는 문득 루크가 작은 화면에 너무 오래 집중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GPS는 이제 돌려줄래? 너무 오래 보고있는 것 같네.”

    “……알겠다.”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GPS를 예르나에게 건넸다.

    그렇게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결국 원리는 알아내지 못했다.

    뭔가 거대한것과 정보교환을 하는 것 같다는 정도만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더 오래 보고있는다고 해봤자 그것의 진정한 원리를 알아낼 수 없을거라고 생각한 루크는, 일단 그 마도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언제 한번 책으로 알아봐야겠구나.’

    도서관이라도 가봐야하는건가하는 생각을 하던 루크는, 눈앞에 나타난 푸른 형체를 보며 발길을 멈췄다.

    “아.”

    예르나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루크를 내려보며 말했다.

    “루, 갑자기 왜그래?”

    “이건…….”

    그 푸른형체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과거에도 한번 본 듯한…….

    ‘정령인가?’

    생각을 떠올리자, 마치 그렇다는 듯이 그 푸른 형체는 마나로 만들어진 몸을 흔들거리며 말했다.

    -………….

    ……역시, 다시 들어보아도 말이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웠다.

    그 음성은 마치 조율되지않은 현악기를 연주하는듯했다.

    칠판을 긁는것같은 소리도 있었고, 거대한 뿔피리를 불면 나는 소리와 같은것도 있었다.

    그리고…….

    -에레, 에레.

    에레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내뱉고선 마치 웃는것처럼 마나로 이루어진 몸을 위아래로 떨어대는 정령을 보며, 루크는 생각했다.

    마치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것같다는 느낌.

    ‘이것은, 혹시 나를 에레라고 부르는건가?’

    루크는 그 정령을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나의 이름은 루크 이루시다. 에레가 아니라.”

    -루크? ……에레!

    “나는 에레가 아니라니까.”

    “루, 대체 뭐랑 대화하는거야?”

    예르나는 갑작스런 루크의 혼잣말에 놀라 물었다.

    어떻게 된걸까?

    혹시, 갑자기 정신에 뭔가 이상이라도 생긴게 아닐까?

    정령이 보이지 않는 예르나로써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르나. 정령이 있다.”

    “정령?”

    정령이라는 말에 예르나는 긴장했다.

    얘가 지금 헛것을 보는건지, 뭔가 신기한걸 보고 정령이라고 하는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으니까.

    그때, 루크가 예르나의 반응이 이상하다는듯이 물어왔다.

    “혹시, 그대는 이 정령이 보이지 않는건가?”

    “으음, 어어…….”

    역시, 다시 보아도 루크가 가리키는 방향엔 아무것도 없었다.

    풀이나 나뭇잎, 아니면 신기하게 생긴 벌레라든가, 저번같은 반딧불이라던가……. 정령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있다면 공기뿐이겠지.

    예르나는 살짝 경계하기 시작했다.

    ‘설마, 귀신?’

    뭐, 루크숲에서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은 꽤나 많으니 밴시나 레이스와 같은 영체형 몬스터가 나타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엔 아니었다.

    레이스나 밴시라면 몬스터이니 GPS에 빨간점으로 나올텐데, GPS에는 그런게 나타나지 않았다.

    ‘몬스터라면 GPS에 나타나지 않을리가 없는데…….’

    현대의 마나탐지위성은, ‘자연적이지 않은’ 마나흐름은 모조리 탐지하니까.

    밴시와 레이스같은 유령형 몬스터들도 당연히 탐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엔 예르나와 루크를 의미하는 파란점 두개뿐.

    그렇다는건…….

    ‘아, 이거 혹시 상상속의 친구인가?’

    10살이전의 어린이들이 흔히 갖는다는, 동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어린이들은 사실 상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상상속에있는 정령을, 진짜인것처럼 보는 것이겠지.

    동화에 관심이 많은 루크의 상상속에, 정령이 없을리가 없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예르나는 이 순수한 아이의 동심을 깨야할지, 이번에도 지켜주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으으…….’

    예르나는 저번에 병원에서 ‘레니에는 사실 죽었다’라고 생각없이 말해버린 뒤, 시무룩해진 루크의 표정을 아직 기억했다.

    예르나는 이번에도 그런 표정을 짓게하고싶지 않았다.

    결국, 예르나는 굳게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 정령은 사실……. 정령이 친구로 인정한 사람만 그 모습을 볼 수 있거든. 그……. 루크는 내 정령을 보지 못하지?”

    “오호, 그게 정말인가?”

    “그래. 정말이지.”

    거짓말을 했다.

    ‘루, 네가 정령이라고 말하는 그건 그냥 네 상상속의 친구고, 언니는 그걸 못봐.’라고 제 입으로 말할수가 없었기에…….

    예르나는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 거짓말을 들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래서 그대의 정령을 내가 볼 수 없었던거로군.”

    그렇게 생각하면 또 말이 된다.

    어째서 정령의 친구라고 하면서 예르나의 주변에서 정령을 한마리도 볼 수 없었는지, 분명 존재할터인 정령이 이 세계에 그토록이나 희귀했는지 말이다.

    물론 예르나의 얼버무린듯한 설명은 맞는게 없었으나, 

    5000년 전의 루크는 정령친화력이 0에 가까운 마법사였고, 마법사를 극도로 꺼리는 정령들의 성정에, 대마법사인 그의 주변에도 정령사는 단 한명도 둘 수 없었다.

    물론, 루크도 ‘쓸일이 없는’지식엔 별로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정령에 관한 자료는 전혀 찾아보지 않았었다.

    물론, 다른 모든 마법사들도 그랬고 말이다.

    그러니 정령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루크에게, 그 설명은 꽤 말이 되는 것 같았다.

    뭐, 이 시대엔 루크에게 그 사실을 정정해줄 정령사도 없었다.

    애초에, 그 누구도 정령을 볼 수 없는 시대다.

    이제는 정령따윈 그저 동화속의 한 장면에 박제되었을 뿐.

    그러니 정령에 대한 생태가 어땠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제 없다.

    과거를 파헤치는데 몰두하는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이라면 모를까.

    “그래, 그래.”

    예르나는 납득한듯 보이는 루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끄덕해주었다.

    ‘뭐, 상상의 친구는 크면 알아서 사라지는거니까.’

    점차 루크의 정신이 자라고, 상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게되면 나아지리라.

    일부러 정령은 없다고 동심을 깰 필요는 없겠지.

    반면 루크의 눈에는 똑똑히 정령이 보이는 중이었다.

    알 수 없는 정령어에 섞여 반복적으로 들리는 ‘루크’, ‘에레, 루크’하고 메아리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동글동글한 비눗방울같은 형상에, 모닥불의 끝자락처럼 아래로 타오르는듯한 그 푸른 마나빛 꼬리로 고개를 갸웃거리는듯이 좌우로 반복운동하는 정령.

    그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정령은 친구라고 판단한 자 외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겐가…….’

    그렇다면 이 정령은 자신을 ‘친구’로 여기고있다는 뜻이겠지.

    “이것 참, 몰랐던 사실을 알았군.”

    루크는 그저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신난듯이 몸을 비비는 푸른 정령의 모습에 미소지었다.

    “좋아. 그럼, 정령이여. 그대의 이름을 말해주겠나?”

    루크의 인자한 어투에, 정령은 퐁, 퐁, 하는 비눗방울 터지는듯한 소리를 몇번 내다가, 아기의 옹알이처럼 음을 만들어냈다.

    -파이!……파이!

    “그런가, 파이라고 부르라는게로군.”

    루크는 손바닥 위에 부드럽게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을 느끼며 말했다.

    “파이, 혹시 반딧불이는 그대의 것이었던겐가?”

    -루크, 파이!…….

    역시 이름말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정령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는 것 같았다.

    “그런거였군.”

    그때 떠올린 마나배열은, 어쩌면 정령 사이에서는 친애의 표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반딧불이는 아무래도 정령의 전령이 맞는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이의 스펠링은 pai입니다!

    pie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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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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