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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0

       “……이 유적은.”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소피아는 침묵을 깨뜨렸다.

        

       “이 유적은, 성당을 처음으로 지은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비앙키!”

        

       소피아가 그렇게 입을 열자 추기경이 황급히 외쳤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곧장 찌그러졌다. 한 번 각인된 공포의 효과는 꽤 훌륭한 것이라, 상처가 이미 상당히 치유된 뒤에도 우리를 쉽사리 공격할 생각은 못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기사들 모두 무력화되어 몸이 묶여있는데 공격해봐야 자기네 명줄이나 줄일 뿐이지.

        

       “계속해보십시오.”

        

       내 말에, 소피아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 시설이 만들어지고 한참 뒤에 태어나서 자세한 건 몰라요. 하지만…… 이곳이 ‘원래 준비되어 있던 곳’을 사용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아직은 자기 힘을 완벽하게 각성하지 못했고, 그래서 기사단 중에서도 말단에 가까운 위치였기에 아주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듣지 못했으리라.

        

       “소피아, 당신은—”

        

       그런 소피아를 보며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물었다. 인제 와서 따져야 뭘 하겠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진짜 현자 타임이 지독하게 온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소피아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쟤한테도 모든 일이 끝나면 이것저것 알려주겠다고 했었는데. 상황을 보니 단둘이 앉아 대화를 나눌 틈은 없을 것 같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려는 거죠? 그 조각으로 뭘 할 수 있나요?”

        

       “일단 조각은 저희가 보관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샤를로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기는 벨부르의 영토다. 그리고 그 아래에 멋대로 자리를 잡은 비밀 단체가 보관하고 있는 엄청나게 수상한 물건.

        

       당연히 벨부르 왕국이 보관하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저를 배신하진 않으시겠죠?”

        

       샤를로트는 그저 그렇게 물을 뿐이었다.

        

       나는 불과 얼마 전에 샤를로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배신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그 말을 할 때도 나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샤를로트는 조금은 다르게 느꼈던 모양이다.

        

       웃어준다거나, 조금 태도가 부드럽게 변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샤를로트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가 주었다.

        

       그만큼 나를 믿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나는 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

        

       그 이후에 우리가 했던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성당 주변에는 이미 알게 모르게 벨부르 왕국군이 배치되어있었다. 우리가 지하 시설로 들어가는 위치를 찾은 순간부터 국왕은 나의 말이 진실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간 건 우리였지만, 그렇다고 벨부르 왕국이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몇 시간 이내로 우리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거나,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대군을 밀어 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아슬아슬한 시간, 그러니까 슬슬 벨부르 왕국군이 성당으로 대놓고 진격하기 직전의 시간이 되어서야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래도 나가는 것은 들어가는 것보다는 간단했다.

        

       성당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으니까.

        

       우리가 그리폰과 기사단까지 이기고 바깥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성당에 있는 법국의 기사들은 우리를 보고 엄청나게 당황했다.

        

       아니, 이미 그 이전부터 당황한 상태였다.

        

       “……우욱.”

        

       바깥으로 나오던 미아가 순간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성당 내부의 모두가 사망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바깥으로 나오는 길목의 적들은 죄다 육편이 되어있었다.

        

       이 입구까지 오는 와중에 널린 짐승들의 시체도 솔직히 상당히 역겨웠지만, 짐승과 사람의 시체를 비교하자면 당연히 후자가 훨씬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내가 그래서 애들을 2층으로 안 보내려고 했던 거고.

        

       그런데 이곳에 널린 시체는 내가 만들어낸 2층의 시체보다 더 상태가 심각했다.

        

       그리폰이 대체 어떻게 이곳을 통해 나왔는지, 입구 근처의 벽이 허물어져 있고, 입구 자체도 억지로 바깥으로 부서진 채 열려 있었다.

        

       ……나는 분명히 지하 터널 쪽으로 풀어줬던 것 같은데 말이지.

        

       설마 길을 헤매다가 억지로 벽을 부숴가며 출구를 찾은 걸까?

        

       성당 입구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병사들과 기사들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안 그래도 당한 일 때문에 잔뜩 화가 난 상태에, 복잡한 길 때문에 아예 이성을 잃어버린 그리폰이 한바탕 헤집고 나가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나마 살아남은 병사들도 우리를 보고는 경악한 표정밖에는 짓지 못했다.

        

       제일 앞에 너덜너덜해진 법복을 입은 추기경을 세워두었었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샤를로트!”

        

       우리가 입구를 통해 바깥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국왕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괘, 괜찮으냐!? 안에서 그리폰이 튀어나오는 걸 봤다. 그리폰이……! 대체 저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샤를로트의 어깨를 잡은 채 그녀의 상태를 살피는 국왕의 모습은 위풍당당한 왕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아버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아마 앨리스는 평생 보지 못했을.

        

       “괜찮습니다. 그 그리폰은……”

        

       샤를로트는 잠깐 말을 쉬었다가,

        

       “그 그리폰이, 왕국군도 공격했나요?”

        

       조금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니, 성당 입구를 박차고 그리폰이 날아오르는 것은 보았다만, 성당 내의 인원 외에 다른 이들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하늘로 솟구치더구나. 내 평생 그리폰을, 그것도 벨부르 영토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국왕은 샤를로트의 상태를 한 차례 더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 모양이었다.

        

       “…….”

        

       조금은 이성이 돌아왔는지, 우리 쪽으로 다시 돌아온 시선은 샤를로트를 보던 것보다는 훨씬 날카로운 것이었다.

        

       특히 나를 보는 시선은.

        

       국왕은 분명히 이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직접 본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 그리폰이 나와 엮여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아니, 나도 안에서 우연히 만난 거니까.

        

       그냥 ‘게임에서는 할 수 없지만, 설정상으로는 가능할 법한’ 공략을 시도했을 뿐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대들을 왕궁으로 불러 자세한 증언을 듣고 싶으나…… 상황이 시급하구나.”

        

       확실히 그건 그렇다.

        

       루테티아 한가운데서 그리폰이 날아오르고, 성당 안에서 어떤 정신 나간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표하건, 묻어버리건, 엄청나게 머리 아프고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리고 우리도 한동안 엄청나게 시달리겠지. 황제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건, 어쨌거나 황제가 하지 말라는 일을 내가 한 셈이니까.

        

       ……음.

        

       그냥 시간을 확 돌려버릴까?

        

       나는 한순간이나마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나의 그 고민은 국왕의 다음 말에 확 날아가 버렸다.

        

       “지금 법국의 땅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

        

       응?

        

       “너희들이 지하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법국에서 수상한 빛이 관측되었다.”

        

       수상한 빛이라니?

        

       “마치 결계를 친 것처럼, 법국 전체를 감싸고 있다고 하더구나. 사실, 이 루테티아에서도 다 보일 정도다.”

        

       …….

        

       내 표정을 보고, 국왕은 차라리 우리에게 직접 그 광경을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국왕이 몸을 돌려서 성당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한차례 마주 본 뒤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그리고, 국왕이 말했던 것이……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

        

       법국은 원래 벨부르 땅이었던 부분을 일부 할양받아 만들어진 곳이다. 그 사실만 들어도 알겠지만, 그 모티브는 바로 바티칸이었다.

        

       물론 이 세계에는 이탈리아를 모티브로 한 나라가 따로 존재하긴 하지만…… 뭐, 설정 만드는 거야 제작진 마음대로인 법이니까.

        

       다만 이탈리아 한가운데 있는 바티칸과는 다르게 법국은 벨부르 왕국 한가운데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벨부르 국경지대의 어느 작은 부분을 받아 세워진 곳이고, 이탈리아를 모티브로 한 반도국가 ‘이벨리아 왕국’과 벨부르 왕국의 국경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니 루테티아와는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 운송 수단을 이용한다면 넘어가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중간에 다른 영지 몇 개를 끼고 있을 수준의 거리는 된다.

        

       하지만 그렇게 먼 거리에서도, 법국 전체를 휘감듯 올라가는 ‘결계’의 모습은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단순히 빛기둥이 올라오는 형태가 아니었다. 

        

       “저게, 뭐죠……?”

        

       그 광경을 보고, 소피아가 중얼거렸다.

        

       “…….”

        

       나는 그 중얼거림에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야 나도 저런 건 모르니까.

        

       법국이 전쟁을 위해 준비한 계획들을 직접 차지하고 사용했던 황제도, 아예 국가 전체에 두를 정도로 거대한 마법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도 설정상의 스케일은 절대로 작다고 할 수 없었지만—

        

       …….

        

       저거, 설마 여신의 힘인가?

        

       대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세계관에서 저 정도의 힘을 쓰려면 그게 당연할 것 같다. 다른 세계관이긴 하지만 전작들에서도 여신의 힘은 일반적인 마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힘이었으니까.

        

       …….

        

       아니, 뭔가 일을 하나 끝내면 그대로 좀 끝날 줄을 알아야지.

        

       그 뒤에서 더 큰 게 터지면 어쩌라는 건지.

        

       하.

       

       

       진짜, 작작 좀 해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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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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