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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명계의 문이 열렸네.”

        “예?”

       

        천칭이 기울어진 것을 확인한 소녀는 위치노트를 덮었다.

        한쪽 추에 놓인 무덤의 꽃들이 사(死)하여 까맣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세외를 떠돌던 망자의 원혼들이 실낙원의 품이 아닌 명계의 왕이 만든 문으로 빨려 들어간다.

        최근의 마녀들도 그렇고, 마탑 내에서 마족들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은 모험가들이 대륙을 휩쓸던 ‘횃불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었다.

       

        “리브라 님, 설마 탑에 변고가 생겼단 말씀이십니까?”

        “‘생겼다’는 표현은 부정확해 베이커. 누군가 ‘들여온’거지.”

       

        마녀는 동족을.

        흡혈귀는 피를.

        망자들은 죽음을 본능으로서 갈구한다.

        돌로 만든 미로에 불과한 대미궁에 명계의 문이 열렸다면 그건 누군가의 죽음을 사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럼 당장이라도 백가(百家)의 마법사들을 보내어 확인하시죠. 아니면 칠현자의 이름으로 기둥들을 소집할까요?”

        “어떤 마법사라도 시련이 진행중인 와중엔 쉽게 관여하지 못해. 사후조사는 내가 아니라 중층에 있는 다른 직계들이 알아서 할테고.”

       

        오랜만에 순혈 마법사들이 한데 모이는 광경을 볼 수 있겠네-.

        심심하면 중층으로 내려가볼까.

        메테오가 불 마법인지 얼음 마법인지 신나게 치고 박고 싸우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느긋하게 하품을 하는 리브라와 다르게 실질적인 장문(掌門)을 맡고 있는 베이커는 조급했다.

        ‘대가를 비는 천칭’의 특성 상 미숙한 이가 무리하게 신비의 힘을 끌어내면 수명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점성학파의 마법사들은 점진적이며 만성적인 성장을 목표로 한다.

        시련의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인들의 잠재력을 깎아먹는다는 뜻이었다.

       

        “저 안에는 저희 문하생들도 있습니다. 아직 신비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이들인데…….”

        “괜찮아, 아마 피해는 크지 않을 테니까.”

        “혹시 그것도 천칭으로 알아내신 사실입니까?”

        “아니.”

       

        리브라는 고개를 저었다.

        미래 예지는 ‘고결의 층’에 묶여있는 영혼의 10분의 1을 바쳐도 모자라다.

        그녀가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껏 모아온 정보를 토대로 한 예상이었다.

       

        재가 되어버린 꽃들 대신 묘비 앞의 새로운 화환을 천칭에 올린다.

        ‘대가를 얹는 천칭’이 영혼들의 무게를 재자, 본래에는 접근이 허락되지 않던 기록이 보이기 시작했다.

       

        ====

        — 관리자 : 지금부터 도망친 파딱 잡으러 갈 예정인데

        — 관리자 : 대답

        — 벽력뇌제霹靂雷帝 : 듣고 있다

        — 당신께 축복을 : 저도요 (๑•﹏•)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

        — 관리자 : 그 동안 갤 관리 못하니까 악질들 좀 알아서 쳐내주길 바람

        — 관리자 : 이번에 나랑 신입 파딱 없는 공백 니들이 잘 매꾸면 모임도 한 번 열어 봄

        — 관리자 : 근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왜 니네들한테 부탁을 해야 되냐

        — 관리자 : 부엉아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

        — 관리자 : 탕!

        — 부엉부엉부엉이 : 부…….

        — 관리자 : 수라고 해야지

        ====

       

        부재중이 떠 있는 주딱의 프로필을 확인한 리브라는 곧장 위치노트를 덮었다.

        주딱이 없는 갤러리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시기에 갑작스레 모습을 감춤으로서 그의 정체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게 되었다.

       

        92층의 실낙원.

        오직 묘비와 꽃만이 가득한 화원의 정 중앙에는 초대 탑주가 세웠다는 비석만큼이나 커다란 비석이 놓여 있었다.

        1층의 그것과 다른 점은 이 곳엔 오직 한 사람이 쓴 글만이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모두 리브라가 지금껏 천칭을 통해 얻어낸 주딱에 관한 내용이었다.

       

        [주딱은 갤러리가 더럽혀지는 것을 싫어한다]

       

        [주딱은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한다]

       

        [주딱은 얼음 정수기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주딱은 민트초코를 좋아한다]

       

        [주딱은 창vs칼 논쟁에서 창을 지지한다]

       

        [주딱은 메테오가 얼음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딱은 이제는 사라진 용의 부산물들을 가지고 있다]

       

        [주딱은……]

       

        .

        .

        .

       

        [주딱은 영혼들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주딱은 마탑의 시련에 간섭할 수 있다]

       

        [주딱은 현재 10층에 있다]

       

        “아~ 나도 파딱 하고 싶었는데.”

       

        비석에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적으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시켜만 주면 진짜 진짜 잘할 자신 있는데, 주딱한테 사랑받고 싶은데-.

       

        당장이라도 천칭에 이 낙원을 통째로 바쳐 대미궁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런 실력을 가진 주딱이 마음을 먹고 숨는다면 눈앞에 서 있어도 찾지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10층이라…… 최소한 중층까진 내려가 볼까?”

       

       혹시라도 그에게 분탕 취급을 받는다면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었기에.

        ‘천문대묘지기’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갤러리의 주인을 만나기 위한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

       

        “헉, 허억! 자, 잠시만요!”

        “클락! 거기서 잠깐 멈춰 봐!”

       

        나는 미궁을 주파하며 위치노트를 가지지 않은 채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게 창을 날렸다.

        프리나가 준 인형 덕에 어두운 와중에도 비교적 시야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갈림길이 나와도 곧장 내달리는 나와 달리 마법사들은 체력이 부족했다.

        아르투르가 내게 다가와 지금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여기가 출구 방향이 맞나? 네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아까부터 전혀 망설이지 않고…….”

        “몰라요.”

        “뭐?”

        “제 감이 가리키고 있는 건 셋이고 그중 둘은 겹쳐 있는데, 나머지 하나가 이끄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모험가에게는 저마다 특유의 ‘기감’이 있다.

        마법사들이 적성에 맞는 학파를 찾는 것처럼 모험가들의 기감도 각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나의 경우에는 창끝에 닿는 목표, 즉 표적을 찾도록 되어 있었다.

        그 끝에 뭐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셋 중 하나는 명계의 문이 확실했다.

       

        “잠깐, 하나라고? 왜 두 개가 같이 있는 쪽으로 가지 않는 거지?”

        “거기엔 제가 찾는 게 없을 테니까요.”

       

        본래 느긋하게 끝낼 계획이었던 미궁탐사는 어느덧 타임어택으로 변모해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전술핵연구소’ 게시판을 폐쇄하고 관련자들을 싸그리 차단하긴 했지만 아직 그 세력이 암약하고 있을 터.

        주딱인 내가 갤러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사이 얼마나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지 모른다.

        파딱들이 최대한 막더라도 피폭당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테니 빨리 마리엘을 찾아서 밖으로 던져 버려야 했다.

        그녀의 신비만이 핵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억제기였다.

       

        “다 쉬었으면 달립시다. 이제 거의 다 와 가니까.”

        “드, 드디어?”

       

        일곱 시간 가까이를 쉬지 않고 이동한 끝에 비로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내는 냉기가 느껴졌다.

        오는 중에 드문드문 얼어붙은 망자들의 시체도 보였다.

        거대한 얼음으로 막힌 미궁의 통로를 발견하자 나는 곧바로 위치노트를 열어보았다.

        갤러리에는 접속할 수 없지만, 안쪽에 수많은 노트의 신호가 잡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군.’

       

        나는 얼음벽에 손을 얹고 간섭기를 시도했다.

        아직 1위계에 불과한 해주 마법. 허나 모든 것은 상성이 중요했다.

        비나의 얼음 케이크를 끊임없이 핥아 온 내게 있어 0년차 마법사의 빙계 마법은 그야말로 우유빙수 떠먹는 수준.

        정신을 집중한 채 술식을 이루고 있는 구절을 하나씩 끊어내자 아르투르 일행이 도착한 순간 마법이 파훼되었다.

       

        챙!!

       

        “헉!?”

        “꺄악!”

        “누, 누구냐……!”

        “안심해라! 우린 미티어 학파다!”

        “이런 데 숨어 있었다니. 클락의 인도가 정확했군.”

       

        안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글레시아 학파의 마법사들이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벌써 사흘 넘게 미궁에 머물러 있던 이들은 이미 안개에 섞인 저주를 덕지덕지 달고 있는 상태였다.

        하나같이 짐승의 몰골이라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제대로 가지 않았지만, 나는 기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구석탱이에서 자빠져 자고 있던 샛노란 깃털의 새대가리에게 창을 콕 찔렀다.

       

        “히끼야아악!? 다, 당신은 뭔가요! 제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다니!”

        “내가 잡으러 온다 했죠.”

        “과, 관리인!?”

       

        음, 익숙한 비명.

        제대로 찾아왔군.

       

       

       

        *

       

        “출구 방향에서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망자들을 뚫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기서 농성하기로 한 거냐?”

        “나흘을 더 버티면 알아서 9층으로 전송될 테니까요.”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예?”

       

        등반에 실패하더라도 여기서 농성을 하려던 세라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명계의 문은 마족 중에서도 언데드, 즉 망자를 쏟아내는 일종의 소환진이다.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소환학파의 신비인 ‘만상의 양피지’같은 것에 가깝기에 빠르게 없애야 한다.

        현재 대미궁에 돌아다니는 망자들의 수준은 기껏해야 첫 번째 문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두 번째, 세 번째 문도 열릴 테니까.

       

        “세상에……!”

       

        그 이야기를 들은 세라의 표정은…… 저주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역시 모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이대로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여기서 나가야 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은 첫 번째 문 정도야 나 혼자서도 부술 수 있지만, 문제는 이미 풀려난 망자들이었다.

       

        “근처에 다른 학파의 마법사들도 있나요?”

        “여기까지 오는 길에 최대한 규합하긴 했지만 아직 남아있어요.”

        “인원을 나누는 편이 좋겠군.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최대한 생존자를 모으고 우리는 문으로 향하지.”

        “망자들은 우리처럼 말을 하는데, 안개 속에서 구별할 자신이 있습니까?”

        “그거라면 문제 없다.”

       

        모든 위치노트의 좌표를 확인할 수 있는 나와 다르게 미티어와 글레시아의 마법사들은 피아를 식별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물음에 아르투르는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산 자와 죽은 자의 털 색깔마저 구별하는 경지에 오른 건가? 

       

        의아해하던 나의 의문은 곧 풀리게 되었다.

       

        “어이, 거기!”

        “히익!? 네?”

        “메테오는 무슨 마법이지?”

        “소, 소환……?”

        “죽여!”

       

        불, 아니면 얼음.

        미궁에 남은 마법사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신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루한 F급 작가입니다.
    연참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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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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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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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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