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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0

       천정에 박힌 별들이 울어대는 야심한 시각.

         

       로즈마리와 버멜은 클라이스가 마련한 방에서 몇 시간째 머무르며 머리를 서로 맞대었다.

         

       바깥에는 경비가 돌아다니고 있다. 경비들은 전부 백야 스크롤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우려하던 것과는 달리 로즈마리는 얌전했다. 예의범절을 지킬 줄 알았고, 평소 품행은 외모만큼이나 고왔다.

         

       그럴 수밖에. 그녀는 예전에 한 나라의 왕녀였다.

       

       “그래서, 일리야드와 틸레트는 다음 학기부터 통폐합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커.”

         

       버멜의 설명을 들은 로즈마리가 순수하게 경탄했다.

         

       “벌써 거기까지 손을 써 놓은 거야? 너 혼자서?”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도망만 잘 다니는 어리바리한 엘프였는데. 불과 한 달 사이에 자주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직접 행동할 정도로 발전했다.

         

       어떻게 보면 언니 덕분이 아닐까?

         

       “나는 겨울이 끝나면 바로 일리야드로 갈 거야. 물론 프레이도 데리고. 거기서 조금 전까지 얘기한 걸 전부 하나씩 실행해 보려고.”

       “나는 어쩌고? 버리게?”

       “넌 가고 싶어도 못 가잖아. 신상 다 알려졌는데 무슨.”

         

       로즈마리는 끄응,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언니를 보고 싶기는 한데, 자신은 이미 정체가 까발려진 상태였다.

         

       물론 사회적 혼란을 피하고자 대중에게 공개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위 귀족이나 황실은 로즈마리가 절멸급 마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 ‘증기의 비’ 사건 이후로 제국과 카우렐리아는 절찬리에 협력 중이다.

         

       엘프국에서도 이미 아는 것이다. 로즈마리가 누구인지를.

         

       당연히 입국 심사에서 잘린다. 얼굴이라도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엘프 나라에는 못 들어간다.

         

       “에테르 언니 얼굴을 못 본다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길라흐에게 죽는 것보다는 백 배 낫지만 말이다.

         

       “대신 너는 여기서 남하하려는 마왕군을 막아 줘.”

       “뭐. 나보고 본진을 배신하라고?”

       “너 어차피 원래 있던 곳으로도 못 돌아간다며. 호천 때문에.”

       “흐음.”

         

       솔직히 갈등이 생기긴 한다.

         

       제아무리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오랜 시간 몸담았던 마왕군을 저버리는 짓을 하라니.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양심이 대바늘에 닿은 것처럼 쿡쿡 찔렸다.

          

       “뭘 그렇게 망설여?”

       “네가 뭘 몰라서 그래.”

       “호천이 널 먼저 이간질하려고 했어.”

       “네가 하려는 건 이간질이 아니고?”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로즈마리도 길라흐가 싫다. 그렇다고 마왕군 전체를 저버릴 수는 없다. 지금 와서 그러기에는 마왕님에게 입은 은혜가 너무 많았다.

         

       버멜도 이런 로즈마리의 심경을 모르진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화두를 던졌다.

         

       “잘 생각해 봐, 타르케닐 황녀. 죽음에서 널 구해준 건 누구지?”

       “마왕님이지.”

       “아니, 직접 구출해 준 사람.”

       “그건 에테르 언니.”

         

       갑자기 무슨 질문이지? 싶었지만 로즈마리는 그냥저냥 대답해 주었다.

         

       “자연스레 마왕군에 소속된 건 누구 때문이고?”

       “언니.”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야?”

       “언니.”

       “네 언니랑 마왕이 싸우면 누구 편에 붙을 건데?”

       “그야 언니…. 아앗!”

         

       로즈마리의 안색이 울그락푸르락하게 변했다.

         

       그녀는 당황하며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맞다. 여기 제국이었지.”

       

       마지막 발언은 엄청 위험했다. 마왕에게 충성심이 깊은 창천이나 호천의 귀에 들어갔더라면 숙청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버멜 외에는 들은 존재가 없었다.

         

       심신을 가라앉힌 로즈마리는 버멜을 쏘아보았다.

         

       “너, 유도신문도 쓸 줄 아는구나.”

       “그래도 그거면 된 거지?”

       “뭐가?”

        “너  말이야. 마왕보다 에테르를 더 따른다는 거잖아.”

       “…….”

         

       생각해 보니 그랬다.

         

       로즈마리의 가치판단 기준은 에테르에게 몰려있었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도. 처음 마왕군에 종군하던 것도. 전부 에테르와 아카샤의 도움 덕분이었으니까.

         

       그렇게 로즈마리는 마왕성에 입성했다. 하여 다른 마수들에게 마왕의 사상을 전해들었다.

         

       금안족에 의한, 금안족을 위한, 금안족만을 향한 신세계를 건설한다.

         

       마왕이 내건 슬로건은 도수 높은 양주와도 같았다. 정신연령이 낮았던 로즈마리를 취하게 만드는 덴 단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금안족 청소부로 사는 것이, 다른 종족의 왕으로 사는 것보다 더 큰 영예일 수 있도록.’

         

       그것 때문에 마왕을 부활시키려고 얼마나 뼈빠지는 노력을 했던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는 네가 알아서 판단해.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잊지 마. 에테르가 정상으로 되돌아 올 때까지 우린 동맹이라는 거.”

       “…….”

       

       로즈마리가 수심에 잠긴 눈을 하는 사이.

         

       버멜은 이때다 싶어 충격적인 말을 추가로 내뱉었다.

         

       “마왕군을 배신할 수 없다면 나라에 귀띔만 해 주어도 좋아. 너한테는 그런 능력이 있잖아?”

         

       잠깐, 능력?

         

       “능력이라니….”

         

       로즈마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 다닐 때부터 지레짐작하고는 있었는데.

         

       설마 스코프의 존재를 진짜로 알고 있었을 줄이야.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글쎄다.”

         

       눈앞에 있는 녀석.

         

       이젠 도저히 평범한 엘프라고 볼 수 없었다.

         

         

       **

         

         

       이민의 나라, 카우렐리아.

         

       민주 혁명이 성공한 이후. 엘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는 그런 이명이 붙었다.

         

       여전히 하이엘프의 순혈주의는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실력으로 증명할 기회가 없는 건 아니었다. 못해도 제국이나 다른 나라보다는 훨 나았다.

       

       

       이곳에는 신분제가 없었으니까.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

       

       당연한 이치였다. 이민자에게도 기회는 늘 열려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걸었으면 그에 준하는 대가도 필요한 법.

         

       카우렐리아의 수도, ‘메르헤름’은 민주정을 선택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고 있었다. 이곳에선 분쟁의 씨가 마를 날이 없었다.

         

       “총장님. 아무래도 오늘은 일찍 퇴근하셔야 할 것 같아요.”

         

       비서의 말에 펜을 놀리던 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여덟 시부터 교통 통제랍니다.”

       “또 시위한대?”

       “네.”

       

       여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벌써 몇 달이야 이게.”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어쩔 수 없어요. 다들 금안족 내쫓으라고 난리인데.”

       “그래서 피검사 돌렸잖아. 다들 붉은색이던데 왜 그래?”

       “그래도 아니꼬운 거죠.”

         

       필리우트 제국에서 ‘증기의 비’ 사건이 벌어진 이후.

         

       카우렐리아에선 금안족에 대한 혐오가 나날이 늘어났다. 해당 사건에 개입한 마수가 실은 금안족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부터였다.

         

       “아직도 논란은 그대로예요. 일각에선 피검사 결과가 조작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위조된 건 없는지 진상규명하라고…….”

       “그건 또 처음 듣네. 어떤 얼간이가 그래?”

       “국민들이요.”

       “아, 젠장.”

         

       여인은 팔꿈치를 책상에 기댄 채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됐다. 퇴근하자.”

         

       여인은 서류 봉투 몇 장을 들고 총장실을 나섰다.

         

       시내로 내려가기 위한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섬을 나가는 톨게이트부터 시작해서 터미널, 광장, 시청까지. 전부 교통이 정체되고 있었다.

         

       “야 이 무능한 새끼들아! 사퇴 안 하냐!”

       “하이고야, 나라 망했네, 나라 망했어!”

       “선조님들, 선조님들께서 일구어 놓으신 카우렐리아 1천 년의 역사가 마수 손에 지워지게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드러눕거나 물건을 던져댔다. 경찰이 물대포를 쏘면 반대쪽에선 화염구를 쏘았다. 또 경찰이 연성술로 바리케이드를 세워도 윈드 커터로 인해 금방 잘려나갔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여인은 몸을 낮추며 집까지 가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오늘은 잘 귀가하나 싶었는데.

         

       퍼억!

         

       “……아.”

         

       모처럼 새로 산 정장에 무언가가 묻었다.

         

       대수림에 서식하는 조류인 하피의 알이었다.

         

       “마녀년아! 왜 아직도 아카데미에서 출퇴근하냐? 얼른 사퇴 안 해?”

       “…….”

         

       여인은 서둘러 집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시위대가 이곳까지 쫓아오지는 않았다.

         

       “자애로운 르퀴네스 여신이시여, 저에게 어찌 이런 시련을 내려주십니까.”

         

       거울 앞으로 다가서니 추레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수은처럼 윤기 나던 은발은 고된 업무로 푸석푸석해졌다. 오팔처럼 총천연색으로 빛나던 파이아이에서는 총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후우.”

         

       이것이 일리야드 마도 아카데미의 총장.

         

       ‘세실 르네이’의 현주소였다.

         

       “마왕군 놈들, 모조리 석기시대로 보내 버려야…….”

         

       세실은 이를 갈며 침대에 누웠다.

         

       자신이 이렇게 욕을 먹는 건 전부 마왕군 때문이다.

         

       마왕군이 자신이 총장으로 있는 일리야드 아카데미를 습격했기에. 그리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기에. 학교 총책임자인 자신에게 용퇴론이 불거진 것이다.

         

       ‘정말 그때 아카데미에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정령학회에 출장을 가 있었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왜 마왕군이 습격하려던 걸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하셨습니까?’

       ‘아무런 징후가 없었어요. 전날 저녁에 바다가 잠잠한 걸 확인하고 떠났습니다.’

       ‘최상급 정령을 넷이나 지니고 있으면서 그런 것 하나 탐지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죄송합니다.’

         

       결국 정치인도 아닌데 욕만 더럽게 먹고 말았다.

         

       “마수 이름이 리바이어던이라고 했지.”

         

       다음에 만난다면 필히 석탄 스테이크로 만들어주리라.

         

       그런 다짐을 한 세실의 눈빛이 진한 빨강으로 변했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흐음.”

         

       오늘 못다한 업무부터 마저 처리해야 한다.

         

       리바이어던이 유능한 교수들을 죽여버린 것 때문에 학사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교수직인데 왜 이렇게 지원들을 안 하지…….”

         

       일리야드에 이어 틸레트도 마수의 습격을 받았다. 이젠 교수가 되려면 노력뿐만 아니라 목숨도 걸어야 할 판국이었다. 그 때문인지 능력 괜찮은 신입 교직원을 뽑는 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번 지원자는 조금 괜찮았으면….”

         

       세실은 마지막 지원서 봉투를 조심스레 뜯어보았다.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제국의 한 국립 아카데미에서 화계마도이론을 전공한 평범한 포스트 닥터.

         

       “뭐야?”

         

       틸레트도 아니고, 그저 그런 아카데미라니. 일단 흥미가 팍 식었다.

         

       그런데 봉투에는 지원서와 자기소개서 말고도 이것저것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논문이었다.

         

       “그래, 논문! 논문만 잘 쓰면 되지!”

         

       출신 학교가 별로라고 차별할 때가 아니었다.

         

       카우렐리아는 기회의 나라. 학벌이 무슨 상관인가? 논문 잘 쓰고 연구만 잘 하면 그만인데!

         

       세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논문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

         

       “……와.”

         

       그녀의 눈이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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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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