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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비둘기가 위치를 가르쳐준 덕분에 엘라를 찾는 건 쉬웠다.

       오늘은 달빛도 밝았고, 배에 걸린 전등들에서 나오는 빛도 있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사람의 윤곽선이 잘 구분됐다.

         

       그녀는 입수할 때의 충격 때문인지 기절한 상태로 물에 둥둥 떠 있었다.

       몸을 몇 번 흔들자, 숨을 콜록콜록 뱉어내는 것이 다행히 물을 많이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강물 자체가 잔잔한 덕분이다.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강변으로 헤엄쳤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물의 표면은 조용했지만, 유속은 제법 빠른 편이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도달해야 할 목표로 삼았던 바위를 지나치고 말았다.

         

       “허억, 허억.”

         

       수영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지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물살도 빠르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아 열심히 헤엄쳐서 이쯤이면 다 왔겠지 싶으면, 강변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기 일쑤였다.

         

       아까 엘라를 쉽게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수영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그냥 강물이 흘러가는 정방향에 그녀가 딱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나의 현재 근육 강도는 2.1.

       설명에 따르면 ‘운동부 선배’의 레벨.

       고작 그 정도 근력으로는 이런 빠른 흐름 속에서 사람 한 명을 끌고 헤엄치기는 무리였다.

         

       어떡하지?

       이제 남은 데볼루트도 없는데…….

         

       고민하는 사이, 나와 엘라는 점점 아래로 떠내려갔다.

       배는 이제 저 멀리 가버렸다.

         

       결국,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나…….

         

       특성은 ‘장비’와 같다.

       일단 만들어둔 특성은 언제든 ‘해제’할 수 있었다.

       즉, 뭔가 외형적으로 특이한 개조를 하더라도 평소에 대놓고 드러내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특성의 ‘분해’는 ‘해제’와는 완전 다른 개념이었다.

       분해는 만든 특성을 완전히 파괴하여 데볼루트로 환원하여 다시 섭취하는 것이었다.

       그 반환 비율은 50%.

         

       고작 10분 전에 만든 능력을 환원하기는 아깝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지 않겠는가.

         

       [‘급속 경직’을 분해합니다. 데볼루트 1이 반환됩니다.]

       [‘아가미’를 분해합니다. 데볼루트 9가 반환됩니다.]

         

       손과 발에 있는 ‘물갈퀴’만 두고 모두 분해했다.

         

       목에서 올라오던 거품이 사그라졌다.

       나에겐 이제 아가미가 없었다.

       허파가 벌떡이며 다시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쿨럭.”

         

       물 몇 방울이 기도에 튀었다.

       기침이 나왔다.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나는 재빨리 반환된 10포인트를 전부 ‘근육 강도’에 투자했다.

         

       -근육 강도: 3.0 (+0.15 유라크네의 정성) (헬린이->3대 300)

         

       어딘가 유머사이트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3대 운동 합이 300kg이라면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는 일반인이 천장으로 삼을 수 있는 수치라고.

         

       나는 숨이 차오르기 전에 온 힘을 다하여 팔다리를 저었다.

       그래도 몇 분이라도 물장구를 쳤다고, 완전히 까막눈일 때보다는 최소한의 요령이 붙었다.

       근력을 강화한 나는 아까보다 배는 수월하게 물살을 가르며 강변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허억, 쿨럭! 쿨럭!”

         

       발바닥이 푹하고 빠져들었다.

       부드럽지만 밟는 동시에 단단해지는 이 느낌.

         

       진흙인가?

         

       발목을 짓누르는 무게를 벗어던지고, 힘주어 다음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내 어깨가 수면 위로 쑥 올라왔다.

         

       하하, 드디어!

         

       차례로 가슴, 배, 허리, 무릎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밖으로 걸어 나갔다.

         

       “후아!”

         

       물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는 엘라를 옆에 눕혀두고,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맑은 공기가 폐를 간질였다.

       젖은 금발이 내 뺨에 달라붙었다.

       벅찬 숨을 달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단원 퀘스트-살려주세요!’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데볼루트 15가 제공됩니다.]

         

       “후후후.”

         

       내 팔다리를 직접 움직여 뭔가 성취한 느낌은 이번이 처음 아닐까?

       어딘가 상황적으로 잘 맞물려 돌아가서 해결된 지금까지의 퀘스트와 다르게, 내가 직접 움직이고, 직접 판단하고, 직접 결정했다.

         

       내 두 팔과 다리로…….

         

       “후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

         

         

       타닥, 탁.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

       몸을 데우는 따뜻한 열기.

       지난 반년간 여행을 하며 익숙해진 것이었다.

         

       마차를 대고, 야영장에 불을 피우고, 단원들끼리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든 적도 많았다.

         

       오늘도 그런 모양이군.

       좋구나…….

       음, 그런데 우리가 어디를 지나고 있었지?

         

       잠시 고민하던 그녀.

       기억은 금방 떠올랐다.

         

       아, 맞다. 배를 타고 드라고뉴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지.

       베르그송 자작이 타고 온 비싼 유람선을 타고…….

         

       ……잠깐.

       배를 탔다면…….

       그럼 모닥불은 어디다 피운 거야?

         

       엘라는 눈을 떴다.

         

       어딘지 모를 강가의 나무 아래.

       작은 불꽃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단원들은 없었다.

       그녀 혼자뿐.

         

       ‘어떻게 된 거지?’

         

       몸을 일으키려던 엘라는 문뜩 자신이 폭삭 젖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을 잔뜩 먹은 옷이 축 늘어졌다.

         

       ‘뭐야, 물에라도 빠진 것처럼……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인스피라를 억지로 붙잡아두려던 그녀.

       실수로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물이 입과 코로 들어차고 머리가 띵해지며 정신을 잃었었다.

         

       설마 죽는 건가라고 생각한 게 마지막 기억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강변으로 떠밀려 온 건가?

       아니, 그럼 불은 누가 피운 거야?

         

       구구.

       머리맡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흰 비둘기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돌이다.

       녀석은 엘라의 뺨에 머리를 으쓱으쓱 비벼가며 기쁨을 표현했다.

         

       “많이 걱정했니?”

         

       구구구…….

       비둘기의 구슬픈 울음소리.

         

       “미안해. 내가 괜한 명령을 내려서…….”

         

       그녀는 그의 깃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혹시 지나가던 낚시꾼이 구해주기라도 한 거야?”

         

       그때, 건너편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비둘기가 반갑게 날아가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구룩! 구룩!

         

       엘라는 남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

       “깼습니까, 엘라 양?”

         

       원더스타인.

       그가 늘 그렇듯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의 품에는 나뭇가지가 한 아름 안겨 있었다.

         

       “옷을 빨리 말리려면 불을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옷을 말려?”

       “네.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엘라는 그제야 원더스타인의 옷도 젖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신은……왜?”

         

       답을 알 것 같았지만 괜히 모르는 척 물어봤다.

       빙긋 웃는 그의 얼굴이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엘라 양이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듣고, 구하러 뛰어들었죠.”

       “……당신이 나를……구했다고……?”

         

       엘라는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입으로 직접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이다.’ 같은 소리를 듣다니…….

       굴욕, 낭패, 좌절.

       패배감.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우선 옷부터 벗으시죠.”

       “……뭐, 뭐?”

       “옷을 말려야 할 것 아닙니까.”

         

       히죽대는 그의 모습에 엘라의 이마가 팍 찌푸려졌다.

       이 징글징글한 악마 놈이!

         

       “당신 앞에서 벌거벗기라도 하란 말이야?”

       “옷은 여기 있어요.”

         

       원더스타인이 손에 나뭇잎을 꺼내 들었다.

       사람 손바닥 크기의 평범한 나뭇잎이었다.

         

       “그걸로 어쩔 건데?”

       “제가 가진 힘을 알지 않습니까?”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나뭇잎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몸을 뒤틀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고속으로 성장하는 나뭇잎.

         

       곧, 그의 손에는 엘라의 몸 전체를 두 번은 감을 정도로 커다란 나뭇잎이 들려있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빙긋 웃으며 그것을 건넸다.

         

       “이거면 됐죠?”

         

       정말 이 인간은 여러 가지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니까.

         

       “여기서 내가 갈아입는 걸 지켜볼 건 아니지?”

       “저도 갈아입어야죠, 후후. 저쪽 수풀 쪽으로 갈게요.”

         

       원더스타인의 손에는 어느새 엘라에게 준 것의 3배는 될 것 같은 크기의 나뭇잎이 자라있었다.

         

       엘라는 그가 수풀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옷을 벗었다.

       그녀는 젖은 옷을 모닥불 주위에 걸고는, 그가 건넨 ‘나뭇잎 담요’를 몸에 둘렀다. 신기하게도 나뭇잎 안쪽에는 목화솜 같은 것이 송송 나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훌륭한 촉감이었다.

       상당히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런 재주를 평소에 좀 곱게 쓸 것이지.’

         

       그렇게 가만히 모닥불 근처에 앉아 열기를 쐬고 있는데, 수풀 속에서 원더스타인이 걸어 나왔다.

         

       풋.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엘라의 입술이 씰룩거리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항상 완벽한 검은 정장을 고수하던 원더스타인.

       그가 마치 이야기에 나오는 숲속 요정처럼 나뭇잎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엉망인 채로.

         

       그동안 상상할 수 없었던……

       어딘가 얼빠진 모습이었다.

         

       “가관이네.”

       “엘라 양도 같은 모습이거든요?”

         

       원더스타인은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는 가만히 불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쨌든 생명의 은인이었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엘라의 입에서 나온 것은 엉뚱한 말이었다.

         

       “당신 잘하더라.”

       “……잘한다고요?”

       “어.”

         

       다시 침묵.

       엘라는 잠시 이게 맞나 고민했지만,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대본 말이야.”

       “아, 저와 엘라 양이 함께 짠 그거 말인가요?”

         

       그의 말에 엘라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는 무슨. 거의 다 당신 힘이었는데…….”

         

       원더스타인이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엘라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공연의 초안을 짜는 일이었다. 괴물서커스답게 부스를 차린 전시회 형식을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대본이었다.

       누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지, 어떤 분장을 할지, 대사는 어떻게 할지 모든 게 고민이었다.

         

       괴물서커스는 각자의 신체적 특징을 강조해야 했다.

       인간적인 요소 배제해야 했다.

       기괴하고 신비할수록 좋았다.

       배경설정은 있을 법하지만 없어야 했다.

       대사는 유치하지 않고 사실적이어야 했다.

       캐릭터는 단원들에게 어울려야 했다.

       연기와 재주는 단원들이 소화 가능한 것이어야 했다.

         

       모든 걸 백지부터 쌓아 올려야 하는 막막함.

         

       그녀가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서커스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어도, 아직 16살에 불과했다.

       이런 작업을 혼자 해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때, 끼어든 게 원더스타인이었다.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흥. 당신 따위가?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심정으로 자리를 양보해준 엘라.

         

       그녀는 그가 대본을 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본을 짜는 건 서커스 지식을 줄줄 읊는 것과 전혀 달랐다.

         

       배우와 관객에 대한 건 물론, 인간의 감정, 무대 연출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다.

         

       웃는 것도 어설픈 당신이 그걸 해낼 수 있을까?

         

       금방 떨어져 나가겠거니 했다.

       ‘후후, 인간은 어렵군요.’ 따위의 소리나 늘어놓으면서.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그가 단원들에게 부여한 캐릭터.

       그에 맞는 분장과 대사.

       어울리는 연기.

       각자가 익히기 용이한 재주.

       적절한 무대 연출.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짜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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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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