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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쏴아아아.

       

       세면대의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음, 이게 맞나?

       

       꼼꼼하게 손을 씻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가님께 작게 물어보았다.

       

       

       “저기, 작가님.”

       

       [네?]

       

       “원래 여자들은 이렇게 친구들끼리 화장실도 같이 가는 거죠?”

       

       

       가끔가다 여자들이 단체로 화장실을 가는 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실제로 여성들은 화장실을 따라간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정말로 그럴까?

       

       여자로 오래 살아봤어야 알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저도 모르겠는데요.]

       

       “작가님은 여자면서 그런 것도 몰라요?”

       

       [···친구, 없었으니까.]

       

       

       앗.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뭐, 뭔가 꺼내면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버린 것 같았다.

       

       괜히 물어봤네.

       

       다행히 어색해진 분위기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멜리아가 볼일을 모두 마치고 내게 다가왔으니까.

       

       

       “미안, 늦었지?”

       

       “아뇨. 딱 좋았어요.”

       

       “···?”

       

       

       의문을 표하는 아멜리아에게 굳이 더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말해봤자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자, 그럼 돌아가죠. 선생님이 기다리시겠어요.”

       

       “그, 그래. 돌아가자.”

       

       

       오랜만에 잔뜩 놀았더니 배가 고파왔다.

       

       맛있는 거 먹어야지.

       

       아카데미는 밥이 맛있어서 좋다니까.

       

       오늘은 뭘 먹을까. 기대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데.”

       

       “응? 뭐가?”

       

       “아뇨, 그게 말이죠. 옷이 이렇게 흐트러져 있었던가, 해서요.”

       

       

       옷이 미묘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분명히 가지런히 정돈했었는데?

       

       살짝 구겨진 게, 마치 누가 만진 것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그, 글쎄. 누가 사물함을 착각한 거 아닐까? 왜, 그런 거 자주 있잖아.”

       

       “···그런가?”

       

       “그래. 이름만 있고 딱히 잠금장치 같은 건 없으니까. 부주의한 사람이 만진 게 아닐까?”

       

       

       흐음.

       

       그래, 아멜리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조금 기분 나쁘긴 하지만, 뭐.

       

       다른 사람이 착각하고 만졌다가 다시 돌려놨을 수도 있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던 찰나.

       

       레오타드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내 머리카락보다 유독 짧은 길이의, 검은 머리카락.

       

       

       “···뭔가 짧은 길이의 머리카락이 하나 있는데요.”

       

       “그, 그거야 네 머리카락이겠지···. 검은색이잖아.”

       

       “하지만 머리카락이 이렇게 짧지는···.”

       

       “그것도 몰라? ···아얏!”

       

       “?!”

       

       

       갑자기 자기 머리카락을 뽑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크게 당황했다.

       

       실수로 뽑으려고 했던 양보다 훨씬 많이 뽑아버렸는지, 대여섯 가닥을 손에 쥔 아멜리아의 눈에 물기가 가득했다.

       

       

       “이, 이거 봐. 내 머리카락보다 짧지?”

       

       “···그렇네요?”

       

       

       머리카락을 왜 갑자기 뽑아버리나 했더니, 내게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나보다 훨씬 긴 머리카락을 가졌지만 뽑힌 머리카락은 나와 비슷한 길이였다.

       

       

       “미안해요. 제가 조금 과민했던 것 같네요.”

       

       “그, 그래···. 빨리 돌아가자고.”

       

       

       그래도 뭔가 찝찝한데.

       

       ···아아, 좋은 생각이 났다.

       

       나중에 작가님에게 말해봐야지.

       

       

       

       ***

       

       

       

       “어, 어떻게 됐어?”

       

       

       방과 후, 다급히 내게 다가오는 아멜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미안.”

       

       “그래. 역시 실패했구나.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했어.”

       

       “···어?”

       

       

       실패할 거라는 걸 알았어?

       

       그런데 나를 거기에 데려다 놓은 거야?

       

       그런 의미를 담아 아멜리아를 쏘아보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야, 텔레파시 능력자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왜 잠입 같은걸···?”

       

       “원거리 통신이 가능한 능력이 아니라면, 그 순간 붙잡을 수 있잖아. 결국 실패했지만.”

       

       “확실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를 그런 위험한 상황에 던져놓은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조금 더 온건한 방법은 없었을까?

       

       그녀의 과격한 사고방식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를 넘었다.

       

       걸렸으면 퇴학으로는 안 끝났다고.

       

       잔뜩 화를 내려던 나의 입을,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막았다.

       

       

       “그래도 결국 안 들켰잖아.”

       

       “들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 그 사물함에 숨어있을 때 아르테를 밖으로 데려간 내 공도 조금 생각해 줄래?”

       

       “···눈치채고 있었구나.”

       

       “당연한 거 아냐? 네가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탈의실 어딘가에 있을 게 뻔했고, 숨을 곳이라고 해봐야 사물함 말고 더 있니?”

       

       

       크, 크윽···.

       

       반박할 말은 이것저것 있었지만, 더 이상의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논리에서 밀린 게 아니었다. 떠올리면 안 되는 감각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사물함이라고 하니 그 레오타드의 촉감과 냄새가 떠오르는 것 같아서.

       

       아, 아니야. 생각하지 말자.

       

       잔뜩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가라앉혔다.

       

       

       “자, 이거 받아.”

       

       “···이게 뭔데?”

       

       “열어보면 알 거야.”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던 도중, 아멜리아가 내게 검은 가방을 건네주었다.

       

       의문을 표하며 가방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내용물.

       

       가방 안을 가득 채울 정도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

       

       “나라고 그냥 던져놓고 입 씻을 생각은 없어. 자, 위험수당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걱정하지 마. 전부 진짜니까.”

       

       

       내가 고작 이런 돈에 넘어갈 것 같냐.

       

       아무리 그래도 내 인생이 끝날 뻔했다고.

       

       그렇게 일갈하고 싶었지만, 시우의 입은 결국 열리지 않았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그걸로 장비라도 좋은 걸로 마련해 놔. 무슨 위험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알겠어.”

       

       “그리고, 미안했어.”

       

       

       살짝 얼굴을 붉힌 아멜리아가, 의아해하는 시우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속사포처럼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걸 충분히 깨달았거든.”

       

       

       그걸 한참 전에 깨달아줬으면 했는데.

       

       시우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어제, 누군가가 학교에 침입해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클레어 선생님의 말씀이 교실에 울려 퍼졌다.

       

       ···침입자라고?

       

       

       “사유는 불명이다. 하지만 여학생의 속옷을 뒤진 걸로 추정컨대, 초인 성범죄자겠지. ···하아, 도대체가. 능력을 고작 그런 곳에 사용하다니.”

       

       

       시우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여학생의 속옷을 뒤진 성범죄자?

       

       시우의 시선이 아르테 이시스에게로 향했다.

       

       생글생글, 기분이 좋은 듯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

       

       나의 시선을 눈치챈 걸까? 고개를 돌린 그녀가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서, 설마. 아니, 아니겠지···?

       

       

       “다들 조심하고, 여학생은 특히나 몸가짐을 조심하도록. 만약 수상한 자가 보인다면 꼭 신고하고. 알겠지?”

       

       “네!”

       

       “나 참, 경찰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이번엔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경찰이라니.

       

       그녀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그러나 시우의 희망은 금세 꺾였다.

       

       그녀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워 보였으니까.

       

       시우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

       

       

       

       [역시 독자님이에요. 사소한 일도 소재로 사용하는 그 모습···! 존경스러워요!]

       

       “저는 작가님이 설정을 까먹은 게 더 감탄스러운데요.”

       

       [으, 으윽···.]

       

       

       그래.

       

       나는 어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작가님도 기뻐할 거라 생각해서 한참 동안 읊어줬더니 나온 말이 참 가관이었지.

       

       

       “비밀의 방? 그게 뭔데요, 라니. 하아···.”

       

       [으, 으엑···. 죄, 죄송하다니까요! 까먹을 수도 있지!]

       

       “잊어먹을 게 따로 있죠.”

       

       

       분명 저번에 아카데미 메인 시나리오로 쓰자고 했었잖아.

       

       그 사이에 사건이 몇 개나 지나갔다고 벌써 그걸 까먹었다는 사실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래.

       

       작가님을 이해해야지.

       

       충격적인 유시우 도주부터, USB 실종사건까지.

       

       작가님의 멘탈에 타격을 줄 만한 사건은 충분히 있었다.

       

       까먹는다고 이상한 건 아니다···. 아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스파이 전개, 반응은 어땠어요?”

       

       [으음, 다행히 무난했어요. 주인공의 활약이 너무 밋밋한 것 같아요, 라는 반응은 조금 있었지만.]

       

       “휴우, 다행이네요···.”

       

       

       작가님은 이 세계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인물들의 세세한 행동 방식까지 완벽하게 조절할 수 없는 작가님은, 가끔씩 생기는 변수는 적당히 상상력으로 때우고 있었다.

       

       그런데 저번 사건에서는 문제가 한 두 개 터진 게 아니었지.

       

       라이라와 1대1 전투 씬을 작가님은 볼 수 없었다.

       

       주인공과 미노타우로스의 전투 씬도 USB의 손상으로 날아갔고.

       

       유시우와 라이라의 커밍아웃 씬은 볼 수 있지 않았냐고?

       

       미쳤냐. 여자애 버리고 도망가는 주인공을 소설로 써?

       

       주인공 대신 독자들이 전부 도망가겠다, 야.

       

       결국 작가님은 대부분의 전개를 상상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고, 작가님이 가진 정보는 라이라는 사망했다는 것 하나.

       

       심지어 그것도 거짓 정보네. 살아있으니까.

       

       그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작가님이 어찌어찌 수습에 들어갔고, 다행히 성공한 모양이었다.

       

       ···작가님, 생각보다 글 잘 쓰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그 생각은 접어버렸다.

       

       평소 행동거지를 보면 잘 쓸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저번에는 제대로 못 봤으니까, 이번에는 꼭 볼 거에요···! 메인 스토리의 시작!]

       

       “···작가님이 까먹은 메인 스토리요?”

       

       [이, 이익! 말하지 말라니까!]

       

       

       서비스 씬도 끝났고, 다음 메인 스토리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딱 좋았어.

       

       같은 반 학생이 실수로 만진 옷가지에서 영감을 얻었거든.

       

       

       “유시우 군은, 위버멘쉬의 잠입을 어떻게 해결할지. ···후후, 이번에는 제대로 지켜봐야겠네요.”

       

       [비밀의 방을 찾기 위해 위버멘쉬에서 파견한 빌런···! 그리고 빌런을 찾기 위해 단결하는 히로인과 주인공! 꺄아, 이건 히트에요!]

       

       

       흐트러진 옷을 보고 든 생각은 간단했다.

       

       비밀의 방을 찾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학교를 뒤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빌런 조직에서 학교를 뒤지기 위해 누군가를 파견하지 않았을까?

       

       그런 간단한 생각에서 만들어진 빌런의 등장이었다.

       

       새로운 위협에서, 과연 유시우가 어떤 식으로 이 역경을 극복할까?

       

       던전에서는 유시우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움직였지.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움직일까.

       

       나도 기대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들 시우를 미워하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사회적으로 죽지 않은 시우에게 이걸 사네라니···.

    그렇게 아르테의 레오타드 킁카킁카가 괘씸했던 걸까요? 괘씸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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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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